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군대라는 동전의 뒷면을 이야기하는, 극단 '청년단'의<전방인간>

2010. 10. 27. 15:24Review


 

"사람 사는 곳은 외롭다. 그 곳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외롭다."
극단 '청년단'의 <전방인간>



글_조형석






참 이거 애매하다.
극중 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뭐꼬..." 배경도 군대요, 군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떳떳하게 공감할만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들에게는 어찌보면 숨기고 싶은 군대이야기일터이고, 여자들에게는 '그래, 저럴 수 있겠다'라는 공감의 끈을 이어주게 한 이야기이다.

사실 그렇다.
대부분의 군대이야기 하면 고생한 이야기, 축구한 이야기, 훈련받은 이야기, 골 때리는 후임 이야기 등 이거나, 멧돼지를 타고 GOP계단을 뛰어다니고,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북한군의 잠수함이 떠오르고, 두 눈을 감고 사격을 해도 백발백중이라는 시답잖은 무용담이 대부분이다.

재미있기야 재미있다만 이거 뭐 내용이 있을까.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 남자친구에게, 오빠에게 귀가 짜증날 정도로 들었을 이야기를 연극으로 또 본다고 생각을 해봐라. 웃음 빼면 남는 건 없을 터이니.
혹시라도 그런 이야기인가~? 하며 기대하고 이 연극을 보았다면 조금은 부끄러울지 모르겠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겠다. 군대라는 동전의 뒷면을 본 군대이야기.

 

 





 

 

어느 추운 겨울, 전방부대 경리과에 근무하는 전역을 한 달 앞둔 최웅재 병장과 그의 부사수로 온 동갑내기 정상현 일병이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기의 분수에 걸맞지 않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뭐든지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하는 정상현 일병, 그리고 이를 몸 상한다고 객기부리지 말라며 안쓰럽게 걱정하는 고참인 최웅재 병장은 단순한 후임에 대한 전우애와 관심이 아닌 사심이 담긴 '지나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 좁은 장소에서 과거의 상처와 재회하고 도피처에서 다시 한 번 도피를 꿈꾼다.

 

 




 


 

사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지나침'.
배우들의 연기도, 소재도, 공간도 지나치기 짝이 없다. 때문에 더 애절하다.

사실 연극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목에 힘을 주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인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극이 끝나고 서도 자연스럽게 스르르 흘러온 느낌이 아니라 한 장면 장면이 강하게 도장 찍히듯 뇌리를 스쳐지나간 기분이 든다. 왠지 꺼림직 해질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기억이 삽입된 기분이 들지도 모르니. 좀 더 심한 경우 역겨운 기분마저 든다.

허나 이야기 자체가 무게감이 잔뜩 실려 있어서 인지 <전방인간>은 그 '지나침'을 넘지 않았다.
다만 말 그대로 '전방'에 있을 뿐이다.

무대 위라는 좁은 공간에서 그리고 군대라는 격리된 곳, 그 중에서도 경리과 사무실을 배경으로 두 남자가 꺼림직 할 정도로 무대를 적절하게 잘 풀어냈다.

 







 

군대는 격리된 곳에서의 사회인 동시에, 협소한 공간에 여러 명이 함께 사는 곳이다.
이는 곧 내 개인공간의 부재를 뜻하며, 조그마한 실수도 쉽게 퍼져나가고, 내 행동 하나하나가 남들에게 주목받고 감시받는 곳임을 말한다. 그렇기에 사생활은 없으며 공동체만 존재한다.

사회는 갈수록 개인주의가 강해져 가는데 20년을 넘게 이렇게 살다 어느 순간 공동체에 적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공동체라는 건 너의 비밀을 내가 알고 내 옆 사람이 알고, 내 비밀을 여기에 속해있는 당신들이 다 안다는 걸 뜻한다.

극 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상현 일병의 숨기고 싶은 여자친구 이야기, 그리고 최웅재 병장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는 교환대 병사에 의해 공유된다. 그리고 이들이 그 사실과 맞닥뜨렸을 때,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숨이 멎을 듯 한 고통을 느낀다.











 

 

군대,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숨기고 싶은 내 과거의 상처를 상대방이 아무렇지 않게 들추어낸다면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그 상처에 떳떳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을까.

 


 










서로의 감추고 싶은 영역에 대한 침범과 더불어 다른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바로 동성애. 그것도 본능이 아닌 상처가 아물기 위해 감정이입으로 생겨난 동성애이다.

상처가 나면 진물이 나고 딱지가 지고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는 과정처럼, 최웅재 병장의 과거 상처는 정상현 일병이 나타나고 동성애란 의도치 않은 애정이 생기고 떨어지고 그리고 전역이란 이름으로 새 모습이 되어 세상에 나간다.

그 일말의 과정이 어찌 보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와 오버랩이 될지도 모르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남녀의 이루지 못한 슬픈 로맨스를 그렸다면 연극 <전방인간>은 상처와 재회를 군대라는 장소와 더불어 극적으로 풀어냈다.

 









 

배경을 보자.
군대라는 공간과 그리고 전방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그들에게 도피처를 말한다.
약에 미쳐 정신이 나간 여자친구를 둔 정상현 일병은 그 자체로 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최웅재 병장은 세상으로 부터 회피한다.
그들은 더 깊숙한 장소, 전방부대의 아무도 찾지 않는 경리과에서 만난다.
때는 추운 겨울이다. 겨울은 모든 것이 숨을 죽인 상태이다. 반면 저 어둠 밑에서부터 이제 곧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춥듯이 극중 두 남자의 갈등은 이들이 회피해온 모든 것들로 부터 다시 마주칠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영원한 도피처는 없다. 다만 현실과 직면을 조금 뒤로 미뤘을 뿐이다.
그렇게 피하고 싶던 모든 것들과 다시 얼굴을 마주볼 때, 쫓음과 도망이 끝나는 시점에 숨겨왔던 진실과 맞서야 하는 두려움은 극대될 것이다.

<전방인간>은 마음속에 생겨나는 이 갈등적 부분을 너무나 잘 살렸다.
더불어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은 극의 기승전결을 한층 극대화 시켰다.

 



 






무드셀라 증후군이라는 말이 적절할까. 아니 차라리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마초적 피조물의 결과가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대부분 군대는 결과적으로 미화되고 추억이 넘치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꼭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전방인간>이 아닐까 싶다.

내 가족,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한 이 땅의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이별과 고뇌, 성장이 모두를 담겨 엉켜있는 곳이 군대이다. 요즘 하도 비웃음을 사고 그 위상이 떨어져서 누군가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다만 말이다.

군대는 격리된 특수사회집단이지만 여기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람 사는 곳은 외롭다. 그 곳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외롭다.

군대라는 특수 환경 속에서 심리적 부담감과 공허함을 가진 23살의 최웅재와 정상현.
이들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비슷한 상처를 가졌고 또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두 남자의 갈등이 극에 치닫고 너무나 씁쓸히 서로에게 등을 돌리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최웅재 병장과 그의 흔적을 뒤로하고 그곳에 남은 정상현 일병.

어찌 보면 최웅재 병장은 자신과 닮은 모습에 정상현 일병에게 애착이 갔을 지도 모르겠다. '너는 내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상현 일병은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자꾸 들 쳐지는 것에 그리고 자신과 다르나 같은 상처를 가진 최웅재 병장의 끝을 보면서 더욱 발버둥 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극중 둘의 모습이 흔히 우리가 아는 군인의 표준과 매우 다른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지나침'이라는 뻣뻣한 핏대를 세워서 그리 비춰질 뿐, 주목해야 할 점은 두 남자가 그 유쾌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상처와의 재회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가이다.

나는 과연 내 삶에 있어서 부끄러운 사실들과 상처들을 당당하게 쳐다볼 수 있는 그런 전방인간의 모습일까. 아니면 전방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대피처에 숨은 사람일까.


극의 마지막, 눈이 내리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극단 청년단 - 전방인간
2010 1013-1017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전방부대에서 전역을 앞둔 최웅재 병장은 갓 상급부대로 전임온 정상현 일병을 자신의 부사수로 받게 된다. 군대라는 외로운 공간에서 2명의 군인은, 처음엔 선임과 후임으로, 그 다음엔 친한 친구사이로 발전해간다. 하지만 눈 덮인 전방부대 행정실에서 매일 밤을 업무로 보내는 그들의 관계는 점점 알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해간다. '전방' 부대에 몸담고 있지만 그 내면의 풍경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변방'일 수 밖에 없었던 23살 두 남자. 관계에서 죄책감으로. 또 관계에서의 패배감으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던 두 남자. 군복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주먹 안에 든 것이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를 시간. <전방인간>으로 청년단은 두 군인이 함께 보냈던 짧지만 뜨거운 밤을 선보이고자 한다.



 

필자 소개

해태 조형석.
잘하는 건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아!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신도림역에서 1등하는 거.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는 필자는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아싸! 오늘도 1등! 뭐 맨날은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