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초인 「특급호텔」 - '개인으로서 말하기' 힘을 가지다

라본느 뮐러 작, 박정의 연출

극단 초인「특급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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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으로서 말하기’ 힘을 가지다


글_ 김해진 

 

 

1.

배우들은 발바닥을 세게 내리치며 기차가 달리는 소리를 낸다. 언덕 아랫길의 위안부도 윗길의 일본군도 몸을 크게 흔들며 제자리에서 내달린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였을 이들이 섬처럼 기능하는 무대 구조물에 갇혀있다. 시간도 아픔도 풀려나지 못하고 함께 갇혔다. 동시에 관객들도 계속되는 과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속에 도착한다.

 

이들이 연극 속에서 그 시간을 다시 사는 건 시 같은 독백을 통해서다.


선희
나의 치욕스런 경험을
누구에게라도
어느 것에라도 말하고 싶어.
땅에 구멍을 파서
그 안에 대고 속삭이곤 해

 

공연 <특급호텔>에 대한 리뷰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와중에 몇 마디를 더 보태기로 마음먹은 것은 시간이 흘러 여성의 내면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상흔을 구체적인 개인의 목소리로 끌어올린 원작을 곱씹어보고 싶어서였다. 라본느 뮐러는 인물들의 참혹한 심경을 정제된 대사에 담아 재연의 위험을 피하고 있다.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를 묘사하는 언어를 통해 은폐되어 잊혀져가는 역사를 환기시킨다. 언어는 또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몸을 얻으며 심지어 그 모습은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공연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여겨도 될까 싶지만 이런 의문은 사실 피해국가, 피해자가 가질 수 있는 편견 섞인 자책일지도 모른다. 위안부가 산 현실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은 공연 <특급호텔>에서 미적 층위를 형성한다. 원한이 사무치는, 그러면서도 시적인(잔혹한 시다.) 대사를 소화해낸 배우들의 발화가 힘을 가질 뿐만 아니라 네 명의 여배우들은 하모니를 이룬다. 그것은 좋은 연기의 영역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작품에선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여성 공동체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한다.


 


 

2.

공연을 보기 전에는 묘한 자존심과 불편함이 뒤섞여 ‘한국이 아닌 미국 작가가 이걸 쓰다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난 후 ‘그래서 제3의 시선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급호텔>은 위안부뿐만 아니라 죽음에 세뇌당한 순수하고 맹렬한 가미카제도 조명하고 동경, 유럽, 미국의 여자들도 전쟁의 피해자라며 (‘여자들은 전쟁에선 언제나 전리품일 뿐’-금순) 위안부 문제를 전쟁 폭력에 물든 사회 보편의 문제로 넓혀나간다. 위안부나 일본군을 연기하는 배우의 몸이 겪을 수 있는 2차적 폭력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었던 것도 <특급호텔>의 원작을 쓴 라본느 뮐러가 인물들에게 사회적 독백을 하게 했기 때문인데, 역시 감정의 절제와 거리두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금순, 옥동이, 선희, 보배가 색이 바랜 치마를 입고서 아찔하고 절박한 표정으로 치욕스런 경험을 말한다. 말함으로써 피해자에서 주체로서의 개인으로 한발을 내딛는 것은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연극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인물들의 내밀한 독백이 사회를 향한 고백이자 고발이 되고 그럼으로써 작품이 현재라는 시간에 관여할 수 있어서다. 인물들은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있지만 현재형으로 발화하는 목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금순이 죽은 시체가 지붕에서 굴러
나를 덮친 상사에게 떨어진다
그는 한 손으로 시체를 들어 벽에 내던진다
계속 움직이며
계속 공격하며

 

또 인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에는 관객들이 슬픈 표정으로 슬며시 웃게 된다. 아픈 곳을 이야기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아서다. 선희의 가슴은 봉긋이 솟기도 전에 군인의 칼에 잘리고 마는데 그녀는 귀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선희 (낄낄대며) 그리 나쁘진 않아. 약간 사팔뜨기 눈을 하면 말야.







3.

<특급호텔> 속 인물들의 사연에는 충분히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 저마다 귀하고 선한 이름을 갖고 있는 네 명에게 말이다. 옥동이는 유일하게 남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어느 날 막사에서 남편이 자신을 만졌던 것과 같은 느낌을 일본군이 주었다며 괴로워한다. 넷 중 가장 어린 열한 살의 선희는 나중에 사랑을 하게 되면 그걸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거냐며 누가 자신을 원하겠냐고 소리친다. 보배는 열여섯 살의 가미카제 조종사 나오시와 사랑에 빠지며, 금순은 일본군을 돌로 쳐 죽일 생각으로 다가갔다가 아이 사진을 두고 기도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보곤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진을 찍을 때 조금이라도 더 못생겨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몸을 뒤튼다.

 

 



그동안 ‘위안부’라는 말에서 이들의 구체적인 삶은 떠올리기 어려웠다. 한국에서조차 피해자 ․ 타자로 낙인찍혀 일상의 반경에서 멀리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살았던 삶을 마주하는 순간, 역으로 초라한 무관심이 밀려나고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었다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참혹한 상상. 지금의 관객에겐 참혹한 상상이지만 그때에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이것이 연극 <특급호텔>이 가지는 설득력이다. 시간이 지나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신다고 해도, 사회의 깊숙한 곳에 상처는 내면화된다. 그것이 폭력의 예후이다. 그러므로 공연의 마지막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식적인 사과를 하라. 보상금을 지급하라. 일본 국정 교과서를 수정하라. 추모 기념관을 세워라.’

 


*리뷰작성 후기

원고를 쓰는데 일본에 대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몰려왔다. 리뷰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멍하니 며칠 동안 손을 놓게 되었다. 뉴스에선 앵커가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는 분명하지만, 인류애를 발휘하여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마음이다. 공교롭게도 위안부 문제를 다룬 <특급호텔> 리뷰를 이때 작성한 나는 둘 모두를 애도하게 되었다.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처참한 삶을 살다 가신 할머니들과 자연재해 속에서 처참하게 목숨을 잃고 만 일본인들을 향해서.

지난번엔 ‘애도한 다음이 궁금하다’고 <게르니카> 리뷰 제목을 적었는데, 지금 나야말로 다음은 말하지 못하고 애도하는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있다. 연극이 현실과 떨어져 읽힐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하는 날이다.

 

 

극단 초인 - 특급호텔
2011 0225 - 0326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라본느 뮐러 작, 박정의 연출

금순이, 옥동이, 보배, 선희는 위안소에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들은 동무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며 처참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간다. 그녀들은 그들이 끌려오던 날들,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며 전쟁이 끝나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결국 금순은 위안소를 탈출하지만 붙잡혀 다리가 잘리고, 금순의 탈출로 옥동은 처참하게 고문당한다. 선희는 자살을 택하게 되고, 보배는 사랑하는 카미카제 조종사와 끝내 이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지옥 같은 삶은 일본의 패전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작품은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투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