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쏭노인 퐁당뎐」- ⑥ 네 개의 장소, 네 개의 쏭노인 퐁당뎐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대형거리인형퍼포먼스 「쏭노인 퐁당뎐」
- ⑥ 네 개의 장소, 네 개의 쏭노인 퐁당뎐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기로에 서 돌아보면

흔히 실내극과 야외극은 전혀 다른 미적 원리를 가진다 말해진다. 그렇다면, 실내극과 구분되는 야외극의 미적 원리란 정확히 무엇인가? <쏭노인 퐁당뎐>의 상반기 여정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상반기에 안산국제거리극축제, 하이서울페스티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에 참가했는데, 각각의 축제 사이트마다 그 공간에 조응하는 공연 형식을 찾고자 시도했으며 국립극장에선 실내극장까지도 경험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시험하기도 했다. 독특한 것은 네 장소를 거쳐 가는 가운데, <쏭노인 퐁당뎐>이 겪은 변화의 길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야외극 문법과는 좀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이 진화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뜻일까. 아직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변화의 과정 자체에 대한 성실한 읽기만이 현시점에선 가능할 뿐.

 

<쏭노인 퐁당뎐>보편적 야외극 문법에서 이탈하게 된 것은 야외극의 미적 원리 찾아가기란 질문에 대한 답을 다름 아닌 뛰다 자체에서’, 뛰다 만이 할 수 있는 방법에서,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이상한 혹은 틀린 선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스너프 퍼펫의 요소들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자이언트 인형과 또 로밍(로밍 : 거리에서 배회하며 시민들과 자유롭게 만나는 방식) 및 퍼레이드 등으로 채워진 이 오히려 야외극엔 훨씬 더 효과적일 것 같지 않나?

 

제작 과정이란 현실 조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 것이 정확한 사실 일테지만(호주팀의 뒤늦은 작업 합류, 숫적으로 훨씬 다수였던 뛰다 쪽 예술가들), 나는 거기에서 생존에 대한 뛰다의 필사적인 의지를 읽는다. 예술단체의 정체성의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유일무이한 진실은 우리다운 것을 발현해야지만, 즉 독특해야지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뛰다가 10년 동안 걸어온 길, 그리고 <쏭노인 퐁당뎐>의 상반기 여정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면, <쏭노인 퐁당뎐>은 각각의 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조형화되었을까? 그 각각의 모습들은 뛰다의 어떤 측면들을 반영하는 것일까?

 


안산국제거리극축제와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쏭노인 퐁당뎐>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쏭노인 퐁당뎐>에선 어떤 축제 사이트에서보다도 축제형 야외극이란 미션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한 뛰다가 읽혀진다. 작품은 축제 개막식작으로 초청되었으며, 주인공 쏭노인은 방금 시장이 연설을 마친 육교 위의 단에서 등장해 극을 연다.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은 나중에 문제로 지적되었을 정도로 긴 등퇴장로를 사용해 동선을 꾸리는 등의 공간의 확장을 의도했던 작품 곳곳의 시도들에서 충분히 발견된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쏭노인 퐁당뎐>은 상반기의 어떤 <쏭노인 퐁당뎐>보다도 시각적으로 상하좌우를 폭넓게 운용하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흥미가 떨어지면 쉽게 자리를 뜨는 축제의 야외 장소에 운집한 관객들을 의식했기에 발현한 결과로 보인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쏭노인 퐁당뎐

 

그러나 이 같은 뛰다의 시도가 충분히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효과로 연결됐다 말하기엔 힘들다. 과감한 공간의 선택이 우리에겐 익숙치 않은 문법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확실히 하이서울페스티발에 초청된 <레인보우 드롭스> 같은 공간 사용 감각은 우리에겐 아직 부족한 듯), 혹은 확장을 통한 공간 운용이 <쏭노인 퐁당뎐>엔 잘 어울리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뛰다가 할 수 있는, 뛰다 만이 할 수 있는, 혹은 <쏭노인 퐁당뎐>에 어울리는 야외극 문법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갔던 것은 두 번째 <쏭노인 퐁당뎐>이었던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쏭노인 퐁당뎐>에서였다.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쏭노인 퐁당뎐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쏭노인 퐁당뎐>은 공간의 규모 면에서 훨씬 작아졌지만, 오히려 무작정 펼쳐놓는 대신에 객석에서 무대로의 이동, 혹은 무대에서 객석으로의 이동 등의 공간의 교차 운용을 통해 <쏭노인 퐁당뎐>의 주요 테마인 차원이동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설득시킨 경우였다. 물론 무대 뒤편에서 유유히 흐르는 실제 한강의 덕을 크게 보기도 했지만, 현실 세상에서 물속 판타지 세상으로의 이동이 인형들의 동선을 통해 표현, 관객들에게 설득된 것은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쏭노인 퐁당뎐>이 거둔 작은 성과였다.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쏭노인 퐁당뎐>은 네 개의 <쏭노인 퐁당뎐> 중 장면의 밀도와 더불어 극의 리듬감이 조화를 이루며 뛰다가 할 수 있는 축제형 야외극으로서의 <쏭노인 퐁당뎐>의 가능성을 보여준 경우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후 두 개의 일정이었던 의정부음악극축제와 국립극장 청소년 예술제를 거치며 <쏭노인 퐁당뎐>은 보다 적극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회를 거듭할수록 작품이 변화,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두 장소를 거쳐가는 가운데 <쏭노인 퐁당뎐>에 나타난 이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의 하반기 일정을 걸어갈 <쏭노인 퐁당뎐>의 모습과 직결된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현시점에서의 드라마터그 개인의 판단일 수도 있다. 아직 작품에 대한 합평회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합평회를 거친 후 모두의 의견이 수렴되어 작품은 또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갈 것이다).

 


<쏭노인 퐁당뎐>은 장면 내부의 밀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의정부음악극축제와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의 <쏭노인 퐁당뎐>은 한마디로 장면 내부의 밀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라고 정리될 수 있다. 두 장소를 거치며 <쏭노인 퐁당뎐>은 캐릭터의 강화, 사건의 구체성 획득을 통해 장면의 밀도를 높이고자 시도하였다.

 

의정부음악극축제의 <쏭노인 퐁당뎐>은 심해어들과 노인들의 시위 장면에 호루라기를 불며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민물고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상황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경우라 하겠다. 심해어와 민물고기의 대립 관계를 통해 물속 세상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층위를 보다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갈등의 층위라는 것이 너무 뻔하며 그래서 재미없지 않은가 란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못생겨서’, ‘달라 보여서’, ‘다른 말을 사용해서정도가 관객들에게 전달된 두 그룹 물고기들의 갈등의 이유인 듯한데, 이런 상식적인 설득력을 갖춘 이유들 말고 캐릭터의 존재감을 증명해 낼 수 있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해 보인다.

 

의정부음악극축제의 쏭노인 퐁당뎐



물론 <쏭노인 퐁당뎐>에 추가된 사실적인 설득력이란 이 변화 덕에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의 <쏭노인 퐁당뎐>이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갖고 운용될 수 있던 것은 사실이다. 국립극장 KB 하늘극장으로 들어가기 전, 공연팀은 무척 염려스러웠다. 실내극장에 들어가서 작품이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무척 컸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보다 <쏭노인 퐁당뎐>KB 하늘극장에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줬으며, 관객들에게 일정 정도의 만족감을 관람 경험으로 남긴 듯하다.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의 <쏭노인 퐁당뎐>은 부족한 곳을 열심히 메우려 한 뛰다의 의지가 두드러진 경우였다. 실제 현실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는 노인 캐릭터에 대한 사실주의적 보강이 두드러져 장면 4를 만들어냈으며, 그 같은 접근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사실 뛰다의 장면 만들기 문법은 아니다. 인형과 오브제, 광대 메소드를 갖고 있는 뛰다는 서사극적 문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는데, 국립극장 KB 하늘극장에서 선보인 <쏭노인 퐁당뎐>은 보는 이가 무대에 감정이입을 통해 극을 관람하는 전형적인 사실주의 어법을 선보인 것으로 안전하지만 퍽 쉬운 선택이었으며, 따라서 그럭저럭 시간을 때울만한 작품’, 혹은 특이하긴 하지만 특별히 그 의미가 뭔지 궁금하지는 않은이상의 느낌을 주지는 못한 듯하다.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의 쏭노인 퐁당뎐



또 다시 기로에서

나 엄현희는 몇 년 전 대학로를 돌아다니며 비평을 할 때에 비해 극단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에, ‘죄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야. 좀 더 잘 만들순 없을까란 바라보는 이의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혹은 잔인하게 들리는지 깊이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 내부 비평가로서 나 또한 포함돼 있는 창작진에게 우리가 고만고만해 보이는 작품들 중 또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지 않냐고 묻고 싶다. 상반기의 <쏭노인 퐁당뎐>은 단호히 말해 보이는 것 이상의, 보이지 않는 것을 줌으로써 울림으로 남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남기는 데에는 실패한 듯하다.

 

무엇보다 태생적으로 실내극에 대한 저항 정신을 갖고 있는 야외극의 특성이라 할 특유의 생기가 작품 고유의 미학으로 안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마당극스럽기도 하고, 퍼포먼스적이기도 하고, 혹은 그냥 큰 인형들이 나오는 사실주의 스타일 같기도 한 <쏭노인 퐁당뎐>은 그 애매모호함이 스타일화 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인 어정쩡한 상태로 보인다.

 

그렇다면, 글의 서두에 지적한 지점 - 야외극의 미적 원리에 대한 답을 뛰다 만이 할 수 있는 것에서 구하려 한다는 뛰다의 의지 은 작품이 거둔 미학적 성과에 대한 가치 판단 논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쏭노인 퐁당뎐>이 상반기 일정을 거치는 가운데 예술단체의 생존과 직결된 정체성 찾기의 의지가 일종의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의 욕망으로 탄생, 작품의 미적 원리로 안착되었다 생각한다. 이것을 누적적인 시간에 따른 변화 즉 진화로 받아들이고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할까, 아니면 이 시점에서 잃어버린 것 야외극 특유의 거친 생기 을 되돌아보며 출발지로 회귀하는 길을 하반기의 <쏭노인 퐁당뎐>은 걸어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은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란 냉혹한 불변의 진실이 오히려 작은 위안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를 비롯 <쏭노인 퐁당뎐>의 상반기 일정을 마치고 잠시 휴식 중인 뛰다의 단원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이나, 회귀하는 길이나 양쪽 길 모두 선택하는데 있어 불안함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품은 올라갈 것이며, 하반기의 <쏭노인 퐁당뎐>은 또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얻고 어떤 것은 잃게 되리란 냉혹한 현실이 불안함 속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어떤 선택을 내리도록 강요할 테니까.

 

 

 

공연창작집단 뛰다 - 쏭노인 퐁당뎐
공연장소 및 일시 :
안산거리극축제 - 5월 5일
하이서울페스티벌 - 5월 9~10일
의정부음악극축제 - 5월 17~20일
국립극장 청소년연극제 - 5월 27~29일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유목하는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