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_마치며] 7. '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이분화된 대립을 넘어

 

 

‘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이분화된 대립을 넘어

 

- 전국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에서 파생된 질문들

 

 

김민조 (모더레이터)

사진출처_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백래시는 결코 윤리적 올바름 자체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출현하지 않는다. 백래시의 언어는 스스로를 정당화할 전거(典據)와 토대를 전통화된 기율 속에서 발견하고, 그 권위에 기대어 현재 실행되고 있는 윤리적 실천의 결함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All Lives Matter”나 “그것은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다” 같은 종류의 발화는 정확히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발화들의 배후에는 만인(All)의 권리를 옹호하는 ‘휴머니즘’에 대한 관념이, 양성평등 운동을 지시하는 ‘진짜 페미니즘’이라는 관념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 관념들은 현재의 윤리적 실천을 가치절하하기 위해 급조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래시의 주체들은 자신을 비윤리적인 정념이 아니라 보다 고차적인 정의를 위해 복무하는 주체로 위장하게 만들어주는 이 관념들을 중심으로 결집한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연극계에도 백래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은 이미 수차례 보고되어 온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극계 내에서 백래시 현상을 결집하고 있는 가장 유력한 관념이 “예술” 혹은 “연극” 그 자체라는 점에 대해 좀 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예술(중심)주의”나 “연극(중심)주의”로 불려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연극사에서 연극은 오랫동안 현실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상상된 모든 것을 포월(匍越, 포괄하며 넘어섬)하는 장소로 간주되어 왔다. 어쩌면 남성 거장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 현대연극사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블랙박스 극장에 갇혀 있는 관객에게 추한 것, 더러운 것, 끔찍한 것, 반인륜적인 것을 보여줌으로써 충격에 빠뜨리는 연극이 ‘가장 연극다운 연극’의 전범으로 정착되어 온 과정을 역사화하는 일부터 착수해야 할지 모른다. 추(醜)의 미학에 뿌리를 둔 연극의 모델은 19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강력한 소구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피상적인 현실의 원리(윤리)과 근원적인 예술의 원리(미)라는 이분법을 강화하고, 진정한 예술가라면 후자를 통해 전자를 넘어서야 한다는 신념을 양산한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백래시의 주체들이 ‘검열’이라는 단어를 운위하는 패턴 또한 같은 맥락에서 분석될 수 있다.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검열’로 호명하는 것은 일종의 프레임 정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젠더감수성이나 인권감수성의 중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대신, 현실의 원리(윤리)가 예술의 원리(미)를 억압하고 있는 구도로 프레임화하는 것이다.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는 오래된 슬로건이 백래시의 언어로 전유되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에 있다. 

 

사진출처_2020 연극의 해

 

재현 윤리의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공연 <언도큐멘타>의 경우에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창작진은 불편한 장면을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주는(showing) 행위가 연극 예술에서는 용인된다고 믿었거나, 연극이라면 으레 그러한 표현 방식을 구사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남성 캐릭터들의 항의’처럼 기능적인 면에서도 불필요했던 장면들이 굳이 삽입된 정황을 고려해보면 이 공연에도 여전히 보수적인 연극의 기율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래시의 언어를 근본적으로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승인되어 온 ‘연극’의 관념 자체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미투 운동 이후의 변화에 동참하고 있으나 연극과 예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연극인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번 전국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에서도 본인의 일상생활이나 공연 프로덕션 내에서는 젠더감수성에 입각해 행동하지만 ‘작품’을 만들 때에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워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현실의 동료가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저항하고 있지만, 연극 작품에 그러한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을 종종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변화는 곧바로 예술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창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이나 운동과는 별개로 ‘예술의 윤리’에 대해 숙의하는 트랙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연극 예술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어떠한 특수성을 갖고 있는가? 미투 이후의 연극은 윤리적인 것과 미적인 것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하고 있는가? 관객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연극들은 어떤 미적 감정들을 생산해내는가? 이 질문들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전들에 대한 비판과 동시대의 유의미한 연극들에 대한 아카이빙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