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추는 도시5, 김정윤 <청춘예찬>

2009. 10. 17. 13:22Review

이제 지칠 때도 되었지. 오늘은 두 탕 이다.

김정윤-청춘예찬

다섯 번째, 이번엔 남산이다. 다른 거 다 무시하고 올 여름 내 수명단축에 일조를 했던… 올라가기도 힘들고, 공연진행하고 조율하느라 애도 먹고, 무엇보다 축제 전 바쁜 일정과 맞물려 더욱 정신을 피폐하게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니, 본인의 개인적인 사정상 썩 달갑지만은 않은 곳이다. 길고긴 꼬부랑길을 걸어 올라가다 두 번 다시 엄두가 나질 않았던 무시무시한 길.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을라치면 얼마나 그 긴 길이 원망스럽던지, 특히나 다왔다싶으면 그야말로 눈앞에 등산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참을 만하다 곧 팔각정을 눈앞에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한다. 나에겐 조금 두려운 남산이다.


그런데 오늘 그 수다했던 이유에 어려움을 더해줬던 거다. 일단은 빠듯하게 움직였던 내가 잘못이었다. 그래서 길지 않은 무용공연을 10분이나 지각하고 10분을 감상한 허탈한 한숨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게다가 25분이라던 러닝타임은 18분이라는 짧은 몸짓으로 그쳤던 것. 아 정말 공연이 끝나고 시계를 보며 좌절했다. 여기까지 공연을 보겠다고 부리나케 달리고 가쁜 숨 몰아쉬며 헉헉 댔는데… 버스를 타고 산은 오를 땐 “더 추워지기 전에 정말 일하다 말고 땡땡이칠까?” 싶은 작당을 하다 돌변하는 지옥코스에 좀 전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본의 아니게(?) 나에겐 친근하다 할 수 있는 공간이라 이래저래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말이 많았다. 어쩌면 이렇게 수다스러웠던 것이, 지금껏 훑어 본 공연 속 각 도시의 공간이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남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남산은 자연과 어우러지고 관광명소이자 한국의 대표 구조물과 산이거늘, (비록 공연시간에 늦었지만) 오늘도 장소의 장점이나 특성을 반영하긴 한건가 싶다.



팔각정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진 않았다. 그래도 음악소리가 나고 주변을 빙 둘러싼 관객들로 인해 남산을 찾은 사람들이 지나치다 힐끔 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젊은 무용수들이 20대,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 한 대로 고뇌, 방황의 순간들을 표현한다. 그런데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설명글을 받지 않고 지금 이 공연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나였더라면 어떤 걸 보여주고자 하는지 모를 수 있겠다 싶었다. 남산은 문화‧예술을 나누는 사람들이 몰려들기보다 여가, 관광의 측면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관객과 나누는 참여형태의 공연이든가 쉽게 풀어낼 수 있는 공연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면 남산의 자연과 어울리는 공연은 어떨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무엇이 주가 되어야 할까. 아니 이렇게 단정 지어 무엇이 주가 되고, 옳은 건지 생각하는 것이 맞는 걸까? 무용은 쉽게 접하지 못하니 이와 같은 공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알려야 하는 걸까.


내 청춘의 고민이자 내 일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저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그밖에 기획 일을 하고 있지요)에 대한 고민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어렵다. 특히나 거리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더 어렵다. 조명, 음향, 무대세트를 완벽히 갖춰 공연하기 힘들고 그러자니 지나치는 사람들, 기후변화, 예측불허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즐거워하는 일이, 거기다 좋은 공연으로 짜임새 있게 주변 환경과 상황을 어우러지게 풀어내기란. 많은 사람들에게 소구되고 잘 보여 지고 이해되는 것도 쉽지 않다. 실험적이라면, 한번 비틀은 내용이라면 더욱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저런 표현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그저 충격을 받는 것에 의의가 있는지 사람들이 간파하고 박수치기를 기대하는지. 많은 공연을 보다보니 보면 볼수록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잘 하고 있는거냐고 되묻기를 반복하게 된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어떤 요소를 선택해 그것에 집중해 보여주는 표현방식이 잘 풀어진다면 좋은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산을 오르고 다음 공연 <시간>을 보러가는 버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가만, 공연의 마지막 무렵 여덟 명의 무용수들이 동물 탈을 뒤집어썼는데 뭘까 싶다. 야성적인 행동 혹은 거침없는 도전? 오늘 밤새 동물 탈 생각하다 또 새벽잠을 청할지도 모르겠다.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09)
<춤추는 도시>

극장 속 정형화된 무대를 벗어나 도시 곳곳을 춤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무용친화프로젝트. 주어진 공간을 활용하고 주변 상황과 관객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작품들이 거리, 카페, 어린이도서관 등 서울시내 일상공간에서 펼쳐진다. | http://www.sidance.org/

김정윤 <청춘예찬>
탁 트인 남산공원 팔각정 앞 광장에서 젊음의 시간을 그려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답답함과 복잡함, 무성한 고민과 의문점들로 얽혀있던 방황의 시간을 표현한다. 20대 인생에 대한 시선으로 그 방황의 시간을 더 찬란하게 도전해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뇌/방황/도전 3장으로 구성, 삶을 향한 위로와 응원,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글 | m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