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류세의 한복판에서 푸른 지구를 외치는 세 명의 카나리아 <블루 플래닛 – 바다> @보안1942

2022. 7. 25. 18:13Review

인류세의 한복판에서 푸른 지구를 외치는 세 명의 카나리아

 

<블루 플래닛 – 바다 Blue Planet – Sea> @ 보안1942 리뷰

 

조아라 

나에게 있어 바다는 여러 이야기가 쌓여있는 메타포적인 공간이자 모든 것을 품고 있으면서도 비어있는 空의 공간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푸른 지구,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주의 무수히 많은 별과 존재 속에서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종종 환기하곤 한다.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를 넘어서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회복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인간은 인간중심의 사고의 틀을 넘어서 공생의 삶을 살 수 있을까?

2013년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인도 아티삭티에서 레지던시를 할 당시 나는, 연습실 공간이 순간 고래 뱃속처럼 느껴졌던 기억을 바탕으로 <날, 깨워줘>라는 희곡을 썼다. <날, 깨워줘>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 희곡은 멸치만큼 작아진 고래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기 전까지의 독백이다.
고래의 몸은 쓰레기로 이루어져 있다.  

 

<날, 깨워줘>는, 인간이 버린 말을 먹고 사라지는 고래라는 판타지를 통해 망각이라는 잠에 빠져있던 인간들을 다시 깨우고, 인터렉티브(interactive) 굿놀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환경, 자연, 생태,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삶과 예술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작품 만들기를 지향하는 작가로서, 세 명의 작가가 <블루 플래닛 – 바다 Blue Planet - Sea> 전시를 통해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유용진 사진제공 보안1942

 

보안여관은 과거 여관이었던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변태함으로서 여러 작품과 관객들의 숨결로 켜켜이 쌓인 에너지가 축척된 공간으로 진화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표피가 벗겨진 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노출시킨 공간에 들어서면 엔트로피를 몸으로 체감하게 하는 공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보안1942의 <블루 플래닛 - 바다> 전시는 인류세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을 다양한 경계를 통해 서로 교차시키고, 기억을 소환시킴으로서 미래에 질문을 던진다.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의 2022년 상반기 기획 전시 <블루 플래닛 - 바다>는 바다의 관점으로 인간이 구성한 환경에 대해 살펴보며 바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자 한다. 바다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미지의 푸른 세상Blue Planet인 바다에 대한 상상의 폭을 넓혀보려 한다. 
전시에 참여한 엘마스 데니즈, 정소영, 황문정 작가가 영상, 사운드,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의 해양 환경과 생태계 및 바다의 지정학에 관한 내용들을 각 작가들의 언어로 바다에 대해 풀어나간다.

 - 박승연(보안1942 큐레이터)

 

Ⓒ유용진 사진제공 보안1942

 

엘마스 데니즈 작가는 <연체동물의 섬에서의 대화>에서 바다 속 소라게와 대화를 하며 부조리할 수도 있는 일방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일을 해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작가는 커피는 맛있는 거라고 하며 커피가 담긴 컵을 바닷물에 집어넣는다. 과연 바다에게 커피는 맛있는 것일까? 바닷물에 뿌려진 커피는 사라지지 않고 해류를 따라 흘러가며 또 다른 오염원이 되지는 않을까?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이 바다를 위해 할 수 있는 ‘좋은’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다중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바다를 다시 바라본다면, 인간과 바다는 어떤 관계 맺음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작가는 <지구 이야기>라는 설치 작품을 통해서도 바다 속 비인간 생물 및 광물들을 위해 ‘좋은’ 일을 시도한다. 작가가 직접 기술을 배워 만든 니들포인트 레이스는 이제 생명을 잃고 바다 속에서 산화될 존재들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수의(壽衣)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연체동물의 섬에서의 대화>와 같은 맥락이지만 3채널 비디오로 제작한 <연체동물의 섬>에서는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듯한 공간감을 만들어 냄으로서 관객들에게 공감각적으로 작품 의도를 전달한다. 지면 위에서는 도저히 감각되지 않는 깊은 바다 속의 공간감과 생명력은 인간도 바다와 다르지 않게 지구에 사는 물질의 일부로서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통찰로 이끈다. 

 

황문정 작가는 세 개의 신작과 한 개의 구작을 통해 인간과 해양 비인간 생물들의 부조리한 공존을 보여준다. <일상의 어탐기>는 물 위에 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물속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포획과 해양쓰레기로 고통 받는 바다 속 비인간 생물들의 모습을 실제 어업 종사자 혹은 낚시꾼들이 사용하는 물고기 추적기의 모습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선풍기 모터에 달린 led 전구로 텅 빈 해면을 끊임없이 비추는 <빈집>은 <일상의 어탐기>의 근 미래 혹은 현재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빈집>과 <일상의 어탐기>가 일종의 은유라면 <불량한 회전>과 <신도시 무리들>은 관람객에게 해양 생태계 파괴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모래 위를 계속 돌며 긁어대는 갈퀴는 <불량한 회전>이라는 제목답게 ‘불량한’ 인간의 무분별한 부수어획 활동을 꼬집는다. 그리고 <신도시 무리들>의 멈추지 않고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장치의 움직임은 마치 농경사회로부터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양 생태계의 파괴와 멈추지 못하는 고통의 재생산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으로 읽혔다. 매립을 통해 만들어진 송도 신도시의 이미지는 지구에 인간만 남은 디스토피아, 생태계의 생동감이 사라진 허울만 남은 유령도시의 자화상처럼 보였다.  

 

Ⓒ유용진 사진제공 보안1942

 

정소영 작가는 경계와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작품을 선보였다. <섬그리기>는 수면 위 밧줄을 매단 배가 영상 한 구석에서 등장해 바다 위에 원을 그리고 이동하는 장면을 직부감 숏으로 보여준다. 파란 바다에 흰색 밧줄이 원이 되어 원 안과 원 밖의 경계를 만드는 과정은 어리석은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으로 보이기도 하고, 바다 위에서 경계는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트스페이스 보안의 신관 지하 1층 화이트 큐브 공간에는 한-중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표, 구리 등으로 만든 <어부의 섬 Ⅳ, Ⅴ, Ⅵ>이 전시 되어 있다. 한 때 해수면의 경계를 나누거나 항로의 표지로 사용되었을 부표는 그 역할을 상실하고 화이트 큐브 공간에 놓여, 마치 동양화처럼 공간의 여백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빈 공간에 숨겨진 많은 시간들을 소환시켜 상상으로 채우는 능동적인 관람을 하게 하는 교두보로서 작동한다. <New Home>과 <시간표>는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결과물을 형상화했다. 실제로 정소영 작가는 제주 가파도에서 5개월간 레지던시를 하며 자연의 시간을 따르며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 시간의 축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 바로 이 두 작품이다. 신관 외부에 설치된 <가장 못생긴 물고기>는 해수면에서 600~1200미터 깊이의 물속에 거주하는 심해어 블롭피쉬를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심해에서는 멀쩡한 블롭피쉬는 수면 위로 올라오면 수압이 급속히 낮아지기 때문에 젤리 같은 피부가 퍼지면서 ‘가장 못생긴 물고기’가 된다. 만약 인간이 600~1200미터 깊이의 물속에 거주해야 된다면 지금의 형상이 아닐 수 있다. 블롭피쉬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가장 못생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일부러 찌그러트린 원형 고리를 건물의 바닥부터 상공까지 수직으로 배치하며 이런 관점의 오류를 구현해냈다.     

 

Ⓒ유용진 사진제공 보안1942

 

보안1942의 <블루 플래닛 - 바다 Blue Planet - Sea> 전시를 보며 인류세를 이끈 인간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너머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기,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 명의 예술가는 광산의 위협을 알리는 카나리아처럼, 생태계의 최전방에서 인간은 세계와 어떻게 관계맺음을 할 것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재고해보길 관람객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다시 자문해본다. 나는 삶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어떤 예술을 하는가? 나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필자소개 

조아라_‘몸소리말조아라’의 조아라는 삶과 예술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과정 중심적인 작품을 만들어 관객들과 공명하고, 지금 여기, 몸을 감각하고 소리와 움직임을 연결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판소리움직임 탐구> 시리즈,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 <사철가 프로젝트>, <목욕합시다>, <어쩔 수가 없어>, <수궁가가 조아라> 등을 발표하였고, 무용, 다원, 전통, 연극, 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전시소개

<블루플래닛 - 바다>
@보안여관 신관 2022.6.17 - 7.24


제작진

작가: 엘마스 데니즈, 정소영, 황문정
디렉터: 최성우
기획: 박승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최정욱
그래픽 디자인: 파이카
공간 디자인 및 설치: 조재홍 (아트랩반)
영상장비: 미지아트
사진: 유용진
주최 및 주관: 통의동 보안여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업: 시셰퍼드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