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좌담] 쥐와 물: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라운드테이블 上

2022. 4. 21. 00:59Feature

쥐와 물: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라운드테이블 上

2022. 3. 23.

우지안(연출, 출연) | 하은빈(움직임) | 현호정(각색, 출연) | 양효실(작가, 미학자) | 이연숙/리타(작가, 비평가)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배수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2020. 12. 19. 신림중앙시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이 취소되었고,
2022. 3. 5. - 3. 6. TINC에서 초연되었다.

©우지안

효실 원작이 텍스트로 선정되고 그걸 어떻게 훼손했는지, 어떻게 스크립트로 쓰면서 추렸는지? 그게 궁금해요.

은빈 우리 소개 이런 거 안하나요?

효실 저는 나이도 많구요. 본론으로 직진하구요.

지안 그 질문 머릿속에 꼭 새겨둘게요. 저는 AMC, 안티무민클럽이라는 단체의 구성원이자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이하 <우루>)를 연출하고 출연한 우지안입니다. 낭독극을 하고자 했던 이전 작업이 엎어지면서, 낭독이라는 형식을 유지하고 여성들의 몸을 부각하는 것은 그대로 가져가는 다른 작업을 모색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호정, 은빈이 원작을 소개해줘서 읽었고요.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지만 이 둘을 믿고서 하기로 했어요.

호정 저는 <우루>에서 각색과 퍼폼을 한 현호정입니다. 이전 작업이었던 낭독극을 못하게 되자 갑자기 <우루>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꺼냈더니 은빈도 재미있게 읽었고 언젠가 공연으로 올리고 싶었다고 해서, 그러면 지안도 같이 읽어보고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연극이 끝나 있고 여기에서 이렇게 라운드테이블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

은빈 저는 움직임을 만든 하은빈입니다. 2020년엔 퍼포머로 참여했다가 이번에는 퍼폼은 하지 않았어요. <우루> 원작이 좋았던 건,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웃음) 흡인력이 있고, 우루라는 여자가 어딘가 척척 가면서 길을 마음껏 잃어버리는 게 재미있고. 연관이 있어보이나 만나지는 않는 이미지들이 마구 흩어지는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궁금했고... 오히려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움직임이 개입할 여지도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리타 저도 배수아의 원작과 이 공연의 차이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좀 있습니다. 안팎님 글도 좀 얘기를 하고 싶고. 움직임을 얘기하는 데엔 완전 젬병인데... 오늘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말들로 훼방을 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을 쓰는 이연숙이라고 합니다.

효실 언젠가 본 연극에서 배우들의 몸이 대본을 입지 못하고 노출되어 있는 걸 보는 게 힘들어서 중간에 나온 일이 있어요. 그날의 공포가 이번 경험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이번 공연의 대본은 몸이 입을 수 없는 그저 머리로 외워야 하는, 콘텍스트가 없는 대사들인데, 그게 두 배우의 몸과 우선 불일치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그런 불일치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세상에 제가 울고 있었단 말이죠. 이게 뭐지? 이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싶어서, 여러분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참여했습니다. 이것저것 되는 대로 하는 양효실입니다. 반갑습니다.

지안 되는대로 효실 선생님...감사합니다. 아까 질문을 약 세 번 정도 하셨는데 그게 뭐였죠?

효실 리타 님은 원작과 공연의 차이라고 얘기했는데, 저는 차이보다는 원작을 어떻게 뜯고 해체했는지, 텍스트를 입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방법들을 쓰신 건지 궁금했어요.

지안 사실 이 책은 아무데나 뽑아서 써도 괜찮을것 같았어요.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각색을 할 것이냐.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 문장이 나한테 어떤 뭔가를 불러일으킨다, 하는 부분을 가위로 자르듯이 각자의 카드로 뽑아왔어요. 그걸 종이 카드에 옮겨적은 다음, 카드들을 버리고 섞고 합치면서 저희만의 서사를 만들었어요. 이 카드 다음에는 이 카드가 오면 좋을 것 같아, 여기서 잠들었으니까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 그 다음에 문을 열어, 이런 식으로. 카드를 보면 책의 3면 다음 172면, 이런 식으로 뒤죽박죽이에요. 파편적인 이미지들에서 새롭거나 임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며 유희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효실 근데 앞부분은 사실 거의 안들어갔죠. 갑자기 기억을 잃고 이런...후반부에 좀 더 집중했다는 느낌이 들고. 그게 님들의 의도였든 어떤 카드놀이 속에서 만들어졌든... 두 여자의 몸, 여자는 아니죠, 소녀?

리타 저는 공연에서는 소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배수아에게서는 훨씬 더 여성, 여자가 많이 드러나요.

효실 미숙한 몸과 어른의 딕션이라기에는 덜 여문 듯한 발성법 그리고 이해 불가능한 서사. 두 분 최소 서른이죠? 두 분 다 성인인데 섹슈얼리티는 잘 안 드러나는 방식으로 몸이 움직이고 목소리랑 잘 어울리고 대사는 낭독이고....

호정 공연 사진 찍어주신 태리 씨는 되게 섹슈얼한 걸 느꼈다고 했거든요.

리타 나도 느꼈어요. 근데 어떤 느낌이었냐면, 여자 두 명이서의 섹슈얼리티를 찾아보려고 했는데요. 마침 레즈비언으로 엮기 좋단 말이에요. 근데 그렇진 않았고 여자애가 자위하는 걸 보는 느낌이었어요. 수음하는 여자애의 인상에 훨씬 가까웠어서... 둘이 같이 있는데 전혀 텐션이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근데 태리 님은 그랬다는 거죠?

호정 어... 태리 님은 저한테서만요. (좌중 웃음)

효실 이게 포지션에 따라 다를 거야. 투사가 되지.

리타 레즈비언들이 문제다.

호정 레즈비언 아닌 사람들이 문제.

효실 왜. (좌중 웃음)

호정 못 읽으시니까. (웃음)

지안 재밌는 얘기를 들었어요. 스탭 분이 담배 피러 나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명성교회에서 하는 거 레즈비언 연극이에요?” 하고 물어보더래요. 창 밖에서 봤다고. 근데 갑자기 "사실 나도 바이에요" 이렇게 말을 하더래요.

리타 어머나. 아저씬 줄 알았는데 바이였어.

은빈 아저씨 바이는 없는 거야? (웃음)

리타 내 말이. (웃음)

효실 통상 기억을 잃고 자기 이름도 모르는 이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등장하면 전자는 후자의 거울이미지로 바뀌기 마련이죠. 결국 그런 이미지로 결여된 존재가 들어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면서 끝나는, 나르시시즘적 투사, 상상계적 동일시가 이 공연에서도 어른어른 비쳤어요. 그러면서 거기서 빠져나가고 있었지요. 대사는 투사를 욕망하는 데 몸의 실존은 그걸 배반하는? 그런 게 재밌었어요, 우선은.

리타 왜 수음 얘기를 했냐면,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몸이 등장하지만 한 사람이어서요. 거울이 없다는 말씀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퇴행적이고 자폐적인, 여성의 자기애적인 걸로 보였거든요? 바깥이 없는...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효실 그니까. 되게 독특했어요. 배수아의 원작을 저는 아주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글쓰기로 읽었어요. 똑똑한 분이란 말이죠. 안팎이 보자마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우루의 이름이 독일어 UR, 즉 '원초적인 최초의'란 뜻을 갖는다  지적했는데 저도 동의해요. 최초는 언제나 상실로서만 표식되죠. 그러면서 그 이후의 모든 움직임이 돌아가고 있는,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는. 상실된 기원으로의 회귀가 계속 앞으로 나가는 움직임이라는 것은 좋은 구성이고요. 그런 소설 전체의 동선을 본 공연은 비교적 소설 후반부에 집중하면서 훼손, 언두잉했어요. 배수아 작가는 기꺼이 허락했다고 들었고요.

지안 맞아요. 그렇게 해주길 바라셨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바깥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호정이 우루의 세계를 설명 한적이 있어요. 온통 나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 ‘타인이 내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낙원이자 모든 가해가 내게만 오롯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지옥이다.’

리타 원작이 엄청나게 커다란 상실, 예를 들면 MJ라는 사람과 헤어졌다든지, 죽었다든지 그런 종류의 상실의 사건을 겪은 뒤에 그걸 언급하지 않고 말하는 방식으로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돼요. 근데 연극에서는 그 사건을 가지고 오지 않았잖아요. MJ라는 상실의 사건 없이 여자애 둘이서 나와서 막 연극을 하죠. 저한테는 그게 어떻게 들어왔냐면, 과거에 어떤 사건을 겪은 내가 있고 다른 시점의 내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그래서 자기분열적인 어떤 상태를 얘기하는 것 같다고. 뻔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위로일 수도 있고 용서일 수도 있다고 이해했어요. 이해라는 말도 이상해. 안팎 님이 말한 것처럼 내 머릿속에 구성이 안되고 서사가 없으면 이해를 못하는데. 어쨌든 왜 울었는지를 계속 생각했는데, 취향 문제일 수도 있는데 저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 는 항상 울 수밖에 없고.... 진부하지만 자기 투사, 용서 이런 주제들이 제게는 있었던 것 같아요.

호정 타자성이랄지 경계를 끝까지 계속 믿고 가는 부분이 좋았어요. 당연히 같은 사람이고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거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믿음으로까지 나아가는 확고함이요. 끝까지 ‘너는’ 우루야. 그리고 나도 우루인데, 우리는 같긴 한데 달라. 이게 없으면 궁극적인 위로를 건넬 수가 없는, 그런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자기 자신한테는 그게 절대로 안되는 사람들이요. 다르다는 걸 믿으면서 걸어가는 것들.

리타 원작에서도 뭔가 해결이 날 것 같으면 안 나고. 계속 지연되는 상태로만 이야기가 지속되는데요. 연극에서도 "너는," 이렇게 얘기하려다가 중단되고, 춤을 추다가 또 중단되고, 항상 고조되는 순간에 끊기면서 두 사람이 다른 개체라는게 확보가 되는 것 같아요. ‘너는 나야’ 이렇게 하지 않는. 그것 때문에 감동했나? (웃음)

효실 저는 본 공연을 보는 시간 동안 아직 출간되지 않은 제가 번역한 페기 펠란의 《Unmarked: the Politics of Performance》의 문장들을 떠올렸어요. 너를 통해서만 나를 알 수 있는 그런 욕망의 역설이 계속 너를 보게 하고 너를 찾게 한다는. 아주 아름다운 문장들의 향연이죠. 펠란의 문장은. 그래서 바닥에 거울이 있고 거울이 모래로 덮이는 장치도 좋았어요. 너는 우루야, 라고 우기지만 우루는 자신이 누군 줄 모르고. 지안과 호정의 차이가 도드라지고. 하나는 발레를 추고 다른 하나는 네 다리로 걷잖아요? 이런 디렉션을 어떻게 준거죠?

호정 동물같은 움직임...

효실 반복은 차이를 수반하거나 내포할 수밖에 없고. 둘이 원본과 사본, 동일자와 타자의 방식으로 결국 일자(the one)을 위한 것이 되는 게 서구 형이상학이나 인식론의 임무였다고, 차이를 죽인 것이라고 비판을 하죠. 그러나 그렇게 타자에게서 나의 이미지를 욕망하는 것은 가령 진정한 연인, 스승, 이념과 같이 가장 이상적인 자아 이미지를 향한 우리의 욕망의 구조 때문이죠. 그런 것들을 암시하면서도 공연은 둘의 차이를 포기하지 않고 갖고 갔어요. 몸이, 춤이, 이상한 발성법이 그렇게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암튼 원없이 울었어요. 감사.

리타 아니 울러 갔어?

효실 울었단 얘기는 냉소, 의심, 또는 논리적인 분석 이런 것들이 거의 불가능한 어떤 장면으로 진입했단 얘기죠. 여전히 여전히 왜 울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울었어. 그게 되게 신기해요.

리타 제가 여기에 왜 울었는지 이유를 세 개를 적어왔어요. (좌중 웃음)

효실 멋있어, 좋아.

리타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상실에 대한 이야기임’. 본인 취향이란 얘기죠.

호정 상실이 취향이다.

©김태리

리타 네. 두 번째는 '몸짓이 우울하고 느림.’ (좌중 웃음) 누워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등장했고, 싱크로나이즈하듯이 계속해서 두 사람이 동시에 대칭을 이루는 동작들을 많이 하고. 근데 그게 나아가려는 동작이 아니라 머물려는 동작이고 멈추는 동작인 거잖아요.

효실 (손가락을 세 개 펴며) 3이 없어.

은빈 움직임에 관해서는... 다소 기술적으로 접근했어요. 제게는 움직임에 대한 믿음과 한계가 있었는데요. 먼저 무용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몸을 가졌고, 퍼폼 경험은 있지만 안무를 해본 적은 없다는 한계가 있었어요. 한편, 안무가가 퍼포머에게 움직임을 일방적으로 주면 그 움직임은 퍼포머에게 잘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움직임은 텍스트에서 어떤 모티브들을 딴 다음 퍼포머들에게 즉흥을 시킨 후 그걸 잘라서 오려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이 몸(움직일 몸)에서 찾는 게 가장 좋다고 믿어서. 예를 들어 “암흑이 눈을 가린다” 라는 대목에서 눈을 가리는 움직임을 해보자, 원작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게 걸음에서 점차 춤이 되기 때문에 스텝에서 춤으로 넘어가는 장면을 만들자. 즉흥을 해보니 호정이 바닥에서 너무 잘 움직이더라. 잘 맞는 움직임들만 잘라서 연결하자. 너무 표현적이지도 너무 재현적이지도 않게끔 하려고 했어요.

효실 뭐야,이 거 사기치는 거 아니야? 와우. 평소에도 서로의 몸, 제스처를 보고 읽었다는 거잖아요? 호정과 지안 스스로의 몸을 배우로서 반복하게 한다?

리타 뭘 어떻게 했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효실 어떤 일상적인 그 몸의 제스처들 또는 습관 이런 것들을 이미 봤다는 얘기잖아요.

은빈 저희가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엎었던 2020년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동안 움직임 훈련을 했어요. 그때 너무 많이 실패하고 폐기했기 때문에 이번엔 할 수 있는 것들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고요.

지안 실연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해석해야 배우로서 연기를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여러 시도를 많이 했어요. 잊힌 우루와 잊어버린 우루와 그를 끌어당기는, 불러내려는 우루 이렇게 세 우루로 나눠보기도 하고, 무대를 우루의 내면과 외면, 어딘지 알 수 없는 섞여버린 이상한 곳 이렇게 구분해서 움직여 보기도 하고. 근데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어요. 순서가 원작과 전혀 다르고, 저희가 잘라서 붙여놓은 거니까 저희가 의미를 만들어내야 되는 거예요.

호정 표 같은걸 그렸어요. 거의 윷놀이 하듯이, 이 우루는 이 X축과 이 Y측에 접점이 있고, 이 우루는...그런 식으로 분류를 나름대로 하니까 조금 더 구체화되었던 것 같아요.

지안 두 번째 장면 같은 경우는“너는 이미 죽었다. 내가 너의 죽음을 봤다.”하고 회피하려는 사람과 “당신의말을 듣다 보니까 게릴라 연극을 만들어야겠다. 그 희곡은 돌발적인 결말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죠. 근데 연극은 삶에 대한 비유고, 두 사람 다 우루, 자기 자신이잖아요. 어쩌면 이 사람은 자기 죽음을 이미 본 사람, 그러니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의 과거일 수도 현재일 수도 있고. 잊어버린 사람은 그 경험을 아직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호정 원래는 그 역할이 반대였잖아. 계속 역할을 바꿔가면서 이 우루 저 우루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 둘 다가 이해되는 순간이 생겼어요. 어차피 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세밀하게 느끼고 있는 게 다르고... 퍼즐을 끼워 맞춰봐서 ‘이거였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은빈 두 명의 독무 장면에서 둘의 주된 역할이 어느 정도 교차되길 원했어요. 이 공연 전반에서 호정 우루가 조금 더 어리고 천진하고 우루의 망각을 깨고 들어오는, 침입하는 우루라면, 지안 우루는 망각한 우루, 조금 더 성인에 가까운 우루라는 구도가 있었는데. 독무 장면에서는 호정이 동물적이고 섹슈얼한 이미지를 하기를 원했어요. 지안은 수직적인 움직임을 한다면, 호정은 수평적인 움직임을 하죠. 기어가는 동물 움직임에서 모티브를 얻은 네 발로 기기 장면에서 연결이 이루어지고요.

효실 원작에서 ‘연극을 하다 잠이 들어버린다’, ‘연극을 하다가 죽어버린다’ 이런 문장들, 그러니까 정말 무리하기 그지 없는 문장들... 그러니까 환상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지안 왜요?

효실 환상은 다른 차원이 일종의 깊이를 갖고 등장하는 것이지 않아요? 현실과의 차이를 통해. 그런데 배수아의 원작에서는 잠든다, 죽는다라는 식으로 연극 안으로 차이를 밀어넣고 '그 다음'이 일어나지 않죠. 그냥 끝, 붕괴죠. 배수아의 원작의 브라질, 아프리카, 한국 등은 그녀가 직접 갔던 곳이라는 점에서 재현이지만 읽는 독자에게는 몸이 들어가서 움직일 수 없는 글자로 느껴지지 않는지요. 저는 그랬는데. 물론 작가는 이건 나에게는 경험이고 재현이고 일상이다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서도요.

리타 에이, 그래도 설마 그렇게 이야기하겠어요? (웃음)

효실 미숙한 아이들의 몸을 연기한 두 분의 몸이 제게는 수용적(receptive)하게 다가왔어요. 영향받는 몸, 외부와 내부가 별로 구분이 안 되는 몸. 세계이자 환경으로써의 몸. 자아를 보호하는 몸이 아니라 타자에 열린 몸. 말하고 보니 너무 식자의 문장이네요. 암튼 저는 어느 순간부터는 대사는 안 들었어요. 대신에 두 분의 몸의 변화, 움직임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대사보다는 발성법에도 집중하고요. 일종의 생리학적인 경험을 저 스스로 선택 한 거죠. 어느 부분에서 울음이 되게 격해졌냐면, 호정 씨 턱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 저 미숙한 사람이 운다는 게 되게 진짜라는 느낌이 들고… 이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 언어들을 녹여낸 건지, 아니면 자기 몸 자체가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움직여서 그런 건지. 죽은 언어들, 또는 절대로 살리지 않으려고 애쓴 것 같은 배수아의 이 문장들을 살려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호정 퍼포머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울기 위해서 울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연습하면서 지안이와 마주 보고 있으면 알 수 없이 눈물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지안이도 계속 뭔가를 참으려고 하고 있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우루를 구성하고 있는 문장들, 대사 외울 때 정말 고역이었거든요. 번역 투는 물론이고 익숙하지 않은 조사와 부사들... 진입이 잘 안 되는 그런 대사들인데 몇몇 대사들은 정말 죽도록 슬프고. 예전에 지안이 우루가 떠나는 것 같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우루한테서 멀어지는 것 같다고. 우리한테 이유를 알 수 없이 유의미하고...

효실 기록을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러면 도대체 이 아름답고... 후회하는 거 아냐, 아름다움은. (웃음)

리타 저 할말 있어요. 그 부분이 딱 걸려요. 아름다움은 후회한다는 그 말이 걸렸었어요.

효실 요나스 메카스가 메일로 보낸 거잖아요. 그분 문장이니까 이것도 빌려온 거고, 미셸 푸코의 후기 윤리학의 요체란 말이죠. "삶은 발명해야하는 것이다"는. (웃음) 굉장히 지적인 작가예요. 이분한테 표현주의는 이미 애당초 다 끝난 거고. 되게 많은 문장들이 인용처럼 들어와 있고 마치 들어가서 입을 수 있는 문장들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호정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가고 있을때면”... (좌중웃음)

효실 그걸 입말로 만들었는데 되게 많이 울었잖아요. 리타도 되게 많이 울었고, 나도 울었고, 객석에서 옆에 보니까 훌쩍거리고 있고... 그 이상한 상황. 둘이 마주 보는데, 이게 정형화된 성역할이거나, 아니면 두 분이 일종의 레즈비언적인 관계에 있었거나 그랬다면 어쩌면 안 울지 않았을까.

리타 전혀 안 울었을것 같은데요?

효실 뭔가 우정, 쌍둥이 그런 거였어요. 오랜만에 멀리 헤어져 있다가 만난 쌍둥이, 분신?

호정 연출할 때 디렉션으로 그런 이야기도 했었어요.

지안 맞아맞아,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우리가 입양을 간거죠. 한 명은 프랑스에 한 명은 미국에...

리타 왜 한국이 아닌 거야? (웃음)

효실 둘의 서로에 대한 응시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oMA 공연 생각이 났어요. 다 잊고 다 포기하고 서로를 응시하기. 타자의 심연을 보기. 흐르는 시간이 느껴지는 둘의 응시하기가 기억이나 말이 있어서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 아닌 눈이 있어서 욕망이 있어서 알아보게 되는 것인 그런. 모르는 사람끼리 치유와 위로를 얻게 되는 그런 보기.

리타 그럼 어떻게 설명해요. 왜 우는지 모르는데 울면.

효실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처럼’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거죠.

리타 이제 이걸 설명을 해야 되는데… 저도 물론 하고 싶고 님도 하고 싶을 거 아니에요. 안팎 글은 "나는 이해 못했지만" 하고 이해 못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글이고.

지안 연습 때도 많이 울었거든요. 심지어 처음 울었을 때는 연습을 줌으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울었는지 진짜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장면을 연기했어요. 최근에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이라거나 죽음에 되게 가까운,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너는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너를 끝까지 바라보고 너의 목소리를 들을 테니까”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공연 전날 진짜 많이 울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확 드는 거예요. 내가 그들의 상실을 이용하고 있나?

효실 저 비대한 자의식.

지안 그래서 호정이한테 말했는데, 호정이 그때 “나는 널 생각하면서 하는데?”

리타 대박이다.

효실 지식인, 예술가.

호정 (웃음) 지안이를 웃기려고 말한 것이기도 하고요. 막상 씬에 들어가서는 결국 서로를 보면서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장면에서 말할 때만큼은 슬픔을 이용하고 있다거나 그런 것들이 끼어들 여지도 없지 않았나. 

은빈 2020년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그냥 이 텍스트에 있는, 관념적인 것으로서 있었는데, 이번에 준비할 때는 실제로도 도처에 저희가 겪거나 통과한 죽음들이 있었어요.

호정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좀 달라졌던 것 같아요.

리타 실연의 어떤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효실  그래서 말장난 같지만 배수아 작가가 말을 경험이나 삶에서 벗겨내 종이 위의 글자로 만드는 전유나 차용을 했다면 본 공연은 미숙한 몸과 겹침, 말하기를 통해 글자들을 물질화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케트 식의 실존주의 작품을 볼 때 물이 나올 일은 없잖아요. 본 공연과 다시 닮은 듯도 해서 베케트 운운했어요.

호정 무슨 물?

지안 눈물. 콧물.

안티무민클럽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일자 | 2022.3.5. ~ 3.6.
장소 | This is not a church(구 명성교회)


출연 | 우지안 현호정
원작 | 배수아
각색 | 현호정 우지안
움직임 | 하은빈
무대 디자인 | 전인
미술 | 전인 김태리
음악 | 나온유
디자인 | 정소영
음향 오퍼레이터 | 하은빈
하우스 | 박종주 이동휘
기록사진 | 김태리 전인
기록영상 촬영 | 김예솔비 박정연
기록영상 편집 | 우지안
제작 | AMC @antimoomin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