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9. 23:16ㆍLetter
2023년 한 해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같은 인사 너무 지겹지 않나요?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고마웠던 이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각자의 삶에 감사하는 연말의 풍습이 아주 프로파간다 적이었다는 생각에, 저는 제안하고 싶어졌습니다. 연말 감사 인사 대신 연말 원망 인사를 나눕시다. 내가 이렇게나 불행한데, 이런 세상에 마냥 감사할 수 없다! 저는 더 이상 KBS<다큐3일>을 좋아하던 고등학생이 아닙니다. 꼬일대로 꼬인 30대가 되어 아주 그냥 원망을 쏟아내 버릴 거예요. 일종의 객기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유난히 작별이 많은 해였습니다. 인디언밥은 <시대에게 쫓겨나기>라는 제목으로 밀려나는 예술공간들을 다뤘습니다. 플랫폼P, 서울혁신파크, 삼일로창고극장, 원주아카데미극장까지 다뤘던 게 여름이었는데요, 그 사이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도 서울여성공예센터도, 서교예술실험센터도 문을 닫았습니다. 지난주엔 서울점자도서관이 폐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간만 그랬을까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서울퀴어퍼레이드에겐 서울광장이 허락되지 못했고, 대구에서도 많은 이들이 고초를 겪었죠. 온갖 영화제도 바람 앞의 촛불 이상인 걸로 들었습니다. 축제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도 없어졌고, EBS SPACE공감과 헬로루키도 중단 검토 중이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확실하게 밀려나는 한 해였습니다. 한 해 동안 이를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원망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예술계에도 ‘애도’가 유행인가 싶은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발행한 리뷰는 일곱 편뿐이었는데요, 그중 세 편 정도는 애도를 키워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린지에서도 유난히 그런 작품이 많았고요. 예술가와 무당이 가진 비슷한 능력이 있다면 하나는 치유, 하나는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생각해요. 관련 없어 보이는 사물이나 사건 사이에 연관성을 끌어내는 것이 예술가의 힘이라면, 이러한 경향성 역시 이해가 됩니다. 나머지 하나가 치유라는 것까지 찰떡이네요. 예술가들에게 끝을 느끼게 한 사회에 원망의 말씀을 드립니다.
3년 전쯤 화가 나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고, 브라질 대통령이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던 때, 이탈리아에서 “살 사람만 치료하겠다”고 발표했던 때, 텍사스 주지사가 “늙은이들은 팬데믹이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치기 전에 죽을 준비가 돼있다”고 얘기했던 때였습니다. 곧 전쟁이 날 거라고, 사람을 죽여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전쟁 아니겠냐고, 우리 모두 그 전조들 앞에서 박수를 치지 않았냐고 외치는 글이었습니다. 그해 12월엔 정말로 제 동료가 죽었고, 올해엔 전쟁이 또 났네요. 누구를 향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온 세상에 원망을 전합니다.
원망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만 불행하고 싶어요. 저는 싸우는 데에 능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든, 무엇이 되었든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다리 사이로 기어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게 저의 잘못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제발 이 고통을 멈춰주세요...
하지만 저에겐 종교가 없습니다. 올해는 아무래도 감사 인사 대신 원망 인사로 연말을 맞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디 해피뉴이어.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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