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한민국어머님춤협회’의 ‘한국춤은 아름답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를 보고

2009. 9. 18. 15:19Review


‘대한민국어머님춤협회’의 ‘한국춤은 아름답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를 보고

                                                                                                          강말금





나는 왠지 이 공연이 보고 싶었다. 이번 프린지 책자에서 가장 튀는 제목을 가진 공연.

어떤 헤프닝의 시간을 예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럴 줄은 몰랐다. 할머니들과 몇 명의 관객들은 영화를 한 편 찍었다. 매우 유니크한 영화.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70세 이상 할머니들의 발표회 공연이었다. 부자이거나 대학 교수 사모 같은 느낌의 할머니들은 아니었다. 최고령 할머니가 81세 이셨는데, 그 분은 단체무를 추시다가 다리가 아파 준비한 개인무를 추지 못하셨다. (사실 핑계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춤을 추신 할머니들도 중간 중간 안무를 까먹었다. 재롱잔치를 하는 유치원생처럼 선생님이 옆에서 춰주는 걸 훔쳐보며 가까스로 이어나가곤 했다. 그런 할머니들을 보고, 55세에 방통대에 들어가 공부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시험 칠 때마다 나이 들면 잘 안 외워진다고 속상해하면서, 매 성적 절대학점에 가까이 가곤 하셨다. 여기서 절대학점이란 우리집에서만 통하는 용어로서, F 없이 받을 수 있는 최저점수를 말한다. 내 기억엔 1.3 까지 갔던 것 같다.

엄마는 부산여상에서 수학 일 등이었다고 자랑하곤 했는데. (거짓말이었나?) 나이 드신 분이 얼마나 뭔가를 외우는 게 힘든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다. 그리고 내가 갈 세계.






어떤 헤프닝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할머니들의 옛 발음(춤 한 번 춰보수ㅖ요), 옛 말(제목은 추억이올시다), 사회자의 자기 자리 찾아가기 등 일상적인 행동의 순간순간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으니까. 그래도 그 중에서 특히 놀라웠던 게 하나 있었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공연의 틀을 짜오셨는데, 어떤 ‘포퍼먼스’를 개인무의 사이에 끼워 넣으셨다. (관객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일명 ‘회비 걷기 포퍼먼스’ 였는데, 진행은 다음과 같았다. 할머니들이 부회장 할머니에게 천 원 씩 회비를 주면, 부회장 할머니는 한 명 씩 호명하며 종이에 이름을 쓴다. 다 내고 다 쓰면 ‘포퍼먼스’ 끝.



보면서는 저것이 왜 퍼포먼스인가, 왜 하필이면 저것을 퍼포먼스라고 명명하면서 공연에 끼우셨나 생각했지만, 결국 그 분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공연의 목적은 회원 모집과 홍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홍대 놀이터에서 누구를?)


나는 그분들을 이런 면에서 이해한다. 재능 없는 배우인 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는 뻔뻔함을 타고나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부끄럽고, 몸이 굳고, 평소 잘하던 것조차 못 해내는 보통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배우가 되려고 해서 오랫동안 속이 많이 상했다. 나는 할머니들보다 훨씬 젊지만, 할머니들에게서 나와 같은 사람의 떨리는 무대를 보았다.


다음 나의 차례, 무대에 나가야 할 시간, 첫 포즈 준비, 음악 시작, 몇 소절 무사히 지나가지만, 평소 연습하던 것과 다른 환경(마룻바닥이 아닌 보도블록!)에서 스탭이 꼬이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다음이 생각이 안 나고, 선생님을 보지만, 음악은 이미 한 박 앞으로 가 있고, 본래 스탭은 잘 밟는데 발도 팔도 이상한 것 같고, 순서는 가야 하는데, 선생님을 볼수록 오히려 제 페이스를 찾을 수가 없고, 그만 하고 싶지만, 하다 말 수도 없고. 그렇게 그냥 버티다가, 고맙게도 음악이 끝나면, 서둘러 마지막 포즈.



박수도 없는데 인사는 언제 해야 하지?

후루룩 퇴장하면서, 기대와 상상으로 밤잠 설치던 시간은 끝이 난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이해한다. 그 분 들 중에서는 꽤 능숙한 분들도 계셨다. 일 말고는 몸을 다른 데 써 본 일이 없는 할머니들이, 맨 처음 스탭을 배운다. 발을 플렉스시켜서 발뒤꿈치부터 바닥에 놓아야하는데, 한 시간을 연습해도 잘 안 된다. 어깨에 잔뜩 긴장이 들어가고, 땀이 뻘뻘 난다. 한 주 두 주 흘러도 안무는커녕 걸음도 안 된다.

그러다 연습하던 어느 날, 이 느낌이 아닌가 싶다. 어깨가 어떻게 놓여야 하는지 척추는 어떻게 서야 하는지 몸이 알게 되어 수월한 어느 날. 너무나 즐겁다. 그렇지만 즐거움도 잠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TURN.



배우고 터득할 때, 일상의 일을 잊고 발목을 어떻게 해야 하고 손 끝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낼 때, 고통스럽지만 즐겁다. 춤을 무용수처럼 출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삶에 새로운 궤도가 하나 생겼다. 선생님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연습하다보면, 어느 날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관객이 거의 없었다. 가족을 초대한 할머니도 몇 없었다. 박수를 열심히 쳐 드렸다. 그 분들이 한국춤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더 얼마 없고, 어쩌면 본인밖에 모를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연습해서 돈 받고 공연해야하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그 분 들과 다르지만, 나머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인사에 ‘얼마 더 살지 모르지만’ 이라는 멘트가 있었다. 나의 집중도 그 분들처럼 순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 ㅣ 강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