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우리가 사랑하는 축제를 향한 공동체: 우뭇가사리 콩국-우리가 뿔뿔이 흩어졌다면

2022. 9. 26. 17:36Feature

독립예술집담회 12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서 참여자 김민수, 김유경, 김은한, 남하나, 박상미, 백교희, 백운철, 이은주, 조아라, 채민, 한윤미, 허민주님이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축제를 향한 공동체

우뭇가사리 콩국-우리가 뿔뿔이 흩어졌다면

 

글_유경 

 

박수와 뜨거운 호응,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 짠 소리를 내는 시원한 맥주, 처음 만난 사람들과 도란도란 나누는 공연 이야기, 같은 축제를 즐기고 있다는 연대감……. 모두 ‘함께’라는 이름 아래 가능했던 축제의 장면들이다. 우리는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만들고, 참여하며 응원한다. 예술가, 운영 스태프, 기획자, 관객 등 축제의 주체들은 그 안에서, 혹은 주체들끼리 상호작용하며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한다. 이는 축제의 공동체성으로 이것이 존재하기에 축제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축제의 주체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면, 그야말로 콩가루가 되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축제는 이리저리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축제가 우리가 이전까지 즐겨왔던 축제와 같은 모습이고,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혹은 모두 함께했던 축제 그 이상의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이번 8월, ‘콩가루가 된 우리는 어떻게 뭉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12th 독립예술집담회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은 이러한 축제의 함께, 즉 공동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부 지방의 여름 별미인 우뭇가사리 콩국을 나눠 먹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공동체성과 연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콩국의 고소함, 오이의 아삭거림과 우뭇가사리의 말캉거림이 모여 시원한 맛을 내는 것처럼, 축제를 사랑하는 이들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공동체성’을 중심으로 도란도란 둘러앉았다. 과연 콩가루가 된 우리는 어떻게 함께 맥주잔을 짠, 부딪히며 즐겁게 축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제공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공동체, 실제일까 환상일까

 

축제의 공동체성은 축제의 특성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띈다. 공동체성을 느끼는 주체와 범위가 모두 다르다. 커다란 락페스티벌,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펜스 앞에서 간절히 기다리던 팬들은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한편, ‘제천국제음악영화제’처럼 그 장르적 특성이 뚜렷한 축제는 그 장르의 팬들이 모였기에 축제 전반에서도 공동체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동체성과 연대 그 자체가 축제의 목적인 축제도 있다. 혐오 세력들에 맞서 ‘퀴어퍼레이드’는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연대를 감각하고, 이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성은 무엇일까? “우리는 프린지 출신이야.”라고 말할 수 있었던 어떤 끈끈한 소속감이 있었던 세대를 거쳐, 느슨한 공동체로서 기능해오던 프린지는 말 그대로 ‘변두리들의 공동체’였다. 강요받거나 어떤 조직에 속하는 것이 아닌, 나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면서 서로 응원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진 곳, 그곳에서의 느슨한 연대로 작동했다. 

프린지 안의 공동체성을 느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묻자, 몇몇은 ‘프린지 살롱’과 ‘아티스트 라운지’ 등을 꼽았다. 그날 본 공연에 대해서 스태프, 인디스트, 아티스트, 관객이 모두 대화를 함께 나누던 기억은 특별했다. 함께 공간 투어를 했던 아티스트들끼리 서로의 공연을 보고 인사하며, 타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고 응원한 것까지 이곳에서만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이외에도 인디스트, 스태프와 함께 대화하고 공연을 만들어갔던 기억, 혹은 인디스트와 스태프 사이 따뜻한 환대의 기억 속에서 느낀 공동체성을 들을 수 있었다. 시대와 주체에 따라 그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프린지의 이러한 특성에 대해 대부분은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프린지의 이런 성격이 25년이라는 긴 축제의 세월 속에서 꾸준히, 대다수 주체에게 유지되고 있었을까? 혹은, 공동체성이 정말로 실재하고 있었을까? 2013년 이후로 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라는 큰 공공공간에서 모두 함께 모여 진행했던 축제는 2021년부터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축제의 중지와 재개, 수많은 사건은 단지 축제가 물리적으로 분리된 것뿐만 아니라, 사실 그 주체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나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사실 축제의 공동체성에 대한 논의는 ‘독립예술제’가 ‘서울프린지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던 2000년대에도 있었다. 2013년 이전의 홍대 시절 프린지 또한, 지금의 프린지와 다르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각자의 공연을 했고, 스태프들은 일을 빨리 꾸리고 정리했으며, 인디스트라는 협력자들이 협력했던 구조였다. 축제 참여자들이 함께 앉아 프린지를 이야기하던 그 프로그램들은 축제 공간이 한 곳에 있었던 2013년부터 2020년까지만 유효하게 작동했다. 환대와 연대라는 프린지의 기본 태도와 가치 이외에, 구체적인 공동체로서 나아갔던 경험은 사실 장소의 특수성이 프린지 자체의 특성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린지의 어떤 기능과 성격이 축제 공동체로 향하지 못하게 만들었나 살펴보아야 한다.

 

제공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프린지 정신과 공동체성의 장애물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가치 지향적 축제다. 어떤 특별한 장르를 가진 음악 축제, 영화 축제의 마니아적 속성과는 완전히 다르다. 동시에 가치 지향적인 타 축제들과도 다르다. 환경에 관련된 축제처럼 어떤 전문가성이나 공통으로 이뤄야 할 목표가 부족하고, 퀴어문화축제처럼 함께 혐오 세력에 맞서는 연대의 추동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프린지는 독립예술축제이기에 끊임없이 비주류를 향해, 주류 예술을 거슬러 올라오는 가치를 따랐고, 축제의 모습은 해마다 바뀌었다. 단단한 가치 위에,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커다란 이점이면서, 어느 한 켠에서는 취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축제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성은 어떨까. 프린지는 오랜 시간 동안 마포구에서 진행되었지만, 그 지역성이 결여되어 있다. 관에서 대규모로 진행하던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엔 인력 투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예산도 작았다. 또한 마포의 지역민, 관광 자원과 프린지는 그 연결성도 적었을뿐더러, 서울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마포구와 적극적으로 연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프린지는 마포구 보다는 홍대 앞, 그리고 그곳에 기반을 둔 독립예술이라는 특성에 더 가까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프린지 자체의 기반은 끊임없이 흔들려왔다. 적은 예산에 더해 지역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타 축제의 경우, 축제가 힘들더라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은 안정, 보상과 존중, 또 외부의 도움에서 나온다. 하지만 프린지는 사무국이 일하는 공간과 축제 공간까지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홍대 일대에서 진행되던 축제가 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겨간 것 또한 공동체성과 그에 관련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닌 젠트리피케이션이 주된 이유였다. 이렇게 흔들리는 기반 속에서 프린지를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축제를 계속하게 되었던 건 축제 구성원들의 열망도 있었겠지만 사실 쉴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축제를 1년 쉬어가는 것이 내부에서 꼭 필요하다 한들, 축제가 그다음 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원 기관은 가시적이고 명확한 장애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축제가 공동체가 아닌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는 고민이 더해졌다. 소비자 정체성으로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축제는 플랫폼으로써 예술가는 ‘축제분담금’이라는 값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인식이 커져갔다. 축제의 가치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프린지의 지향성과 이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 대해 프린지가 여러 주체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대안을 찾거나 그 지향성을 다시 견고히 다지기에는 축제의 에너지는 소진되어 있었고, 기반은 해결되지 않았다. 

 

제공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이에 더해 과거와 달리 지금은 프린지가 아니더라도 괜찮은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많은 청년예술지원 사업이 생겨났고, 동시에 민간 예술축제도 많이 생겨났다. 축제분담금을 내면서까지 축제에 참여하는, 프린지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재고하게 된다. 또, 참여 아티스트의 경우에도 예술인, 예술대학생을 넘어 사회인 동아리, 학교 극회, 생활예술인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했던 과거에 비해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자원활동가인 인디스트 중 예술 관련 전공이 아닌 대학생의 비중도 함께 줄어들었다. 프린지가 아닌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예술계의 변화와 더불어, 성장과 자본주의적 가치를 쫓는 현대 사회 관점에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사회의 아티스트와 인디스트는 독립예술의 힘이면서, 그들의 세상으로 프린지의 미래를 견인할 힘이기도 했기에, 이런 다양성의 변화는 아쉬움이 남는다. 

 

흩어진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

 

자유 참가의 원칙으로 독립예술축제를 열어왔던 프린지의 정신은 축제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 가치 때문에, 혹은 덕분에 프린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축제를 멈출 수 없었다.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던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는 지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증명되었다. 특히 2020년과 2021년, 대면으로 축제를 열고 관객을 만났던 거의 유일한 축제로서, 많은 예술가가 작품을 발표하고 관객과 서로 마주했던 경험은 독립예술과 예술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까지도 전달했다. 프린지를 근거로 하여 많은 청년, 신진 예술인 지원 사업이 생겨났고 프린지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은 이제 100만 원, 2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치를 수행해온 것은 결국 공동체성이다. 프린지는 함께 만들어 나가는 축제다. 자유 참가의 원칙 아래서 사무국, 아티스트, 인디스트, 관객이라는 모든 주체가 함께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축제다. 일방이 지시하고, 누군가 수행하는 형식이었다면 25년간 축제를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린지의 가치가 주체들을 맞이하는 환대, 그 환대 속에서 피어난 연대 덕에 지금의 나도, 그리고 포럼 참여자들도 여전히 프린지를 사랑한다. 이 애정 속에서 프린지는 ‘당연한 축제’가 되어왔고, 당연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끌어온 축제가 미래로 향할 수 있게, 고민을 지속한다. 프린지의 공동체성이 유효했던 건 이 사람들의 힘에 있다. 

제공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가치를 재검토하고, 공동체성을 만들어 나갈 시점이다. 공간의 특성에 따른 일시적인 방법이었을지 모르지만 ‘프린지 살롱’ 등은 우리가 기대하는 프린지스러움에 적합한 것이었다. 바뀐 공간, 바뀐 시대 속에서 이런 대화의 장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게 하는지는 큰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뿔뿔이 흩어진 공간 속에서도 어떤 연대의 이야기들이 여전히 들린다. 자신의 집을 공연장으로 내어준 아티스트는 그 공간의 주인이자 또 다른 동료로서 도움을 주는 방법들을 찾고, 인디스트와 아티스트가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아티스트와 스태프, 인디스트가 상하관계가 되지 않을 수 있게 공연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감사함을 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인디스트들도 이 활동이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넓게는 독립예술의 매력과 축제 공동체로서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좁게는 프린지를 통해 친구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자리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공동체로 향하는 노력을 다시 그 사람들이 시작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다기에 우리는 이미 붙어있지 않았던, 별개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동체성을 발견해 나갈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리라는 걸, 포럼이 끝나고 나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참여자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프린지의 과거 사무국부터 현재 사무국까지, 또 과거의 아티스트와 현재의 인디스트까지 모두 모여 프린지의 공동체성을 고민했다. 고민은 끝이 없고, 답을 여전히 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민들 사이에 시원하고 맛있는 우뭇가사리 콩국처럼 한곳에 모여 재밌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우리를 본다. 

 

제공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필자소개

유경_조금은 묘한 이야기를 미묘한 마음으로 씁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었고, 오래된 이야기가 되고 싶어요.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사랑할 수 있기를. 



독립예술집담회 12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우뭇가사리 콩국 - 우리가 뿔뿔이 흩어졌다면>

콩가루가 된 우리는 어떻게 뭉칠 수 있을까요? 남부 지방의 여름 별미! 우뭇가사리 콩국을 먹으며 수다를 떨어봅시다. “오이 넣을까요?”와 비슷한 온도로 “축제에서 느껴본 공동체성”을 묻고, “얼음 더 드릴까요?” 정도 느낌으로 “프린지 예술가들의 각자도생기”를 나눕니다. 어쩌면 환대와 연대도, 우뭇가사리 콩국 레시피처럼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기획 | 김민수, 남하나, 채민
토론 | 김민수, 김유경, 김은한, 남하나, 박상미, 백교희, 백운철, 이은주, 조아라, 채민, 한윤미, 허민주
일시 | 2022. 08.16. 14:00
장소 | 이너프라운지 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