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나를 멈추게 하려거든? '내 심장을 쏴라'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나를 멈추게 하려거든? '내 심장을 쏴라'




글_ 조형석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다.

 

 

"지금의 20대는 이미 현실적인 배틀로얄게임에 들어 서 있고, 10대는 입시를 둘러싼 배틀로얄 게임에 들어 서 있다... 극렬한 경쟁속에서 20대가 부딪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동기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는 이 싸움을 자신들끼리의 경쟁 즉'세대 내 경쟁'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그들의 싸움은 경쟁의 범위와 규칙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무한대의 경쟁 즉'세대 간 경쟁'에 편입되어 있다." 우석훈 박사의 <88만원 세대> 중 대목이다.

 

 

찬양에 마다하지 않던 그 뜨겁고 열정적이고 냉철하며 활력이 넘치는 청춘들이여. 그대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끊임없는 고동소리를 가둬두지 않았는가. 무한경쟁의 시대가, 약육강식의 환경이 우리를 귀를 막게 하고 눈을 멀게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청춘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도망치고 숨고 타협하는 동안 청춘이란 단어마저 어느새 생소하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바로 동명의 원작 소설 <내 심장을 쏴라>를 무대 위에 올린 극이 1시간 40분가량 되는 런닝타임 동안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정신분열과 공황장애를 겪어 지난 6년간 정신병원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온 수명은 가족 간 유산 싸움에 밀려나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25살 동갑내기 승민이 수리희망병원 501호에서 만나게 된다.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며 도망치듯 살아온 수명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늘 탈출을 꿈꾸는 승민과 만나면서 자신을 억압해오던 현실에 당당히 맞선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여서인지 전체적인 극의 짜임새가 매우 훌륭하다. 특히 극 진행 중 이수명의 독백이 같이 진행되는 부분은 무척 재밌다. 독백은 배우가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시켜 극의 재미를 한층 더하는데, 솔직한 대사 전달이 무척 와 닿았다. 극중 수리(repair와 같은 뜻이라 생각된다)라는 명칭이 자주 나타나는 점도 숨은 재미였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진행에서 기승전결이 군더더기 없이 펼쳐져 관객들의 이해를 깔끔하게 도왔다고 평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무대자체를 충분히 살렸다는 점에서 연출력이 돋보였다 할 수 있는데, 아마 굵직굵직한 제작 스테프들의 참여가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 몫 하였을 것이다. 배우들의 슬로모션 표현이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서 관객의 웃음을 자극하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말하자면 먼저 영상의 첨가이다. 물론 극의 중간 중간 영상의 첨가가 관객들의 이해를 높였다고 할 지어도, 상상력의 고정, 그리고 시선의 분할로 인한 산만함과 영상 없이도 이야기가 충분히 잘 이루어졌을 거란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또한 많은 배우들의 무대 장악은 이야기의 진행에 집중하기 어렵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만 나온 것도 아쉽고 많은 분량의 책 내용을 줄이다 보니 배우들끼리의 대사가 때때로 어색하다고 살짝 느껴진다. 쉽게 말하면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거리감이 들었다고 할까. 허나 분명한 건 전체적으로 조율이 매우 잘 된 작품이란 것이다.

 






 

정신병원이란 배경에서 보이다 시피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권력이란 소재가 극에 얼마만큼 이용될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사회에서 우리는 각종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그러다보니 꿈도 희망도 그 불꽃을 잃어버렸다. 그 권력으로 부터의 반항, 그리고 가슴 깊숙이 잠자던 희망을 찾아 떠나는 모습이 극이 담고자 하던 우리들 현실의 희망사항일 게다. 사회에서의 권력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 최간호사와 윤간호사, 그리고 점박이이다. 끊임없이 병자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점박이와 그런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듯하나 규칙만 따르는 그와 다를 바 없는 최간호사, 그리고 환자들의 기분을 고려치 않고 독특하게 다루는 윤간호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씁씁 하다. 반항하지 못하는 절대적 사회 권력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런 그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승민의 모습은 세상과 타협을 오래전 끝낸 사람에게는 돈키호테로 비춰질지언정 이제 타협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는 영웅의 모습이기에 통쾌하기도 하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려는 자유는 인간의 본능중 하나이고, 억압된 것으로 부터의 탈출은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기 때문에.

 



 

인물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춰 보자.

이수명이란 사나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정신분열과 공황장애를 겪는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로 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꾸만 보호막을 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그에게 사실(사실의 이름을 쓴 거짓)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건드는 이 하나 없는 정신병원에서 청춘을 보낸다. 갈 곳 없는 사회에 그가 숨 쉴 수 있는 장소는 오직 그 곳 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온전한 삶으로의 돌아오게 되는 원인이 있으니 바로 유승민과이 만남이다. 이수명에게 자신의 삶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자극 시켜준 유승민은 이수명과 반대로 작은 억압에도 크게 반응한다. 그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타의에 의해 이곳에 감금되었지만 이곳에서 꿈을 찾아 끊임없이 탈출하려 한다.
 
희망이란 것은 빠른 전염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그의 주변에 희망 바이러스가 퍼져나간다. 각기 아픔만 가득한 그곳에서 그로 인해 이수명은 그가 도망치려 하던 진실과 맞설 용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희망은 전염되어 청소부는 중학교 수학문제를 풀고 즐거워한다. 할아버지 만식씨는 승민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살기도 하며, 거리의 악사는 다시 하모니카를 들게 되고 Chubby checker의 let's twist again이 병동내 울려퍼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밀로스 퍼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주인공 맥 머피(잭 니콜슨역)와 오버랩된다. 비록 맥 머피와 정신병원에 오게 된 경위와는 다르지만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서도 맥 머피의 정신병원 등장은 그 곳에 모든 이에게 희망이란 치유를 선사해 준다.

유승민의 등장과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수리희망병원의 모든 이들에게 타의에 의한 물리적 치유가 아닌, 자의에 의한 심리적 치유의 씨앗을 심어준다. 점박이나 다른 간호사들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유승민과 그에게 고무되어 처다 볼 수 없었던 진실 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이수명의 모습은 맥 머피와 마지막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인디언 추장의 모습과 분명히 겹쳐 보인다.

 


 






이번엔 극 중 숨겨져 있는 자유를 뜻하는 오브제에 빛을 돌려보겠다.

첫 번째로 보트타기이다. 날 막는 어떠한 신호등도 없는 자유의 길 위에 보트가 있다. 강한 치료와 고통에 시력이 더욱 악화된 유승민은 이수명과 함께 유원지 청소를 하러 나가게 된다. 그들을 인솔하는 간호사는 점박이. 시종 그들을 압박하는 말투와 행동으로 위협하지만 이수명과 유승민은 점박이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그를 물리치고 보트위에 몸을 맡긴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이 장면, 배우들의 실감나는 액션과 슬로우 모션은 충분히 관객들의 기분을 환기시켰다.

두 번째는 유승민의 꿈, 글라이더이다.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 그 어떤 기계적 장치 없이 넓은 천과 막대기 끈으로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글라이더는 눈이 멀기 전 마지막 비행을 꿈꾸는 이수명에게, 또 유승민 뿐만 아니라 수리희망병원의 모든 이들에게 자유에 대한 표상으로 대입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오브제들를 통해 극은 그들의 대사전달을 극대화 시켰다는 점이다. 보트를 타다 간호사들에게 잡혔을 때, 승민은 이런 말을 한다. "나를 멈추게 하려거든 내 심장을 쏴라". 글라이더를 타고 승민이 멀리 하늘을 날아갈 때, 수명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내 심장이 뛰는 시간이 진짜 내 시간이라고!"

 






1시간40분가랑 되는 시간 동안 책속의 많은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분명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귀를 막고 숨어있는 청춘들에게 고하는 이 연극의 묵직한 이야기는 어느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란 사실이다. "나는 과연 내 삶에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가?" 이 말이 어떠한 격언이나 속담보다도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 중 대사처럼 내 심장이 뛰는 시간이 진짜 내 시간이라는 것을 이 연극을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전달된다.

 

 

청춘에 있어서 땔 수없는 필수적인 원소가 있다면 바로 자유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외세나 강압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유의 끊을 놓아 버리고 사회의 풍파속에 몸을 던져 버리고 있다. 그리고 꿈을 꾼다. 내 심장과 연결 되어있던 저 끈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 비록 우리가 월 평균 88만원의 비정규직이라는 목걸이를 걸고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속에 던져질지언정 그 목걸이를 끊어버릴 힘조차도 없다면 너무나 불행하지 않겠는가.

 

 

모든 청춘은 당당하고 떳떳해야 할 이유가 있고 권리가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어떠한 억압이 있을 지라도 그 억압으로 부터 눈을 부라리고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후에야 알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를 잃어버린 청춘들과 자유를 꿈꾸는 것 마저 잃어가는 우리에게 극은 당당히 외친다. "나를 멈추게 하려거든 내 심장을 쏴라". 그리고 청춘을 잃어버린 자에게 던진다. 다시 한 번 흔들어 봅시다. let's twist again!

 





남산예술센터 2010 시즌 프로그램 - 내 심장을 쏴라
2010 1007-1024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친다.
이 작품은 분투하는 한국사회의 20-30대 청춘들에게 바치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제 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한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두 남자의 탈출소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두 주인공을 통해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젊은 시절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일깨우고자 한다.



  

필자 소개

해태 조형석.
잘하는 건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아!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신도림역에서 1등하는 거.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는 필자는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아싸! 오늘도 1등! 뭐 맨날은 아니지만요.





 

  1.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연극이었어요. 책도 함 읽어보구싶네요

  2. 저는 책을 인상깊게 봤던지라, 처음 공연화 된다고 들었을 때 굉장히 두근거리며 봤었어요. 워낙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많아서 생략된 건 슬펐지만ㅜ 꽤 탄탄한 구성이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