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노인을 위한 댄스는 있다! - 안은미 무용단「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노인을 위한 댄스는 있다!
- 안은미 무용단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글_ 정진삼





0. 들어가며

두산아트센터에서 또 한 건 터졌다. 요컨대 할머니들이 사고를 치고, 안은미가 조종을 했고, 배후에는 두산아트센터가 있었다. 사건은 무대를 장악한 수십 명의 춤꾼들이 한국 춤 역사에 본래부터 "막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그 누구도 연강‘홀’ 이 관객을 빨아들이는 블랙 ‘홀’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1. 댄서들의 ‘할머니’ 되기

도입부는 얌전했다. 옛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홀로 나온 무용수가 포즈를 취하고 영상이 깔린다. 할머니들의 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안은미 컴퍼니가 누비고 다닌 시골 풍경이다.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면 무용수들은 투스텝으로 전진하여, 무대를 둥그렇게 가로지른다. 딱히 ‘춤’ 다운 몸짓이기 보다는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형세다. 이어서 안은미의 독무가 시작된다. 뽀글파마 가발을 쓴 안은미는 휘휘 움직이며 할머니들의 몸짓을 흉내낸다. 이윽고 할머니 패션(?)으로 무장한 무용수들이 무대 위를 ‘활보’ 한다. 기왕 할머니가 되기로 작정한 이상, 그들은 거칠 것이 없다. 그저 뜀박질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춤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고, 간간이 벌어지는 아크로바틱과 비보이 댄스의 쭉 뻗은 몸은 굴곡진 구부정한 몸과 어울려 춤판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옷’ 은 작품에 사용된 대표적 오브제다. 무대 뒷벽은 할머니들이 평생 빨고 말리고 다려야 했던 빨랫감들을 상징하듯 수많은 옷가지들이 하얗게 발라져 있었다. 무용수들이 입고나온 - 꽃무늬 원피스, 몸빼바지, 빨간 내복, 월남치마, 반짝이 셔츠 - 등은, 아줌마 혹은 할머니의 대표적 패션 아이콘으로, 오색찬연한 색감을 자랑하며 무대를 수놓았다. 이러한 알록달록 ‘촌’ 스러운 정서는 ‘막’ 춤과 결합하여, 이 작품의 주체가 할머니들임을 재차 상기시켰다. 막춤은 대중문화 안에서 자연발생한 서민들의 전뮤물일 것이다. 한국적 춤사위에서부터 디스코, 뽕짝, 트위스트, 블루스, 지루박까지 혼재하는 국적불명의 몸짓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서 - ‘키치’ 나 ‘패러디’ 가 아닌 - 엄연한 ‘오리지널’ 로써 그 맥을 잡아나간 것이다.

 



 

2. 댄스 퍼레이드

막춤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흥’ 겨운 음악이 속에 잠재된 ‘혼’을 건드리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들썩거리면서 몸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무릎을 위아래로 굽혔다 펴는 동작이 반복되고 양손을 들면, 이른바 막춤의 자세가 완성되는 것이다. 전염성도 강해서 그저 바라만 볼 수도 없는 것이 막춤의 위력이다. 춤도 그러한대, 무대까지 카오스다. 조명은 무규칙으로 흔들어대는 무용수를 따라 제멋대로 움직인다.

삼십분을 쉬지 않고 관객들의 얼을 빼놓던 무용수들이 쓰러졌다. 허나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바닥에서 꿈틀대는 경련댄스를 선보인다. 발작은 어떻게 춤이 되는가. 무용수들은 바닥에서 슬슬기고 부르르떨며 어머니가 할머니가 되기까지 밤잠을 설치는 세월의 ‘뒤척임’을 ‘빨리감기’ 로 표현했다. 안은미의 무용은 이처럼 생활의 몸짓을 아름다운 춤으로 승화한다. 방바닥 쓸기 댄스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허리 위로의 동작만으로 이뤄진 춤으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할머니들의 낮은 자세를 응용한 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체가 굽고 못생겨도 그들의 움직임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보탬이 된다면, 가사노동도 춤이 되고, 그들도 명실공이 예술가다.

무용수들이 모두 퇴장하면 작품의 백미라고 할수 있는 할머니들의 댄스 영상이 시작된다. 고정된 카메라의 포커스 속에서 할머니들은 한분씩 (혹은 두 분씩) 당신들의 춤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추는 할머니들의 공통된 엉거주춤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바꾸며 관객들에게 박장대소를 선사했다. 수십 명의 할머니들로부터 비롯된 희극적 정서는 이내 숭고의 감정으로 바뀐다. 그간 이름 없이 ‘막춤’ 으로 통칭되던 몸짓들이 할머니 춤꾼들에 의해 확실히 그 존재감을 표명했던 것이다. 못자리 댄스, 오도방정 댄스, 미용실 댄스, 철롯길 댄스, 비탈길 댄스, 여행객 댄스, 허리펴 댄스, 숟가락 댄스, 시장판 댄스, 바닷가 댄스, 어기적 댄스... 이 모든 것들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였다. 춤출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춤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나이를 무색케 하는 그들의 댄스는 진정으로 ‘삶의 감각’ 이요, ‘환희’ 자체였다. 엉뚱하고 경망스러운 제목이지만, 조상님께 무엇을 바칠까 생각해 보면 이만큼 값진 것이 과연 있을까?

 



 

3. 할머니들의 ‘댄서’ 되기

드디어 영상속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에 나섰다. 경북 영주에서 온 스무명 가량의 할머니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포옹을 하며 상대를 바꾸어서 춤을 이어나갔다. ‘동백아가씨’, ‘사의 찬미’, ‘울릉도 트위스트’ ‘단발머리’ 등등 흘러간 옛 가요에 맞춰서 몸을 흔들고,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대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분위기 있는 느린 음악이 펼쳐지자, 그들은 이내 풍부한 감성의 소녀로 변신하였다. 안은미의 무대에는 ‘막춤’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스런 가냘프고 섬세한 ‘몸짓’ 도 있었다. 느릿느릿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스텝을 밟으면서 지나간 세월을 반추한다. 몸에 저장된 역사는 춤을 따라 다시 환기되고, 그들의 젊음은 다시 꿈틀댄다. 아마추어 할머니들이 젊은 무용수들에게 뒤지지 않았던 것은 ‘막춤’ 의 개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춤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이었다. 전라도 익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란히 손을 잡고 등장하여, 부둥켜안고 춤을 추면서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함께 살아온 상대에게 ‘헌정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렇듯 이 공연은 우리 안에서 암묵적 타자로서 위치한 ‘노인’ 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사유하게끔 만들어 준다. 늙었다는 이유로 내려진 동정의 시선도 점차 거두어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름대로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되어 주며, 활력 있게 삶을 살아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음악에 맞춰 한 할머니가 뜨개질을 하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듯 느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탈맥락적 삽입이 관객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자유롭고 큰 동작이 난무하는 가운데, 소박하게 움직이는 작은 ‘춤’. 묵묵히 그리고 바쁘게 씨줄과 날줄을 엮어가며 움직이는 손놀림은 시공간을 직조하며, 세월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역사’ 에 대한 ‘춤’ 적인 해석이었던 것이다.

 




4. 작품의 피날레

번쩍거리는 미러볼을 가슴께에 안고 할머니들이 재등장한다. 천장에서 배턴이 내려오면 할머니들은 가슴속에 품은 별들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십 수개의 미러볼이 천창으로 상승하면 눈보라가 날리는 듯한 빛의 스펙타클이 관객을 압도한다. 음악이 멎은 상태에서도 무대 위의 춤꾼들은 무아지경에 빠져있고, 관객들은 박수로 리듬을 만들어 준다. 춤꾼들에게 쏟아지는 박수갈채. 다시 이어지는 강력한 비트 사운드. 드디어 안은미는 무대 위로 관객들을 호명한다. 그제야 참고 참았던 관객들은 무대 위로 뛰쳐나가 자신만의 독창적 춤 세계를 선보인다. 어찌나 난장판이었는지, 지면으로는 묘사가 불가능하지만 참고하자면 옆자리와 앞자리에 줄지어 앉아있던 무용전공의 여고생들은 모두 가방을 내던지고 무대 위로 뛰쳐나가 우아한 전공 대신 카오스 댄스를 뽐냈다.

아름답고 완벽한 신체로부터 벗어나, ‘늙은 몸’ 이라는 정직한 표현 수단으로 만든 공연의 성과가 놀랍다. 그간 대중예술과 함께 했던 ‘춤’의 본질인 ‘흥겨움’ 이라는 요소를 살려, 조상님께 ‘즐겁게’ 바친다는 역발상도 새롭다. 일상과 예술이 멀리 있지 않음을 일깨워준 이 작품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현대무용과 관객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심지어 연강홀 무대의 문턱마저도 낮추어 누구나 춤꾼 ‘되기’ 에 기여했다. 오로지 ‘춤’으로만 가능한 거국적 소통, 안은미 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춤만만세!

 



5. 나가며

작품의 공이 있다면, 막춤에 동참한 안은미와 할머니들, 관객들 그리고 이를 프로듀싱한 두산아트센터를 빼놓을 수 없다. 제작극장으로써의 면모를 제법 갖춘 두산팀은 “무브먼트 리서치” 라는 프리프로덕션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안은미의 공연을 지원제작하며, 괜찮은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안은미와 두산의 합작인 이번 공연은 3년차에 접어든 문화정책인 ‘상주단체 육성사업’ 의 본보기라 할 수 있으리라. 한편으로, 춤 공연장으로도 손색없는 ‘연강홀’ 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그간 동아시아의 연극인들을 한국 작가들과 연결시키고,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며, 정통 연극에서 다원예술까지 장르 다변화를 꾀해온 두산팀의 실험정신과 기획력에 박수를 보낸다. 여전히 어렵고 답이 없는 공연예술판에서도 ‘상업’ 과 ‘유행’ 이 아니라 ‘실험’ 과 ‘창작’ 이 정답이라고 믿고 열심히 해나가는 민간의 기획자들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대형사고’ 도 가능했으리라. 그들의 과욕적인 실험정신과 ‘예술적’ 기획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사진제공
: 아트신 artscene.tistory.com , 두산아트센터



안은미 무용단 -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2011 0218 - 0220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우리 삶의 근원이 되는 어머니, 할머니들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방을 돌아다니다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춤추며 그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들을 삶의 활력으로 환원하는 작업을 했다. 9명의 무용수와 우리가 만난 할머니들이 공연에 직접 참여하여 어머니 혹은 할머니들이 가진 생산적인 파워풀한 에너지, 긍정의 에너지를 무대로 끌어내 안은미무용단만의 색채와 동작, 춤을 통해 구체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