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리' 죽은 자와 산자를 잇는 하얀 조각_<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안녕>

2021. 7. 9. 11:44Review

 

'고리' 죽은 자와 산자를 잇는 하얀 조각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 안녕> 리뷰

 

글_불나방

 

‘안녕’은 늘 나에게 반가움보다는 이별을 느끼게 하는 다소 쓸쓸한 단어가 된지 오래된 되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버렸는지 모른다. 오늘은 조금은 준비된 안녕을 말하고자 한다. 아직 완연한 봄의 기운이 채워지지 않은 낯선 시간, 공연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 안녕>은 사령제(死靈祭)1를 통해 각자가 가야할 길을 안내해 주려고 한다. 만남과 이별을 약속하는 단어의 틈이 가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다림, 가야하는 길을 닦는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향한다. 지상의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갈수록 차갑고 어두운 자리로 나를 인도한다. 산 자와 죽은 자 그 사이에 위치해 마지막 안녕을 나누기 위해 모두가 모였다. 관객들은 바로 보이는 하얀 불빛이 비추는 무대를 가로질러 자리를 잡는다. 무대에는 외롭지 않을 그 길 위에 음악을 연주할 연주자들과 죽은 자의 지난 시간을 닦아줄 퍼포머가 위치해 있다. 벗겨진 피아노, 마주보고 있는 보면대, 외로운 전자음악, 제의를 위한 무녀의 자리까지. 무대의 중앙을 비껴 오른쪽으로 살짝 쏠린 구성은 마치 하나의 기운이 멀리 퍼져나가는 기운의 방향과도 흡사했다. 출발선상에 위치한 하얀 천 위에 조명을 받아 더욱더 빛나는 하얀 무구(巫具)2가 있다. 오늘 가장 중요한 시간과 관계를 연결시켜줄 ‘고리’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다. 

 

공연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 안녕>은 구자민 연출, 예술가곡 3부작의 마지막으로 ‘씻김굿’의 틀을 가져와 죽은 자의 지난날의 상처를 닦아주고 산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감정의 변화를 일으켜 정신적 갈등과 불안을 해소시켜주고,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하는데 있다.3 넘실대는 우울, 슬픔과 고통 등 형용할 수 없는 무(無)의 감각 안에서 방황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다음을 잘 살아가라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있어 오늘의 공연을 통해 단단한 안녕을 할 수 있는 듯 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하지 못한 그 단단한 안녕4을 말이다. 공연은 크게 3가지의 형태가 순차적으로 움직인다. 제의의 시작과 끝을 구성하는 관객참여의 소리 닦음, 영상과 퍼포먼스를 통해 만들어지는 씻김의 행위, 말러의 가곡을 통해서 모두가 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여 관객과 공연자들 사이에서도 관계성을 맺으며 진행한다. 

 

처음 정각을 살짝 지나고 적막을 깨고 안내자가 등장한다. 앞서 보면대에 먼저 준비한 참여자들이 반원을 그리며 앉아있다. 안내자 김지연의 목소리와 멀리 보이는 화면 속 글자를 따라 읽으며 자리에 모인 모두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한다. 기대와 기다림, 반짝임, 나른함과 떨림 그 어딘가를 맴도는 공기사이 하나, 둘 모두가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잠시 후, 묵직한 피아노에 단단한 살갗이 드러나자 금빛의 현이 조명에 비춰 반짝인다. 정면에 마주하고 있는 현과 현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얀 명주실과 참여자 사이에서 반복되는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불편한 긁음 따른 울림, 긴장감으로 인한 떨림, 공간을 도는 메아리와 허밍  그리고 마지막으로 흔들거리는 나의 움직임이 부딪치기를 반복한다. 울림 그리고 떨림이라 할 수 있는 보잉(bowing)의 연주 기법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따라간다. 마치 배에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제자리를 반복하는 나의 움직임이 엉성하고 더딜 뿐이다. 명주실의 줄다리기를 통해 내가 가야하는 길과 죽은 자가 가야 하는 길이 점점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실의 움직임에 따라 각자가 가야할 길의 위치가 정해지는 듯 했다. 유심히 현과 줄 사이를 지켜보니 줄과 줄 사이에 걸려버렸다. 명주실의 끊김이 점점 가까워지고 곧 툭하고 줄이 끊어져버렸다. 허무했다. 평탄할 것이라 생각한 그 길이 아니었다. 걸림돌이 내 앞길을 막아서 오히려 길을 제거해버렸다. 가야할 길이 아직도 산적해 있는 데 말이다.

 

사진1.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 안녕>

타이밍 싸움 :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다

 

클래식, 전통, 전자음악이 서로 음악이라는 장르로 통일되지만 서로 개별적 존재로 위치하여 서로 조우했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운동경기에서 수비와 공격이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움직이는 모습처럼 사운드와 사운드 사이에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사운드의 긴장감이 점정 고조될 때마다 공연장의 공기까지 점차적으로 바뀐다. 하얀 천을 거치며 누워있던 작가가 일어나 객석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작가 뒷면의 화면에는 배 모양을 닮은 모자를 쓴 작가5가 보인다. 같은 시간 화면의 안과 밖에서 시 다른 몸짓들이 서로 맞물리며 재현의 재현을 거듭하기를 기다린다.

 

사진2.<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 안녕>

 

몸짓을 통해 관객과 작가, 제의에 있어 산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고리’, 무구6가 무대와 객석에 놓여있다 내 에 던 가 은 지 산 인 나’는 알 수 만 그 속에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원한과 죄책감, 상실감, 우울감 등의 덩어리가 응축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구와 나, 그리고 작가 사이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그녀의 손과 무릎 위 나의 손이 닿자 중간 어디쯤의 온도로 잠시 서로에게 조용한 인사를 나눴다. 손에 쥐어진 무구는 혼재되는 감정과 이미지가 스쳐가듯 다소 부드러운 손길로 한 번쯤 어루만져진다. 무구를 미완성하기 위한 반대로 완성된 무구를 부수기 위한 몸짓이 화면과 무대에 서로 교차적으로 흘러간다. 작가의 눈물과 함께 반복되는 부수기의 몸짓과 파편된 조각의 잔해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부서지는 조각은 터지면서 하얀 가루를 내뱉는다. 기존의 씻김굿에서 없는 파괴의 몸짓7을 가지면 또 하나의 울부짖음으로 태어난다. 씻김의 행위, 책상에 진 글씨가 면 기도가 니다”, 로야의 품명에 난 은 가 다”의 과 진다과 도 의 행위들을 해 가 는 을 득한.

 

마지막으로 닦음의 행위가 진행된다. 이젠 보내주어야 한다.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회복할 준비를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짧은 시간이 주어지고 공연은 마무리된다. 기존의 5악장에서 2악장을 더 늘려 7악장의 구성으로 가는 이와 머무는 이들 사이의 잠시 비슷한 온도의 접점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휘몰아치는 감정이 잦아들게 말이다.

 

제목과 공연에서도 나타나듯 지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차가운 그날의 기억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도 담담해지기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 숨죽여 눈물이 흘리는 날이 있을 때 조금씩 안녕이라는 말을 연습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오늘 그 예행연습을 조금이나마 해봤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안녕”

 

 

 

1.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무속의례. 네이버 지식 백과사전

2. 윤소원, 「진도씻김굿 무구의 표현적 상징성에 관한 연구」, 2015, p. 1~47 무구는 망자의 맺힌 한을 풀고 부정을 씻기는 의식을 수행하는 무녀와 망자 그리고 굿에 모인 사람들 간의 상호 소통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특히 무구의 사용을 통해 발현되는 해원, 정화, 풀이, 절연, 재단생의 등의 상징 의미들에는 ‘분리-전이-재통합’이라는 통과의례의 제 과정을 담고 있다.

3. 같은 논문, p.51

4.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 안녕> 서문 중 단단한 추모를 차용하여 단단한 안녕이라 바꿔서 말해본다.

5. 화면 안와 무대의 작가는 무당이자 무녀로 제의를 진행하는 수행자이자 무구와 함께 산자와 죽을 자를 잇는 매개하는 역할로 보인다.

6. 같은 논문, p. 58   무구는 말 그대로 굿에서 사용되는 소도구로, 굿의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드러난다. 보통은 흔히 볼 수 있는 집안의 물건들을 가지고 즉석에서 만들며, 고풀이, 씻김, 길닦음에 행위에 있어서도 사용된다. (예 : 풀이에 과정에서 씻는 과정을 빗자루료 표현한다.)

7. 빌렘 플루서 지음, 안규철 옮김, 「몸짓들 : 현상학시론」, 워크룸, 2007, p.82    몸짓이라 표현한 것은 행동과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몸짓이 여타의 행동들과 구분되는 것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 행동에서 어떤 결정이 밖으로 나타난다는 사실, - 즉 존재의 표명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 행동에 ‘동기가 부여된다.'는 사실이다.

필자소개

불나방 : 프로N잡러, '불안'을 키워드로 개인의 서사를 수집하는 시각예술가이자 독립예술축제를 만드는 기획자, 인디언밥의 편집위 등 이일 저일을 합니다. 실수와 오타를 반복하지만 '예술계'안에서 글로 이미지로 기록하고자 합니다:)

 

<공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