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8월 레터] 세상이 날 쫓아내길 기다리며

2023. 8. 27. 20:46Letter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뉴스레터에 실으려고 쓰던 글을 차마 보내지 못하고 접었습니다. 훨씬 가볍게 다듬어 보내고는,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인디언밥 레터에 적습니다.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가 될 지 모르겠어요.

 

안녕하세요, 프린지의 살롱마담으로 컴백한 엠케이입니다. 인디언밥의 레터쟁이라든지, 프린지 개근 예술가 민수민정팀의 민수라든가, 후원회원 1인이기도 합니다. 온갖 이름으로 소개하였지만, 3월까지만 해도 예술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다녔답니다. 그 얘기로 레터를 열어볼까해요.

 

찰스부코스키 작 <헐리우드> 중 (박현주 옮김)

 

저에겐 마치 한국 힙합퍼들의 분노처럼 응어리진 게 있습니다. 내가 좇는 가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아닐까 같은 불안과 불만이죠. 특히 누군가 죽어서 제가 슬퍼할 때면 누군가 꼭 옆에서 “그것이 경제적으로 좋은 일”이라든지 “누가 거기 가라고 칼들고 협박했냐”같은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이지 못한 예술가로서, 인권같은 이유로 축제를 만드는 활동가로서, 어떤 발전과 성장과 미래의 번영과 사회 통합에의 장애물로 사는 기분을 느껴왔습니다. 

 

올해 프린지살롱은 소소한 스콰팅(squatting)을 컨셉으로 했습니다. 빈 건물 대신 누구에게나 열린 공원에 신고없이 자리를 잡고 모임을 이어가다가 누가 쫓아내면 그 모습을 멋지게 중계하려 했습니다. 공공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늘 너무 어려웠고, 어느새 공공기관의 사유재산이 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인디언밥에선 기획연재와 독립예술집담회를 통해 “시대에게 쫓겨나기”라는 제목으로 공공영역에서 예술공간이 밀려나는 이슈를 다뤘습니다. 단순히 지가 상승에 의해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공공 부문이 예술공간을 밀어내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민수민정의 공연은 음악극의 형식으로 요 몇 년 사이 신촌에서 사라진 축제들을 다뤘습니다. 신나는 동네투어인 척하다 사라진 축제들을 애도하고 저도 죽고 마는 공연이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저는 어쩌면 진짜로 세상에 밀려나길 기대하며 그날이 오면 신나게 죽어버려야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매한 불안보다 확실한 절망이 시원할 때가 있으니까요. 멋진 기승전결을 상상하며, 삶이 끝나질 않는 게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병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원 한 구석에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고 공연 얘기를 해도 별 문제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프린지 살롱엔 매회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창천문화공원을 채웠지만 한 번도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예술집담회에선 많은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나눠주었고, 민수민정의 공연도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 이 도시에 있던걸까? 독립예술의 영토에서 우린 외롭지 않을 수 있는걸까? 어떤 가치를 주창하는 게 지쳐서 예술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우린 다 쫓겨날 거라고 말했지만, 삶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해보겠다며 죽고 싶다는 얘길 멍청하게 털어놓았지만, 어쩌면 나는 조금 더 살아도 되는걸까? 

 

저의 생사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비슷한 안도감을 가져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조금 더 기쁠 것 같습니다. 인디언밥이 어떤 작업에 귀 기울이고 이를 기록하는 게, 주제를 던지고 이야기를 모으는 게 그런 일이 될 수 있을까요? 문득 조금 더 열심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