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천한마당축제6-<대담>앨리스프로젝트

강말금의 2009 과천 한마당 축제 공연 보기  3

대담
-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앨리스프로젝트’를 보고


나는 강수혜다. 강말금이 나를 불렀다. 강말금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 과천한마당축제 감상문을 의뢰받았는데, ‘앨리스 프로젝트’에 관한 글은 나하고 같이 써야된다고 했다. 대담형식으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서 수락했다. 오늘은 왠지 집중이 좋을 것 같은 밤이다. 우리는 약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강수혜(이하 혜) : 오늘의 대담은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연극 ‘앨리스프로젝트’에 대한 것입니다. 대담자는 저와 배우 강말금씨입니다. 먼저 인사를 나누고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강말금씨.

강말금(이하 금) : 반갑습니다, 강수혜씨.
혜 : 우선 저를 부른 이유를 좀 알려주시죠.
금 : 네. 이 공연에 대한 글은 저에게 좀 특별합니다. 이유는 앞선 글에서 밝혔는데, 이 공연이 저에게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의 내용은 굳이 표현하자면 ‘적대감’입니다. 이 ‘적대감’ 때문에 저한테 언어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 언어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입장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에는 두 가지의 입장이 있어야 된다고 판단한 거죠.
혜 : 음. 제가 할 일을 알겠습니다. 얘기를 하다보면 어떤 입장에 서게 되겠지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시죠.


문학소녀의 대국민사과

금 :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국민 사과 같은 걸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혜 : 대국민 사과요? (웃음) 거창한데요.
금 : 네, 대국민 사과입니다. 사과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 얘기의  핵심 단어는 ‘문학소녀’입니다. 이것은 어떤 집단에서 저에게 지어준 별명입니다.
혜 : 학창시절에 전집 좀 읽으신 모양이죠? (웃음)
금 : 조금 읽기는 했습니다만...... 문제는 이 별명이 서른 살에 붙었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자체에 비아냥이 약간 섞여있는데, 별명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비아냥의 순도는 높아지죠.(웃음) 저는 그들에게 ‘내가 어딜 봐서 문학소녀냐’라고 따지는 대신, 글을 안 쓰는 것으로 복수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부르던 사람들도 저도 ‘문학소녀’에 대해 잊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다시 이 단어를 떠올렸어요. 제가 ‘문학소녀’로 넘어가는 순간을 느끼게 된 거죠.
혜 : 계기가 있었나요?
금 : 아시다시피 저는 이번에 네 편의 글을 쓰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지난주까지 두 편을 썼고, 두 편이 남은 상태입니다. ‘앨리스 프로젝트’는 저에게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고 해서 마지막으로 미루었고, 세 번째 글을 며칠 전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혜 : 계속하시죠.
금 : 네, 그 때입니다. 쓰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공연에 대해 글을 쓰려다보니 좀 괴로웠습니다. 그런데도 써지기는 써졌는데, 그건 제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기와 쓰기를 했기 때문일 겁니다. 나중에, 써놓은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문학소녀가 쓴 글이구나. 아시다시피 광활한 문학에는 한 세계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나온 문학이지만, 그것과 별도로 문학 자체가 괴물처럼 별도로 형성해온 세계요. 문학 세계의 언어는 현실 세계의 언어와 다릅니다. 문학소녀가 쓴 글이란,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계가 아닌, 문학 세계에 있는 표현이나 전개방법을 차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글은 죽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죠. (웃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글이 씌어지는 힘, 말하자면 저자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동기 같은 것이 약할 때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혜 :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 자기만의 표현이라는 게 있을까요?
금 : 엄밀히 말해서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떤 표현과 자신이 만날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단어, 문장, 글을 만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주머니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주머니에서 나와야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볼께요. 저는 요즘 ‘플로베르의 앵무새’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 48페이지에, 플로베르가 쓴 한 줄의 글이 있어요. ‘나와 나의 책들은 식초에 절인 오이처럼 같은 방에 있다’ 참 알 수 없는 표현이죠. 문화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연어알’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연어알’의 여주인공은 딸기쨈을 만드는 취미를 갖고 있는데, 어느 작은 방에 쨈을 보관합니다. 몇 층짜리 선반이 이 방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고, 선반 위에는 제작연도가 적힌 유리병이 빼곡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오이피클이 가득한 식품창고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먼지쌓인 채로 진열된 유리병과 유리병처럼, 나란히 선반 위에 놓인 책과 플로베르. 혹은 식초에 쩐 오이들처럼 유리병 속에 서있는 책과 플로베르. 이런 이미지들을 상상하게 되면, 오래된 오이피클의 시큼한 냄새로 인생을 예감하는 젊은 플로베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시간을 흘려 보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문장은 저와 관련이 생긴 거죠. 저는 어떤 주머니를 갖게 된 거예요. 뭐 그렇다고 제가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공감 못 할 ‘식초에 절인 오이처럼’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는 않겠지만요. (웃음) 
혜 : 네, 결국 글이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된다는 말씀이시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금 : 이제 대국민 사과로 가야합니다.
혜 : 아, 그렇죠? (웃음) 한 번 해보십시오.
금 : 네, 이제 하겠습니다. 저는 첫 번째 글에서, 세 편의 글을 더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약속에 의해, 저는 두 편을 더 써야합니다. 그런데, 이거 한 편만 쓰려구요...... 여러분,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그 대신 길게 정성껏 쓰겠습니다. (비굴한 웃음)
혜 : 내 참, 그 얘길 하시려고...... 은근히 말이 많으십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혜 :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지요? 먼저, ‘공연창작집단 뛰다’ 소개를 좀 하겠습니다. ‘뛰다’는 2001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의 연출, 배우, 미술가분들이 모여서 만든 극단입니다. 작품으로는 상자 속 한여름밤의 꿈, 하륵이야기, 고슬고슬고슬고슬, 또채비놀음놀이, 노래하듯이 햄릿,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 앨리스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상은 뛰다 홈페이지 www.tuida.com에서 옮긴 내용입니다.
금 : 저는 그 중에 ‘하륵이야기’, ‘노래하듯이 햄릿’,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 ‘앨리스 프로젝트’를 보았습니다.
혜 : 많이 보셨네요.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앨리스...’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금 : 그건 어렵습니다. 저는 이 년에 걸쳐 작품들을 보았고, 그 때마다 상태가 달랐습니다. 관심사도 달랐구요. 예를 들면 ‘앨리스...’를 볼 때는 생리 직전이었습니다. 심기가 많이 불편할 때죠. 이런 이유에서, 작품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기 보다는, 공연을 보면서 천천히 형성되어 간, 내가 생각하는 ‘뛰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본 공연은 ‘노래하듯이 햄릿’입니다. 2년 전 봄에 보았죠.
혜 :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했었지요. 야외극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금 : 저는 보고 뻑 갔습니다. 처음에는 운좋게 초대를 받아 보았고, 끝나자마자 표를 사서 다음날 또 보았습니다.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 바람에 펄럭이는 천, 오 미터는 될 것 같은 왕과 왕비의 인형, 햄릿의 고통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던 오브제들...... 햄릿의 가면을 씌운 낚시 의자와 우산, 마차와 광대들...... 그 공연은 그 밤을 잊지 못할 꿈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혜 : 저는 거대한 왕 인형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왕의 입에서 조종하던 배우의 팔꿈치가 튀어나왔고, 인형인 왕의 고통이 느껴졌었어요. 마치 인형이 뼈를 토해내는 것 같았죠. 인형이라는 오브제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내고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아요.
금 : 동감이예요. 오필리어 인형도 예쁘지 않고 괴이하죠. ‘하륵이야기’에 나오는 하륵이도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공연 끝에 세상을 다 삼킨 큰 하륵이가 무대를 채워버리는데,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해요. 전래동화에는 세계와 자연의 잔인함이 숨어있는데 그런 부분을 포착한 것 같습니다.
혜 : 그로테스크, 오브제, 천, 그밖에 ‘뛰다’에 가까운 단어들을 모아봅시다. 광대, 생음악,
금 : ‘하륵이야기’에서는 광대들의 재활용악기 연주가 일품이었지요. 그리고 또...... 그림자극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 초반에는 기가 막힌 5분짜리 그림자 씬이 있지요. 저는 이 모든 것에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정성’입니다. 그분들의 모든 무대에는 시간성이 느껴집니다. 소품 하나도 소홀히 만들어지고 다루어지는 게 없습니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동의 가장 큰 부분이 거기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혜 : 그로테스크, 오브제, 천, 광대, 생음악, 그림자극, 그리고 정성. ‘뛰다’ 공연의 특징을 이렇게 모아보았습니다. 이 밖에 이 분들 작업의 특징으로 배우들이 합숙하는 극단, 레퍼토리 극단, 찾아가는 극단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분들의 홈피에 가보면 평소에 배우 공부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하나의 레퍼토리를 완성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다양한 레퍼토리를 각 지역에서 공연합니다. ‘앨리스 프로젝트’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져서, 올해 춘천인형극제에서 초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 : 야심작이죠.
혜 : 네, 그게 느껴져요. ‘앨리스...’는 뛰다의 작품들 중에서도 그들이 추구하는 테마가 가장 많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얘기를 하기 위해서 원작을 많이 비튼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입니다.
금 : 네, 저도 나중에 그걸 알았죠. 작품에 대해 쓰려는데 뭐가 뭔지 도통 몰라서 책을 사 보았습니다. 저 그런데......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제의해도 될까요?
혜 : 하세요.


거울나라의 앨리스, 앨리스프로젝트


금 : 저는 이 얘기가 ‘아름답지만 어렵다’로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진행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혜 : 음...... 좋습니다. ‘아름답다’ 와 ‘어렵다’는 두 가지 키워드로 얘기해보죠. 먼저 ‘아름답다’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금 : 네. 우선 제가 공연 본 상황에 대해 얘기를 좀 했으면 해요. 저는 ‘앨리스...’를 보기 위해 공연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과천에 도착했습니다. 과천한마당축제가 모두 무료인 데다가, ‘앨리스...’에는 선착순 150명의 관객만 받는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뭐, 기대가 컸던 공연이니까요...... 그런데 길을 잃어서 엉뚱한 곳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축제팀에서는 커다란 돔 모형이 있는데 왜 못찾느냐고 했고...... 뭐 제가 좀 길칩니다. 이러저러 해서, 공연 시작 20분 전에 겨우 그 돔을 찾았습니다. 그 때, 왜 150명인지 알았지요.
혜 : ‘앨리스 프로젝트’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돔을 설치하고 그 공간에 객석을 꾸며 놓지요. 그 안에는 중앙에서 갈라진 세 갈래 길이 있어서 무대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배우들은 돔 앞에 꾸며진 무대에서 연기하다가 돔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세 갈래 길의 중앙에서 연기하다가 무대로 들어가기도 하고, 쇠로 된 돔 구조물을 타고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훌륭한 공간성이죠. 그야말로 ‘프로젝트’입니다.
금 : 네, 저는 비록 돔 안에는 못 들어갔지만 쇠구조물의 옆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이 흘렀고, 돔 꼭대기의 조명기에서 푸른 조명이 약하게 떨어졌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구요...... 돔 천정에는 염색된 천이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었는데...... 저는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이 연극의 꿈을 실현하는구나...... 그 때 배우들이 하나 둘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혜 : 배우들은 ‘한여름밤의 꿈’의 요정 ‘퍽’을 생각나게 하더군요. ‘태양의 서커스’의 멋진 광대들두요.

금 : 이건 좀 웃긴 얘긴데...... 공연장에 이선균씨와 부인 전혜진씨가 왔었어요. 왜 그 목소리 좋은 배우 있잖아요. 연예인은 다르데요. 얼굴에 광이 나드라구요.

혜 : 그야 관리를 받으니까 그렇지요. (웃음) 카메라 샤워라는 것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선균씨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 어떻게 서로 친한가 봅니다.
금 : 네, 이선균씨와 저는 한 사오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꾸 절 보는 거예요. 좋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하대요. 부인도 옆에 있는데 말이죠. (웃음) 나중에 알았어요. 제 바로 뒤에 배우 한 분이 서 계시는 걸...... 확 정신을 차렸습니다.
혜 : (웃음) 잘 하셨습니다.

금 : 근데 정신을 차린 이유가 있어요. 그 배우를 보는 순간 딴 세계로 들어간 거예요. 나는 쭈그려 앉아있고, 그 배우는 서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미지가 압도적인 거예요. 그분들의 기본 의상은 거의 비슷했는데, 하얀 딱 붙는 옷이예요. 물론 그분들의 의상이니 대충 만들어지진 않았죠. 얼굴을 다 칠한 분장도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분들의 몸. 무용수의 몸이드만요. 두 발로 단단하게 땅을 짚고 그 위에 근육을 쌓아올린 듯한 몸. 유럽의 대성당이 떠올랐어요. 거기에 압도되서 좀 기가 죽더군요.
혜 : (웃음) 지금 ‘아름답다’에 대해 얘기하고 있죠? 자주 쓰이는 단어가 ‘압도적’인 거 같군요. 그 멋진 광대들이 공연시작 10분 전에 150명의 관객을 하나하나 맞이합니다. 신종플루예방 세척제를 발라주면서요. 관객들은 환상의 세계에 입장하는 기분을 맛봅니다. 저도 그랬구요. 관객에게 연극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을 주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금 : 저는 죄인처럼 철제구조물을 붙들고...... (웃음) 구경했습니다. 같은 생각을 했어요. 대학 4학년 때 연극 ‘라쇼몽’을 만들었는데, 그 때 꿈꾸었던 것이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연극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어요. 객석 군데군데 향을 피워둔 것이 고작이었지만...... 아무튼 그 꿈이 최상의 형태로 실현된 것을 본 거예요. 감탄했고, 그분들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혜 : 연극 속에 나오는 이미지들도 훌륭합니다. 저 또한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모르고 연극을 보았지만, 그 동안의 ‘뛰다’의 작업들이 집대성된 느낌을 받았어요. 저도 물론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닙니다만...... 가면의 앨리스, 여왕이 된 앨리스, 하얀 기사, 여러 명의 배우로 표현된 하얀 여왕, 험프티 덤프티,
금 : 저는 그 ‘험프티 덤프티’가 삼각김밥인지 알았어요.
혜 : (웃음) 좀 모양이 비슷하긴 했죠.

금 : 음...... 그런데요, 연극이 시작되면 ‘어렵다’ 키워드로 넘어가야 해요.
혜 : 그럼 ‘아름답다’ 얘기는 끝난 건가요?
금 : 네, 연극이 시작되면 아름다움의 감동은 끝나요. 어렵기 때문에.
혜 : 음...... 먼저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금 : 네. 우선 ‘어렵다’에 대해 설명을 좀 할께요. 제 친구 중에 언어학하는 사람이 있어요. 언어로 배우 하는 저에게 큰 도움되는 말들을 툭툭 던지곤 하는데요,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어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세 마디 이상 넘어갔는데 그 속에서 맥락을 찾을 수 없으면, 딴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구조라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어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목걸이줄을 계속 만들어가며 말이라는 구슬을 끼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한 마디를 듣고 만든 목걸이줄을 두 마디 째에 수정하고, 세 마디 째에 다시 수정하고, 네 마디가 넘어가도 수정해야될 때, 사람들은 저절로 안 듣게 된다는 거죠.
혜 : 목걸이줄이란, 이야기의 맥이겠군요.
금 : 그렇죠. 그래서? 그런데? 하면서 이야기를 듣게 하는 힘이죠. 그건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문제는 연극이나 영화의 관객은 가만히 앉아서 보고 듣고만 있어야한다는 거예요. 재미가 없으면 고문이죠. 그러니까 연극 영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의 기본 숙제는 관객들이 적절한 목걸이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씬들을 연결하는 힌트를 주는 거예요. 그게 없으면 씬이 아무리 훌륭해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관객들은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할 테니까.
혜 : 중요한 부분을 지적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렵다’는 건가요?
금 : 네, 제가 말한 ‘어렵다’는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예요. 그러니까 목걸이줄을 제공해주지 않고, 씬들이 쏟아진다는 거예요. 정리가 안 되니까 어려운 거죠.

혜 : 음...... 그런 면을 인정해요. 저도 보면서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문제가, ‘앨리스’라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낯선 데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 공연을 보기 전에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의 존재를 몰랐어요. 제가 ‘앨리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시계토끼, 트럼프 여왕, 물 마시고 작아지다, 정도였고, 이것마저도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얘기는 아니었죠. 그것도 문제가 되었지 싶어요. 앨리스의 고향 나라에서 ‘앨리스’를 패러디한 공연을 한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죠. 누구나의 생활 속에 있는 앨리스며, 하얀 여왕일테니까.

금 : 네. 저는 대학 일 학년 때 ‘마로위츠 햄릿’이라는 공연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마로위츠’라는 사람이 해체한 거래요. 그 공연이 영국에서는 기립박수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받을 수 없죠. 그냥 ‘햄릿’도 잘 모르니까. 그런데 ‘앨리스’는 ‘햄릿’보다 더 심한 케이슨 거 같아요.
혜 : 그렇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문화를 패러디해서는 안 된다, 고 말할 순 없지요.
금 : 물론이죠. 문제는 만드는 사람의 배려에 있다고 생각해요.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대형서점 아니면 팔지도 않더라구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다, 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모르는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야지요. 이 공연은 씬들로 이루어져있어요. 매 씬들은 철학적인, 사회비판적인 언어를 쏟아내요. 그런데 그 언어가 나와야만 하는 맥락을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관념어를 직접 쏟아내는 건 부담스러운 데 말이죠.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 영상도 나오는데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앨리스는 살고 싶지 않은 아이인데 점이니 선분이니 숫자에 대해서 얘길 해요. 그럼 앨리스는 수학이 하기 싫어서 수학시간 전만 되면 살고 싶지 않은 아이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예요. 구체적인 게 없는 거죠. 소설에는 되바라졌다고 생각될만큼 당찬 앨리스가, 체스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그 아이가 여왕까지 되는 힘이 ‘호기심’이예요. 그런데 이 연극의 주인공은 무채색의, 그러니까 호기심을 가질만한 인물이 아닌데, 어떻게 하다가 여왕이 되요. 여왕이 될 수 있는 계기성이 주인공 속에 내재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어요. 관객들은 그걸 전제로  연극을 본단 말이죠.

혜 : 말들을 쏟아내시는군요. (웃음) 감정적이 되셨어요.  
금 : 아 저 물 좀 마실께요.

혜 : 저도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공연을 본 후에 읽었어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으로 읽었을까 하는 거예요. 시간을 거꾸로 사는 ‘하얀 여왕’ 부분을 읽으면서, 연출과 배우들은 잠시 책을 덮고 어떤 상상을 했을까. ‘하얀 여왕’은 책에 묘사되고 삽화로 그려진 이미지도 재미있지만 시간에 대한 철학을 내포하고 있잖아요. 그것을 시각화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 같아요.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죠. 그들 각각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존재들이니까. 어떤 나라의 민담에 등장하는 상상동물들처럼, 그들의 민족성, 나아가 인간에 대한 진리에 가까운 부분들이 내재되어 있으니까요.

금 : 그게 문제예요. 근사하고 멋있는 게 많으니까. 여러 가지 캐릭터들의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과 사회의 진리가 있으니까. 근데 그건 관객들의 뒤통수로 와야 하는 거거든요. 다 보고 나서 기분으로 오는 거지, 귀로 바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의 모든 씬들에서 아름답게 디자인 된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이들의 디자인은 구체적이지만, 이들이 가진 상징성은 관념적인 말들로 설명되요. 그래서 그 다양한 캐릭터들이 가진 아이러니한 풍부함이 얄팍한 철학으로 환원되요. 철학이 에피소드를 통해 뒤에서 관객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 입에서 뱉아지고 있는데, 그것이 주는 거부감이 상당해요. 나는 그런 식으로 철학을 배우고 싶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그런 식으로 철학을 가르칠 수 없어요.


혜 : 그러면, 목걸이줄이 모호한 부분 뿐 아니라 구슬, 그러니까 각 씬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는 얘긴가요?

금 : 네. 그건 목걸이줄과도 상관이 있죠. 안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다음 캐릭터가 나와서 또 뭔가 외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근사한 이미지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뭔가 한 번 나오고 들어가고, 한 번 나오고 들어가고, 나중엔 무감각해지더라구요. 재미없는 대형 뮤지컬처럼. 소비되는 느낌.
혜 : 대형 뮤지컬을 싫어하시는군요? (웃음)
금 : 네. 저는 작고 소중한 걸 좋아해요. 세트가 매번 근사한 걸로 바뀌는 것보다 한 번 나왔던 작은 소품이 거기에 쓰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곳에 쓰이는 걸 좋아해요.
혜 : 그건 다른 연극의 몫이예요. 영화에도 블록버스터가 있고, 있어야 하듯이, 연극에도 거대 규모의 것이 있어야지요.
금 : 규모의 문제가 아니예요. 얼마나 엄밀하게 인식하면서 작업했느냐, 살아왔느냐의 문제예요.
혜 : 그건...... 언제나 중요한 문제죠. 그리고 이상과 현실 중에 이상의 영역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현실화된 형태는 언제나 어긋난다는 얘기죠. 연극하신다는 분이, 다른 분의 연극적 현실에 대해 그렇게 씹으셔도 되요? (웃음)
금 : ......좀 찔려요. 근데 일단은, 솔직한 게 좋으니까.

혜 : 솔직한 거 좋죠.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관극의 경험은 영화나 책을 본 경험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책을 보고나서 글을 쓸 때면, 필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보거나, 통으로 다시 볼 수도 있겠지만 연극은 달라요. 연극을 본다는 건 만남의 사건이잖아요. 물론 엄밀히 말해서 영화나 책과 만나는 것도 사건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텍스트 자체가 그날의 컨디션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테니까. (웃음) 장기공연이 아니니 다시 찾아볼 수도 없고. 만약에 말금씨가 헤매지 않았더라면, 150명 중 한 명이었더라면, 생리 때가 아니었다면, 뛰다를 몰랐고 기대조차 없었더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느 배우가 생리 때가 아니었다면, 위장병이 아니었다면...... 식으로 너무 많죠.
금 : 네, 그래서 찔려요. 꼴랑 한 번 보고 이러다니. 본 지도 꽤 됐어요. 미루는 성향도 있고, 보고 나서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것도 있었고......
혜 : 더군다나 연극 작업 하는 사람의 입장이라기보다는 평론가의 입장처럼 여겨져요. 연극은 문학/철학 텍스트가 될 수도 있지만 무용이나 쇼에 가까울 수도 있는 공연 양식이잖아요. 쇼는 매력적인 무대의 연속이죠. 목걸이줄과 관련해서, 그 무대의 연결 고리를 컨디션 안 좋은 말금씨가 놓쳤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좋게 본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말금씨도 연극을 해보셔서 알겠지만, 통의 작업인 동시에 스탭바이스탭의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통으로 보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어요.
금 : 네, 그런데 제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긴 해요.

혜 : 조금만 더 얘기할께요. 뛰다의 선배배우인 황혜란씨가 벌레의 머리를 하고, 나머지 여섯 배우가 다리를 했던 씬 기억해요? 놀랍지 않았나요? 나는 황혜란씨의 연기도 좋았지만 배우들 몸으로 찾은 그 표현이 너무나 좋았어요. 가면 쓴 앨리스의 얼굴에서 가면이 분리되는 순간의 그로테스크. 여왕 앨리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천의 향연.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얼터너티브 연극.
금 :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있으세요? 아주 좋은, 훌륭한 사람과 만나서 차 한 잔 하고,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뒤통수가 찜찜한거요. 아, 마침 제가 책을 하나 들고 있는데, 좀 길지만 읽어드려도 될까요?
혜 : 뭐, 그러세요.
금 : 네, 이 책은 제가 제대로 읽은 거의 유일한 철학책인데요, 철학책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알랭 핑켈크로트라는 사람이 쓴 ‘사랑의 지혜’라는 책이예요. 이 책 92페이지. 읽어볼께요.

사랑의 지혜, 이쯤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 말이 뜻하는 여러 의미 중의 하나를 명확히 할 수는 있다. 즉 사랑받는 사람은 항상 부활의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상대방을 끊임없이 해석하지만, 그는 포위로부터 빠져나온다. 사랑받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해지고 있는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는 법은 없다. 나는 그를 둘러싸기 위해, 또는 아예 그를 농락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써보지만, 사랑받는 사람은 거기에서 또다시 일어선다. 모든 것을 포기한 망아의 사랑만이 타자를 부른다. 얼굴의 비환원성에 대한 각성, 이것은 사랑이 줄 수 있는 황홀한 꿈이다. 이러한 사랑의 도원경은 그것을 맛본 자로 하여금 스스로 패권주의적 망상에서 깨어나게 한다. 타자는 높은 곳에서 개괄적인 파악 방식에 의해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의심쩍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도 아니다. 그는 맞아들이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환대야말로 사랑의 형이상학적 의미인 것이다.

혜 : 끝?
금 : 네.
혜 : 근데 왜 읽어주셨어요? 뭔가 잡히질 않네요.
금 : 네...... 좀 큰 얘기지만...... 제 기분과 관련이 있어요. 뭐랄까, 그분들이 정말 만나고 싶었을까? 아니면...... 보여주고 싶었을까?
혜 : 계속하세요.
금 : 그러니까,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그 분들이 관객이라는 타자를 만나는 윤리같은 것...... 제가 아까 제 옆에 섰던 근사한 몸의 배우 얘길 했지요. 그 압도. ‘압도’라고 하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의도되지 않았지만 내적으로 의도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이 표현은 피하고 싶지만...... 그 분들은 엘리트의 정체성으로 관객 앞에 선 건 아닐까.
혜 : 엘리트.
금 : 그러니까 가르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엘리트는...... 서양의 엘리트. 공연을 보면서 제가 몇 개 본 적도 없는 서양 공연들이 어찌 그리 생각나던지. 그 왜, 지구와 인간의 미래를 걱정하는 유럽 사람들의 매스게임 있잖아요.

혜 : 음...... 반대할 수 없군요. 저는 같은 맥락으로, 광대 얘길 할께요. ‘뛰다’의 공연은 사실 광대들이 이끌잖아요. 광대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이고, 매정하고, 진지하지 않고, 차갑고, 또 뭐가 있을까요. 음...... 어린애 같죠. 자연 같죠. 그러니까 광대는 매정하게 웃다가도 불쌍하게 울고, 머리 꼭대기에 앉은 것처럼 굴다가도 불리하면 비굴해지고, 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광대는 특히나 근사했잖아요. 풍자는 풍자하는 자기 자신까지 풍자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럴려면 배우들이 자신이 쥐고 있는 뭔가를 포기해야하는데, 그렇질 않아서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연출의 시각이 복합적이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고...... 배우들이 좀 힘겹고 불편해 보였어요.


금 : 무대와 관객이 만나는 윤리 뿐 아니라 연출과 배우가 만나는 윤리도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미술하는 친구가 저랑 술 한잔 하면서 그랬어요. 자기는 요즘 물성(物性)에 관심이 있다고. 소주잔을 가리키면서, 사기물컵을 가리키면서 물성이 서로 다르고, 이것들 각각에 어울리는 것도 서로 다르다고 했어요. 그 때 우리가 나눈 얘기가 그거예요. 사람도 물성이 있다고. 그렇다면, 사람/배우에게 물성이 있다면, 연출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물성을 발견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것을 배치해주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무대는 배우의 것이니까. 그게 제 생각이예요. 그런데 어떤 연출은 자신의 상상을 무대에 펼치려고 해요. 그런 무대는 저로서는 부담스러워요. 앨리스도 좀 그랬던 것 같아요.
혜 : 음......

금 : 혹시 ‘시동라사’라는 연극 좋아해요?
혜 : 올해에도 10월 말까지 하더라구요. 보러갈려구요.
금 : 저 그거, 작년에 본 거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예요. 보고 난 후에도 좋았지만, 사실 일 년 동안 점점 더 좋아졌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연극과 주인공 여배우.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전인철 연출님을 존경하는데, 여주인공의 비밀을 지켜줘서예요. 한 사람의 인생의 비밀을 지켜주는 게, 사실 인생에 대한 겸허함 없이는 불가능한 거니까.

혜 : 알았어요. 보러갈께요. (웃음) 앨리스 얘기 계속 하시죠.
금 : 네, 음...... 좀 숨겨진 거만함이 있어서......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저는 공연을 많이 본 편이고...... 왠만하면 화 같은 거 안 나는데...... 이건 뭐랄까, 표면으로 드러난 것도 아니고 숨겨져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정말 예술인 거 같은데 아닌...... 모든 예술가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매일매일...... 그런데 너무나 확신에 차 있고...... 솔직히 말해서, 이건 정말 매도일 수도 있는데, 한예종 연극원 분들에게 그런 걸 자주 느껴요. 연극은 잘 만드시는데, 돌아서서 찜찜한......
혜 : 그건 위험한 생각이예요. ‘시동라사’ 연출분도 그렇고, 말금씨가 좋아하는 '목요일 오후 한 시‘ 팀들도 연극원분들이잖아요.
금 : 뭐 그렇죠...... 그리고...... 생각은 자유지만 발언은 위험하죠. (웃음)
혜 : 스스로 도매급으로 치부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씀하셔놓고선. 일종의 콤플렉스 아니예요?
금 : 뭐 콤플렉스까지야...... 저도 나름대로는 똑똑한 사람이예요.
혜 : 그렇지만 십 년 동안 자발적인 연극 작업은 거의 해 본 적이 없잖아요. 연극 오디션도 번번히 낙방하신다고 하셔놓고선.
금 : 아 씨, 그런 얘기까지 할 거예요?
혜 : 아, 미안해요. 너무 편해졌나봐. (웃음) 우리 한 숨 돌리고 얘기해요.

혜 : 아름답다, 어렵다, 를 거쳐 태도 얘기까지 왔어요. 너무 엄밀한 데까지 왔네요.
금 : 네, 엄밀하고, 가장 중요하죠. 사람들은 말은 못해도 기분으로 알아요.
혜 : 네, 그렇죠. 말금씨, 그 기분 알아요. 돌아서는 관객들 표정도 그렇게 개운하진 않았구요. 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예요. 저는 말금씨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제로 깔고 제 개인적인 얘길 해볼께요. 저는 요즘 중학교 연극반 교사를 하고 있어요. 거기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요. 아이들 중에 표현에 막힘이 없는, 그러니까 재능있는 축인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그 친구의 특징은 일종의 오만함이예요. 거기에서 그 녀석의 표현력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오만함은 세월이 흐르면서 화학적으로 변할 거예요. 저는 좋은 쪽으로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 녀석이 그런 놈이기 때문에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그 녀석의 힘인 거예요. 말금씨는 지금 윤리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윤리보다 선행하는 게 힘이예요. 그 사람이 그런 연극을 할 수 있는 힘. 그래야 연극이 성립하고, 그 다음에 윤리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연극이 있어야 만나지요.


다시, 공연창작집단 뛰다

금 : 맞아요. 저는 사실 ‘뛰다’의 존재가 감사해요. 그리고 ‘뛰다’의 다음이 궁금해요. 그래서 이러는지도 몰라요. 덩치가 너무 커졌다, 그래서 불만이다,

혜 : 덩치가 커질대로 커져야 작아지지요.
금 : 네, 맞아요. 그런...... 일종의 큰 리듬을 타는 극단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10년 다 되어 가잖아요. 경화되지 않고 유기체처럼 살아남았으면. 어떻게 보면 그것 뿐이예요.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그분들의 공연을 네 개 째 보았잖아요. 사실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 동안 보이던 황홀한 것 말고 다른 것을 보려고 했을 거예요.
혜 : 네, 어떻게 보면 결론은 없어요.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대화의 시간이 존재했어요. 이것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솔직히 극단 ‘뛰다’분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 대화는...... 기분에 대한 대화니까. 또 오직 말금씨 자신을 위한 대화니까. 다음 그 분들을 만날 때는, 더 구체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 말금씨였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예요.
금 : 오히려 기분이 나쁘실수도......(웃음)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엔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었으면 좋겠네요.

혜 : 이 정도로 마무리해요. 우리. 비도 오는데 술이나 한 잔 하러 갑시다.

금 : 전 소주가 좋아요.
혜 : (웃음) 갑시다. 연극 얘기는 그만하고 남자 얘기나 합시다.
금 : 좋아요! (웃음)

라고 했지만 우리는 술을 먹지 않고 헤어졌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였을 때 강말금의 뒷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더 커진 것 같았다. 머릿 속 주머니를 헤집고 있나. 저 여자는 계속 저렇게 살겠지. 나는 그녀가 계속 그렇게 잘 살기를 바라면서 돌아섰다. 

정리 강수혜


인디언밥의 '필자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개쏭과 강말금의 축제탐방기 2탄

지난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9에 이어, 이번에는 제13회 과천한마당축제를 다루려 한다. 두 필자가 4일간 과천한마당축제를 둘러보고, 눈에 띄거나 마음에 담은 작품들을 리뷰형식으로 보고할 예정이다.

 

과천한마당축제
마당극, 거리극, 야외극을 중심으로 한 야외공연예술축제로 시민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큰 잔치이다. 예술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이와 아울러 '살아있음'을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축제가 열어준다는 생각으로 열리고 있다.
2009. 9. 23-27 www2.gcfest.or.kr/

공연창작집단 뛰다 <앨리스 프로젝트>
학교에서는 경쟁의 논리를 배우고, 돈이라는 허망한 거품을 좇아 미래를 향해서만 달려야하는 이 시대의 앨리스는 누굴까?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을까?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앨리스 프로젝트>는 루이스 캐럴의 두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현대사회의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앨리스와 동화 속 인물들이 함께 연주하는 시공간적 이미지는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전쟁 같은 현실의 잔인함을 담아낸다. 생생한 음악연주와 노래, 즉흥적인 움직임, 춤, 독특한 인형들이 삶의 일상처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어울리는 축제 같은 연극이다.
2009. 9.23-24 www.tuida.com


글 | 강말금
(강수혜는 강말금의 본명이다.)



  1. 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