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존재론적 회색지대를 마주할 때: 오헬렌, <Recording Room Concert>

2022. 11. 11. 22:00Review

존재론적 회색지대를 마주할 때

오헬렌 <Recording Room Concert>

글_전대한

 

‘음악 작품’이란 무엇일까? 혹은 우리는 ‘음악 작품’이라는 표현을 통해 무엇을 지칭하는가? 이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것만 같아서, 왠지 바보 같아 보이는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히 그 답은 ‘지금 들려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답변에도 여전히 동일한 물음이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 들려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은 ‘연주’일 것이다. 라이브로 연주되어 실시간으로 청자에게 생생하게 포착되는 소리 사건과 음악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어떤 곡의 연주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수차례 시도된 연주(들) 중에서 음악가 스스로 가장 완전하다고 판단한 혹은 자신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했다고 판단한 특정한 경우를 포착하여 박제시킨 ‘레코딩’을 이상적인 음악 작품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생각보다 거대한 퍼즐을 마주하게 된다. 정말로 우리는 무엇을 ‘음악 작품’이라고 간주해 온 것일까? 9월 9일 저녁 SBA 미디어콘텐츠센터에서 이루어졌던 오헬렌의 <Recording Room Concert>는 음악 작품의 존재론이라는 이러한 퍼즐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다. 오헬렌은 자신이 실제로 EP 앨범을 녹음하는 장소인 SBA 미디어콘텐츠센터의 레코딩 스튜디오로 관객(혹은 청자)을 불러 들인다. 관객은 마스터링을 위한 장비들이 위치한 공간을 지나, 두꺼운 문을 열어 무균실과 같이 격리된 직육면체의 방음실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마련된 분배기를 통해 오헬렌과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시버(헤드폰, 이어폰)가 준비되어 있다. 관객은 준비된 리시버를 착용하고, 리시버에서 재생되는 오헬렌의 목소리와 연주자들의 악기 소리를 듣는다.

 

사진 : 필자 제공

 

오헬렌의 <Recording Room Concert>은 여러 의미에서 존재론적으로 애매모호하다. 첫째로 <Recording Room Concert>는 공간적으로 레코딩과 라이브의 구분을 흐린다. 우선, 관객이자 청자가 <Recording Room Concert>라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듣고 보기 위해 레코딩 스튜디오로 입장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의미에서’ 역설적이다. 특히, 이러한 역설적임은 공연의 관람을 위해 관객에게 요구되는 동선을 통해 가시화된다. 게다가, 관객은 오헬렌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듣고 보기 위해, 레코딩이 이루어지는 공간들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레코딩은 방음실 내에 자리한 음악가가 마이크 등의 장비를 활용하여 음악적 소리를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소리를 방음실 외부에서 믹싱 및 마스터링을 통해 가공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Recording Room Concert>의 관객은 공연을 듣고 보기 위해 포스트-프로덕션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가로 질러 방음실 내부로 들어서야만 한다. 오헬렌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마주하기 위해, 비가역적인 레코딩의 과정들을 비유적인 의미에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동선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그러나 <Recording Room Concert>가 자아내는 존재론적 혼란은 오헬렌과 연주자들이 제시하는 소리에서 더욱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관객은 라이브 퍼포먼스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레코딩 스튜디오에서의 모니터링을 재현한 퍼포먼스로 인해 리시버를 통해 오헬렌이 의도한 대로 포스트-프로덕션을 거친 결과물을 듣게 된다. 다시 말해, 레코딩의 현상적 특징을 재현한 라이브 퍼포먼스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관객 또한 오헬렌과 함께 방음실 내에 자리하기에 제시되는 소리 사건에는 예상치 못한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리시버를 착용해도 관객과 연주자들 사이의 거리가 무척 가깝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가공되지 않은 보컬을 비롯한 ‘실재’의 소리들이 가공된 소리들과 함께 섞여서 들려온다. 예컨대, <Look at My Sweat>의 후반부에서 오헬렌이 실로폰채를 내려놓을 때 발생하는 물리적인 타격음이나 <Summer>에서 오헬렌이 퍼커션을 손목에 착용할 때 나는 마찰음, 또는 오헬렌이 이펙터를 활용하여 효과음을 만들기 위해 마이크 앞에서 입을 오므리거나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댈 때 나는 진동음 등을 생각해보자. 이 소리들은 리시버에서는 오헬렌이 의도한 방식으로 가공되고 재구성된 양태로 제시되지만, 동시에 무언가 어색하지만 날 것의 양태로 리시버의 차폐를 뚫고 들어오기도 한다. 요컨대, 라이브 퍼포먼스의 소리가 레코딩의 방식으로 제시되면서도,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그 결과물이 그 자신이 비롯된 ‘실재’인 라이브 퍼포먼스의 소리와 섞이는 기이한 구조의 소리 사건이 연출되는 것이다.

 

사진 : 필자 제공

 

이렇듯, 오헬렌은 레코딩 퍼포먼스와 라이브 스튜디오라는 음악 작품의 존재론적 두 후보를 혼란스럽게 뒤섞어 버린다… 혹시 방금 전 문장에서 어떤 이질감을 눈치챘는가? 이제 나는 노인코래방이나 껍던씸처럼 레코딩 스튜디오와 라이브 퍼포먼스를 뒤섞어 말해도 어색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오헬렌의 <Recording Room Concert>라는 존재론적 회색지대에서는 그러한 전통적인 범주들은 무의미할 뿐이다.

 

 

필자소개

전대한

분석미학과 음악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음악웹진 [weiv]에서 동시대 대중음악에 관하여 가끔 글을 쓴다. 지각 경험의 내용에 대한 철학적 논쟁에서 이중 과정 모델이라는 대안을 제시해 보기 위한 논문을 쓰고 있고, 분석적 언어와 방법을 토대로 한 대중음악 비평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공연소개



Recording Room Concert

오헬렌


일시: 2022. 9. 9. () 오후 7
장소: 서울시 상암동 SBA 미디어콘텐스센터
후원: 마포구청, 마포문화재단, 예술지원분과
* 본 공연은 [문화로드맵 2022 마포구 예술거점 활성화 사업] <예술로 업: CYCLE> 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공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