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화와 공존, 화합이 가능한 상상의 공간을 열망한 결과 <사이 - 間>

 

트랜스폼 그룹 Transform Group 의 실험프로젝트
<사이 - 間>



퓨전: 대화와 공존, 화합이 가능한 상상의 공간을 열망한 결과


 “퓨전의 본질은 화합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순간적인 화합을 통해 폭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폭탄을 제조하는 원리와 같다...“ 다니엘 페낙의 소설책 말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크리스마스 날, 백화점 한 가운데 서 있던 배불뚝이 남자의 배 안에서 폭탄이 터져 내장이 흩뿌려지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극적이고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모든 것들을 뒤섞기 위한 장치일 뿐... 소설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니, 퓨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퓨전,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섞여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197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과 함께 예술의 한 경향을 대표하는 문화적 용어로 자리 잡게 된 이후, 철학에서 요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적용되고 있다.


 ‘1980년대 퓨전문화는 정치가 실패한 곳에서 문화가 성공한 예’로 기록된다고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으므로) 대화와 공존, 화합이 가능한 상상의 공간을 열망한 결과이리라. 섞이지 않은 게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어쩌면 지금이라서 더욱, 그것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녹여내야 할 무언가가 있고 꿈꿀만한 어떤 것이 있다는 자들과 함께.

 그들은 세상과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를 하며 온 인류의 불행에 아픔을 느낀다. 고통 받는 십대의 감수성을 몸속에 지닌 늙은 소년소녀들. 이 민감한 존재들이 자신 안에 삐걱대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세상은 빠르게 분류하고 규정하고 소비한다. 모두들 시트콤 찍고 있는데 나만 정극연기를 하는 것 같아 심란한 와중에 시대는 모이라 하고, 새로운 것을 내놓으라 한다. 깊이에의 중압감과 소통에의 곤란함에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안에서 혹은 서로를 향해 조각난 퍼즐을 맞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자, 공상은 여기까지. 이제 공연 이야기를 하자.





"파편적 일상과는 다른 세상(혹은 다른 시선)이 펼쳐질 거라는 암묵적인 기대"와

"작가와 작품들이 극장의 룰에 순하게 동의하고 안착했다"고 느낀 그 순간…
 작은 광장이 펼쳐졌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 중인 18인의 작가들이 트랜스폼 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동명의 주제, 트랜스폼(transform: 변형, 변화, 변환, 변질, 변신)을 가지고 공동창작을 통해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어 무대에서 펼쳐 보였다. 그렇게 제작된 <실험 프로젝트, 사이 - 間>은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공연이다.


 각 장면은 연주, 퍼포먼스, 영상, 무용 등이 교차, 중첩되며 옴니버스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나는 극장의 객석에 앉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전개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아니, 이 많은 것들을 최소한 발품 파는 수고도 없이 너무 편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약간 송구한 느낌을 가진다. 연주, 전시, 공연 등 고유한 작품으로 보여져도 무방할 작품들이 순서대로 무대 위에 전시되었다가 퇴장하는 인상이다. 한 자리에 모인다고 굳이 하나의 통합된 뭔가를 가질 필요는 없잖아, 라고 반문하면서도 객석에 앉은 자의 습성이랄까, 이들은 왜 모였을까 궁금해진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파편적 일상과는 다른 세상(혹은 다른 시선)이 펼쳐질 거라는 암묵적인 기대가 있으니까.


 또 하나, 시간의 문제. 전시회에서 관람객은 시간과 공간을 선택 조절할 수 있다. 관심이 가는 작품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작가가 창조한 시공간을 탐색하거나 음미할 수 있다. 공연에서 시간과 공간은 관객들이 조절할 수 없다. 작품이 정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작품의 내적 시공간 이전에 공간-관객 사이의 관습에 관한 문제이다. 극장 안에 들어온 이상 작가들 사이의 장르적 약속에 앞서 무대-객석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너무도 지당한 만큼 강력하게 작용한다. 작가와 작품들이 극장의 룰에 순하게 동의하고 안착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할 즈음 무대에 작은 광장이 펼쳐졌다.



무의식의 폭력성과 소통의 한계

작업행위와 현실 사이의 경계

작가와 작품 사이의 경계

여러 작품을 통해 형성된 다양한 층위의 세계

그리고
비틀어진 무대와 객석의 관계
 

 이 장면은 <리얼 토크쇼 - 거리화가>라는 부제로 작가 이미정이 토크쇼를 진행하는데, 토크쇼의 주제는 또 다른 작가 이지아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초대 인물은 작가 이지아가 아니라 아카이브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작가가 마로니에 공원의 거리 화가를 인터뷰하며 제작한 작업과정 일지, 사진, 지도 등이 담긴 이동식 책장이다. 초대석에 자리 잡은 아카이브-이동식 책장 위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작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진행자와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인터뷰 형식의 작품 안에 인터뷰로 이루어진 작품이 담기는 셈. 공공미술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대담이 오고가는 사이, 작가는 거리화가를 인터뷰하며 의식하지 못한 채 가하게 된 폭력성과 소통의 한계에 대해 말하며 작업행위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드러낸다. 아울러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았으나, 작품의 일부인 모니터 속에서 인터뷰 당하면서, 작가와 작품 사이의 경계를 보여준다.



 이어서 배우 김무신 - 퍼포머 박진원이 연극적 인물인 남편과 기타와 모니터로 구성된 아내로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중첩되는데, 이 장면 끝에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인물로 작가 이지아의 몸이 나타나 언쟁에 가세한다. 이 일관된 인물은 관련 없어 보이는 장면들 사이에 관계를 이어주며 광장을 넓혀간다. 동시에 무대 한 곳에 작가 정기현이 염소 대안이와 함께 나타나 풀 뜯듯 그들을 관조하며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면서 광장에 생기를 더한다. 여러 작품들이 다양한 층위의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점화가 일어난 시점이었고 공연 중반에 배치된 이 장면들은 무대-객석의 관계를 비틀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후 광장은 다시 독립적 주거 공간으로 점차 변모하며 사라졌다. 무대-객석도 재빠르게 원위치로 돌아왔다. 모든 작가, 작품들이 무대 위에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광장이 아닌 밀실의 조합으로 보인다. 각 장면들이 작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기왕에 점화된 불이 뇌관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공연이 끝날 때 공연 도입부에서 석고로 몸 전체를 뜨는 과정을 공개하며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 한 쪽에 앉아 석고가 굳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삼일삼체>의 작가 김홍빈을 향해 스크린에 자막이 뜬다. ‘내일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깨어납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퓨전의 시대, 80년대로부터 무수한 개념은 쌓여갔고 해석과 분석이 오가는 동안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 사이 가슴은 식고 태도는 싸늘해졌으며 무엇보다 생활은 바빠졌다. 도시의 작업실이 대부분 창문 없는 지하에 있어서 일까, 만나기가 힘들어졌다는 생각도 해본다. 권위의 장벽을 넘었다 싶으면 개념의 미로 속을 헤매게도 된다. 이럴 땐 석고가 굳길 기다리며 내일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깨어날거라는 말에 감정이입해본다.



실험프로젝트 <사이- 間>

Transform Grouop

2010.2.26. - 2.28.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실험프로젝트 <사이 - 間>은 트랜스폼(Transform : 변형, 변화, 변환, 변질, 변신)이란 주제를 가지고 영상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영화, 연주, 무용, 연기, 무대미술 등 다른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십 수 명의 예술가들이 공동 창작 형식을 통해 새로운 창작 공연예술의 완성을 꾀하려 한다. 또한, 공연주체자의 일방적 보여 주기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의 다양한 관객과의 실험적 소통을 통해 상호교환적인 창작 작업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실험하여 또 다른 21세기형 공연관객의 형태를 발견해낸다. 빛, 소리, 영상, 설치, 움직임, 참여 등 많은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하여 관객과의 즐거운 소통을 하고, 한 공간에서 각기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감성의 상태를 서로 극대화시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재밌게 자극한다.

 

글 | 홍은지
연극연출가. 공연창작집단 은빛창고
그 동안 주로는 공연 문화 영역 안에서 사람들과 만나 함께 해 왔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고 다소 산만해서 여러 종류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운데, 아무래도 소심한 몽상가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