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춘천낭만시장 이야기 - ① 프롤로그 "만나서 반갑습니다"

2011. 2. 21. 15:09Feature

* 인디언밥에서는 춘천낭만시장 프로젝트의 연재를 하고자 합니다. 춘천낭만시장 프로젝트는  2010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산업에 선정되어 '낭만극장' , '낭만광장', '낭만투어' 등의 활동으로 시장의 정서와 함께 가는 문화예술활동으로의 고민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에는 낭만살롱의 '낭만도히'가 시장문화기획자에서 시장딸로 변화하는 그 과정과 일상이 공개가 됩니다.




춘천낭만시장  이야기
- ① 프롤로그  "만나서 반갑습니다"


글_ 도히



지난 주말 평창 감자꽃스튜디오에서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라는 팀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Nice To Meet You>라는 공연을 했는데, 거기 나온 얼굴 긴 풍선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옛날에 수염이 아름다운 할아버지가 살았고 그 수염이 너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왕에게 불려가기까지 했는데, 왕이 물으시길 "잠 잘 때 수염을 이불 안에 넣고 자느냐, 밖으로 빼고 자느냐" 그러니 할아버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답하고 싱겁게 돌아와서 밤에 잠자리에 들려는데 수염을 이불 안에 넣으면 답답하고 수염을 밖에 빼려니 허전한 게 생전 처음으로 수염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나.

 

아무튼 며칠 전 들은 이야기인데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럼에도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본문을 시작하려는 것은 인디언밥을 계기로 떠올려본 나의 지난(2010년) 봄이 딱 저 수염 짝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제 들은 이야기도 기억나지 않는 나의 정신머리를 연재 시작 전에 슬쩍 피력해놓고자 함이다.)


"안녕하세요."를 하는데, 고개만 숙이면 되는지 허리를 90도로 구부려야할지 웃을 때 입모양이 어색하진 않은지 손은 앞으로 맞잡을지 영감처럼 뒤로 잡을지 눈을 마주치는 게 좋을지 인사하고 바로 지나가도 되는지 "날씨 좋죠?"라고 말이라도 한마디 덧붙여야하는지. 인사 한 번 하는데 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던지 이선철 대표님이 칭찬해주신 나의 사람을 대하는 에티튜드는 다 어디가고 그저 진땀만 남은 채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팀장님만 원망하고 있었다. 그게 2010년 5월이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페스티벌)와 인디언밥을 손에서 놓고 잠시 홍대 Bar에서 머무르던 작년 봄, 지도교수인 감자꽃스튜디오의 이선철 대표님은 자주 Bar에 들르셨고 나는 감자꽃스탭들을 하나둘 알게 되었으며 지나는 말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같이 하겠냐는 제안을 받은 며칠 후 기네스 3캔과 함께 춘천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석수나 광주, 전주 등을 다니며 예술시장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는데, 춘천으로 떠나는 결정이 필요했던 그 때 가장 큰 고민이 되었던 게 바로 그 '예술시장'이었다. 반년이상 머물러서 더욱 깊이 알게 되었지만, 시장은 문화로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오랜 삶의 터전이다. 그것이 좋은 모습을 갖추든 말든 머물던 누군가에게 그 변화는 중요치도 않고, 좋게 해준다는 그 말 또한 쉽게 믿어지지도 않는다. 나 역시 그들의 반응을 의심이나 텃세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기에 시장사업이 쉽지 않은 것이다.


 

춘천낭만시장



예술가도 기획자도 상인도 각자의 역할이 있고, 해온 시간이 있고, 추구하고픈 방향이 있다. 세 개의 톱니가 맞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으며 기획자가 우격다짐으로 끼워 넣어 금방 탈날 것이 빤히 보이는 시장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웠고, 또 중요한 한 가지는 춘천낭만시장은 예술시장이 아닌 문화관광형시장이라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의 차이나 무엇이 무엇을 포함하느냐의 관계 논란은 나중으로 두고, 그저 나의 목표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고 여전히 희망을 놓지 못하는 전통시장의 주인들이 문화를 매개로 다시 주인자리를 꿰차게 돕는 것이었다.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예술을 파는 시장 만들기가 아니라. 기획자도 예술가도 그 목표를 위해 이곳에 동원된 것일 뿐, 그러나 그들의 주인자리를 찾게 하기 위하여 우선 우리가 주인이 되어야 했다.

 

 

쭈뼛거리며 어색한 인사를 건 낸지 두어 달 째, "이 시장의 정서를 알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시장사업에 있어 불만인 상인분의 질문이었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보통의 시장이 아닌 춘천중앙시장만의 정서를 깨닫지 못하면 프로젝트의 계획이 아무리 삐까뻔쩍해도 결과물은 겉돌게 될 것이며, 또한 어쩌면 가열 차게 인사만 해대던 나의 속내를 들켜버린 것이기도 하기에.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 역시 시장을 진심으로 대하기까지 결국 반년이상이 필요했고, 시장에 겨울이 물들던 즈음에야 시장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장문화기획자 낭만도히'라는 공식 타이틀 말고, '시장딸 도히'가 된 그때야 춘천중앙시장도 춘천낭만시장으로의 변화에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춘천낭만시장은 시작되었다.

 

몇 년 전 다원예술현장연구를 위해서 광주대인시장에 갔다가 만난 매개 공간 미나리 대표님을 내내 잊지 못했다. 시장 분식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다가 어색하게 뒤돌아보던 그 분은 ‘매미대표님’보다 ‘시장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쇼핑을 하던 아가씨가 시장에 와서, 시장 옷을 입고 시장음식을 먹고 시장어머니들과 수다를 떨고 그렇게 시장에 살며 시장사람이 되고 보니 이제야, 시장아저씨가 된 매미대표님이 이해가 된다. 누구보다 시장주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들처럼 되어버린 그 마음을.

 

여름엔 지량이 와줬고, 겨울엔 프린지의 고임과 혜연이 와주었다. 서울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온다는 의미는 지역으로 내려온 내게 생각보다 큰 응원이었다. 그들은 알까….

여름의 나와 겨울의 나는 달랐고, 여름의 시장과 겨울의 시장도 달랐다. 그리고 결국 난 지금 시장에 남아 있다.

 

인디언밥의 제안을 받아들며 ‘독립예술’은 책임 못 진다고 미리 말해놨으니, 나는 이제부터 시장사람들이 만난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시원히 털어놓으려한다. 시작에 앞선 긴 썰풀이는 이제 시작해야할 글들의 밀림방지용이며, 응원을 위해 여름의 지량과 겨울의 고임, 혜연처럼 시장의 봄에도 낯선 사람들이 와주길 바람이다.






춘천낭만시장

춘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춘천중앙시장’은 중소기업청의 2010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문전성시)에 선정되어 <춘천낭만시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평범한 전통시장에 문화의 옷을 입혀 새롭게 태어난 생활 속의 문화 공간 입니다.

<춘천낭만시장>에서 낭만도시 춘천의 문화가 모이는 ‘낭만극장’을 만들고, 사람들이 모이는 ‘낭만광장’이 생기고, 즐거운 시장구경 ‘낭만투어’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발걸음을 시장으로 이끌고 시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을 찾는 새로운 재미를 제시하는 춘천의 관광명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 <춘천낭만시장> 프로젝트 소개

1. 낭만극장 – 시장 제1공장 아케이드 아래 99m 통로를 활용해 문화 공연, 전시가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시장의 문화적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공간

2. 낭만광장 -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공간과 낭만시장이 개발한 먹거리도 즐기고 시장의 골목 갤러리, 벽화, 사진전 등을 보며 시장 곳곳에 머무르는 재미를 제공하는 공간

3. 낭만투어 - ‘시장문화체험 투어’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타겟을 위한 관광코스를 소개하고 시장의 이야기가 담기 지도와 기념상품을 개발하여 시민들에게 시장을 새로운 관광지로 소개하는 프로그램




필자소개_ 도히

춘천을 고향으로 초중고, 대학교를 마친 후, 문화기획자의 꿈을 키우며 서울에서 대학원 진학과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기획자로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2010년 봄, 춘천낭만시장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어머니의 일터이자, 어린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시장에서의 문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이번 프로젝트의 PC이자 교수님이셨던 이선철 대표님의 추천에 힘을 얻어 춘천낭만시장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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