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1월 레터] 익숙한 투쟁

2023. 11. 7. 11:36Letter


다들 바쁘시지요. 요즘처럼 바쁜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에도 다들 일정이 많아 보여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10-11월의 꽃말은 지원사업 발표 정도로 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름 축제를 마치고 세 작품의 연극에 PD로 합류했습니다. 화이트칼라 사무직처럼 하루 6시간씩 꾸준히 일하기 시작한 지 2주 만에, 또 새벽까지 잠들기 어려워졌습니다. 익숙한 일입니다. 기분이 안 좋아 화분을 샀습니다. 키울 줄을 몰라 잔뜩 말렸다가 물속에 담갔다가 한 끝에 겨우 두 화분 중 하나만 살려냈어요. 누구는 자꾸 죽여봐야 한다고 했지만 아직 익숙해지긴 쉽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창작자분께 공연 소식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날 공연이 있어 못 갔지만 안부를 나누는 시간은 소중했습니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 ‘투쟁하며 살고 있’다는 답을 듣곤 생각했어요. 투쟁하며 사는 삶 말고 다른 생을 상상할 수 있을까. 어제는 연극 <남자사랑 레즈비언> 티켓부스에 앉아있다 “그게 정상이냐”며 쏘아대는 어머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인권단체는 후원행사를 열었다가 후원금을 모으긴커녕 적자가 나게 생겼다더라고요. 오래 제 소속이 돼주었던 프린지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쫓겨났고요, 올해 제 소속이 되어주었던 서교예술실험센터는 곧 쫓겨날지 모릅니다. 아아 멀리 사람들이 죽습니다. 학교와 병원과 식량을 배급하는 곳에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박수를 칩니다. 1년 전에도 사람 죽는 기사를 하루 종일 찾아보곤 하였는데요, 조금 더 멀어졌지만 더 많아졌으니 또이또이인 걸까요? 그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바쁜 날들입니다. 마음 쓸 것이 많으면 안 되겠죠. 전 안 될 것 같습니다. 

 

 

 



어쩐지 추모, 애도, 장례같은 키워드를 가진 작품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라진 축제와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주목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고, 대놓고 본인의 장례식을 컨셉으로 공연을 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탈가부장례식, 퀴어한 유언장쓰기 같은 작업도 있었고, 유쾌하게 노래하며 극장을 걸었던 코웃다 공연도 사실은 장례라고 느꼈어요. 프린지에서도 참사에 대한 작업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왜일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2020년 11월 레터에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알쏭달쏭 스마트(하고 무심한) 세상> 라고 썼던 걸 발견했어요. 반복되는 일인 거겠죠. 이렇게 바쁜 것도, 슬픈 것도, 쫓겨나고 투쟁해야 하는 것도, 기억하고 애도하려 애쓰는 것도,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말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 딱 하나만 두고, 그것에 매번 속상해하기를 스스로 선택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것에 슬퍼하지 않고, 메일과 전화를 써야하는 것, 잠을 자고 밥을 먹어야하는 것에 막막해하지 않고요.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년 11월에 다시 보겠습니다.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