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마추어의 반란> 안녕. 청춘아! 잘있었니?

2009. 11. 3. 16:00Review

 

<아마추어의 반란>
안녕. 청춘아! 잘있었니?
 


 얼마 전 서울역 앞 노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의견이 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좀 세게 말해 그 사람들은 모두 사회의 악이라는 의견이었다. 애석하게도(?) 두 번째 의견이 내 생각이었다.

 열 띈 토론가운데 나는 '비생산적'이라는 말을 썼다. 그러자 함께 이야기하던 친구는 정색을 하며 일그러진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 글을 쓰겠냐고 나무랐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까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몰랐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선단체에서 나오는 식사로 끼니를 때우고 앉아 있는 그들이 내 눈엔 성실하거나 일정량의 일을 소화해내는, 자본주의 사회에 걸 맞는 생산적인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앞서 몰랐었다라고 말한 건 이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는 거다. (더 애석하게도 아주 바뀌진 않았...다) 나카무라 유키의 <아마추어의 반란> 가난뱅이들의 유쾌한 반란을 그린 제대로 혁명적인 영화는 좀 충격이었다.

난... 사실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다. 나도 힘든 사람을 보면 힘내세요라고 말도 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머뭇거리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근데 난 세상과 타협한 것 같다. 내 나이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인생의 희노애락을 10단콤보쯤으로 겪어본 건 아니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가는 길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세상의 어둠의 법칙들에 순응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조건 싸워서 이기자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이분법의 구획의 정확성에 희열을 느끼며 싸울게 아니면 한편이 되는 게 낫지 않냐는 스스로의 합리화에 치사해지면 안되는 거지 않나. 그때 영화 <아마추어의 반란>에서 마츠모토 하지메가 외친다. 데모따위 해도 달라지지 않는걸 알아요. 그래도 하고 싶은데요.

 



 데모 따위 해도 달라지지 않는걸 알아요. 그래도 하고 싶은데요. 

 나카무라 유키감독의 <아마추어의 반란>의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도쿄 고엔지의 작은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재활용 숍, 헌옷집, 카페, 술집 등 차례로 동룔들이 같은 이름의 가게를 열고, 인적이 뜸하던 거리가 천천히 살아난다. "아마추어의 반란" 5호 점장인 마츠모토 하지메는 PSE라는 새로운 전자제품안전법에 반대하며 데모를 기획한다. 그 외 공공장소와 거리는 누구의 것이라는 시위의 일환으로 거리 한가운데서 고다츠를 갖다 두고 꽁치를 구워먹기도 하고, ~구의원으로 출마하기도 한다. 규율과 상식에 저항하는 마츠모토와 동료들의 1년간을 밀착해서 새로운 세대운동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유쾌한 영화다. 

 PSE법에 반대하며 시위대를 끌고 데모를 하다 마츠모토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데모따위 해도 달라지지 않는 걸 알아요. 그래도 하고 싶은데요. 그냥 웃고 넘어갈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난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나는 시위대의 시위 행렬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아니 한숨만 나온다. 당장 이뤄지지 않을 사안이라면 포기하는 게 옳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미 결과를 생각해버린다. 시위까지 할 정도면 그만큼 그 사안을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가 투철하다고 봐도 모자랄망정, '그렇게까지 할 정도'면 얼마나 반대가 심하겠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거다. (여기선 옳고 그름의 잣대는 개입되지 않는다.)

 마츠모토는 일본정부의 PSE법이 제대로 잘못 된 법안이란 걸 알고 있고, 정부가 당장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데모는 같은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한 목소리로 주장을 하는 장(場)이다. 내 머릿속 사전 정의에서 데모는 전경의 진압을 받기 딱 좋은 자리에서 제압받기 딱 좋은 의견을 피력하는 또 다른 장(場)이라는 게 문제다. 마츠모토 하지메가 DJ를 부르고 트럭 위 연설대에서 유쾌한 말장난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가는 과정은 내가 꽁꽁 닫아두었던 사전 정의들을 한순간에 풀어주었다. 응 정말이지, 데모는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였다. 마츠모트의 친구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데모를 하겠다고 경찰에게 말했다며 처음 데모 순간들을 회상한다. 얘기를 듣던 영화속 사람들도, 스크린을 마주보던 관객들도 함께 웃었다. 내 머릿속에 정치적 알고리즘은 한참을 빗나간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 고질적인 순환은 마츠모토가 웃는 얼굴 다음으로 PSE법이 철회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부서졌다. 정말이지 내게 필요했던 순간들이었다.   


 일주일만 쉬게 해주세요. 

 스무살 이후로 숱한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영화관, 커피전문점 등 지금은 학교생활이 빠듯해 잠깐 쉬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로 벌던 수입이 사라지고 난 뒤 경제난에 허덕임은 누구든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마츠모토의 구의원 선거활동을 돕기 위해 온 친구는 스스로를 프리타족(비정규직 노동자정도로 생각하면 됨)이라 지칭하며 말한다. 일주일만 쉬게 해달라고 사장에게 말했는데 왜 내가 그 말을 하고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방향설정에 실패한 내 두 번째 순환의 고리가 깨졌다. 

 한국의 대학생들을 표현한다면, 착하고 얌전하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너드'(nerd)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기업에 가고 싶어 하는 너드,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너드, 그리고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잘 모르는 너드 등 몇 종류의 전형적인 너드들이 있지만, 어쨌든 그들 모두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어 보인다. 남에게는 별 관심 없고 자기만 잘 하면 된다고 굳게 믿으려 하지만, 사실 그런 믿음이 스스로도 잘 생기지 않는지 마음이 굉장히 허한, 약간씩은 애정 결핍증이 있어 보이는 너드들. 원래 너드들이 그렇다. 

                                                -가난뱅이의 역습, 우석훈의 추천사 중.



 
내가 하려는 말은 출근이라는 가게내의 시스템을 전복시킬 만큼 상식이라곤 개나 줘버린 불량한 상태가 올곧다는 게 아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공부와 일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다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내가 원하던 위치에 가기위한 노력들, 그 노력의 방향이 정말 내가 '원하던' 거냐는 문제제기인거다. 아니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냐고 질문하고 싶다. 우린 어쩌면 그냥 되는대로 설정한 길을 선택한 게 아닐까. 우리의 의견보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결정이 지배적인 길을 선택하고,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진 상태로 마냥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 또한 슬슬 반성의 기미가 거뭇거뭇하게 드러나고 있었고 그때 영화속 마츠모토가 다시 외친다. 제대로 된 혁명을 보여주겠다고. 찌질하던 내 인생의 덧없는 변명들이 혁명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마츠모토의 혁명은 너무 유쾌하다. 일본의 만연한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그의 방법들은 오히려 놀이에 가깝다. 그는 앞서 말한 「PSE법(구형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본법) 반대 집회」와 더불어 「’집세를 무료로 해라’ 집회」, 「3명 집회(집회신고를 하고 단 3명만이 장소에 나가 그 자리에 진압을 위해 동원된 경찰들에게 골탕을 먹이는 집회)」, 「고엔지(高円寺) 봉기」등 수많은 소동들을 일으켜 왔다. 그가 구의원선거운동을 벌이며 제대로 된 혁명을 보여주겠다는 말은 이전의 불필요한 법과 규제들을 다 갈아치우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말보다는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외치며 그럴 자격이 우리에겐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더 가깝게 들렸다.
 


 안녕 청춘아! 잘 있었지?
 

 마츠모토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와의 완전한 소통이 이제 불가능해졌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저서의 제목처럼 자유롭게 살겠다고 말한다. 그럼 아버지도 기뻐하고 만족해하지 않겠냐며. 우리가 이뤄야하고, 우리가 살아야하는 이유들은 아주 간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를 억압해왔던 무수한 규율과 절차들은 우리가 재구성한 것일지도. 마츠모토처럼 당장의 혁명은 불가능하겠지만, 오늘은 내 인생의 방향이 조금은 명확해진 것 같다. 이전의 방향에서 많이 비틀지 않아도 된다. 안 될 거 야. 너무 힘들어.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주면 되니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던 마츠모토처럼 되진 못해도 인사부터 시작하면 된다. 안녕. 내 청춘아. 오래 기다렸지?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청춘불패(靑春不敗)!

글 | 윤나리 (nari.peace@gmail.com)

영화만 줄줄이 볼 수 있는 휴일을 원하면서도 정작 휴일엔 연애와 술과 잠을 즐기고 평일에 바삐 영화에 쫓기는ㅡ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

(자기 소개 한줄에 영화가 몇번씩이나 들어가는거에 희열을 느낀다. 그만큼 영화가 좋은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