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본질과 자의식의 괴리 - 극단 <목요일 오후 한시>의 공동창작극 ‘거울’

본질과 자의식의 괴리
극단 <목요일 오후 한시>의 공동창작극 ‘거울’


조용히 불이 꺼지고 의자에 앉은 여자는 거울을 꺼내본다. ‘맑은 거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여자. 거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사를 내뱉는 여자의 뒤로 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똑같이 거울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등을 맞대고 앉은 그녀는 거울에 비친 한 여자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거울속의 나를 해방하라”

면접과제는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내 모습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목요일 오후 한시>의 거울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하기 전 부스스한 모습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울, 출근길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속 쇼윈도에 비치는 모습. 늦은 오후 즈음 집으로 가는 길ㅡ 핸드백 속에서 꺼내보는 거울 속의 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나는 늘 그렇듯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것은 ‘또 다른 나’가 아닌 이미지화되지 않은, 어떤 메시지도 담지 않은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식할 수 없는 대상에 머물던 ‘거울 속의 나’를 소재로 극단 <목요일 오후 한시>는 공동창작극 <거울>을 만들어 낸다.



(사진출처: http://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매 주 목요일 오후 한시마다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목요일 오후 한시>는 2004년부터 즐거움과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활동해오는, 이름처럼 부지런하고 친근한 극단이다. 그들은 플레이백씨어터부터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즉흥연기를 보여줘 왔다. 배우들의 몸짓과 대사를 읽어가던 관객들은 다소 일방적인 보여주기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가 직접 소재가 되어 또 다른 희곡으로 쓰여 지는 것을 경험한다. 연극의 3요소인 희곡, 배우, 관객은 명백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 관객들의 새로운 대화를 바탕으로 배우가 연기하며 연극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한 관객의 이야기에 또 다른 관객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하게 된다. 여기서 응답은 공연 주제의 다양성을 스스로 만들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목요일 오후 한시>의 즉흥공연은 관객들에게 늘 또 다른 거울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왔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번 공동창작극 <거울>은 미리 만들어진 연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관객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사려 깊게 다가온다.


거울속의 나를 해방하라!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괘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 ‘거울’中


면접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실험대에 선 여자는 거울 속의 나를 해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마침내 나와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는 나를 벗어나게 된다. 거울에서 분리된 그녀는 흰 종이에 글을 써내려간다. 그 옆에서 종이에 쓰여 진 글을 차분히 읽어 내려가는 여자. 익숙하게 들리던 글들은 시인 이상의 ‘거울’이였다. 이상李箱의 다수 작품들은 다양한 양상으로 초현실주의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인간의 회복을 위한 건설적인 입장이라 말해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규범들, 기성의 가치체계와 윤리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자아(ego)를 벗어난 초자아(super ego)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것은 곧 무의식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 말한다. 무의식상태에서 글을 기술하는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즐겨 쓰던 방법이었다. 이들은 자동기술법을 사용함으로써 무의식의 자유로운 분출이 가능하다 생각했으며 이것들이 인간을 해방시키고 참된 자아의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고 믿었다. 이상의 ‘거울’도 마찬가지로 의식의 착란이나 자동기술법 등 초현실주의 기법을 고스란히 이용하고 있다.

거울속의 나와 합일하지 못하는 자아의 분열이 드러난 이 시는 거울이라는 매개체로 나를 인식하는 계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울 속 '나'를 피하기 위해 몸을 피해보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지만 서로의 눈을 더 치열하게 응시하게 된다. 애초에 맑은 거울 회사의 면접과제 '거울에서 나를 해방시키라'는 거울의 본 의미를 더 부각시키는 동시에 기존 이데올로기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형태로 쏟아져 나오는 윤리의식의 부재, 가치규범의 불안정, 그리고 가상현실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자아 분열. 이것들 모두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무서운 형태로 급진되고 있다. 내가 거울 뒤로, 거울 아래로 숨는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와 '또 다른 나'의 부재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의식의 분열은 자의식이라고 말한다. 문학의 중심에서 언제나 문제제기를 해오던 자의식의 성찰은 이상의 시 속에서 불거져 나온다. 거울속의 세계는 사물의 형상으로 따졌을 때 항상 2인칭이 되어야 한다. 내가 있고 거울의 표면에 비친 ‘내’가 있으므로 ‘나’와 ‘또 다른 나’ 일인이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 법칙은 무시되기 마련이다. 거울속의 ‘또 다른 나’는 자아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존재를 뒷받침해줄 모든 근거들이 거울에 비춰지지 않은 ‘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연극으로 돌아가 거울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여자는 이상이 시도했던 ‘거울 속의 나‘로 자의식을 확인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단절과 반접촉의 매개체가 되는 거울을 바라보며 온전한 나를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분리된 또 다른 여자는 글을 쓰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때 한 가지 주의사항이 발표된다. “절대로 거울에서 분리된 나를 껴안지 말라.”

껴안는다는 것은 두 팔로 감싸다, 혼자 여러 가지 일을 떠맡다 외에도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내재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시에서는 자아와 분리되지 못하는 자아가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연극 <거울>에서는 자아와 분리된 자아 모두 인식의 대상으로 뒤바뀐다. 생각해보건대 랭보의 시처럼 ‘나는 생각한다가 아닌 나는 생각되어 진다‘와 같이 우리 자신들은 타자(他者)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인식한다는 테제 자체가 역설적이다. 그래서 나를 껴안는다, 거울에서 분리된 나를 껴안는다는 것은 내가 인식의 대상을 넘어서지 못한 대상을 인정한다는 말이 된다.

여자는 결국 거울에서 분리된 여자를 끌어안은 후 쓰러진다. 찰나에 나를 잃었지만 또 다른 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쓰러지는 나를 바라본다. 거울속의 상(狀)과 나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열망은 현대인의 분열된 자의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들의 불투명한 자아의 갈등은 호흡까지 읽어낼 만큼 섬세하고, 관객들을 훑는 눈빛으로도 메시지가 전해질만큼 힘 있게, 그리고 본질과 본질의 허무는 자의식들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목요일 오후 한 시 <거울>

연극 20min 8.13(목) 17:00 / 8.14(금) 20:00 씨어터제로
공동창작/배우 현수 홀 서진 늦잠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08에서 극단<목요일오후한시>는 관객이 들려준 꿈 이야기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즉흥 연극을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2009년 극단<목요일오후한시>는 관객이 보여준 호응도 뒷전으로 한 채,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거울’을 선보이겠다는 무모한 꿈을 품게 되는데….
 출발 소재는 거울, 여정은 공동창작, 도착 후 공연 시간은 15분. 세 가지 단서를 가지고 여행길에 오른,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은 과연 무사히 공동 대본을 쓰고 공동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즐거움과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꾸준히 작업 중이다.
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윤나리
nari.peac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