[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5. 가랑비에 옷 젖듯

2021. 1. 11. 11:03Feature

 

 

[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5. 가랑비에 옷 젖듯

 

- 2020젠더감수성워크숍에 대한 짧은 소회

장윤정(연극평론가)

 

2020 연극의 해 사업 중 하나인 <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 연극x젠더감수성, 대체 뭔데?>는 연극 안의 젠더감수성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고 토론하고, 직접 글을 쓰는 과정입니다. 전국의 7개 지역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은 강의와 토론의 의미를 넘어 각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과 불편함을 가진 동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새롭게 연대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단어 ‘젠더감수성’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젠더감수성’이 있는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요? 

이번 연재는 워크숍에 참여해주신 안산, 광주, 대구, 부산, 춘천, 대전, 전주지역의 연극인들이 보내주신 원고로 이루어집니다.

주최/주관 2020연극의해집행위원회

주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개인 및 단체들과 연대하여 성폭력에 맞서고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수평적인 연극인들의 운동입니다.

 

 한국 연극사에서 근대극이 등장한 것은 20세기였다. 그 후 오늘날까지 1세기가 지났으니,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이다. 2018년, 미투운동이 등장하였고, 연극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3년째다. 그런데, 벌써 연극 현장에선 ‘지겨워’하거나 ‘과하다’는 분위기가 일렁인다. 100년이 넘는 세월에서 3년이 차지하는 비율과 실질적으로 페미니즘 연극이 국내 연극 현장에서 메인스트림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혹 ‘과하다’는 분위기가 ‘과한’ 것은 아닐까. 이런 와중에 2020연극의 해 사업에서 젠더감수성 워크숍을 진행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문예위와 문체부의 공공기관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젠더감수성의 필요성이 공적으로 선언되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초의 전국 단위 젠더감수성 워크숍이 시행되었다. 

 젠더감수성 워크숍의 방식은 크게 1부 강의와 2부 토론회로 나뉜다. 1부는 김보은 강사의 젠더감수성에 대한 정의와 작품 사례, 그리고 앞으로의 대안 등을 담고 있다. 2부는 모더레이터를 중심으로 소위 정전이라 일컫는 국내외 고전을 젠더감수성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토론 참여자들이 현장에서 겪은 사례 등을 나누며 대안을 찾아가는 토론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1부 강의는 모호할 수 있는 젠더감수성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끔 하는 데에 유효한 시간이었다. 특히, 영화와 연극 작품을 예로 들어 참여자들이 좀 더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끔 했다. 2부 고전 다시 읽기 프로그램은 마치 이론을 실습해보듯, 1부 강의에서 진행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전 희곡을 다시 읽는 작업을 진행했다. 다시 읽기에 선정된 대상작은 연극비평집단시선의 『월간시선』 속 「삐딱한 시선」 코너에 실린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젠더적 관점이 명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작품 속 혹은 일상 속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남성중심적 논리를 발견해내는 과정을 경험하게끔 하였다. 또, 참여자들은 시대변화에 따라 작품을 재해석해야 하는 필요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과거의 작품이 동시대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된다면 어떠한 형태로 등장하는 것이 적합할 것인가에 관한 토론을 나누었다. 『불편한 연극』을 바탕으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에서는 참여자들이 서로 낯선 만남 속에서도 교감을 하고 연대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전국 단위의 거대한 네트워킹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젠더감수성 워크숍의 미덕은 충분했다. 

 젠더감수성 워크숍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 적극적으로 진행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로지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젠더감수성이 결여된 경우를 두고, ‘싫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 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김보은 강사의 강의 또한, 그러한 믿음이 확장된 결과물이었다. 이 믿음이 눈에 보이는 효과를 일으키기까지, 아무래도 장기적인 시간이 요구될 것 같다. 즉, 무엇보다 사업의 연속성이 중요해 보인다. 올해 성공적인 마무리가 가능했던 것은 주최자와 참여자의 열의 못지않게 공공기관의 지원 또한 그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20연극의 해는 마무리되더라도 연극 현장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들에 대한 공공기관의 관심과 지원은 꾸준해지기를 바래본다. 그리하여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어느새 변화해 있는 작업 현장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국내 연극사에서 젠더감수성이 주요 어젠다로 호명되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우린 지금 그 역사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긍심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앞으로의 100년 연극사 쓰기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출처_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