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천한마당축제5-마임 첫 경험


개쏭의 2009 과천 한마당 축제 공연 보기  3


고재경 <고재경마임쇼>
 


마임 첫 경험


첫 경험
,
이라는 합성어는
약간의 에로틱하고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첫 경험은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 처음을 맞이하느냐 라는 것은
앞으로의 경험들, 둘째, 셋째 경험들의 만남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이 ‘첫 경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에 생각나는 그것에 대한 첫 경험 말고도, 다른 것에 있어서 또한 첫 경험은 중요하다.
특히나 예술에 있어서 그러하다.
당신은 어떤 예술을 사랑하는가.
벨라스케스가 화폭에 부린 재치,
고다르의 한 템포 느린 카메라,
체호프가 연극무대 위에 올린 유머,
김민기의 울림 있는 가사,

왜 그것들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다가 그것들을 좋아하기까지 되어왔을까.
오래전
처음 물감을 만졌던 순간,
처음 비디오를 골랐던 순간,
처음 책을 골랐던 순간,
처음 이어폰을 귀에 꽂던 순간,
그 순간들에 빛났던 무언가.
그것은 예술을 만난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 오랜 첫 경험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마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만 몰래 들춰볼 내밀하고도 빛나는 경험일 것이다. 그렇게 예술에 있어서 첫 경험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그것과 앞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바탕이 될 그러한 것이다.

마임

그런데, 마임이란다. 마임이라. 뭔가 갑갑하다. 대체 그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느낌이다. 처음 들어보는 외국 음식의 따라 말하기도 힘든 이름처럼 낯설다. 그런대로 엄마아빠 말 잘듣고 살아왔다면 아마 평생 그 이름의 실체를 접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아빠는 말씀하신다. ‘학교 잘다니고 공부 열심히해’라고. 그렇게 십년을 넘게 살다보면,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후에 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다 보면, 눈앞에서 마임이란 것을 볼 일은 없다. 초등학교(아니 국민 학교겠지만)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수업과 생활을 기억해보자. 마임을 그 어느 구석에서 만났었나 하고. 이름은 아니까 어디선가 만나봤을 것 아닌가. 국어 교과서 안에는 아무리 오지선다의 세례를 받았다지만 시와 소설과 희곡이 있다. 간혹 괴짜같은 선생들을 만나면 시의 주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해본다든가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제목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해본다든가 하기도 할 것이다. 음악 교과서 안에는 시험범위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풍금이나 피아노 반주로 합창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괴짜 선생은 그런 음악을 자기 흥에 겨워 들려줬을 것이다. 나이 50에 혼자 사는 노처녀 히피 선생은 수능문제지나 풀라고 있는 영화반 특별활동 시간에 스필버그 영화를, 그것도 하필 이티나 쥬라기 공원이 아닌 컬러퍼플을 틀어주기도 할 것이다. 엄마아빠 말 잘들은 착한 아이들은 예술을 그렇게 처음 만난다. 어느날처럼 연필을 굴리며 안조는 척 졸면서 시간을 보냈어도 될 그런 날에, 우연하게 정말 우연하게 나의 가슴을 치고 지나간 그 시간이 예술의 첫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 첫 경험이 그를 떨리게 만들 것이고, 편안하게 만들 것이고, 찾아다니게 만들 것이다. 마치 처음 연애를 하는 것처럼. 그러다보면 그는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걸어가게 된다. 지금은 그 사람의 얼굴이 흐릿한 것처럼, 마치 그 첫 경험은 방아쇠마냥 그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설혹 그 처음이 티브이에서 나온 SM의 노래였든 두사부일체였든. 그것을 시작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임은, 어디서 들어봤더라. 이름은 어색하지 않은데,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첫경험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엄마아빠 말 잘들은 사람이 마임을 처음 만난 곳은 골든벨 상식문제집 뭐 이런 곳이었을 테니까. 그런 마임이 살아있을 리도, 그 만남이 첫 경험이 될 리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시를 쓰다가 소설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다가 영화를 보는 한이 있어도 마임을 찾아가진 않는다.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재경 마임쇼

과천청사역 근처의 공원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말 한마디 안하지만 매우 시끄러운 그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웃고 있다. 아, 마임이다. 고재경씨의 마임쇼는 즐거웠다.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둘러앉아 그의 몸짓에 웃음을 터뜨린다.

검정색 칠부 멜빵바지에 얼룩말 셔츠를 입은 광대가 서있다. 옆에는 유모차에 누워있는 인형이 있다. 광대는 그 인형의 ‘애 엄마’를 찾는다. 공원 여기저기 사람들을 붙잡고 애 엄마가 어디 있는지를 몸으로 물어보다가, 아예 장판을 깔고 애 엄마를 찾는 공연을 벌인다.
먼저 마술쇼. 신문을 찢고 구겼는데 펼쳐보니 새 신문처럼 빳빳하다. 사람들이 놀라움에 박수를 치자 우쭐해서는 신문을 넘겨보다, 아이쿠, 빳빳한 신문 안쪽에 구겨진 신문덩이가 보인다. 다시 한번 터지는 웃음.
다음은 차력쇼. 뚜러뻥을 길바닥에 푸욱 박아넣고 힘차게 당겨보지만 들리지가 않는다. 바로 앞의 남자아이를 불러다가 들어보게 시킨다. 두손가락으로 너무나 쉽게 들어올린다. 웃음 한 번. 이번엔 아이의 엄마를 불러다 들어보게 시킨다. 엄마는 광대의 몸짓처럼 뚜러뻥을 들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 광대가 갑자기 두손가락으로 뚜러뻥을 휙, 들어올린다. 웃음 두 번.
보이지 않는 벽을 만진다. 어렸을 때 하던 없는 유리창 만지는 장난처럼. 그런데 그 몸짓이 살아있어서 정말 벽이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어, 사방에 둘러싸인 벽이 점점 좁아진다. 좁아지고 좁아지다 결국은 팔도 뻗을 수 없이 꼿꼿이 서있을 수만 있게 좁아진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손가락 하나를 내민다. 그러다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출입구 버튼이었구나! 다시 한번 터지는 웃음!
그의 유머는 그렇다. 그의 살아있는 몸짓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은 그에 감탄한다. 그러다 그 몸짓을 뒤집어버린다. 상황은 뒤집어지고 진지한 몸짓이 가벼운 놀이가 된다. 그렇게 그는 추상적인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어려운 마임이 아닌, 쉽고 가벼운, 그래서 사람들과 하나가되어 한판 신나게 노는 마임을 했다. ‘마임’이라는 예술장르에 비해 우리에게 친숙한 마술, 차력 등을 통해서 그 마임을 더욱 다가서기 쉽게 만들었다. 무거운 예술가의 마임이 아니라, 친한 친구의 재미있는 장난을 보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한 마임을 말이다.



공연 내내 그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저 몸을 움직일 뿐이지만 그 몸짓은 살아있어서 우리에게 수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말 한마디 없이 어린아이에서 그 아이들의 엄마아빠, 공원에서 산보하던 할아버지들까지도 사로잡았다. 그 순간은, 마임이라는 예술에 다가선 첫 순간, 첫 경험이다. 허물없이 마임을 대하는 이 순간은 앞으로 마임이라는 예술을 받아들일 마음의 토양이 될 것이다.


인디언밥의 '필자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개쏭과 강말금의 축제탐방기 2탄

지난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9에 이어, 이번에는 제13회 과천한마당축제를 다루려 한다. 두 필자가 4일간 과천한마당축제를 둘러보고, 눈에 띄거나 마음에 담은 작품들을 리뷰형식으로 보고할 예정이다.

 

과천한마당축제
마당극, 거리극, 야외극을 중심으로 한 야외공연예술축제로 시민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큰 잔치이다. 예술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이와 아울러 '살아있음'을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축제가 열어준다는 생각으로 열리고 있다.
2009. 9. 23-27 www2.gcfest.or.kr/

고재경 <고재경마임쇼>
“애엄마를 찾습니다”의 연장으로, 애엄마를 찾기 위해 거리에서 공연을 한다. 마임테크닉과 엉터리 마술 혹은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여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에서 과연 그는 애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고재경은 한국의 대표적인 마임이스트로 진지하면서도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공연을 선사해왔다.
2009. 9.25-27

 

글 | 개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