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계를 도는 회전문_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세계를 도는 회전문

 

: 나의 세계가 위협되지 않는다면, 운명은 흔들리지 않는다.

 

글_강정아

사진: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전시

 

시대가 불온할 때, 신비주의가 성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으나, 왠지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세기말이 도래할 때 음모론은 출몰하기 때문이다. 인류세-자본세1, 기후 위기, 감염병으로 인한 거리두기는 우리의 일상을 마비시켰고 혐오와 폭력의 얼굴은 그림자로 숨지 않게 되었다. 기존에 믿었던 가치와 신념이 한순간에 절망으로 휩싸일 때 기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 이야기의 사실, 바탕, 출처를 알기보다는 그럴듯한 상황으로 넘기려는 경우도 많다. 왠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가기에는 피로하고 그것들을 다 알 필요도 없다는 생각도 하기에 세상 도처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보다 모르고자 하는 것이 많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그것들 전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음모론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가 흔들린다는 사실이며 기존의 질서와 상식으로 지탱해온 세계가 더이상 안전하지 않고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유효하지 않은 세계, 불온함으로부터 구원은 질서 바깥일 수도 있다.

위기에 대한 불확실함이 일상 가까이 침투했을 때 우리의 삶은 무엇을 신뢰하고 믿기를 선택할 것인가. 최근 불거져 나온 샤머니즘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한듯하다. 제13회를 맞이한 광주비엔날레《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과 일민미술관의《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에서 드러난 샤머니즘은 얼핏 봤을 때 불온한 시대 상황을 목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 도래하는 구원자, 과학적·인식론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포착하려는 듯한 시도로 보이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 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은 저항의 역사와 공동의 트라우마, 기억이 공존 하는 역사적 장소 광주에서 주목한 ‘마음’과 ‘영혼’은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못했던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체화되는 것 이상-너머 사유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안하며 인간중심주의 기저로 깔려 잘려 나간 존재의 것들이 무엇인지 반문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못할 어느 ‘중간지대’의 찰나들, 기록하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며, 비생산적인, 감성을 목도하는 감각들, 이성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못할 표현이 가진 추상의 힘을 도출한다. 전시 곳곳에서 나타난 샤머니즘은 ‘치유’와 ‘확장된 마음’ 이란 보이지 않은 것들을 감각하는 힘으로 신비주의, 샤먼, 고대모계사회, 애니미즘을 소환하며 자본주의 순환체계가 빚어온 질서 바깥-터부시한 것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끔 한다. 그것은 우리가 잊혀왔고 기억하지 못할 머나먼 서사를 당겨오면서 타자의 고통과 상처를 재현의 대상으로만 위치하지 않고 공동의 기억으로 닿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안고 현재 기록할 서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전시_1

 

사진: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전시_2

 

작년 여신-신화를 기반2으로 한 전시를 기획하면서 ‘지모신', 땅의 여신에 관한 여러 사례를 조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샤머니즘’에 대한 리서치가 이뤄졌었다. 특히, 북방 및 중앙아시아, 북아메리카·인도·한국·일본·동남아시아 등에서 볼 수 있었으며, 지모신의 몸이 찢기면서 세계가 되는 바빌로니아의 신화, 그리스로마신화의 가이아, 한국의 마고신화, 일본, 중국의 여신신화를 민담이나 설화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지모신의 몸이 가진 ‘토지-땅’ 의 상징성은 하늘과 땅의 조화 속에 만물이 성장하고 번성하며, 여성과 밭이라는 성행위와 파종 같은 비유를 들면서 순환적 생명과 귀환, 죽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로도 연결되기도 한다.3 그리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본원적 삶과 죽음이라는 존재의 공간적 제약을 초월하려는 몸부림, 꿈과 희망, 불안과 절망 등이 상징하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우리 나라 바리데기-바리공주 신화는 삶과 죽음과 재생이라는 원형적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바리’는 ‘버려진 아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서천서역국(지하 세계-죽음, 저승)의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며 여러 고행을 겪는다. 서사의 전반에 바리데기 공주는 ‘여성’이였기 때문에 버림을 받고 중후반에는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무장 승을 위하여 일곱 아들을 낳음으로 생명수를 구하게 된다.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원 하고 원혼을 위한 영도자,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당이 된다. 우리나라 바리데기의 신화에서 ‘죽음’은 끝이 아닌 또 하나의 재생을 위한 절차이며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리데기는 ‘무당’이 됨으로써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의 매개자, 영매이다.

인간의 고된 삶, 불완전하고 고된 삶으로부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때때로 우리를 지배하기도 한다. 불안감을 잠식시키기 위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점을 쳐보는 행위, 우리를 구원할 바리데기의 화신(化身)을 염원하는 것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닌 봄이 오면 다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처럼 땅이 생명의 순환을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송지형, ‘사주포차’,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복합재료, 200X200X250cm(사진=일민미술관)

 

불확실함-불온한 시기, 코로나19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더 가까이 내일에 대한 평안한 안녕 또한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당연한 일상이 마비되었고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희미한 예감은 불안한 마음을 키워가기도 한다. 코로나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신의 운명을 알고 싶습니까?” 일민미술관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의 전시의 제목은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전시는 ‘운명’에 대한 고찰, 사주포차와 관객과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깨닫고 미래를 점쳐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6개의 상담소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고 박해수 작가 의 <오래된 약국>은 “당신의 미래는 (                )에 달려있다.”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 상담 받는 퍼포머가 달라진다. 퍼포머들은 정신분석, 조향, 휴먼차트를 통해 개개인의 관객과 대면한다. 전시에서 흥미롭게 본 것은 감상의 형태보다 ‘체험’에 방점을 두어 예술가가 관객과의 대면을 통해 감각을 교환하면서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공감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비이상적, 상식적이지 않은 세계로부터의 두려움을 냉소주의나 회의주의로 관조하지 않고 산자와 죽은 자의 공생의 관계, 자연으로부터 문화의 출발이 아닌, 생명의 생성 과정을 되짚어 본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않은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불화하는 ‘몸4’의 관계성을 집중하고자 한다. 왜 몸이라 일컫냐면, 행위의 습관은 인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합의된 언어와 개념이 설득하고 변명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은 이미 길들여 있다. 먹고 말하고 감각하고 웃고 떠드는 감정 또한 사회 질서로부터 경험으로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몸’은 이성과 감성,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할/받는 경험이 공존하곤 한다. 질서 바깥의 질서를 요구하고 설명하고 이해함으로써 ‘불화’를 체현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득 차 있다. 사회구조 안팎의 담론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비판하고 해결 하기에는 삶은 하나의 방향성이 아닌, 모순적이고 이질적이며 불화의 ‘몸’은 규칙과 질서 사이를 배회한다.

개개인 서로 다른 몸들이 세계와 맞닿고 우리는 함께-살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서로 간의 거리감이 연결감각으로 이어지며 무너진 것들로부터 단절이 아닌 하나의 생성으로 생명의 순환을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 힐데가르디스 빙겐시스 Hildegard von Bingen  <보편자 인간(13세기)> 5)

 

두 전시에서 드러난 ‘샤머니즘’은 이분법적 분리된 이성의 세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우리를 구성하는 대지적인 것과 식물적인 것, 동물적인 것을 호출하며 은폐 되고 삭제된, 언어로 교환되지 않은 세계가 가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혐오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본연의 감춰진-터부시한 것들이 질서 안팎과 길들여진 몸을 배회하면서 끊임없는 트러블을 일으키는 민낯을 드러낸다. 나와 세계와의 관계, 불화하는 ‘몸’들이 만들어낸 개별의 이야기는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구술로 민담으로 전해 내려온 설화들처럼 말이다.

우리의 세계가 위협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운명은 흔들리지 않는다. 세계는 위협되고 기존의 질서와 운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화는 예측 가능한 것 으로부터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온다.

 


1. 1980년대 유진 스토머Eugene Stoermer에 의해 만들어졌다. 인류세는 그 지질학적인 엄밀성을 차치하고, 용어의 정치적 함의 때문에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캐리 울프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용어에 찬성하는 쪽의 절반 정도 는 인류세는 인간중심주의가 끼친 폐해를 웅변적으로 지적하는 말이라 여긴다. 인간 중심의 일반의 행위로 원인을 돌려버리면 실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불평등을 숨기고 쉽게 감추기 쉬움을 지적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 러한 파괴를 지칭할 수 있는 말을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러웽, 공-산의 사유>, 최유미, p114-115, 도서출판b, 2020

2. <머리 없는 몸과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들, 2021.01.10.-24 > 전시는 신화의 '찢긴 몸'과 '은폐된 사건'에 주목 한다. 절단된 신체는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사유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며 원초적인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오는 상징성이 문화와 역사 안에서 어떻게 잠식하고 있는지, 찢겨진 몸의 조각, 묻혀진 유해(有海)를 발굴하고자 한다. <머리 없는 몸과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들>에서 담을 이야기는 가부장적인 거세와 순교, 신성화되지 않으면 몸을 얻을 수 없다는 역사적 상상과 함께 문명이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영토화 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하며, '몸'을 계급화로 만들어 버리기 쉽다는 점을 포착한다.

3. <동아시아 여신신화의 여성정체성>, 차옥숭 외3인, 42p,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4. 여기서 나타내는 ‘몸’은 자본 생산 과정의 상품으로, 육신과 인간의 생명을 노동으로 대체됨으로 자본 생산 체계 영역으로 작동됨을 상징한다.

5) 로마 가톨릭교회의 베네딕트회 수녀였다. 2012년 교황 베네딕트 16세에 의해 성녀이자 교회박사로 시성되었다. 그녀는 수녀원생활을 하면서도 예술가, 작가, 카운셀러, 언어학자, 자연학자, 과학자, 철학자, 의사, 약초학자, 시인, 운동가, 예언자, 작곡가 등의 활동을 했다. 신학, 식물학, 의학 서적을 썼으며, 편지, 서정시, 음악,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도덕극을 썼으며, 만물박사로도 그려진다.

 

필자소개
강정아 : 히스테리안출판사를 운영하며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합니다. 
글을 엮고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