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GODa Gadener」 몸을 전면에 내세운 생생한 세계의 구현

2009. 9. 18. 10:34Review



「GODa Gadener」 몸을 전면에 내세운 생생한 세계의 구현 


                                                                                                                  김민관




공연의 흐름은 고다Goda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보는 이의 시선에 움직임이 녹아들며 고다의 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행위들은 정원사로서 팬터마임의 실제적 묘사와 함께 움직임이 곧 춤인지라 그 추상적인 춤 사이의 한 지점에 있었다.


한 장면씩 행위들을 보여 주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이에 대한 묘사가 뒤따른다. 이는 해설로서 고다의 움직임 자체로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족처럼 부가되지만, 일정한 흐름을 분절적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는 기능으로써 내레이션의 중독적인 청각의 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다만 그 움직임이 단단하고 에너지가 깃든다는 것이다. 그는 관찰되어지는 신화의 대상으로 성찰되어지며 단편적으로 이미지 잔상들을 획득하는 것이다. 즉, 그의 감정은 오로지 행위로써 표현되고, 이것은 단순하지만 내적 충만의 표현주의적 귀결로 흐르는 춤이나 몸을 갖지 못한 언어들의 연극에 대한 대안으로 보였다.


수박을 중간에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퍼포먼스는 잠깐 관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으로 여겨졌지만, 어쨌거나 수박이 오브제로서 출연한 것 외에 크게 사실주의적 배경의 설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또한 언어적 설명이 동반된 것은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의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결과적으로 고다는 세계를 직접 몸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너른 대지가 펼쳐지고 농작물이 자라고 하는 과정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너른 대지에 홀로 서있는 고다의 모습은 자연과의 합일된 세계관이 나타나는 것이기도 했고,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몸이 곧 배경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한편 세계로 확대된다는 것은 고다의 몸 그 자체에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을 나타내고, 이는 군더더기 없는 공연예술의 본원적 에너지에 다가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고다로 출연한 태국의 연출가인 티라왓 물빌라이(Teerawat Mulvilai)는 고국에서 정치와 사회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제작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작품 역시 2006년 대만에서 머물다 태국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데, 사실 농사의 실패로 자신의 터전을 떠나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장면에서 실존적인 어려움과 척박한 도시 사회의 배경이 오버랩되기는 했지만, 특별히 사회 현실을 직접적으로 나타냈다고 보기 힘들었다.



관객석 뒤편의 문이 열리면서 빛이 나오고 주인공이 그 틈을 통해 사라지며 영상 속에 등장한 주인공이 그 속에서 머물다 끝을 맺었는데 이로써 고다는 실제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인물로 사라져 갔다.


자연에서 도시로 이동하여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답답함으로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가다 다시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자연으로 돌아와 하나가 됨은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연에 대한 동경과 갈증을 짐짓 일깨우는 것으로 다가왔다. 가령 ‘우리는 왜 우리 삶의 정원사, 곧 조율자가 되지 못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한편 사회적 현실의 투사는 몸에 있어서의 불편함으로부터 유추될 수 있었지만, 미처 이주노동자에 대한 것으로 사고로까지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사회적 현실을 재현하는 것으로 작품을 마감하지 않은 지점에서 작품의 생명력이 있었다고 보인다.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TV 등의 매스컴이 범람하는 시대에 충분한 재현의 의미도 획득할 수 없을뿐더러 결국 예술이 아닌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메시지를 획득하고자 할 때는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P.S. 고다 가드너와 같이 상연되었던 댄스프로젝트그룹 JD의 「거미여인과 물마 탄 우편배달부」라는 공연을 보고 적잖이 실망감이 들었다. 관객이란 실제적이고 근엄한 타자의 존재를 안고 춤을 추지 않는다면 자유로움은 하나의 방종에 치닫지 않을까? 중반부까지 이들은 수시로 바뀌는 대중가요에 맞춰 최대한 즉흥적으로 놀며 어떤 명확한 발언의 차원이 아닌 관객을 명확히 직시하지 않은 채 유희 차원에서 이미 친한 알고 있는 동료들의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말들을 계속해서 나타냈다. 심히 관객들을 고려치 않는 장난에 그치는 것 같았고, 집중을 끌어내지 못했다. 웹을 거미줄로 상정하고 존재를 일종의 주소 사이트로 상정하여 무의지적 연결망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은 조금 그럴싸했다. 골반을 축으로 좌우로 상반신과 하반신을 차례로 물결 타듯 추는 춤은 중독성이 있었고, 거미를 흉내 낸 것에서 웹페이지가 넘어갈 때의 순간적인 명멸의 불투명한 프레임에 닿아 있는 듯했다. 그러한 춤으로써 세계를 비유함은 약간의 긍정적 요소가 비춰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구도는 그것과 큰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여러모로 많이 지루한 집중도가 거의 없는 단순한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필자 |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