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 우리는 오늘도 '연극을'한다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

우리는 오늘도 ‘연극을’ 한다

 글_생연네 2기 남궁소담





2010년 8월 20일, 연극문화운동단체 ‘생활연극네트워크’가 공동창작극 <네, 마포경찰섭니다>로 제13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한다.

 

 



#1. 수상한 문자가 도착하다

 

2010년 2월 8일. 생활연극네트워크(이하 ‘생연네’)로부터 ‘수상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등장인물을 만들어올 것. ①이름 ②나이 ③직업 ④성격 ⑤특이사항을 고민하기.”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공연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전락한 연극을 본래의 주인인 대중들(관객)에게 되돌려주자는 취지의 연극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생연네에서는 종종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프로젝트 공연을 시작하곤 한다. 모두가 대본을 쓰고, 모두가 배우나 스탭이 되어 공동으로 연극을 만든다. 우리는 회사원이나 교사 등 직업을 가진 평범한 ‘생활인’이지만, 이곳 양재동 생연네 스튜디오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가슴 뜨거운 ‘연극인’이다.

 

스튜디오에 둘러앉아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생활연극인들



문자를 받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어떤 인물을 만들까? 나는 29살의 새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같지만 많은 것이 다르다. 미혼이고 회사원인 나와는 달리, 결혼 후 출산을 하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주부이다. 그녀에게 ‘오아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오아람. 왠지 동글동글하고 명랑한 여자일 것 같다.

 

며칠 뒤 27명의 ‘생활연극인’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둥글게 둘러앉아 한 사람씩 자신이 만들어온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기공체조원 원장, 방사선과 의사, 카피라이터, 경찰서 수사반장, 아파트 경비원 등등 27가지 사연을 가진 27명의 등장인물이 27명의 생활연극인에 의해 탄생하는 순간이다.







#2. 그들은 왜 엘리베이터에 갇혔는가

 

수상한 프로젝트는 계속되었다. 여러 가지 숫자가 적힌 제비를 뽑아 팀을 결정했다. ‘2’가 적힌 종이를 뽑은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었고, ‘3’을 뽑은 세 사람이 한 팀, ‘4’를 뽑은 네 사람이 한 팀이 되는 식이었다. 총 6개의 팀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화(anger)’라는 주제를 받았다. 각 팀별로 ‘화’의 생성과 소멸, 전이를 주제로 하나의 대본을 창작해야 했다.

 

 

나는 ‘4’를 뽑아 나머지 세 사람과 한 팀을 이루었다. 우리 팀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떨 때 화가 나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푸는지, 화는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로 가는지······. 대화는 통통 튀어 우리는 어느덧 엘리베이터에 갇힌 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왜 꼭 엘리베이터여야만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어느덧 그곳에 가닿았을 뿐.

 

대본 역시 공동창작으로 집필하기로 했다. 한 사람이 줄거리를 적어 보내면, 다음 사람이 대사로 풀어내고, 그 다음 사람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마지막 사람이 전체적인 흐름을 다듬는 식이다. 우리 팀을 비롯해서 6개의 팀이 각각의 대본을 제출했으며, 예술감독이신 임재찬 선생님이 이 중 경찰서를 배경으로 한 팀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6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얽었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 ‘4’팀은 ‘화’에 대해 긴긴 이야기를 나눴다







 






#3. 수상한 프로젝트, 무대에 오르다

 

생연네에서는 1년 내내 연극이 만들어진다. 한 사람이 쓰고 연출하는 ‘One by One Program’부터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팀이 각기 다른 연극을 만드는 프로젝트 공연까지. 만들어지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매주 3시간은 반드시 연극을 만든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 3시간씩, 공연에 임박해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저녁에 만나 연습을 했다.

 

두달 여의 연습을 마친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한 생활연극인들이 양재동 생연네 스튜디오에 모여들었다. 공연을 앞둔 대기실의 풍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거울을 보며 의상을 체크하는 사람, 혼자서 중얼중얼 대사를 되뇌는 사람, 상대배우와 무대에서의 약속을 확인하는 사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긴장을 푸는 사람······.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도 되고 때로 ‘잘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공연은 시작되고 배우는 무대에 서야 한다. 매순간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연극에서 배운 가르침이다.

 



 

공연 시작 전의 대기실 풍경. 곧 무대에서 서로를 의지하게 될 배우들










오후 9시. 관객 입장을 마친 스튜디오에 불이 꺼지고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배우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무대로 걸어 나가 정해진 위치에 선다. 생활인 남궁소담은 사라지고, 연극 속 오아람이 오롯이 조명을 받고 선다. 관객들이 웃는다. 박수를 친다. 나와 극 속 인물 사이의 경계가 옅어진다.

 






#4. 새로운 목표가 생기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경비원 이대근

                                                                                      

 


프로젝트 공연이 끝난 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번 공연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 아쉬움도 털어놓는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해보자는 의견이 나온다. 사실 그간 생연네는 양재동 스튜디오에서만 공연을 해온 터라, 외부 공연에는 조금 겁을 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러더라. 조직도 살아있는 생명체와 다르지 않다고. 2005년에 태어나 이제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된 ‘생연네’는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이름을 내기 위해 스스로 길을 튼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찬성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진다. 우리는 프로젝트 공연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사상 처음으로 외부 공연, 즉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나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나를 비롯하여 대본 창작에 소질이 있는 몇몇이 ‘작가팀’으로 대본 수정에 나섰다. 이야기 전개상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을 수정하고, 몇몇 장면을 더 극적으로 다듬었다. 프로젝트 공연을 만들 때는 철저히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본에 접근했다면, 이제는 ‘보는 사람’의 시선도 고려하게 된다. 관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이야기에 대한 고민도 시작된다. 몇 주에 걸쳐 회의와 대본 창작 작업에 매진한 끝에 수정된 대본이 나왔다.


프린지가 열리는 곳이 마포구임을 감안하여 “네, 마포경찰섭니다”로 제목을 정하고, 더 많은 배우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몇몇 배역을 새로 만들었다. 경찰서라는 공간은 많은 사람들의 화가 집결된 곳이다. 길거리에서 서로에게 폭행을 휘두른 마담과 텐프로 아가씨, 실족사 사건의 참고인으로 경찰서에 온 세여인, 엘리베이터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린 퀵서비스 아저씨, 만성 변비인데다가 수사마저 잘 풀리지 않아 괴로운 형사들······. 경찰서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치정과 사기로 얼룩진 살인사건이 교차하면서, 때론 화나고 때론 눈물 나는, ‘우리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5. 우리는 연극을 한다, 고로 존재한다


연습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생활인이기 때문에 다른 극단과 같이 매일 모여 하루 종일 연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일별로 연습 팀을 달리해, 월요일에는 3장과 10장, 11장, 12장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이고, 화요일에는 6장, 9장, 13장의 배우들이 모이고, 목요일에는 전체 배우들이 모여 연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저마다 직업을 가지고 있는 터라 연습 시간이 부족한 ‘시간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여 연극을 만들다 보니 공연을 올리는데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공연 기획과 홍보부터 포스터 디자인, 의상과 소품은 물론 조명과 음향까지······.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꺼이 내놓고,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생연네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연극에서 얻은 에너지로 생활을 변화시키고, 생활에서 얻은 지혜를 연극에 적용하여 우리는 생활연극인으로 살고자 한다.


다 같이 ‘찰칵!’ “우리는 생활연극인이다!”

                                                                                              


이제 공연이 열흘(*현재 날짜 16일. 나흘전) 앞으로 다가왔다. 첫 외부 공연. 아직은 부족하고 미숙할지라도 우리는 ‘한다’. ‘연극을 한다’는 우리의 행위가 우리 자신과 관객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을 믿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8월 20일을 기다린다.





공연제목 : 공동창작극  “네, 마포경찰섭니다!”

공연제작 : 보는연극에서 하는연극으로  “생활연극네트워크”


예술감독
: 임재찬

공연일시 : 2010년 8월20일(금) 저녁8시(1회) 
                  2010년 8월21일(토) 저녁5시(2회)

                  2010년 8월21일(토) 저녁8시(3회)


공연장소 :
가톨릭 청년회관 CY씨어터, 070-8668-5795


공연예매 :
생활연극네트워크 티켓창구 (cafe.daum.net/playnetwork)

                  프린지페스티벌 티켓예매 (www.seoulfringefestival.net)


공연문의 :
02-577-6538 / 010-6365-0415


 


‘생활연극네트워크’란?

2005년 2월 17일, “연극 본연의 효과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생활연극네트워크’는 양재동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연극교육과 공연활동을 하는 연극문화운동단체이다. 2010년 6월 현재, 공연전문가 그룹과 140여 명의 생활연극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생활연극네트워크 싸이월드 커뮤니티 바로가기


필자 남궁소담은?

2006년 4월 ‘생연 작은학교’ 2기로 입학하여 생활연극네트워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5월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2007년 2월 ‘아세요’, 2009년 9월 ‘이토록 눈부신 어둠 속에서’, 2010년 5월 ‘묻지마 결혼공작소’ 등의 작품을 극작했으며, 생연네에서 공연했다.




  1. 그래서 소담소담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