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08:14ㆍ07-08' 인디언밥
인디투인디 릴레이리뷰 - 신념이라는 궁전으로 가는 그림자들
- highrise
- 조회수 1086 / 2007.07.10
그림자궁전은 20세기 말에 결성된 에너제틱한 남조선 사이키델릭 록큰롤밴드입니다. 리더인 9군(기타,보컬),스텔라(기타,보컬),용(베이스),재희(드럼)으로 현재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연을 맨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은 "허걱!" 이런 것이었죠.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말입니다. 특히 공연으로 "새빨간 얼굴"과 "쉬즈갓더핫소스"를 들었을 때는 본인의 정신 분열 증세를 악화 시킬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굉장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070615 빵 그림자궁전 단독공연 review
제공 : 까페 빵
전날 합주로 완전히 넉 다운이 돼버린 highrise군은 그림자궁전의 첫 단독공연을 보기 위해 흐느적흐느적 빵을 찾았습니다. 그 날의 빵은 속옷(‘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밴드)의 마지막 공연과 맞먹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왔었죠. 안은 후덥지근하고 앉을 자리는 이미 땅바닥밖에 없는 상태여서 저는 그냥 포기 하고 뒷사람의 시야를 가린 채 (그때 제 뒤에 계셨던 커플님들 죄송) 서서 관전했습니다. 앨범 자켓을 고려한 듯한(후에 그림자궁전이 2,3집을 내게 되면 이 첫 번째 앨범은 벨엔세바스찬의 빨간 앨범처럼 불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무대 세트가 보이고, 빵의 모든 조명이 라이트 온. 그림자궁전 멤버들이 무대에 올라오고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첫 곡은 highrise군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비바. 사실 이곡을 처음으로 할 줄은 몰랐는데 첫 곡이라서 어느 정도의 임팩트를 생각한 듯 싶었습니다. 아 조금 달궈진 다음에 해도 좋을 텐데! 란 마음을 감출 수 없더군요. 그래도 곡이 가진 훅이 그들을 신나게 달려가게끔 하는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중화반응과 매직트리까지 쉴 새 없이 연주하고는 드디어 프론트맨인 9군이 얘기하길, 스태미나 문제로 1부는 조용한 곡 위주로 하겠다고 하더군요.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굴소년단도 단독공연을 진행해봤지만, 정말이지 뜨거운 조명아래서 6,7곡을 쉴 새 없이 연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웨이를 연주하기 전에 9군은 춤을 추는 사람에겐 앨범을 공짜로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만, 제가 그날 1부 때 사람들을 본 바로는 아직은 바둑관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웨이가 끝난 다음엔 앉아댄스를 한 어떤 남자 분에게 9군은 시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갔고, 그림자궁전은 유니버설훼어웰을 연주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림자궁전이 조금씩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슬슬 바둑관전에서 프리미엄리그 경기관전으로 바뀌고 있더군요.
바람직한 일이야....하며 highrise군은 내심 조용히 미소했습니다.(훗...)
그리고 어떤 분이 커피우유를 사와서 그림자궁전에게 돌렸는데 9군이 저희가 다음에 연주할 곡이랑 매치가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펄시스터즈’의 ‘커피한잔’이었습니다. 그림자궁전은 펄시스터즈의 그 청승맞은 끈적함을 걷고, 그것에 살짝 기타팝을 얹어서 그런지한 스타일로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9군의 앨범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이라는 멘트와 함께 1부의 마지막 곡 ‘누나는 록스타’를 연주했습니다. 이때쯤엔 처음부터 후덥지근했던 빵 안이 점점 산소가 모자라게 되어서 몽롱한 상태로 관전했습니다. 90년대 초반 드럭의 이산화탄소 증가 현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잠깐 휴식시간을 가지고, 튠또 추첨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튠또란. 튠테이블과 로또의 합성어로, 관객들에게 번호를 나누어주고 각각의 멤버가 부른 번호를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애장품을 주는 이벤트였습니다. 베이스의 이용씨는 선물을 건네주면서 팬을 안아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밴드가 관객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 이 씬에선 많이 찾아보기 힘든데, 왜냐하면 그것이 쿨 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직 인지도가 낮은 밴드들은 홍보라던가 이벤트를 자신들이 기획해서 해 나갈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도, 쿨 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소홀히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림자궁전은 굉장히 바람직했지요.
2부는 4차원 반응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사실 산소결핍증상이 심해져서 출입구 근처에 앉아서 공연을 ‘들었습니다.’ 봐야 하는데 안에 들어가면 나가고 싶어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문 옆에서 들었죠. 그런데 음악만 들으니, 2부 때부터 굉장히 합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산’을 연주 할 때는 시디와 똑같은 느낌이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가끔은 밴드의 공연을 볼 때 그들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듣고 있으면 새로운 기분이 들겠구나.’싶었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신곡 쉐도아리랑- slow burning - 까지 차분히 연주를 끝낸 그림자궁전은 그때부터 갑자기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몸이 근질거리던 여러 관객들이 무대 바로 앞에서 춤을 출 준비를 한 상태에서 광물성 여자가 연주되었습니다. 머나먼 정글에서 도착한 듯한 기타리프로 시작하는 이 곡은 도입부에서 첫 번째 섹션으로 가는 길이 꽤나 멋진데다, 곡자체가 조금 코믹한 면이 있기도 하고, 싸비가(당신은 나만의 알루미늄~마그네슘~플루토늄~염화칼~쓤) 굉장한 곡이라서 그때 그 분위기에 정말 좋은 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이 곡을 그림자궁전이 작업실에서 만들고 있을 때, 저보고 화학원소 아는 게 없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사람들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는데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렸네요. 아무튼 그때부터 즐거운 춤사위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순이 누나의 ‘밤이면 밤마다’의 커버를 했는데 -밤이면 밤마다 정말 네 모습이 떠오르는 게 싫다고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신기한 커버였습니다. 그리고 새빨간 얼굴. 이곡을 할 때까지 앉아서 보고 있었는데 첫 리프가 나오자마자 산소결핍도 잊고 무대가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무대 위는 음들의 격전지가 돼있더군요. 새빨간 얼굴 마지막부분의 최고조에 이를 때는 기타로 봉을 휘두르듯 9군이 엄청난 액션을 보였고, 특히 이제까지 공연에서 절대 오버록킹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베이스의 이용씨와 보컬의 박혜진씨가 몸을 신나게 흔들어대면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자궁전공연을 보면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록킹한 액션이 9군에만 치우쳐져 있어서 공연을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참 기뻤습니다. 마치 항상 혼자 플레이하던 서태웅이 강백호에게 패스를 해준 기분과 좀 비슷하다고 할까요. 쉬즈갓더 핫소스에 와서는 거의 절정 상태. 점점 달궈지던 재희씨의 드럼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멤버들은 땀에 모두 샤워를 하고 있었고, 일어서서 춤추는 무리들은 80년대 고고장에서 노는 것처럼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앵콜로 우주공주를 하고 끝나는 듯했는데, 빵사장님의 강력한 요청에 힘입어 쉬즈갓더핫소스 원모어타임. 9군의 "다 일어서면 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뭣에 홀린 듯 모두 일어났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보게 되다니. 빵에서 스탠딩은 정말 보기 힘든 광경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광란의 ‘그녀는 핫 소스를 가졌네’가 끝나고 그림자궁전의 첫 단독공연은 끝이 났습니다.
밴드에게 있어서 단독공연이란 굉장히 압박감이 심한 일입니다만, 그만큼 두근두근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자궁전의 단독공연에서 노련하지 못한 공연진행이 아쉬웠다라고 합니다만, 저로서는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의 이쪽 형편으로는 곡을 만들고, 합주를 하고, 고민을 하고, 곡 순서를 짜고, 이벤트를 기획하고, 무대세팅을 하고, 리허설을 하며 사운드를 잡고. 이 모든 것들을 밴드가 다 해내야 했겠죠. 그건 굉장히 어떻게 보면 연주와 노래 자체에 신경을 제일 많이 써야 하는 밴드로써는 피곤한 일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라이브는 언제나 기. 에너지를 충만하게 보여주는 라이브입니다. 그림자궁전은 이 단독 공연 때 그런 기를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림자궁전이 앞으로 가야할 여정에 이 단독 공연이 하나의 베이스캠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보충설명
'인디투인디 릴레이 리뷰' 는 인디뮤지션들이 바통을 넘기며 이어가는 생생한 공연 리뷰입니다. 다음 회에는 이번 회의 주인공이었던 그림자궁전이 다른 뮤지션의 공연을 리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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