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를 뱉기 위하여 _ 펭귄어패럴 <펭귄어패럴 radio edition ver.1>

 

‘라’를 뱉기 위하여

 

펭귄어패럴 <펭귄어패럴 radio edition ver.1> 리뷰

 

글_윤여준

‘라’의 음을 소리내 뱉어보자. 솔과 시 사이, 여섯 번째 계이름인 ‘라’를 한 번에 정확히 소리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도레미파솔- 정직하게 다섯 번 음을 올리고 나서야 겨우 ‘라’의 음을 뱉을 수 있다. 중간에 한 음이라도 빠트리면 다음 음은 어딘가 불안해진다. 이처럼 순서에 따라 한 단계씩 밟아가야만 정확하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있다. 펭귄어패럴의 공연 <펭귄어패럴 radio edition ver.1>은 마치 ‘라’에 다다르기 위해 ‘도’부터 하나씩 솔직하게 5개의 음을 뱉은 후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2018년도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2019년도 <노동의 철학1: 일자박기 연습시간> 그리고 2020년도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19에 의해 본 공연 이후에 이루어질 2021년도 <노동의 철학2: 공단서점 가는 길>을 지나 만나게 된 정확한 음정이었다. 

 

사진1. 펭귄어패럴 제공

 

2018년도 펭귄시장 2층 나-10호의 작은 봉제공장에서 40년 경력의 미싱사 강명자와 초보 미싱사 신소우주는 각자의 자리에서 흰 천에 흰 선을 일자로 박으며 노동을 말하기 시작했다. 2019년 신소우주와 강명자는 펭귄어패럴의 문을 열고 나와 상가의 복도를 작은 농성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4명의 또 다른 여성을 그곳에 초대했다. 이들은 각자의 노동의 철학을 읊었고, 그 이야기들은 책 「노동의 철학1: 일자박기 연습시간」(2019, 펭귄어패럴)으로 기록되었다. 2020년도, 1980년도에 발행된 「노동의 철학」(1980, 광민사)와 2019년에 세상에 나온 「노동의 철학1: 일자박기 연습시간」의 간극을 확인하기 위해 가리봉동 오거리의 공단서점으로 외출을 계획하고 있던 펭귄어패럴은 가리봉동에 가기 전, 종로에 3일간 들렸다. 두산아트랩, 만 40세 이하만 지원할 수 있는 이 지원사업에 만 40세가 된 신소우주가 선정되며, 그렇게 <펭귄어패럴 radio edition ver.1>은 종로구 한 공연장에 자리를 펼쳤다. 봉제공장도, 상가의 복도도, 공단서점도 아닌 공연 전문 극장에서. 

2021년 5월, 펭귄어패럴은 티켓부스가 있고 계단식 좌석과 무대가 있는 극장에 그들의 일터, 봉제공장을 소환했다. 12개의 미싱 테이블과 온 사방에 엉켜있는 실뭉치들, 그리고 조명을 대신하는 작업등은 두산아트센터를 신소우주, 권영자, 강명자, 이 세 여성의 노동의 자리로 뒤바꾸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 앉은 세 여성은 각자의 미싱 작업을 하며, 귀가 심심하지 않도록 라디오를 틀었다. 일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음악이 흐르는, 펭귄어패럴의 라디오.

공연이 진행되는 3일 동안, 매일 다른 DJ가 각기 다른 노동시간을 주제로 말하는 라디오가 재생되었다. 첫날의 라디오에선 신소우주가 진행하는 연장근로시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느덧 4년 차 미싱사가 된 신소우주는 꿀차를 천천히 마시며 뿌연 감정을 덜어내는 한 밤의 연장근로시간을 말했다. 자신에게 말을 걸고 기다려주는 긴 밤의 이야기 끝에, 그는 그의 노래 ‘밤의 나이’를 불렀다. 노래엔 기억하려 하지 않는 밤이 꾹꾹 눌러써지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눌러쓰던 그 밤은, 밤밤밤~ 세 명이 목소리가 겹치며 잠시 단단해졌다. 신소우주가 강명자, 권영자와 함께 후렴구를 부르며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마치 그 한 밤 그를 견디게 해주는 작은 안도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에게 왜 자꾸 숨냐고 말을 걸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두 여자의 얼굴에 잠시 웃음을 짓게 되는 그런 찰나의 위안이 밤밤밤, 함께 서로를 향해 손을 휘저으며 부르는 그 한 마디에서 들려왔다.

 

사진2. 펭귄어패럴 제공

 

두 번째 날의 진행을 맡은 권영자는 지난 「노동의 철학1: 일자박기 연습시간」에서 쓴 글, ‘살아지고 살아가는 것’에 멜로디를 붙였다. 노래에서 권영자는 열심히 살아가기도, 쳐져 있기도 한 하루들을 보내며 흩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그 모습마저 사랑하려 노력한다. 권영자의 살아지는 하루는 버티며 살아간 천근만근의 하루들이 열심히 채운 꽉 찬 공백의 시간이었다. 권영자가 진행한 두 번째 회차의 라디오는 휴게시간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모였다. 권영자의 휴게시간에는 그의 살아감에 함께하는 반려견 만두가 있다. 자녀들을 자신의 옆으로 부르고, 삶의 생기가 되어주는 만두와 교감하며 권영자는 오늘을 의식하는 휴게시간을 그린다.

마지막 날, 강명자는 웃기지 않은 농담에 웃지 않으며 쓴 퇴근 전 마감시간 일기를 읽었다. 금메달 출신 기능공 실장님의 노동에는 명예로 겨우 덮어놓은 뭣 같은 노동의 현실이 있다. 12시간을 일하면서도 일감이 줄어들까봐 걱정하는 실장을 보며 강명자는 걱정없이 일을 그만두는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퇴근 후 걸어가는 시간에서 위로를 얻는다. 간단히 해결할 저녁밥의 무게는 가볍고, 집으로 가는 걸음엔 걱정이 잠시 발꿈치 뒤로 숨는다. 강명자는 그의 노래 ‘나의 직업은 미싱사’를 부르며, 아무리 떼어내도 끝끝내 어디엔가 붙어 따라오는 실오라기를 하나씩 떼어내듯, 오늘도 일터에서 따라온 걱정을 하나씩 떼어낸다. 

3회차의 공연, 세 번의 라디오 방송에선 여섯 여성의의 목소리가 각각의 시간에 맞추어 초대되었다. 민경은, 복태, 송지은, 안수연, 윤여준, 쟤, 노동의 삶을 견디거나, 흘려보내거나, 잊지 않고자 하는 여섯 명의 여성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했다. 잠든 아이들 사이에서 잠시 나와 나만의 텅 빈 시간을 보내거나, 장애를 얻게 된 남편과 살아가며 물리치료사라는 꿈을 꾸거나, 암생존자로서 아픈 몸과 나의 효능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렀다. 시간을 꾹꾹 눌러쓴 목소리가 공연장에 퍼졌다. 

미싱기의 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잠시 멈춘 휴게시간, 신소우주, 권영자, 강명자는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모였다. 이들은 각자가 미싱을 박아 만든 흰 동그란 쿠션에 함께 솜을 채워 넣었다. 잠시 긴장을 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움직일 에너지를 채워 넣듯이 말이다. 그리고 퇴근 전 마감시간, 이들은 둥글게 놓인 미싱 작업대를 둘러 걸었다. 셋은 함께 걸음의 속도를 맞추며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곡, ‘호각’의 음을 맞추었다. 목소리를 맞추어갔다. 

‘새벽 흐린 광장에 그대 홀로 서있네  오십 평생 일해온 지난 시절의 기억
한 번도 놓지 않은 호각을 입에 물고  다시 한 번 부르네 새벽어둠을 넘어(…)’ 1

 

‘도’부터 시작해야 소리 낼 수 있는 ‘라’음은 어쩌면 7개의 계이름 중 가장 애매한 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한 번도 따로 불러본 적 없는 음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음은 오케스트라가 시작하기 전, 서로의 소리를 맞추는 조율의 음이기도 하다. 440헤르츠의 초당 진동수를 지닌 ‘라’는 사람이 듣기에 가장 명확한 음을 지닌다. 그렇게 악기들은 서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케스트라 시작 전, 함께 ‘라’음을 연주하며 소리를 맞춘다. 

신소우주, 권영자, 강명자는 함께 걸음의 속도와 음정을 맞추며 각자의 살아가고 살아지는 시간을 조율한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음정의 기준이 되는 ‘라’의 진동처럼, 이들은 없는 시간으로 여겨지는 연장근로시간, 휴게시간, 퇴근 전 마감시간을 말하며 각자의 노동과 노동이 사라진 공백의 시간을 조율한다. 이들은 악기가 아니기에 ‘도’부터 ‘솔’까지 다섯 음을 읊어야만 ‘라’를 찾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기꺼이 견디며 한 음씩 정직하게 높여본다. 그리고 가끔, 서로를 마주 보며 함께 뱉고 있는 목소리를 확인한다. 소리 내는 것이 힘들진 않은지, 나의 목소리가 당신의 목소리를 덮어버리진 않았는지, 오늘은 더 높은 ‘라’를 만나고 싶은지, 그렇게 서로의 눈을 보며 ‘함께’를 조율해간다.

 

1. 꽃다지 4집 '호각' 중에서 (조성일 작곡 및 작사, 2011)

 

필자소개

윤여준: 책과 전시를 만듭니다. 부끄러움이 많지만 필요할 때 목소리를 더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며 삽니다.

 

<공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