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09 아시테지 여름축제 <서프라이즈>, <놋쇠병정>


글_ 정진삼




1. 교육이냐, 예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교육이냐, 예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햄릿처럼 고민한다. 아이들한테 교육적이면서 동시에 미적 체험도 있었으면 하는, 그 복잡한 마음. 우리네 연극 풍경 중 재미있는 것 하나는, 고민 끝에 찾아간 아동극 공연에서 대체로 아이들은 딴 짓하고, 엄마들이 몰입해서 보다가 각각 지루한/감동어린 얼굴로 극장 문을 나가는 기묘한 장면이다. 마음이란 것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수용자뿐만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있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교육이냐, 예술이냐. 공연을 보고 판단하고 권하는 비평가의 고민도 비슷한 갈림길의 모양새다. 교육적이냐, 예술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우리 마음대로 할 문제일까?

2. 아시테지 페스티벌

아시테지 페스티벌(ASSITEJ Festival)이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서울 시내 소극장과 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아시테지’ 란 말, 들어 본 것 같지만 쉽지 않다. 국제 아동청소년 연극협회의 프랑스식 표기로 이니셜을 따온 것. ‘아시테지’ 는 1965년 파리에서 창립된 후 지금까지 70여 개국의 회원국을 두고 활동하는 비 정부국제기구다.

우리나라도 벌써 17년째다. 아시테지 연극을 보고 자란 어린이가 엄마가 되어, 이제 자식을 데리고 극장에 올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국내작과 해외 초청작으로 꾸며진 축제는 규모나 내용으로 볼 때 가장 크고, 알찬 어린이 행사다.

“어린이에게 어린이를 돌려주자 (부제: Jump, Run, Laugh)”라는 주제로 진행된 아시테지 여름축제의 공연들은 '예술이냐, 교육이냐' , 에 대한 고민에 대한 여러 가지 답들이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단언컨대, 아동극은 지(知)적인, 미(美)적인 체험도 아닌, 그냥 희희(嬉戱)거리며 마냥 즐거운 ‘놀이’ 다.

3. 오스트리아 듕글빈 극단의 <서프라이즈>

아시테지 해외공연 <서프라이즈>는 쇼킹한 충격 대신 황당과 당황, 그리고 놀라움의 미소와 안도의 해방감을 안겨준다.

오스트리아 듕글빈 극단의 대사 없는 신체극 <서프라이즈>는 빈 무대 위에 흰 벽과 흰 바닥, 헐렁헐렁한 흰 옷을 입은 두 명의 배우와 흰 외발수레가 자리를 하고 있다.

일견 아동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털북숭이 남자는 자그마한 소녀 같은 여자와 티격태격 재미있는 움직임으로 시작하여 관객을 마임과 소리의 세계로 끌어 들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똑같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 마치 심술꾸러기 골목대장 같은 악사는 외발 수레 안에 숨어 있다가 들키고, 자기 선물상자 안의 햄버거를 친구들에겐 한입도 주지 않는다. 조금은 미안한지 건네는 선물상자 안에는 빨갛고 하얀 활동복이 남녀 각각 들어있는데, 방금 전까지 옷을 뜯고 벗으며 아슬아슬 신체를 드러내며 놀던 배우들은, 옷을 받아 훌훌 입고/벗고는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역시 애들은 먹는 거 아니면 입는 거다.

털북숭이 남자와 여성스런 젊은 배우의 태(態)는 점차 순수의 지경에 이른 아이들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 야한 게 아닌가 하는 염려는 너털웃음으로 바뀐다. 무대 위에서 떼쓰고, 동물놀이를 하고, 옷 장난에 정신이 팔려있는 세 명의 어린이의 놀이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친구를 외발수레에 가두는 장면, 외발수레를 통통 튀기는 장면 등등, 가리는 것, 숨기는 것 없이 아이들의 마음으로 그저 신나게 놀 뿐이다.

<서프라이즈>는 뛰어난 음악극으로 분류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음색을 사용하여 감정 표현과 신체 움직임과의 조화를 꾀한다. 딱히 대사가 없어도 그들의 아웅다웅하는 모습과 기구들을 이용해 천연덕스럽게 노는 모습들이 관객들을 흐뭇하게 만들어 준다.

공연의 백미는 수레에 물을 퍼와서 그 안에 뛰어드는 장면과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노는 장면이다. 극장이 점점 풀장으로 변해가는 물장난 속에서 ‘이거 좀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어른스러운 불안함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오히려 이상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관객들도 실은 극장이 저렇게 변신하는/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조용해야 하고 집중해야하는 극장에서 우리도 저렇게 뛰어 놀고 싶었던 걸까? 흥건하게 변한 바닥을 배우들이 이리 조리 슬라이딩하며 객석으로 흩뿌려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적당히’ 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의 차고 넘치는 천진함과 밝음을 여지없이 보여준 무대. <서프라이즈>에서 진정 ‘서프라이즈’한 점은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보여준 어른이들의 활약이었다.

4. 독일 마이닝겐 극단의 <놋쇠병정>

독일 마이닝엔 인형극단의 공연 <놋쇠병정>은 이번 축제의 대표작으로 촛불 하나 켜고 들려주는 베개머리 맡 안데르센 동화를 구현한다.

상상의 세계에 빠져 사는 안데르센은 잠자는 순간, 자신은 꿈을 꾸고 그렇게 꾸는 꿈이 자기 동화의 스토리가 된다고 귀띔한다. 베개를 꺼내 잠을 청하는 안데르센의 베개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미동 초등학교 강당 안에는 상상의 숨결로 한껏 차오른 안데르센의 인형극장이 만들어 진다. 어안이 벙벙해진 관객들에게 천막의 한쪽을 열어 손짓하는 안데르센. 그제야 커다란 텐트 안에서 동화 <놋쇠병정>이 시작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안데르센은 일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전지전능한 이야기꾼과 인형 조정자의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극장을 열었다, 접었다 하면서 환상적인 세계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펼쳐 주기에 관객들의 탄성 역시 끊이지 않는다. 어른의 어깨 높이의 자그마한 테이블은 빛을 이용하여 빌딩이 되었다가 거리가 되고, 놋쇠 인형 무리의 정신없는 행진과 놋쇠병정의 스카이 다이빙을 다이나믹하게 표현해준다. 빛과 그림자, 영상과 바람을 이용한 표현은 아이들의 감성과 잘 맞았고, 영어로 진행된 나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흥미진진함과 독특한 환상은 무리 없이 전달되었다.

<놋쇠병정>은 장난감들의 세계에 인간들의 세계가 투영되는, 작지만 의미 있고 슬픈 이야기다. 한쪽 발을 들고 서있는 발레리나에게 동병상련의 감정과 애정을 느껴 사랑을 고백하는 놋쇠병정의 스토리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받아들이는 지점이 사뭇 다른 우화적인 드라마이다. 마이닝겐 인형극단의 이번 공연은 원작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나 교훈을 나열하기 보다는, 아동극 특유의 분위기와 정서를 통해 이야기 본연의 기쁨과 슬픔을 구체화한다. ‘느낌’ 을 만들어 내는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의 스릴, 군대의 위압적인 느낌, 발레리나의 매혹적인 아름다움, 물고기 뱃속의 징그러움 등등의 감정. 그래서인지 놋쇠병정이 불속으로 던져질 때의 충격은 배가된다. 놋쇠병정이 느꼈을 법한 슬픔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이될 때, 아동극도 사무치게 슬플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이닝겐 인형극단이 어린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여실한 공연이다.

5. 뛰고, 달리고, 웃자!

예술이냐, 교육이냐. 이런 문제의식으로 아동극은 어깨가 무겁다. 교육이면서, 예술이어야 하고 게다가 재밌어야 한다. 요즘은 체험 교실, 미술 활동 등등 다양한 미적 경험과도 견주어 경쟁해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는 문화 활동을 어린시기에 필요한 사교육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객석을 채운 우리 아이들/어머니들이 왜 남이 즐겁게 노는 것을 돈을 지불하며 보아야 하고, 그 상황에서도 교육을 떠올려야만 할까? 이런 생각하니 참으로 서글프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를 어린이의 품으로!” 돌려보내자는 아시테지 축제의 구호는 참으로 힘이 난다. 아동 청소년극의 주체는 바로 어린 ‘그들’ 이다. 억지 예술과 험난한 교육에 찌든 그들에게 ‘놀이’를 되찾아 줌으로써, 그들을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축제의 궁극적 목표라고 감히 생각한다.

어린이에게 놀이는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놀이는 어린이의 현재의 삶과 마음을 가늠해보는 주된 실천이다. 어린이가 존재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시작하고 멈출 수 있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행위.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허구와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실의 공존상태. 그것이 바로 어린이의 놀이이고 어쩌면 이는 연극 세계의 첫 걸음이다.


따라서 어린이의 모든 가능한 방식의 놀이는 연극성이 살아있는 무언가로 정의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인 놀이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연극’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수준 있고, 진정한 연극정신을 뜬금없이 마주할 수 있는 공연이 속속들이 자리한 아시테지 페스티벌, 17년째 맞춰온 어린이와의 발걸음은 겨울에도 계속된다. 어머님들, 이번엔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