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그 못다한 노래> 문화소비자들이 민중가요를 살릴 수 있다

<화려한 휴가, 그 못다한 노래> 문화소비자들이 민중가요를 살릴 수 있다
  • 김재호
  • 조회수 661 / 2007.10.25

■ 민중가요 페스티발 <화려한 휴가, 그 못다한 노래> 리뷰


지난 20일 수원의 야외음악당에서 경기민족예술제 2007의 일환인 민중가요 축제가 열렸다. 평화울림부터 휘파람, 희망새, 윤미진, 서기상, 박창근, 연영석, 꽃다지 등 다양한 색깔을 가진 노래꾼들이 3시간 동안 열창했다. <불나비>로 추위를 녹이며 시작된 공연이 <광야에서>의 합창으로 마치었다. 이날 공연에서 나온 노래들을 중심으로 민중가요의 현실을 고민해본다.


대중적 민중가요, 민중적 대중가요를 꿈꾸며


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뒷자리에서 자조 섞인 한숨소리가 작은 목소리지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꽃다지가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를 부를 때였다. “이제야 아는 노래가 한 곡 나왔다.” 꽃다지가 마지막 팀이었는데, 이전까지 나온 노래들은 대개 모르는 민중가요였다는 것이다. 그 추운 날 수원까지 찾아온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민중가요에 대해 애정이 있다. 그런데도 아는 노래가 별로 없었다. 왜 일까? 이에 대한 책임은 과연 문화소비자들에게 있을까, 아니면 민중가요 창작자들에게 있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민중가요가 향유될 수 있는 문화인프라 부족의 문제인가?


‘민중가요’ 하면 운동 속에서 지쳐가는 감정을 달래주는 잔잔한 노래나 함께 손을 올리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짐하는 투쟁적인 노래들을 기대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이날 민중가요 페스티발에선 그러한 노래들이 적었다. 공연의 첫 곡 <불나비>나 마지막으로 불려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광야에서> 정도가 대중적인 민중가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독창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노래들이 울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민중가요 공연의 흐름이기도 하다.


문화소비자들의 이중적인 태도


가요계 전반에 불황이 닥쳤듯이, 민중가요 판에도 수요가 점차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대학축제에 예전처럼 민중가수들이 참여할 기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학생들의 복지와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많이 가져다주는 비운동권 학생회들이 당선되면서 대학축제는 얼마나 더 유명한 대중가수들이 오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소외된 운동권과 변화된 대학분위기 속에서 민중가수들은 입지가 좁아졌다. 그 가운데 문화소비자들은 한편으론 새로운 민중가요를 갈망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옛 노래들만 고집한다. 민중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진주 같은 노래가 없다고 하면서 그 진주가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해주진 않은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고 문화인프라를 구성하는 건 문화소비자들이다.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결국 제 살을 갉아먹은 꼴이다. 대중가요 판도 마찬가지다. 문화라는 것은 다양성이라는 비를 통해 수분을 공급받아야 자랄 수 있는 나무와 같다.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 문화는 사라질 것이며, 수준 높고 색다른 문화를 접할 기회는 줄어든다. 손해 보는 건 결국 문화소비자들이다. 다양성이란 시혜적 의미에서의 관심이 아니다. “너와 나는 틀리다”가 아닌 “너와 나는 다르다”는 시각으로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아울러 노래꾼들은 고루한 운동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민중해방이라는 대의보다는 집단의 이익에 급급한 노조나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둔 운동이 난무해 민중가수들은 주저하기도 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이분화한 수렴적 운동을 넘어 그동안 묻혀있던 미시적 삶의 모습들이 운동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각의 이익이 상충하고 있다. 세분화된 현장은 여전히 치열하나 과연 어떤 길이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인지는 갈수록 어렵다. 이에 따라 음악적 감수성을 자신의 세계 안에서 펼쳐보고 싶은 창작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기회는 줄어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이랜드 뉴코아 사태에 참여하며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고 연대하는 민중가수들이 많고, 그들 덕분에 노동자들이 힘을 얻는다. 박 준은 이날 공연에서도 열창을 한 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현장성이야말로 민중가요의 힘이며, 혼이다. 그럼에도 민중가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배가시키며, 민초들의 다양한 삶을 노래로 구현해내기 위해선 예술적으로 고뇌하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현실적인 공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 이러한 충전의 기회가 없다보니 민중가요의 질적인 수준이 계속 저하돼 왔다. 그 결과 민중가요가 점점 민중들로부터 멀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민중적 대중가요 부르기 프로젝트 등 다양한 모색이 필요


이날 민중가요 페스티발에서는 윤미진이 최양숙의 <가을편지>를, 서기상이 강산에의 <원>을, 박창근이 신중현의 <님은 먼 곳에>를 불렀다. <원>은 서기상 2집에 실려 있다. 특히 박창근은 <님은 먼 곳에>를 해금과 아프리카 타악기를 이용해 새롭게 편곡하고 자신의 음색을 그대로 뽐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뒷좌석에선 긴 머리의 박창근을 두고 남자가수가 맞느냐며 의아해했다. 이 세 노래들은 각각 민중가수들의 정서와 목소리로 관객들을 맞이했는데 그 느낌이 새로우면서 친근했고 이상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던 것처럼 민중적인 대중가요들을 다시 부르는 프로젝트는 어떨까? 윤도현은 ‘한국 록 다시 부르기’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거위의 꿈> 같은 노래를 인순이가 아니라 민중가수가 불러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해 노래에 새로운 생명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청계천 8가>의 김성민은 2007 가을 프로젝트 앨범 ‘새로운 선택’을 내놓았다. 도종환의 시 <희망>과 박노해의 시 <굽이 돌아가는 길>에 곡을 쓴 노래가 실렸다. 천지인 원년 멤버들은 홍대에서 13년 만에 공연을 갖는 등 재기의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안치환은 ‘Beyond Nostalgia’에서 민중가요 21곡을 다시 불렀다. 이 앨범은 일반매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민중가요를 기록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다양한 ‘모색’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김호철의 <노동, 민중가요 94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작업이다.


대중가수들은 종종 민중가요를 새롭게 해석해 선보인다. 최근엔 뜸하지만 2000년 초반에는 민중가요 다시 부르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MC 스나이퍼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든지, 거북이의 <사계> 등 예전 민중가요의 히트곡들이 시대감각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민중가요에 애정 있는 가수들은 여전히 많고, 그들의 역량에 따라 민중가요가 달라지고 풍성해진다. 앞으로 또 어떤 대중가수들이 민중가요를 부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음반프로젝트 ‘아가미’처럼 새로운 실험을 기다려 본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이분법적 구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대중적인 민중가요와 민중적인 대중가요라는 표현은 이러한 구분을 전제하고 있다. 사실 노래란 다 음악의 일종이며, 듣는 이가 공감하는 게 제일 우선이다. 하지만 음악이 유통되고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여전히 차이가 있다. 대중가요 안에서도 각각의 장르가 유통되는 방식이 다양하다. 국악과 록이, 가스펠과 찬불가가 향유되는 시공간이 다르다. 민중가요는 대중가요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방식으로 지금껏 전달돼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대중가요는 시장 자본주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면, 민중가요는 최소한의 관점에서만 기대고 있다는 데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창작의 뿌리를 뻗고 있는 곳이 다르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자기 색깔 구축해가는 민중가수들


최근 안치환이 일간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소위 민중가수라고 불리는 창작자들은 주류 언론에 소개가 되지 못했을 뿐, 현장에서 또는 자신의 고독한 세계 속에서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윤미진, 박창근, 서기상, 연영석 등은 이날 공연에서 온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한 열기를 드러냈다. 윤미진은 3집 <죽지 않아 보내지 않아>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수반하는 음성으로 미순이와 효선이를 그렸다. 서기상은 <나는 노동자다>에서 개인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사회적으로  확장시켰다. 박창근은 <이런 생각 한 번 어때요>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자행되는 살육을 지적했다. 첫 앨범부터 자신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 연영석, 그는 3집에 실린 <코리안 드림>, <떼레비>을 불렀는데 내면의 외연이 확장되는 음악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노래는 그 고민 속에서 껍질을 깨고 한 곡씩 나오고 있다. 관객들은 그 열매의 단맛을 향유한다. 그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문화소비자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몫을 다해야 한다. 창작이 창작자들의 몫이고, 활동이 활동가들만의 몫일 수 없다. 민중가요의 부흥을 꿈꾸기 위해선, 아니 적어도 민중가요라는 스펙트럼이 우리나라 가요사에 존재하기 위해선 문화소비자들의 역할이 관건이다. 이에 따라 민중가수들의 치열한 자기 고민과 다양한 활로 모색이 가능해진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이 한 걸음 바짝 다가올 수 있다.

보충설명

2007 경기민족예술제 부문 프로그램
민중가요 페스티발 '화려한 휴가, 그 못다한 노래'
2007년 10월 20일 수원 야외음악당

필자소개

필자는 오래동안 인터넷 시민기자로서 민중가요 소식을 활발히 알렸으며, 현재는 문화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학술 소식지에서 과학과 인문학 관련 기사를 작성했으며, 현재는 희망제작소에서 탐사보도와 공공정책분석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