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루의 국악뮤지컬 <오늘 오늘이>의 어제, 오늘, 내일을 이야기하다 - 일인삼색좌담

2010. 10. 26. 18:15Review



타루의 국악뮤지컬
《오늘 오늘이》의


어제, 오늘, 내일을 이야기하다


- 일인삼색좌담




글_ 정진삼, 정진새, 정진쇠 



 

사회자

‘전통연희의 현대적 수용’ 이라는 테마는 80년대 비판적인 언어로 쓰여진 마당극, 해체적인 언어로 양식화된 90년대 퓨전-연희극 등으로 젊은 공연 예술인을 자극해왔습니다. 이천년대 들어서 더욱 활기를 띄었는데요, 대표적인 집단으로 국악뮤지컬집단 “타루”를 들 수 있습니다. 타루의 10년은 젊은 전통연희의 10년이자, 창작 판소리가 걸어온 궤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간 많은 전통연희자들이 타루를 거쳐, 타루를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만 각설하고, 오늘은 <오늘,오늘이>라는 타루의 최근작을 가지고 세분을 모셔 이야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전통적 글쓰기를 지향하시는 정진쇠님, 그리고 연극적 글쓰기를 시도하시는 정진새 작가, 마지막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하시는 정진삼씨 모셨습니다.


 

일동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전체적인 인상을 서로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진새(극작)

저는 시, 분, 초라는 세 명의 소리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진삼(비평)

소리꾼들은 각기 고시남, 얼짱녀, 걱정이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존재 양상을 보여주었지요. 저는 변신되어지는 이야기의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진쇠(전통)

가진 건 ‘시간’ 밖에 없는 젊은이들, 시대정신으로서의 ‘잉여인간’ 의 개념이 떠올랐어요.

 

정진새(극작)

시분초가 상징적인데 반해 이들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게 아닌지 싶네요.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나요.

 

정진삼(비평)

이들은 극 밖의 인물과 극 안의 인물로 넘나들지요. 소리꾼으로 시작해서 여러 인물이 되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구조. 세 사람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균등함의 구조도 잘 살았어요. 주요인물과 갈등의 축으로서의 한사람, 이 상황을 디테일하게 꾸며주는 한사람 등등.

 









정진쇠(전통)

재담극으로서 판소리의 ‘들려주기’를 의식하고 시작한거지. 그런데 실상은 뮤지컬에 가까운 것이었드랬지.

 

정진삼(비평)

원천강 설화에서 비롯된 현대적 인물들을 ‘오늘’ 혹은 ‘시간’ 이라는 의미적 ‘틀’ 로 다시 보되, ‘들려주기’ 의 방식, 판소리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멀리서 보면 뮤지컬이라는 ‘음악극’ 장르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이고...

 

정진새(극작)

그런데 ‘오늘’ 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세대적인 이야기이기보다는 철저하게 젊은 세대들에 맞춰져있다고 볼 수도 있지.

 

정진쇠(전통)

좀 모호하지 않나? 풀어내는 방식은 재미와 소통을 추구하는 10대, 20대 방식인데... 인물의 상황은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로 국한되어있고... 관객층은 전 연령대였었고...

 

정진삼(비평)

그게 문제가 되나요?

 

정진쇠(전통)

판소리라는 장르가 젊은이들에겐 정신이기보다는 형식과 외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뮤지컬이야 기본 정신이 ‘재미’ 이고 ‘소통’ 이겠지만...

 

정진삼(비평)

재미있게 만들어도 문제가 된다 이건가요?

 

정진새(극작)

재미있게 만들수록 문제가 된다는 거지요. 그 ‘재미’ 가 단기적인 ‘의미’ 에 그친다면...

 

정진쇠(전통)

소통의 기본골자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거지









 

정진새(극작)

‘소통’ 은 소통 그 자체를 위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소통할건지... 예를 들어, 판소리 장르가 어려워서 쉽게 소통하자는 게 목적인지... 다루어지는 메시지가 어려워서 쉽게 푸는 건지... 그런 것 치고는 얼짱녀, 고시남 얘기는 누구나 아는 내용이잖아요. 요새 드라마, 영화, 소설 등등에서 많이 다루어졌고.

 

정진쇠(전통)

그래서 난 차라리 시, 분, 초의 광대놀이와 원천강 설화가 재밌더라구.

 

정진삼(비평)

판소리라는 게 우리가 계승해야하고, 현대의 양식 속에서 되살려야 하는 게 맞는데... 그래서 뭐 엄청 위대하거나 대단한 장르거나 한건 아니잖아요. 역사가 300년이나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300년 밖에 안 된 것이기도 하고.

 

정진쇠(전통)

그건 또 뭔소리여? 위대하거나 대단하다는 건 장르에 대한 존경이고,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가 가져야할, 전수에 대한 ‘동의’ 인데... 그건 기본이지...

 

정진새(극작)

아마도 판소리가 위대하다면, 가난함으로 풍성함을 만들어내는 소리꾼이라는 존재의 현전성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게 ‘민중성’ 이기도 할 것이고. ‘이야기’ 하나로 세계를 창조하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거죠.

 









정진쇠(전통)

난 초반에 소리꾼이 춘향이가 매를 맞을 때처럼 소리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네.

 

정진새(극작)

다른 작품을 끌어들이는 ‘상호텍스트성’과 그로인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기지시성’ 이 두드러진 장면이었죠.

 

정진삼(비평)

뭔 소리에요?

 

정진쇠(전통)

이제 혼종적인 외양을 띠는 장르들은 이제 스스로가 그 장르임을 증명해야 돼. 안그러면 관객들이 이게 판소린지 뮤지컬인지 헷갈려.

 

정진삼(비평)

이건 국악뮤지컬이라고 입장을 표명했잖아요.

 

정진쇠(전통)

타이틀은 그러해도 지향하는 정신이 판소리아녀. 아까 말했지만 정신이 중요하다고. 현대미술개념처럼 스스로 판소리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잖아. 춘향가의 대목을 빌리고, 심청가의 대목을 따오고... 이제는 무엇을 보다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여.

 

정진삼(비평)

타루타투타타루 점처럼, 이건 타루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정진쇠(전통)

그렇지. 그래서 전래되어진 설화를 바탕으로 꾸민 속이야기가 나는 은근히 흥미로웠다네. 원천강에 있다는 부모를 찾아 떠나는 오늘이, 글만 읽는 장상도령, 밑가지에 꽃이 피지 않는 연꽃나무, 구슬 세 개를 가진 용이 못 된 이무기, 그리고 매일 똑같은 매일이. 차라리 그것만 가지고 만들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정진삼(비평)

창작자가 시도한 것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죠...

 










사회자

논의가 처음부터 원론적인 이야기로 흐른 듯 합니다. 그만큼 논의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좀 더 작품 안으로 들어가 내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입니다만.

 

정진삼(비평)

아까도 언급했지만, 세 겹의 구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정진새(극작)

어느 순간 시간줄을 놓친 시분초가 원래의 흐름을 찾으려고 설화적 공간인 원천강을 찾아 가는데, 지금, 여기의 원천강은 고시원이 되어 있었고, 그 안을 들여다보니, 오늘의 우리문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런 것이었죠.

 

정진삼(비평)

단일한 플롯이 아니라 세 겹의 이야기가 섞여, 서로 다른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듯 하지만, 결국 ‘오늘’ 이라는 테마로 집약되지. 후회스런 어제나, 기약 없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세 개의 이야기가 세 명의 인물을 추동시키고, 그래선지 다양한 관점, 다양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진쇠(전통)

허허... 그 다양성이라는거 따져봐야지. 이념의 다양성, 생각의 다양성, 정신의 다양성을 살려야지...

 

정진새(극작)

설화나 원형은 모든 이야기가 수렴되는 구조일텐데...그러나 ‘고시’ 와 ‘얼굴 은 현세태의 학력 /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것일 텐데... 소외된 인간의 이야기고... 설화의 이야기는 좀 더 깨달음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 같아요. 내부적인 번뇌를 갖고 있었던 게 밝혀지고... 대신 얼짱이, 고시남, 걱정이가 받은 억압의 정체는 외부에서 온 거잖아요. (이들을 시대 모델로 삼지 말라는 작가의 말이 있긴 했지만...)









 

정진삼(비평)

어쨌든 공연에서는 고시남과 얼짱녀와 걱정이가 사연 있는 인물로 개성 있게 그려졌던 거 같아요. 설정은 진부했지만, 그걸 가지고 어느 정도 진정성을 획득한 걸까, 아니면 다이나믹한 연극성으로 그렇게 넘어간 건지는 헷갈리지만...

 

정진쇠(전통)

문제는 이렇게 개인화된 내용의 판소리가 소통의 장르로서의 민중성을 살리는 대신 넋두리의 장르로 탈장르화 돼버린다는 점이지.

 

정진삼(비평)

뭐든지 대중화되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겠죠. 소설처럼, 영화처럼...

 

정진쇠(전통)

큰 주제에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절묘한 ‘발견’ 이 있어야 한다는 게지... 예를 들어 스타크래프트를 부른 ‘또랑광대’ 가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그 다음의 미학적 의미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교훈이 되지 않는가.

 

정진삼(비평)

이 공연이랑 뭔 상관인지요.

 

정진쇠(전통)

뭔가 판에서 살아난 신명과 흥 등은 잘 맞는데, 그 외의 것들은 안타깝다는 게지. 이를테면 슬픈 가락으로 부르는 사연이 나한테는 별로 슬프지 않았단 말이네. ‘자진모리’ 로 부르는 대목이야 흥겹기 그지없지만, ‘진양조’ 로 부르는 사연은 깊이가 모자라지는 않았나... 그 가락을 그 가락의 정서대로 불러줄 수 있는 시대의 아픔이 있잖은가, 이 사람아.

 









정진삼(비평)

그건 잘 모르겠고, 그래도 연극성을 곳곳에 살린 점이나, 유희를 시종일관 지속시킨 점은 대단했어요. 사회비판을 언어유희로 바꾼 아니리나 빠른 장단의 소리와 랩으로 섞은 장면도 그러했고... 저는 얼짱이의 사연에 그래서 주목했어요. 얼짱이 개인사가 변화하면서 음악적 장르 변화로 이어지고.... 그러나 그걸 푸는 건 판소리고. 다들 아픈 속내를 공감 있게 그려내려고 애썼던 거 같아요. 눈물과 웃음의 정서를 오가면서... 결국 연기도 연기지만 사람을 정서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음악, 즉 작창으로 만든 소리가 아니었나 싶네요. 다들 음악은 어떠셨어요?

 

정진새(극작)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다들 재주꾼처럼 보이긴 했어요.... 근데 명창의 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정진삼(비평)

세 사람의 음악적 조율도 쉽지 않았을 듯 한데... 연극적인 조율에 더 큰 비중이 맞춰진 듯 해요. 혼자였으면 더 음악적인 부분이 드러났을텐데.

 

정진쇠(전통)

잘 놀긴 하더만. 허나 그들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아쉬웠네. 마이크를 차지 않고, 가성도 쓰지 않고, 그저 목청껏 내질러대는 그걸 보고 싶었는데... 목의 핏대서는 것도 좀 보고...

 

정진새(극작)

스피커로 소리가 확장되니까 관객들은 듣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게다가 볼거리가 많으니까, 그냥 딱 편하게 앉아서 보기에도 좋았고. ‘관람’ 에 맞추어진 적당한 거리두기 탓인지, 추임새를 요청하거나, 오늘이 여신이 내려올 때나, 걱정을 연기하던 소리꾼이 눈물을 흘릴 때는 오히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죠.

 

정진쇠(전통)

몰입의 거리가 서로들 너무 달라서 그렇지 않았겠나? 맨 앞줄이야, 현장성이 느껴지니까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겠지만, 맨 뒤에 앉은 관객들은 그저 잘 노는 한판을 구경하는 재미에 그치는 거지, 뭐.

 

정진삼(비평)

다음에는 앞에 앉으세요.

 

정진새(극작)

국악공연은 하도 추임새를 강요하고 관객들에게 들이대서 앞에 앉으면 그것 도 참 부담스러워.

 

정진삼(비평)

난 소리꾼이 울 때 왠지 숙연해지던데... 진실한 듯 느껴지고....

 

정진쇠(전통)

그럼 안 운 소리꾼들은 안 진실한가? 난 차라리 그들이 오늘이여신에게 자신의 미래를 물어볼 때가 더 진실했다네.

 







정진새(극작)

시간의 여신에게 나의 내일을 물어보는 것은 참으로 먹먹했어요.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정진삼(비평)

전체적으로 합과 동선이 잘 맞은 “well made play” 임에는 분명해요 그나저나 판소리에서 액션의 비중 높아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게 대세인가?

 

정진새(극작)

불가피한 현상일 듯. 현대에 와서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야 하니까. 들려주기 대신 보여주기인 ‘연기’의 비중이 커지기도 하고...

 

정진쇠(전통)

예전과 다르게 관객들이 역동적인 소리꾼을 보고 싶어하니까... 요새는 얼짱이처럼 음악의 비주얼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니까...

 

정진삼(비평)

그것보다는 타루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봐요. 그러니까 타루는 그간의 소통되지 않음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했죠.

 

정진새(극작)

그래서 과할정도로 관객들의 반응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국악뮤지컬이라는 타이틀도 그러하고... <시간을 파는 남자> 의 경우도 비슷하더랬어.... 너무 버라이어티해서... 마치 국악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 우리는 전통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강하고.

 

정진쇠(전통)

판소리라는 게 본질적으로 한국 ‘말’ 이라는 풍성한 의미기호로 이뤄지고, 거기다 소리꾼과 고수라는 능수능란한 재주꾼 콤비가 이뤄내는 미니멀리즘, 최소주의 같은 느낌이 있는데 말이여.

 

정진삼(비평)

이번 공연은 최소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지향했던 거 같아요. 이야기도 세 겹으로 풀었고, 소리꾼도 세 명으로 풀었고... 악사도 죽 풀었고....

 

정진새(극작)

그래선지 악사는 풀 죽었지요. 실상 조금 ‘배경’처럼 느껴졌다니까... 오히려 소리꾼 몸에 걸친 부채나 천의 활용이 재미있었죠. 몸의 확장, 몸의 활용이 극대화된거지...

 

정진삼(비평)

그림자극이나 묘한 분위기, 암전의 효과 등등으로 보여진 ‘빛’ 의 사용이 정말 두드러졌어요. 투박한 오늘이 인형이나, 한지의 질감도 잘 살린 것 같고... 장면과 잘 협력했던 조명과 무대랄까.

 

정진쇠(전통)

전통에서는 내면적인 심리, 환청과 환영의 느낌을 살리기 어려운데... 뛰어난 장면화가 많았어. 무대와 조명, 음향이 어우러진 그림자극이랄까, 환상의 장면이랄까, 연출적으로 다채롭게 꾸민 장면이 많더 라구. 그런 장면은 긍정적으로 보게 되더군. 적당히, 정도껏이 중요해...

 

정진삼(비평)

판소리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해서,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정진쇠(전통)

뭐 그럴 수도 있지. 변별성이 강화될수록, 그 장르가 사랑스러워지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난 아직 판소리가 대중들과 창작자들이 서로 문제를 탐색하는 단계라고 봐.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과제지만, 대중들이 판소리에 빠져들지 않는 건 그 당시의 어려운 말이나, 요새 맞지 않는 공연 형식이라고만 느꼈는데, 판소리의 말들이 쉬워지고, 요새 형식을 들여와도 뭔가 어색한 지점은 여전하니까.

 

정진삼(비평)

판소리의 옷을 입은 육체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아니면 창작 판소리가 뮤지컬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지.... 뭐 그런 문제인가요? 그럼 다시 옛날 얘기를 해야 하나?

 

정진새(극작)

그런 건 아닌데....왠지 트로트로 세계평화를 부르짖고, 락으로 동요를 부르는 느낌 같은 부분이 있다는 거지.

 

정진삼(비평)

오히려 타루와 연출, 작가는 그 반대의 개념일 듯해요. 그간 타루는 동시대적 주제로 관객들을 수용하려고 했으니까.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시간을 파는 남자>,등등 모두가 현대적인 주제가 어떻게 판소리로 들려줄 수 있는가, 판소리가 어떻게 현대 주제를 품을 수 있는가, 이런 실험들이었잖아요. 이런 시도가 계속되다 보면, 어떤 주제든지 이야기든지 판소리화 되어, 들려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정진새(극작)

그렇기는 한데.... 아까부터 뭔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판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멈춰지면 안된다는 거지.... 작가만 그런 고민을 해서도 안되고...







 

정진삼(비평)

그렇다면 전통은 무엇일까요?

 

정진쇠(전통)

그렇다면 비평은 무엇인가...

 

정진새(극작)

어쨌든 우리는 동시대 부르주아 연극에 대해서는 반대를 해야합니다!

 

정진쇠, 정진삼

뜬금없이 뭔소리여....

 

사회자

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 합니다. 배가 산으로 가기 전에 마무리하는 의미로 좋았던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진쇠

난 연출에 한표

 

정진삼

난 배우들 연기에 한표

 

정진새

난 극작에 한표

 

사회자

이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서로 비겼군요... (뭔가 짜고 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제 연극, 뮤지컬, 연희극, 실험극 등등에서 적극적인 쓰임새를 보이는 우리 전통 양식 판소리는 ‘철 지난’ 유행이 아니라, ‘철없는’ 현상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집니다. 창작 판소리 2.0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지난 10년간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했던 우리 소리의 국가대표 ‘타루’ 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타루의 미래를 ‘오늘의 여신’ 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요? 그럼 <오늘 오늘이> 이야기는 이쯤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오늘 오늘이

2010 국립극장 페스티벌
2010 1008-1010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2010 서울연극올림픽
2010 1014-1015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오늘, 오늘이>는 제주도 무속신화 '원천강 본푸리'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쓰여 졌다.

메인 캐릭터 ‘오늘이’는 근래에 들어 발레, 어린이극, 동화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새롭게 재탄생한 한국 고유의 캐릭터이며, 특히 애니메이션 <오늘이(감독 이성강)>는 2004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2005시카고 국제아동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하는 등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는 제주도 신화 속 인물인 ‘오늘이’가 한국의 특수성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캐릭터임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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