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성이 병들었을 때 <비정규 식량 분배자>

 

이성이 병들었을 때...
연극 <비정규 식량 분배자>


전쟁이 일어났다.
도시에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건물 지하에 숨는다. 덕수궁 주변에  있는 건물에도 폭격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었지만 지금은 7명만 남아 있다.


연극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누가 일으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 7명의 인물들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폭탄이 떨어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은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동물이다. 통신 수단이 모두 불통인 상황에서 각자는 추측을 한다. 추리를 통해 결론을 내는 동물. 그래 아직은 이성을 잃지 않았다. 북한이라고 주장을 해도, 미국이라고 주장을 해도,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제 3세력이라고 주장을 해도 각자의 주장을 무시할지라도 싸움을 걸지는 않는다. 당연하다.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는 생존과는 무관하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식량처럼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분배는 일종의 법이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듯이 분배는 평등을 전제로 한다. 평등한 분배를 규칙으로 정하는 것에 복잡한 논리는 필요 없다. 굳이 누가 누구를 설득할 필요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다. 문제는 합리적이지 않은 욕망이다.


초코파이를 도둑질 하다 걸린 추리닝을 입은 남자.

(도시 한복판에서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는 것은 노숙자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초코파이가 더 작다는 해병대 출신의 남자.

(누가 감히 어떻게 초코파이를 정확하게 자를 수가 있는가?)

지금까지 먹은 모든 식량을 기억하고 초코파이 하나가 없어졌다는 걸 밝혀내는 여대생.

(욕망은 사고의 능력을 150%발휘하게 한다.)

없어진 초코파이에 대해 의심을 받는 연장자.

(변명을 위해 사고의 능력을 총동원한다.)

이들 4명은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도둑질에 대한 벌로 굶고 있는 추리닝에게 자신의 초코파이를 나눠 주는 수의학과 중퇴의 여자와 이 여자의 남편이면서 대학 강사를 하다 지금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남자. 그리고 돈보다는 의리를 중시하는 자동차 판매원. 이들 3명은 연극의 초반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만 연극의 종반에서는 반전을 일으키는 중심인물들이 된다.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식량에 대한 집착은 점점 강해진다. 불신의 원인은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성이 마비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심에 대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대는 것을 보면 이성을 여전히 판단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이성은 추론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합당한 추론을 만들어 내는 이성이다. 이것은 병든 이성이고 병든 이성은 변명을 위한 논리이다.

연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폭탄이 떨어지는 바깥으로 나가야한다. 병든 이성은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식량이 없어도 며칠은 견딜 수 있다는 궁색한 논리를 앞세워 폭격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려고 한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했는가? 가장 배운 것이 없어 보이는 추리닝이 혼자 먹을 것을 구하러 간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뒤에 남아 ‘추리닝이 정말 먹을 것을 구해 올 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추론을 펼친다. 추론이 구해 올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결과를 도출할 무렵 추리닝이 먹을 것을 구해 온다. 하지만 추리닝은 출혈이 심한 상처를 입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봉지에 싸여 있는 식량을 보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피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식량은 생명을 떠올리게 한다.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천하장사 소시지를 먹는 추리닝은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한다. 죽을 각오로 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추리닝 앞에서 사람들은 멍해진다. 오직 수의학과를 중퇴한 여자만이 추리닝의 상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 여자는 이미 사랑하는 딸과 사별한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아픔을 느끼는 마음으로 추리닝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추리닝이 어디서 식량을 구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그 정보를 알려 주기 전에 추리닝이 죽지나 않을까 걱정을 한다. 추리닝은 먹을 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면서도 절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이 점에 있어서 추리닝은 영리하다. 먹을 것으로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종처럼 부리는 것에 반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상처 난 몸으로는 먹을 것을 제대로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추리닝은 엘빈 토플러 뺨칠 정도로 영리하다. 추리닝이 무기로 삼은 것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식량 창고에 대한 정보다. 그리고 그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정보는 독점했을 때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무식한 추리닝도 알고 있다. 정보화 시대는 소통의 시대가 아니라 단절의 시대일 수도 있다. 정보를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만이 서로 소통하는 시대. 돈이 없는 사람들은 단절과 고립으로 더욱 소외되는 시대. 이것이 정보화 시대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정보 역시 병든 이성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식량이 있는 장소를 알아야 한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그토록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다. 추리닝을 살리기 위한 약을 구하기 위해 나가고, 추리닝이 어렴풋이 알려준 장소로 식량을 찾기 위해 바깥으로 나간다. 폭격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나간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나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무위로 끝나자 이성이 예민해 진다. 이성이 예민해진다는 것은 이성을 부드럽게 감싸던 감성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약을 구하기 위해 나갔다가 자신의 식량을 잃어버린 자동차 판매원이 굶고 있는 것을 보고 해병대 출신이 나서서 식량을 조금씩 나눠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식량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의심하기도 하고, 마지못해 주는 사람들도 식량을 땅바닥에 던지듯이 준다. 자존심 상한 판매원은 후배인 해병대와 함께 추리닝의 식량을 완력으로 빼앗는다. 폭력으로 인해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판매원은 점점 식량과 힘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협박하고, 여자들을 희롱한다. 긴장감은 점점 광기로 변한다. 그 광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사람이 바로 여자의 남편이다. 대학 강사이기도 했던 남편은 상대방으로부터 무안을 볼 정도로 가장 지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한 사람이었었다.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 지금은 칼을 들고 사람을 향해 달려들 정도로 광기를 보인다.

이것이 이 연극의 반전이다. 칼을 들고 하는 넋두리에는 죽은 딸에 대한 애정과 아픔이 묻어 나온다. 이 넋두리를 듣고 남편의 진심을 안 아내는 남편 앞에서 용서를 빈다. 7명 중에서 가장 깊은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부부였지만 여자는 남편과의 이혼을 바라고 있었다. 죽음과 삶을 다투는 순간에도 이혼을 선언하던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나눠주는 따듯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이렇게 조금은 어긋나 있던 관계들이 남편의 광기 앞에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것이 이 연극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광기는 감성을 잃어버린 이성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쟁도 감성을 잃어버린 이성으로 인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나고 이성에 대한 반성을 하듯이 남편의 광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한다. 그리고 병든 이성의 치유를 시도한다.


전쟁, 극한에 내몰린 인간들의 생존을 향한 식량 쟁탈전
<비정규 식량 분배자>
-기간: 2010년 2월19일~2010년 3월14일 /
평일 8시, 토요일 3시, 6시, 일 3시, 월 쉼
-장소: 마방진 극공장소
-주최: 극단 이안 異眼
-공동제작: 극단 이안 異眼, 극공작소 마방진
-기획: 서울변방연극제사무국

생존이라는 극한의 날에 선 인간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010년 2월. 대한민국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발발한 전쟁. 덕수궁 인근에 있는 어느 빌딩 지하에 7명의 남녀가 4일째 갇혀있다. 폭격을 피해 무작정 대피하던 곳이 폭격이 그치질 않자 그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처음엔 같이 있던 사람도 꽤 있었지만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폭격에 맞아 죽던가, 이곳은 위험하다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러 가든가, 죽을 바에야 가족과 같이 있겠다며 나가고 현재는 이들만 남았다. 식량이 한정되다 보니 이제는 이들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 


  1. 멋진 글이네요 ㅎ
    저도 리뷰썼는데, 이 리뷰보니 새롭게 생각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트랙백 하나 걸어놓고 갈게요

  2. 안녕하세요. 이 현수의 친구예요.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