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 ‘동네연극’은 ‘연극동네’보다 소중하다!


「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 ‘동네연극’은 ‘연극동네’보다 소중하다!

 
글_ 남궁소담 (생활연극네트워크)



‘동네’라는 단어를 발음하여 본다. 둥글게 울리는 소리가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하다. 과연 ‘동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언제였을까? ‘내 집’ ‘옆 집’ ‘201호’ 같은 말은 익숙해도, 그 전체를 가리키는 ‘동네’라는 말은 익숙지가 않다. ‘개인 중심’의 도시생활을 해온 까닭이다.

이 따뜻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동네’라는 단어가 들어간 연극 축제가 열려 찾아가 보았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린 ‘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다. 지난해 ‘시민연극축제’로 열렸던 것을 올해부터 ‘동네연극축제’로 이름을 변경했다고 한다. 낱낱을 일컫는 ‘시민’이라는 말보다 전체를 아우르는 ‘동네’라는 말이 연극과 아주 잘 어울린다. 연극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공동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동네 놀이터’ 같은 성미산마을극장

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참가작인 안산연극소 유혹의 연극 <억척어멈과 외상리 마을 사람들>을 관람하기 위해 성미산마을극장을 찾았다. 이웃과 더불어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성미산마을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해온 터. 그러나 실제로 가보기는 처음이다. 성미산마을은 행정구역상의 이름이 아니라 성산동·서교동·망원동 등 성미산 인근에 거주하는 1천여 명의 주민들이 이룬 일종의 커뮤니티다. 마땅한 조직 없이 ‘공동육아’ ‘공동교육’ ‘공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 근방의 모두가 성미산마을사람들인 것이다.

성미산마을극장이 위치한 건물 ‘나루’는 공간의 구성 자체가 그곳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작은 까페가 있고, 작은 도서관이 있고, 작은 극장이 있는 건물은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성미산마을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마을극장이 생긴 것은 2009년 2월. 그간 연극제, 영화제,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이 열렸다고 한다. 아담하지만 공연 한 편 올리기에 맞춤한 이 ‘마을극장’은 어딘지 동네 놀이터를 닮아 있다. 누구나 찾아와 신나게 놀 수 있고, 놀다가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도 될 수 있다. 지역 곳곳에서 나름의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공연을 하고, 보고, 함께 느끼는 공간으로서 성미산마을극장은 ‘연극 놀이터’라는 작지만 큰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참가작 - 연극동아리 초연 '여행을 떠나요' 공연 실황

 

‘억척어멈’이 보여주는 우리 주변의 작은 전쟁

‘안산연극소 유혹’은 2007년 8월 안산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주부연극교실’ 수료생들이 주축이 된 ‘주부극단’이다. 연극의 매력에 빠진 주부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연극으로 ‘유혹’하겠다”는 뜻으로 뭉쳐 현재 10여 명이 왕성히 활동 중이라 한다. ‘생활’과 ‘연극’을 삶 속에서 함께 가져간다는 점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생활연극네트워크관련글링크’의 활동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연극에서 하는연극으로’ 공연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전락한 연극을 본래의 주인인 대중들(관객)에게 되돌려주자는 서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생활연극네트워크 역시 회사원, 학생, 전업주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생활과 연극의 경계에 서서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안산연극소 유혹의 <억척어멈과 외상리마을 사람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으로, 작은 시골마을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 제아무리 대형마트가 나타난다 해도 ‘단골’ 동네 슈퍼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던 마을사람들은, 대형마트의 ‘6개월 외상정책’과 ‘각종 할인제도’에 현혹되어 종국에는 ‘마트 없이는 못 살’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산업자본이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며,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브레히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으되 ‘억척어멈’의 역할만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두 작품 속 억척어멈은 ‘시대를 억척스럽게 헤쳐 나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이 전쟁으로 자식들을 잃고도 여전히 군수물자를 팔며 전쟁 속의 이익을 누리는 모순된 인간을 보여주었다면, 외상리의 억척어멈은 마을사람들이 ‘소비’에 혈안이 되어 자신을 돌보지 않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영민하게 대처하여 마트에 생산품을 납품하고 부를 축적한다. 그러니까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이 ‘왜 저렇게까지 억척스럽게 살아가나’ 싶은 비판의 대상이라면, 외상리의 억척어멈은 ‘억척스럽게라도 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외상리의 억척어멈은 시대의 패러다임에 잘 적응한 인물로, 오히려 ‘너무 잘’ 적응한 모습에서 연민마저 느껴진다.

대형마트가 들어와 작은 가게들이 운영난에 허덕이고 결국에는 파산을 맞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안산연극소의 <억척어멈과 외상리 마을 사람들>은 브레히트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이곳·우리’의 이야기를 전하여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안산연극소 유혹 - 억척어멈과 외상리마을 사람들


 

‘주부’들이 ‘주부’ 연기해

10여 명의 배우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여성이었다. 그들은 실제로도 주부이면서 극 중에서도 주부를 연기했다. 문득 주부가 주부 역할을 한다면 더 쉬울까 어려울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되니 쉬울 것도 같고, 같은 주부라 해도 처한 환경은 모두 다르니 결국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어려움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산연극소의 배우들은 아마도 후자의 입장이 아니었나 싶다. 조금은 과장된 연기, 부자연스러운 동작들이 그런 고민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

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에는 안산연극소 외에도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의 ‘우리두리 인형극단’, 서울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극단 시민연극교실’, 지역의 다양한 세대들이 모여 만든 연극모임 ‘동네극단 우이동’, 성미산마을극장과 극단 드림플레이가 주관하는 청소년 연극동아리 ‘성미산 유스시어터’와 성미산마을사람들이 주축이 된 마을극단 ‘무말랭이’ 등 소위 ‘시민연극’을 하는 여러 단체에서 참가했다. ‘아마추어 연극’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섭섭한, 생활과 연극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의 무대였다.



동네극단 우이동 - 굿닥터



안산연극소 유혹 - 억척어멈과 외상리마을 사람들




안산연극소 유혹의 <억척어멈과 외상리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 출연한 배우들이 모두 나와 무대에서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일부 관객들을 무대로 끌어들이기도 하며 동네잔치와 같은 신명나는 무대를 연출했다. 배우들의 밝은 표정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는 이가 아무리 감동을 받는다 하더라도, 공연을 하는 이보다 더 큰 변화와 울림을 가져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하는연극’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술이 삶을 변화시킨다고 하던가? 예술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들의 예술은 관객들과 그 주변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것이 ‘동네연극’ ‘시민연극’ 그리고 ‘생활연극’의 존재 이유다.


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개막식에 모인 축제 참가자들




연극하는 ‘동네’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놀이터 같은 극장에 모여 재미있게 연극을 하며 나를, 우리를, 세계를 변화시켰으면 좋겠다. 삶의 변화의 도구로서 연극을 활용하고, 새로운 연극 공동체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한 공연 전문가들만 모여 있는 ‘연극동네’ 말고 평범한 사람들이 ‘삶 속 예술’을 고민하는 ‘동네연극’은 그래서 소중하다.




사진: 성미산 마을극장 가림토 제공




제2회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2011 0218 - 0227 성미산 마을극장

2009년 2월 성미산마을에 다양한 상상이 모이는 동네 놀이터 성미산마을극장이 문을 연 이후, 2010년 2월에 온 동네 연극 동아리 8팀이 모여 ‘성미산 시민연극축제’를 열었다. 올해는 2회째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그리고 우리 이웃이 만드는 이야기로서의 '동네연극제'로 명칭을 바꾸었다. 10여일 동안 서울, 안산, 대전 등에서 9팀이 참여해 9작품을 올리면서, ‘동네에서 예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성미산 동네연극제는, 다음 무대의 주인공을 꿈꿀 수 있는 곳, 다른 동네로 연극보러 마실 가는, 온동네 연극잔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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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_ 남궁소담
2006년 4월 ‘생활연극네트워크 작은학교’ 2기로 입학하여 생활연극네트워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5월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2007년 2월 ‘아세요’, 2009년 9월 ‘이토록 눈부신 어둠 속에서’, 2010년 5월 ‘묻지마 결혼공작소’ 등의 작품을 극작했으며, 생연네에서 공연했다.

생활연극네트워크 playnetwork.cy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