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몸말프로젝트「바디 모놀로그」- 싸우려고 들이댄 총구 앞에 꽃을 내밀다

"도대체 내 각막에 씌워놓은 현대예술이라는 찬 덮개를 말이오.
 씌워놓은 자가 어여 와서 도로 가져가라."

몸말프로젝트「바디 모놀로그」
- 싸우려고 들이댄 총구 앞에 꽃을 내밀다




글_ 김바리






공연을 보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씁니다.


1.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일에서 ‘읽는 행위’자체가 중요해졌다.
글자가 열을 맞추어 리드미컬하게 종이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글자가 글이 되고, 글이 의미가 되고, 의미가 느낌이 되어 내 심장에 내려앉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격하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격하게 두근대는 가슴으로 읽어 내려간 ‘책’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책을 먹고 바로 싸버렸나.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찾고 턱과 이빨을 무척이나 딱딱 부딪히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책을 먹었나.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은 ‘바라보는’ 것.
바라보지 않는 것은 가슴에 남지 않고 가슴에 남지 않는 것은 머리속 찌꺼기가 되더라.

그래서 쓰기로 했다.
내 눈이 본 것을.

 

 

2.
바디 모놀로그.
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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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혼이 없는 몸, 허연 몸 인형들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여자의 몸이 있었고, 여자의 이야기가 있었고, 여자의살이 있었고, 여자의 움직임이 있었다.

공연자들이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를 일기를 읽어 내려가는 형식으로 고백하듯이 말한다.
이야기는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 그리고 과거와 현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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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연을 보면서
처음엔 슬그머니 반발했다.
내가 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가.
당신들이 말하려는 것은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만의 특별한 고민이 아니라는 것 아닌가.
너도 그랬구나.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과 일종의 연대를 끌어내기 위함 아니던가.

동조하기 싫다.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반항하기 시작했다.
내 귀는 내 마음은 내 눈은 이미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져서 외면한다.
본능적으로 털을 돋우고 가시를 세운다.
사랑방에 둘러 앉아 수다 떨고 치유 받는 여자여자여자이고 싶어서 여기 온건 아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내 안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퍽퍽 탁 툭 치익 퍼억 투더덕. 으악 으아악
본인이 연극배우라는 여자의 사연에 고개를 끄덕 거리며, 저건 내 얘긴데 하면서도!

퍽퍽퍽 치익 빡.
퉁퉁한 배우의 몸 앞에, 그녀의 이야기 앞에 눈물이 고였으면서도!
팍팍 쿵 크덕 컥 커억.

체중계위에 앉아있는 네 여자의 모습에 빙그레 웃었잖니!
악악악악 아아아아아악.
엄청 얻어 터졌다.
씨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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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런데.
어쩌면 이 공연 안에는 어떠한 위로와 위안의 의도, 없었는지 모른다.

아니 있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것도 가장 진솔한 자신의 몸 이야기를 토대로 사람들과 만나려는 것 뿐.
문제는 위로를 받지 않으려는 나한테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자와 몸, 그리고 살의 일기.
이 세 가지 코드의 전형성을 안고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 보려고 한 자는 나이고 처음부터 전형성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몸을 대상화시켜서 용기 있게 보주고자 한 자는 저들이었다.

싸우려고 들이댄 총구 앞에 꽃을 내밀다.

 

 

 

 


6.
도대체 내 각막에 씌워놓은 현대예술이라는 찬 덮개를 말이오.
씌워놓은 자가 어여 와서 도로 가져가라.
잠들기 전에 분명히 빼놓았는데 아침에 허둥지둥 집을 나서고 보면
다시
눈에 차악 달라붙어 있단 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 현대예술의 망령.
세련됨으로 곧장 나아가라는 누군가의 목소리.
닿으면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존재하라는 애원의 목소리.
그렇게 날카로움을 바라다가 나의 눈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무엇을 보기만 해도 피를 내고 마는 칼날을
눈에 달고 만 것이다.
그 날은 결국 내 눈을.

 

   

7.
거식증에 걸렸다던 공연자의 일기가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어렸을 적부터 뚱뚱한 적 없이 스스로 먹을 것을 잘 조절하던 그녀가
어느 샌가 먹는 것과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곱기 만한 그녀의 얼굴과 몸은 전쟁 중이다.
세상은 전쟁 중이다.

 

8.
비현실적으로 하얗고 마른 여자가 말하길.
공중목욕탕엘 갔더랜다.
목욕중 이던 아줌마들이 그녀에게 조금만 더 살이 있으면 보기 좋겠다며
당신도 아가씨 때는 그녀 몸 같았다고 하더란다.
이 얘기를 옆에서 듣던 여자가 말한다.
나도 아가씨인데.
여탕은 과거와 현재의 몸들이 전쟁 중이다.

 

 

9.
김칫국물 같은 토마토 으깬 물에 얼굴을 처박은 여자.
핏물 같은 붉음을 툭툭 떨구며
자신의 몸처럼 하얗고 차가운
냉장고 안으로 들어간다.
엄마 품 인양.
하얗고 차가운 것 안으로 붉고 따뜻한 사람이 들어갔다.
폭발할까. 얼어붙을까.

 

 

 

 
10.
이 공연을 연출한 정옥광님에게 박수를.
이 용감한 출발이 칼날 박힌 눈들에 흔들리지 않길.
부디 계속 가길.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고민을 자신의 이야기로 푸는 지금에서 나아가
너의 이야기를, 그녀의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를,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따듯한 마음으로
당신의 맑은 눈동자로
품고
풀어주길.
바래도 되죠.

 

 


몸의 말을 듣고 몸으로 말하다 - 바디모놀로그
2011 0113 - 0119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

바디모놀로그 Body Monologue 에 대하여
바디모놀로그는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몸에 관한 기억을 더듬고, 재구성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연극배우, 무용수, 일반인(청소년)이 함께 몸짓의 다양한 결들을 탐색한다. 살이 쪄서, 너무 말라서, 혹시 여기서 더 찔까봐, 만성적인 폭식 때문에 경험하게 되었던 출연자들의 사연이 솔직하게, 혹은 은유적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벌거벗은 여배우>, <휴가와 휴가 사이>, <한밤의 러닝머신> 등의 소제목을 단 짧은 에피소드들이 플레이백시어터(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즉흥으로 보여주는 연극 형식)기법을 통해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주를 고르면서도 칼로리를 계산한다. 체중이 불어나면서 외모가 달라진 자신을 남자친구가 떠나갈까봐 히스테릭해진다. 극 중 역할과 상관없이 자신의 외모를 비난하는 관객들 앞에서도 끝까지 연기를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사랑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이들은 조금만 살이 빠지면, 조금만 더 예뻐지면, 결국 '내가 조금만 더 나아지면' 그런 인정과 수용, 사랑을 내가 원하는 대상으로부터 받을 수 있고 자신감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누군가는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을 보지 않는 사람들, 사회의 시선 때문에 고통스러워 한다.
이 작업은 자신의 존재감(자기를 믿는 것,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 자기와 더불어 사는 것)을 흔드는 타자의 시선, 그리고 결국은 내면의 시선을 끈질기게 찾고, 질문한다.

어쩌면 더 잔인한 것은 나를 나일 수 없게 하는, 내 안에 있는 나 아닐까…


 

연출의도 – 정옥광

낮에는 샐러드와 요거트로 가볍게 먹었는데, 간식으로 기름이 잔뜩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중략)…몸이 가벼워진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지 칼로리가 높은 것을 먹어버렸다.
다시 다이어트를 하자. …(중략)…네 시 이후에는 먹지 말자. …

-옥광, 2007년 7월 13일, 기름진 샌드위치만큼의 잡다한 생각들. 여행기 중에서-

다이어트diet는 die_로 시작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 과정이 죽도록 힘들거나, '사회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거나. 그런 절박함이 다이어트라는 단어에는 있었다. 너무 흔하지만, 막상 이 세계에 들어와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들은 단지 살을 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어떤 관계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 관계들의 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무용수들을 통해서, 그들이 치뤄 온 자신의 몸의 이야기들을 무대 위의 언어로 빚어내도록 하고 싶었다. 

3년 전, 여러 가지 연유로 폭식증을 경험했습니다. 명치와 갈비뼈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먹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스스로도 많은 놀라움을 겪었습니다.  비상식적이고 괴물 같은 먹는 행위에 비례해 매번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혐오도 뒤따랐습니다. 멈추고 싶었지만, 일단 시작되면 제어가 힘들었기에 점차 그 감정들은 두려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의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부끄러우면서도 안쓰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몸의 형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내 자신을 알고 있기에 그 때의 이런 고민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이해하면서도,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했던 그 무엇 때문에 다른 어떤 일상의 경험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 동안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그들로부터 비슷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롭고 막막하면서도 어느 누구에게 섣불리 말할 수 없었던 고민들을 털어놓으면서 '내가 괴물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살이 빠지고 찌고, 많이 먹고 적게 먹는다와 같은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행동 안에는 사실 굉장히 여러 갈래의 경험 기억들이 얽혀 있고 관계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뇌 한구석에 있다고 추측하는 박제된 기억이 아니라, 우리 몸의 세포들이 증언하는 현재로서의 경험들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말_해_내는 집단을 꾸리고자 합니다. <몸말: Body Monologue>라는 이름을 붙인 이 집단은, 일종의 지지모임이기도 합니다. 다이어트, 폭식, 거식과 관련된 자기 경험을 돌아보고, 스스로 몸과 관계맺는 방식을 새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여성들의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몸의 기억을 탐색하는 움직임 시간과,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시간, 상징 이미지를 퍼포먼스나 연극놀이의 형태로, 혹은 그림으로 다시 풀어내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장르와 관계없이, 모여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몸을 만나고, 결국은 함께 손을 잡고 이 경험들을 견디어나갈 수 있는 든든한 지지 그룹을 상상합니다.

 

 ‘몸말프로젝트’소개

Body & Talk Project
2008년도에 시작된 '몸의 말을 듣고, 말하는' 프로젝트. 다이어트와 섭식장애는 특히 여성들이 몸을 치열하게 겪어내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몸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정옥광(몸말프로젝트 대표)는 주변 인물들을 하나 둘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이 때 관심을 보인 여섯 명(임은주, 윤가은, 박영, 복태, 전영지, 신효진)이 모여서 몸을 테마로 한 워크샵이 본격적으로, 1년간 진행되었다.
독한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했던 사람, 살을 10kg이상 빼고 난 후 보인 주변 사람들의 반응, 다시 살이 쪘을 때 느꼈던 감정들, 마음 속에서 끊이지 않는 목소리 등등 남들에게 잘 하지 않았던 속이야기를 수다로, 글로, 그림으로, 움직임으로 풀어내면서 힘겹고도 든든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 이야기들은 '얼마나 다이어트를 열심히 했는가'에서 시작해서 '연애'와 '인간관계', '몸의 감각들', '자기를 수용하는 것', '가족' 등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갔다.
지금은 비밀을 공유하기라도 한 듯 애틋한 사이가 되었고, 이 멤버들 중에서 몇몇은 서로 만나서 다른 작업을 같이 하기도 했다. 매 년 송년모임에서 언젠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몸말창작극을 꼭 만들자는 도모만 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드디어 2010년 상상마당 두드림 공모에 통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벌렸다.
이 몸말프로젝트는 문을 열어두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과 함께 자기의 몸의 역사를 기억하고, 존중하고, 재해석하고, 표현해 내는 작업을 여러 가지 창작의 통로로 지속할 것이다.


연출/안무: 정옥광
드라마터그: 이소연
출연: 박영, 황미영, 현지예, 윤채영
전시작가: 임은주, 윤가은
음악감독: 연리목
조명감독: 나선애
무대감독: 전기송
영상: 곽인호
사진: 정문범
그래픽디자인: 허은영
기획: 조경미

 

필자소개

김바리   
공연을 연출하고 안무한다.

즉흥그룹<임프로드 바닥>의 일꾼이자  춤꾼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글쓰고 무언가를 만들며

사람으로의 진화를 꾀하는 중이다.
imthink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