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토템의 거리를 지나서 인공낙원 속으로 - 제 12회 서울변방연극제 <바람속의 고임>, <정글>

2010. 10. 5. 14:53Review





토템의 거리를 지나서 인공낙원 속으로
제 12회 서울변방연극제 <바람속의 고임> , <정글>




글_나나기타

 

 




#1. 바람속의 고임 [비디오스크리닝] Stone remains in the wind [video screening]

 

 

아마도 인류와 지구의 유기적인 관계, 인류가 문명을 이끌고 활동을 한 시간은 지구의 수명24시간으로 가정하고 따져보면 30초 밖에 안된다고 한다, 기껏 해봐야 1만년이 안되는 성립이다. 문명은 과거의 사람들-미래의 사람들을 잇게 하는 중요한 갈고리 같다 대부분 피로 얼룩지고 살육과 번식으로 유지하여 왔지만 그 이분법적인 가장 근본적인 이데아 속에서 인류는 발전해왔고 지금은 지구의 외부생명체와 신호를 송출 할 만큼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다 봤을법한 `맨프럼어스‘라는 영화가 9월에 개봉을 했다, 원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스스로 진화했고 몸속체내의 순환과 자생하는 법을 터득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가 바라보는 최초의 무덤은 어떠할까, 주술사들과 능력자들(천재지변에 대해 해석했던 자들)이 과학과 종교를 대신했던 시대를 다시금 기억할 수 있을까.






고정된 롱컷에서 보여주는 가파도의 바람과 갈대에 둘러쌓여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았던 큰 고인돌, 오후햇빛 아래 고인돌은 긴 시간동안 과거를 침묵하고 갈대는 고인돌을 숭배하는 것처럼 고인돌을 감싸고 있다, 영상 속에서 들리는 바람과 파도소리, 작가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묻는다, 나 또한 그럼 파도도 어디서 밀려오는지 궁금했다. 파도와 바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의 패턴, 세상과 자연의 극단스러운 연연함, 서로의 반대편에서 출몰하여 짝짓기를 하는 동물과 인간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정해져있고 인연이 있으며 시작과 끝이 있다고 믿게 된다.


자연은 불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然-연금술사들은 불의 성질로 새로운 물질, 알코올 같은 것을 만드려고 노력했으며 그 과정 속에서의 자신을 승화시키고 싶어 했다.








고인돌 위의 어떤 하나의 인간, 그것은 바람과 고인돌을 지탱하고 확인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빨간 옷은 불을 상징하며 그 시대 인류의 열정을 뜻하기도 한다. 불은 지속적인 어떠한 행동을 끝없이 원한다. 이동을 바라고 왕성한 힘을 표출하고 욕망과 야망을 상징한다. 양손에 쥐고 있는 공작의 알록달록한 깃털은 바람의 성질을 지녀 불과 바람의 조화를 배가한다, 주술을 하듯이 말이다. 현대신앙의 무당과 유사한 복장이다.












고인돌 위의 인간은 파도가 출렁이는 바위 앞에서 바람과 화합한다.
마치 알코올처럼 물과 바람의 세 혼합이 되어 요동이 없고 끄떡없이 자연과 조우한다.


문명이 가진 토속적인 신앙은 고인돌처럼 진화와 변화에 상관없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렇게 바람속의 고임은 많은 메시지를 내포하고 잉태하고 간직하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나이로 소수점의 시간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죽지만 과거와 미래를 맺고 있는 중요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와 문명 속에서 철학과 지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2. [공연]정글 [곽고은 프로젝트]

 

 

 

그리하여 인류는 산업혁명을 일으켜 도시라는 개념을 세우고 현대식 전쟁과 도시생활이라는 아주 특수한 방식을 이뤄냈다.

 

 

‘양식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세상의 온갖 사물은 매우 희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고, 참다운 현실은 오직 꿈속에만 있는 것 같소. 자연의 행복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인공의 행복과 마찬가지로, 우선 그것을 삼킬 용기가 있어야 하오. 그리고 아마, 이승의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대견스런 행복에 대해서는 언제나 구토제에 대한 듯한 반응 밖에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오.`

 

보들레르 - 인공낙원 서문 중


 

지하철이 생기고, 버스가 생기고 대륙을 횡단 할 수 있는 비행기가 대중교통이 되었다. 몇차례 전쟁을 통한 각 나라들의 쓰라린 경험과 기억들은 잠시 국제적 휴전이라는 잠식기를 통하여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라디오와 턴테이블, LP판, 필름, 마이크, 영사기, 간판등으로 시작하여 대중들의 행복은 높은 수준의 형태로 거듭났다.
그리고 몇십년 후, 강남역 앞엔 북적거리는 인파와 현란한 네온사인, 시끌벅적한 가게들의 음악들이 소음이 되고 셔츠에 검은바지, 컨버스를 신은 무용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삼일로 소극장에서 처음 가게 되어 곽고은프로젝트의 정글을 관람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가까운 포스트모던의 작품을 오마쥬하고 리메이크하고, 재구성한다.

정글이라는 프로젝트가 가진 도시 안에서의 극단적인 행동들이 영화 택시 드라이버 트래비스 빅클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도시안에서는 선의 부재, 악의 횡포와 욕구가 가득찬 꿀단지가 가득차다. 작가는 극단적인 행동들을 율동으로 표현한다. 토를 하거나, 왁자지껄한 술집들, 돈이 오고갈 때 비쳐지는 사람들의 눈빛, 선용과 남용이 넘쳐나는 이 돌고도는 도시 안에서 작가는 몸부림친다,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처럼.


개개인의 정신은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가, 무엇을 위하여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가진 오감으로도 도시의 거대한 인공의 기쁨과 슬픔은 느끼기 벅차다. 작가의 손끝과 팔이 그리는 선율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오히려 투박하고 불만스럽고 불안하다. 볼레로의 음악과 맞추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비통한 아름다움과 항상 부족한 기쁨을 충족하려하는 풍자와 해학이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으로 다가온다.






음악이 내재하고 있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진행방식은 기승전결에 따른 작가의 율동과 안무는 반복적인 패턴에 맞추어 그리 복잡하지 않은 구성으로 짜여있다, 다시 말하면 쉽게 나온 안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는 어쩌면 조금씩 조금씩 쌓은 비극적이고 난잡한 심리상태를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다. 그런 작가에겐 안무와 율동, 그 활동들이 마약이라고 생각한다, 마약을 투여하고 투시하는 번화가 속의 도시인들, 작가는 스스로 극단적인 안무에 줌과 페이드를 인용하여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시선으로부터 미쟝센을 만든다.


그리하여 이성과 감정으로는 부족한, 불온한 상상력으로부터 표출되는 도시인의 잠재된 몸부림을 보여준다.


시내의 네온사인이 새벽이 되면 하나씩 불이 꺼지듯이 무대의 조명과 율동이 잦아든다

그리고 안타까운 도시인의 삶은 내일이 되어도 그렇게 반복되는 규칙성을 갖는다.

마치 정글 속의 시끄러운 원숭이들처럼 말이다.




제 12회 서울변방연극제 _도시기계 : 요술환등과 산책자의 영리한 모험 
2010 0902-0919


무혜 <바람속의 고임-비디오스크리닝>
제주도 밑 조그만 섬 가파도에는 약 2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130여개의 고인돌이 있다. 춤추는 보리밭에 파묻혀있는 크고 작은 많은 고인돌들을 만나 그 밑에 누워있는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여전히 흘러가는 시간이며 존재에 관한 풀 수 없는 문제를 안은 채 나는 고인돌 위에서 그저 보리와 파도와 함께 새의 몸짓을 할 뿐이다.

곽고은 프로젝트 <정글>

이 공간에는 어떤 구조가 존재하고 있고, 그 구조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스템화 되어 지고 있다. 모든 것 들은 그 틀 안에서 하나의 골을 향해 일사천리 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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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나나기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시 전공

텐더라인, 나나기타로 활동 중인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