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마임워크숍]-19. 큰 언어, 호흡

2010. 7. 21. 22:30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열아홉 번째 기록 

"늦었지만 애정을 담아본다. 애정으로 쓴다"

글| 강말금


 

* 들어가는 말

열아홉 번째 수업은 새로운 것을 배운다기보다는 해왔던 것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늘 하는 엑서사이즈들로 몸을 풀고, 지난 시간에 배웠던 줄 위에서의 워킹을 심화학습 하였다. 둘씩 짝지어 시소, 널뛰기, 회전목마타기를 놀이처럼 하였다.

자꾸 강조되는 말이 있다. 호흡. 선생님이 강조하신다기보다는 나한테 그렇게 들리는 것일까? 수업 중에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 공연은 사랑으로 하는 거예요. 그것과 호흡이 관련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팔월에 작은 공연을 한다. 하다보면 정지 포인트도 잊고, 몸의 분리도 까먹겠지.
그 때 마지막 하나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호흡이 아닐까 생각한다.

큰 언어, 호흡.

  



1. 줄 위에서 걷기
 




우리는 워킹을 배우기 전에 즈려밟는 것부터 연습하였다. 줄 위에서 걷기도 마찬가지다. 즈려밟는 힘이 중요하다. 줄 위의 워킹은 발바닥에 작용점이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은,
'발바닥에 집중하며 줄 위에서 걷기', '줄 위에서 걸으면서, 무릎과 발목을 움직이기(흔들흔들...의 느낌으로) 팔을 수평으로 들어 온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줄 위에서 걷기' 였다.

오늘은 세 가지를 연습하면서, 줄 위에서 뛰어 올랐다가 착지하는 것을 배웠다. 이때는 크게 출렁이는 줄을 발바닥으로 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착지한 후 다시 균형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는 표현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사람씩 발표하였다. 프린지 연습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길고 긴 길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 몸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작아진다. 작아지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새침한 표정을 짓게 된다.

강학수씨가 제일 먼저 발표하셨는데, 참 재밌게 하셨다. 팔을 수평으로 들고, 줄에 한 발을 내딛는다. 줄을 느끼면서 걷다가, 무릎과 발목을 움직이면서 걷다가, 뛰어올랐다가 착지한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배운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시는 데에 감탄했다.

나의 경우, 무릎과 발목을 움직이면 줄의 감각을 자꾸 잊게 되는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팔을 수평으로 일자로 펴는데 집중하다보니, 쫙 펴진 양쪽 팔이 상체를 위로 쭉 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을 잊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얘기해주셨다.

류호경씨, 김경락씨는 역시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일자의 옆 부분을 밟기도 하고 (줄은 어디에?) 뛰어올랐다가 착지하면서 손으로 땅을 짚기도 하면서. (땅은 어디에?) 용감하게 이것저것 시도한 결과이다. 하던 사람이 웃음이 터지고, 같이 웃으면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웃기는 일은 참 좋다.

 

 

2. 정지포인트와 터닝포인트

 

얼마 전부터 이런 연습을 계속 한다. 걷다가, 슬로우로 걷다가, 좀비로 걷다가, 슬로우로 즐겁게 뛰다가, 줄 인형으로 걷다가, 제자리에서 턴 하면서 멈춘다.

또 걷는다. 무작위로. 신호는 선생님이 준다.

다음에는 이렇게 연습한다.

워킹.
정지. 슬로우. 정지. 좀비. 정지. 병정걷기. 정지.

그 연습을 하면서 알았다. 걷기와 슬로우로 걷기의 사이에는 정지 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걷기의 에너지를 머금은 정지. 선생님이 신호를 하면 우리가 머금었던 정지의 에너지로 슬로우 걷기를 한다. 정지의 호흡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워킹. 슬로우. 좀비. 병정걷기.

하나하나 정지하는 연습을 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면 느낌이 다르다. 우리의 움직임에 정지 포인트의 개념이 생겼다.


첫 수업 때, 선생님이 정지 포인트와 터닝 포인트의 얘기를 했다. 정지 포인트는 어느 정도 느껴지는데 터닝 포인트는 개념화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바를 써보면 이렇다.

선생님은 모든 움직임의 시작과 끝에 정지 포인트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본워킹을 하다가 슬로우 워킹을 했다고 치자. 여기에는 걷기 시작하는 순간, 걷다가 멈추는 순간, 멈추어있는 순간, 슬로우 걷기를 시작하는 순간, 이렇게 네 개의 포인트가 생간다. 그런데 이것은 미분처럼 막 쪼갠 것이고, 시작점과 변화점 두 순간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변화점, 그러니까 걷다가 멈추는 순간과 멈추어있는 순간, 슬로우 걷기를 시작하는 순간이 동시에 일어나는 한 점이 터닝 포인트가 된다.


 



그 표현은 매우 어렵고, 한 번 씩 잘 될 때는 엄청난 쾌감이 온다. 보기에도 매우 아름답다. 선생님이 한 번 씩 시범을 보여줄 때 생각한다. 그것은 시간을 늘였다가 줄였다가하는 기술이다.

 
정지포인트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수업마다 동사와 형용사의 얘기를 듣는다. 배우는 동사여야 한다. 감정 상황 이전에 동사.

어떤 배우가 걷다가 멈추었을 때, 보는 관객들은 휴대폰을 놓고 왔구나 혹은 뒤에서 누가 불렀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어떤 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멈추어야한다. 그것이 배우의 동사이다. 우리는 동사의 배우가 되기 위해서, 최대한 상황을 배제하고 움직인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공간의 어느 점, 내 몸의 작용점, 호흡, 지향 혹은 외부의 압력이고,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점, 정지포인트, 막대기의 호흡이다. 

 

3. 둘씩 하는 놀이 - 시소, 널뛰기, 회전목마



둘씩 짝을 지었다. 일 미터 쯤 떨어져 마주보고 시소를 탄다. 시소에서 중요한 것은 시소의 기준점이다. 우리가 떨어져있는 일 미터의 중앙점이 기준점이다.

자, 이제 시소타기가 시작되는데, 상대방의 엉덩이를 주시한다. 상대방의 엉덩이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내 엉덩이는 올라간다. 리액션이다.

상대방의 엉덩이는 내려간다기보다 시소를 누른다. 내 엉덩이는 올라간다기보다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엉덩이로 누르는 느낌. 올라갈 수밖에 없는 느낌이 중요하다. 그 느낌은 엉덩이가 아니라 다리에서 온다. 기마자세로 허벅지를 쫀득쫀득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 (힘들었다)

상대방이 완전히 내려가고, 내가 완전히 올라가면, 이번엔 입장이 바뀐다.

기준점을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 투명시소를 계속 상상하고 있어야한다.

내 짝은 경락씨였는데, 한참 하다보니까 좀 민망해졌다. 엉덩이를 뚫어져라 봐야되는 상황인 것이다. 남녀 짝인 분들은 다 그랬겠지. 그런데 하다가 장난이 시작되자 민망함이 잊혀졌다.

내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누르는 신호를 줘도 경락씨는 안 올라온다. 그러면 나는 못 내려가고 용만 쓰고 있어야한다. (류호경씨가 이런 그림 잘 그릴 것 같다) 그러다가 경락씨가 엉덩이를 쑥 들면 나는 쑥 내려가야된다. 양쪽 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같은 높이로 버티기도 한다. 한번은 경락씨가, 내려가 버티고 있다가 갑자기 시소를 버렸다.

아 근데 나는 바로 툭 떨어지지 못했다.

그때 내가 툭 떨어져서 엉덩이가 아팠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어렸을 때 그런 짓 많이 했지. 그 장난에 리액션 못한 게 아직도 생각난다. 땅바닥을 칠 일이다. 

다음은 널뛰기다. 널뛰기에는 그림이 필요하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ㅡㅜ

 


  
 

 


널뛰기와 시소의 차이점이 있다면 상대방의 체공시간을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점이다. 발구르기를 한 상대의 몸이 다 펴지고, 마침내 널에서 발이 떨어지고, 올라가기 시작하고, 최고점을 찍고, 내려올 때까지, 나는 계속 찌그러지고 있어야한다. 상대의 발이 널에 도착해야 나는 찌그러짐을 멈추고 몸을 펴기 시작할 수 있다. 이때도 올라간다기 보다는 널의 힘에 의해 ‘올라가진다’

널뛰기는 슬로우로 연습했다. 상대방에 대한 완전집중만이 살 길이었는데, 그래서 투명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재미있었다.

다음은 회전목마다. 이번에는 원을 그린다. 축은 원의 중앙에 있다. 상대방과 나는 축을 지나는 상상의 봉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래 그림처럼. 상대방이 움직인 만큼 움직인다. 이번에도 상대방에 대한 완전집중만이 살 길이다. 


  

 


회전목마에는 위아래 운동도 있다. 상대방이 올라가면 나는 내려간다.

할 게 정말 많다. 상상의 축 지키기. 간격 지키기. 상대방 간만큼 가기. 상대방 올라가면 내려가기. 공간도 보아야하고 상대방도 살펴야하고 으아 머리 터진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선, 바닥에 점부터 찍으라고 하였다. 축의 점을 찍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방의 점을 찍는다. 그리하여 공간 개념을 갖는다.

자신이 임의의 점을 찍은 공간을 지키면서, 상대방을 살피며 움직인다.

시소, 널뛰기, 회전목마 중에 회전목마가 가장 어려웠다. 앞에 것 들에 동선이 첨가되었기 때문일까? 정리하다보니 시소, 널뛰기, 회전목마의 연습순서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4. 공연개요

우리의 공연은 대략 십 분짜리 거리극. 이런 연기를 하게 될 거라는 언급이 있었다.

인간의 피를 찾는 좀비 - 꽃으로 피어 난다 - 어린시절의 꿈 - 어린시절의 놀이 - 혼돈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현수씨는 맥락을 생각하고 있었다. 툭 하는 얘기를 듣고 나도 맥락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드는 생각인데,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은 거면 어떨까? 좀비의 인격과 아이의 인격이 교차하는 인물이면? 그 인물이 자신의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인지하게 되면 혼돈에 빠지겠지?

자, 간단한 컨셉만 가지고 동사로 돌아가자.
 


* 느낀 점

 

열아홉 번째 글이다. 이번에는 글에 대해 한 번 써야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기록을 하기로 한 덕분에 마임 워크샵과 고재경씨와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너무 좋은 인연이다.

그런데,
글을 생각하지 않고 워크샵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달랐을까?
얼마나 더 단순하고 재밌었을까?

몸을 쓰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바탕이 다른 일이다. 나는 글자를 알고 나서 서른 살까지 글과 관련된 뇌만 발달시켜온 사람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은 그쪽을 안 쓰려고 노력했다. 다른 쪽 바탕을 강화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유를 만들어내고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말이나 글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솔직히 말할게.

재하는 일이 고통스러웠고 하기 싫었다. 누구를 위해 쓰는가 생각을 많이 했다. 읽을 만한 글이 되려면 끝없이 표현해야했고 의미부여를 해야 했다. 내버려두면 익을 것에 이름을 붙여야했다. 상태가 안 좋을 땐 생각 때문에 쓸 수가 없었다. 생각이 많아지면 글쓰기뿐 아니라 워크샵도 싫어졌다. 다 놓아버릴까 생각도 했다.

열 아홉 번째 글이다. 그렇게 띄엄띄엄 왔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하면,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개인적인 맥락이 있다. 글쓰기 아니라 어떤 일이든 누구를 대하든 사랑 없이 하면 들킨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문제는 사랑의 문제이다.

늦었지만 애정을 담아본다. 애정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