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마임워크숍]-18. 오늘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했나 보다

2010. 7. 6. 16:24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열여덟 번째 기록 



글| 강말금


 

* 들어가는 말

 

하는 사람인 내가 그렇다고 믿으면 그렇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게 마임의 매력이예요.

뭐가 잘 안되고 헤매다가 오늘은 이 말을 들었다. 이런 말처럼 위안이 되는 것이 없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종종 말하는 ‘자기 것만 한다’는 뭐지?

하는 내가 그렇게 믿지만, 보는 이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공연을 보면서도 공연자들이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공연자에게 필수적인 미덕인 것 같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 기술을 배우는 것 같다.

 


1. 몇 가지 기본 엑서사이즈 - 앉아서 엎드려서 누워서


우리가 늘 하는 몸풀기 엑서사이즈가 있다. 주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발을 잡고 몸의 결을 따라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바닥에 닿는 부위가 다음과 같다. 이 노선을 따라 원을 그린다.


 




 엉덩이 - 오른쪽 허벅지 - 오른쪽 옆구리 - 등 - 왼쪽 옆구리 - 왼쪽 허벅지 - 엉덩이




오늘은 처음으로 잘 되었는데 재밌었다. 등의 긴장을 뺀 덕분인 것 같다.


늘 느끼는 거지만 어떤 힘은 풀고 어떤 힘은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긴장을 빼고 필요한 부위에만 필요한 순간에 힘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은 몸의 문제라기보다는 생각의 문제이다. 이 엑서사이즈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고 하는 것.












자, 그 다음은 누워서 한다. 이미 한 번 씩은 설명되었던 것들인데 그림으로 간단히 종합.




1)




발 뒤로 보내기 ; 몸을 감는 느낌이 중요



무릎 굽혀서 


무릎 펴서 


      

관절하나하나 바닥에 붙이기 ; 몸을 감았다가 펼치는 느낌이 중요 ; 완전히 눕게 된다







2) 팔 위로 해서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눕기 ; 몸을 감는다 - 정지포인트 - 펼친다






3) 몸으로 시소 타기 ; 상하체 같은 에너지로 움직이기 /  정지포인트 중요


 



4) 90도 유지하며 상하체 왔다갔다 ; 상하체 같은 에너지로 움직이기 / 정지포인트 중요






5) 발가락 잡고 엉덩이로 밸런스 유지하다가 상하체 같이 내려뜨리기
   ; 상하체 같은 에너지로 움직이기 / 상하체 같은 정지포인트


 



6) 노젓기 ; 노를 잡기(접촉) / 노에 물의 표면이 닿는 순간을 표현하기 / 노를 젓고 바꿔쥘 때의 손이 8자가 되게 하기
 

도저히 그릴 수가 없다. 일단 누워서 무릎을 세운다.
두 손으로 오른편에 있는 긴 노를 잡는다.
노를 젓기 위한 준비 동작으로, 살짝 들었다가  물쪽으로 내리면서 상체를 일으킨다.

노가 물에 닿는 순간 에너지가 달라진다.
상체를 계속 일으키면서, 노는 물을 헤친다.
배가 나아가고, 자연스럽게 상체가 앞으로 나아가서 숙여진다.

숙여진 상체를 들면서 물에서 노를 뺀다.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반대편으로 노를 바꿔 쥔다.
이때 손이 그리는 선이 8자가 된다.

이제 왼쪽으로. 반복.


7) 코/손/발 등 몸의 어느 한 부위를 작용점으로 해서 위에서 실을 걸고 당긴다고 생각하기
손목을 작용점으로 할 경우 결과적으로 일어나게 됨
 ;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게 됨
 


 



8)
외부에서 사지 당긴다고 생각하기 / 몸 중심의 에너지가 사지를 통해 나가게 하기


   

                       

 




누워서 하는 엑서사이즈는 얼추 끝났다. 이제는 엎드려서 한다. 어떻게 엎드리냐하면,


1) 앉아서 단전에 힘을 주면서 손이 앞으로 가서 결국 다 엎드리기

; 엎드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 중요. 몸을 최대한 펴면서 손을 따라 간다. 엉덩이는 발뒤꿈치에 최대한 붙어있다가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떨어진다. 





2) 애벌레 기기 ; 골반 - 허리 - 등 - 가슴 - 목 - 머리





3) 엎드려서,  어깨 등 골반 하기 ; 골반을 할 때, 안쪽으로 미는 것 중요





4) 머리 목 옆구리

; 겨드랑이 아래쪽 옆구리의 근육이 중요. 그 부분이 몸을 잡아주고, 움직이게 한다.





5) 애벌레기기 - 엎드려 옆구리로 가기(악어기기?) - 상체 빨리 가기 - 하체 빨리 가기 - 직립

; 애벌레 기기 하다가 어깨와 함께 한 쪽 손을 앞으로 내딛으며 일명 악어기기를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악어가 움직일 때처럼 옆구리로 가는 것이다. 악어의 뒷발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릎이다. 미비한 그림이지만 그려보면 대충 이렇게 된다.





상체를 팔로 들면서 다리보다 빨리 보낸다. 자연스럽게 엎드려뻗쳐가 된다. 이제 하체가 상체보다 빨리 간다. 상체를 먼저 보낼 때는 어떤 점에서 멀어지는 기분으로, 하체를 먼저 보낼 때는 어떤 점에 가까워지는 기분으로 해본다.



중요한 것은 가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이다.


6) 날기 ; 뜰 때 바닥의 한 점으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이 중요. 돌풍으로 뒤집어질 때 정지포인트 중요


 






어떻게 보면 무용하는 사람이나 연극하는 사람이나 흔하게 하는 몸풀기들인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스트레칭과 구별되는 개념들이다.


몸을 만다(감는다) / 편다 / 휜다

(외부에서) 당긴다 / (내부에서) 보낸다
어떤 점에서 멀어진다.
어떤 작용점으로 움직인다.


무엇에 포인트를 두고 행하는가에 따라 보이는 양상이 매우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누워서 사지를 쫙 펴는 동작의 경우, 사지의 끝에 밧줄을 걸고, 내 몸을 찢기 위해 말들이 달린다고 생각하고 하는 때가 있다. 조선시대의 능지처참이다.

그 다음은, 다시 몸을 펼치고 눕는다. 이젠 내 심장에서 구슬이 빠져나가는데, 사지로 연결된 관을 따라 나간다고 생각한다. 앞의 것은 외부에서 당기는 힘으로 몸이 펼쳐지는 것이고, 뒤의 것은 내부에서 보내는 힘으로 몸이 펼쳐지는 것이다. 결국 펼쳐지는 것이지만, 하는 나의 기분도 완전히 다르고, 보는 사람도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2. 걷기 - 서서


자, 서 볼까?

선생님은 막대기의 스탠딩부터 가르치셨지만 오늘은 다른 방식으로 당장 걸을 수 있는 스탠딩을 가르쳐주었다. 일단, 선다. 몸을 만다. 머리 목 가슴 배 골반. 골반의 경우, 말아넣는다고 할까......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무릎이 굽혀진다.

이 상태에서, 역순으로 말려졌던 몸을 편다. 무릎을 펴면서... 골반 배 가슴 머리 목.
이제 완전히 서게 되었다. 이 상태에서는 어디든 움직일 수 있다.


1) 좀비팀?


오늘 우리팀의 별명이 붙었다. 일명 ‘좀비팀’이다. 선생님은 처음 우리에게 밸런스를 지켜가며 멋있게(?) 걷는 것을 시켰다. ‘밸런스를 지키며 걸으세요’하고 주문했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뭘 해야 될지도 몰랐다. 당연히 확신없이 쭈뼛거렸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랬나보다. 선생님은 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다가 한 마디 했다.

왜 안 되지?

그래서 넘어간 연습이 종종 해왔던 ‘좀비걷기’였다. 우리가 워킹에서 헤매면 선생님은 종종 그걸 시킨다. 그걸 했다가 하던 걸로 넘어가면, 양상이 달라진다고 했다.

좀비영화도 잘 안 본 나로서는 좀비가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그냥 한다. 시체니까 빳빳하고, 피를 원하니까 지향점이 있고, 다른 이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스런 면이 있겠거니 하고 했는데, 할 만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가보다. 그걸 하고 나면 선생님의 표정이 확 바뀐다. 우리는 우수한 학생이 된다.

오늘도 역시였나보다. 좀비만 하면 온몸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팀. 선생님은 오늘 우리에게 좀비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마 공연에도 좀비가 들어갈 거라는 말씀을 흘리셨다.
설마 길에서 그걸......





온 몸은 빳빳하고(막대기), 지향점이 있고(목적/에너지), 몸통이 아닌 부위는 적당히 긴장이 풀려있는(경직을 막아주나보다) 좀비걷기를 하고 나서 하던 것으로 돌아가면, 실제로 몸이 풀린 것을 좀 느낀다. 우리는 다시 밸런스 걷기로 돌아갔다. 몸을 세우고 반듯한 자세로 걷는데, 뭐를 알겠다기보다는, 몸이 편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슬로우. 다시 좀비 걷기. 좀비 걷기의 슬로우. 줄인형. 병정.
다시 밸런스 걷기......

중요한 것. 움직임이 변할 때의 정지포인트를 잊지 않는다.

정지포인트.... 정지포인트...



2) 줄 위에서 걷기


이번의 워킹은 줄 위의 워킹이다. 바닥에 한 가닥의 줄이 있고, 끊임없이 조금씩 출렁거린다. 우리의 몸은 출렁거리는 줄의 영향을 받는데, 중요한 것은 작용점이 발바닥이라는 것이다. 발바닥 아래 상상의 줄.

역시 막대기의 스탠딩부터 시작한다. 한 발을 내딛는데, 발바닥의 앞부분으로 조심스럽게  줄을 밟는다. 한 발. 한 발. 작용점이 발바닥이라는 생각을 견지하면, 몸이 막대기이므로 영향을 받는다. 발바닥으로부터 시작된 진동으로 몸이 일렁거린다. 역시 중요한 것은 몸이 일렁거리는 흉내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발바닥으로부터, 상상의 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팔을 펼쳐본다. 줄타기 광대들은 펼친 팔로 균형을 잡곤 한다. 우리는 펼친 팔로 실제 균형을 잡는다기보다는, 상체의 호흡을 위로 올린다. 쫙 펼쳐진 팔은 팔의 상박과 옆구리의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상체를 쪼아준다. 팔에 의해 잡힌 상체는 위로 당겨지게 된다. 상체는 위로 쭉, 하체는 아래로 쭉. 수평의 줄 위에 수직의 배우가 서게 된다.



연습실을 왔다리 갔다리

팔 아파서 내렸다가

다시 슬쩍 올리고

이번에는 몸의 분리로 들어간다. 분리할 몸은 발목과 무릎. 걸으면서 발목과 무릎을 움직여본다. 텐션된 움직임이 아니라 흔들흔들... 하는 식의 움직임이다.

발목과 무릎의 힘을 빼고 움직인다는 데 집중하다보니 발바닥의 작용점을 잊게 된다. 작용점을 생각하면 움직여지지 않고, 다시 시도하면 이번에는 막대기의 상태까지 깨어진다.

쉽지 않다. 하지만 워크샵의 마무리를 앞두고 강화되는 생각이 있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두를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 느낀 점

 
몸이 좋지 않았다. 하기야 늘 몸이 좋지 않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고 수업을 시작하면 힘든 수업을 해낼 수가 없다. 우리는 몸의 근육을 많이 쓴다. 발레 하는 사람만큼. 몸이 좋지 않다고 시작하여 할 수 있는 것도 안 하게 된 순간이 많았기에, 몇 번 남지 않은 만큼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마음도 수업을 방해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는 마음. 그러나 해보기 전에 알 수 있는가? 게으른 몸과 한 편인 마음을 믿을 수 있는가? 마음은 일종의 변호사다. 상황에 맞추어 늘 나를 변호한다. 그 변호는 변명이다. 오늘만큼은 변호사를 잠재우고 수업에 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머리가 텅 비고 몸의 힘이 쭉 빠지는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했나 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