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엄마의 육아일기] 아기에게 들려주는 노래(1)

2012. 3. 26. 23:06Feature

황연출 혹은 주황엄마가
 아기에게 들려주는 노래 

                                                           말_황혜진


 

1. 예술가로 살아오기,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기

  안녕하세요. 황혜진입니다. 연극 연출가라고 하기엔 (너무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조금 부끄럽지만, 일단 연극 연출이 직업이에요. 연출보다 다른 일을 더 많이 하긴 했어요. 주로 무대감독 일을 하고요, 연극 놀이 강사도 하고, 화천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성미산 마을극장 기획팀에도 잠시 적을 두었었죠.
  공연과 그 창작 과정을 굉장히 좋아하긴 하는데, 딱 정형화된 극장 공연, 연극 공연 같은 것보다,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좀 더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 외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딱 짚어서 내 일은 이거다 할 만큼 이뤄놓은 게 별로 없긴 하더라고요. 아기를 가진 후에 그게 굉장히 아쉬웠어요. 그 전에는 나에게 아직 시간이 많고, 계속 이것저것 해보면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기를 가지니까 이제 내 인생이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이 아이랑 함께,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더라고요.
  엄마가 되면서부터 내 인생은 끝인가 하는 생각에 임신 초기에는 조금 우울했었어요. 여자의 인생이 뭐 이런가, 여자들에게는 자기만의 삶이 아기를 가지기 전까지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아주 좋아요. (웃음) 엄마가 되어서 나름 행복하고요, 이제 이 아이와 함께 어떻게 내 삶을 꾸려갈지, 그리고 나의 일은 어떻게 해 나갈지, 작업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은 시점이에요 지금이.



                                                     황혜진 연출작 연극<실연> 중 한 장면, 사진=jangho 


 2. 엄마의 하루 - 주황이와 하루종일 
 
  엄마가 된지 127일째입니다. 우리 아이 이름은 김주황이에요. 주황색 할 때 주황. 남편이랑 산책을 하다가 아이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을 했어요. 엄마의 성을 꼭 이름에 넣고 싶다는 남편의 요청에 따라 고민을 하다가 주황이 되었어요. 한자는 ‘단비 주’자에 ‘대숲 황’이에요. 되게 시적이지 않아요? 그죠?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아이를 위한 시간만 보내고 있어요. 지금은 아직 주황이가 어려서, 세 시간을 한 타임으로, 세 시간 간격으로 계속 돌아가요. 그래서 아침에 주황이가 일어나면 제가 불러주는 노래가 있어요.

  
    
주황이의 아침노래 
    “아침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기저귀 갈고, 엄마 젖을 먹어요. 
     엄마 젖을 먹고 난 후에, 트럼을 꺽 하고, 팔을 휘적 다리를 휘적, 아침 운동을 해요. 
     아침 운동을 하고 난 후엔, 다시 잠을 잡니다.”

 이 노래를 해주면 주황이가 깔깔깔 웃으면서 좋아해요. 그런데 정말 이 노래 가사처럼, 세 시간 간격으로 먹고, 싸고, 놀고, 자고를 반복해요. 아침부터 밤까지요. (웃음) 사실 정말 저는 아기를 낳기 전에는 뭘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엄마가 될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나름 계획은 거창했죠. 육아일기도 쓰고 사진도 여기저기 올리고 기록도 남기고 싶었는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까 전혀 시간이 없는 거예요. 지금은 그래도 아기가 조금 커서, 100일이 지나니까 세 시간 간격으로, 굉장히 규칙적으로 지내게 됐어요. 
  태
어나서 한두 달은 거의 낮밤 없이 두 시간으로 먹었어요. 두 시간 동안 계속 젖을 물리는 거예요. 정말 진이 빠질 정도로. 아무튼 엄마의 하루 일과는 그렇습니다. 아기 젖을 먹이고, 아기 기저귀를 갈고, 아이와 한 시간 동안 놀고, 그러고 한 시간 동안 아이가 잠을 자고요, 잠을 잘 때 같이 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피곤해요. 밤에도 똑같이 세 시간마다 일어나서 아이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낮에도 똑같이 잡니다, 아이와 함께. 그렇게 세 시간을 한 타임으로 계속 반복이 됩니다.
  아이가 밤 열시에 잠이 들고 나면 엄마는 빨래를 합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요, 대충 집안 정리를 합니다. 물론 낮에 아이가 잘 때나 깨어있을 때 잠깐 아이 방 청소도 합니다. 엄마는 밤에 빨래를 시작하고, 그러면서 빨래를 개고, 그후엔 빨래를 널고요, 집안 정리를 하다 보면 12시, 1시, 심지어 2시가 될 때도 있어요. 그러면 일어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같이 자요. 그러고 세 시간 간격으로 깨서 젖을 먹이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3. 나에게 필요한 것 - 잠과 밥, 그리고 로봇 청소기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잠과, 밥이에요. 출산을 하고나서부터 아기가 낮밤 없이 두 시간 반, 심지어 한 시간 반마다 먹고 자고를 반복했거든요. 출산한 이후로 몇 달 째 잠을 푹 잔 적이 없어요. 수면부족에 계속 시달리는 거죠. 하루에 한 여덟 시간만 깨지 않고 연달아 쭉 잠을 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에요. 
  아
기가 울지 않을 때, 또는 잘 때, 깨기 전에, 급하게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엄마들은 항상 위궤양에 시달린대요. 집안일을 하면서 아기를 돌보며 음식까지 차려서 밥을 먹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냥, 하지 않아도 밥통을 열면 밥이 항상 가득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고 하는 요술밥통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처음 한두 달은, 정말 내가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많았어요.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는 그런 모습이었어요. (웃음) 살기 위한 본능만 남아있는 듯 한 느낌? 지금은 그래도 아기랑 반응도 주고받고 놀기도 하고 하니까, 그리고 가끔 ‘엄마가 준비하니까 조금 기다려줘’ 하고 얘기하면 아기가 기다려주기도 하거든요. 아주 가끔씩. 그래서 동물이 된 듯 한 저만의 느낌은 조금 덜해 지는 것 같아요. 
  로봇청소기! 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동으로 청소가 주루룩 되고, 청소가 다 되면 멈추고, 물청소까지 되는 로봇청소기가 있으면 금상첨화겠네요. 아, 꿈같은 일이죠.


4. 충분한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 가족여행!

시간과 돈이 있다면 무엇을 할거냐구요? 이건 주황이 아빠랑 이야기 한 건데 주황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19세가 된 주황이랑 엄마랑 아빠랑 장기 가족 여행을 가는 거예요. 아, 주황이의 가장 친한 친구도 한 명 데리고. 아마 19년 20년 후쯤이면 통일이 돼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통일이 되면 육로를 따라서 자동차를 끌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간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싶어요. 차를 타고 가다가 멋진 곳,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 멈춰서 며칠이든, 몇 주든, 몇 달이든 살 수도 있고요. 주황이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서 주황이가 친구랑 함께 가고 싶다고 하면 떨어져서 여행을 했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요. 그렇게 우리 아기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기 전에 다함께 가족여행을 가는 게 꿈이에요.


5. 아기가 생기고 달라진 점
  
 출산을 하고 나서 세계가 바뀐 느낌이에요. 출산할 때 고통도 엄청 컸지만, 육아를 하면서부터, 그 이전의 삶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심지어 임신했을 때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웃음) 전생같이 아득히 먼 느낌이랄까. 그래서 아기 아빠한테, 처음부터 아기 아빠랑 나랑 아기랑 이렇게 셋만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했거든요. 그 전에 둘만 있었던 시절이, 그런 시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아기 아빠는 이해를 잘 못하더라고요. 아마 아직은 주황이가 어려서, 출산한 지 한 4개월밖에 안 돼서, 온 신경이 아기한테만 쏠려 있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세계가 바뀐 게 맞죠. 나의 삶 자체가 달라지니까. 아는 선배 언니가 그랬거든요,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창조라고. 그러니까 내가 어떤 대박인 작품을 만들었다거나, 아주 좋은 글을 쓴다거나, 좋은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
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는 거. 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가든 예술가가 아니든, 엄마들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이 돼요.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까지 해 왔던 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만둬야 되는 것인지, 어떻게 변화가 될 것인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지금까지처럼 연극 작업을 할 수가 없거든요.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집에 와서 작업을 돌아보고, 그 다음 날 연습 계획을 짜고, 아침부터 밤까지 극장에 앉아 있고 하는 일들이 불가능해진 거죠. 그래서 요즘은 내가 연출가로서, 연극인으로서,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아요. 얼마 전에 공연 기획을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도 5월에 아기를 낳아요. 아기를 낳고 두 달 후에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더라고요.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하고 대답을 했지요.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예술가들은 조금 경력 단절이 덜할 것 같다는 거죠. 1년, 2년 이렇게 육아로 인해 일을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원래 하던 위치는 아니더라도,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할 수는 있잖아요, 예술가들은. 그런데 일반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극단 ‘뛰다’에 요 몇 년 사이에 아이들이 생겼어요. 배우 언니도 아이를 낳았고, 연출하는 언니도 아이를 낳았고, 저도 아이를 낳았고. 그래서 다들 고민인 거죠. 아무튼 이 이후의 작업을 어떤 식으로 할지는 아직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나 혼자만은 아니고, ‘뛰다’ 내에 엄마인 단원들과 함께 아마 고민을 해 나갈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마 아빠들이 하는 공연과도 조금 다를 것 같고, 방식도 조금 다를 것 같고. 극단 내에 탁아소를 하나 만들자는 얘기도 나오고는 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어쨌든,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랑 아이 아빠는 아이를 계속 데리고 다니는 걸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습시간에도 데리고 가고, 회의를 할 때도 데리고 가고. 굉장히 힘들겠죠?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서 아이를 보면서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 2회에서 계속



 

   

  주황이 엄마, 연출가 황혜진은? 

 극단 고양이다방의 연출입니다. 지금은 남편이 된 김혜성 군의 소개로 2006년부터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무대감독을 했었구요. 페스티벌에서 일하면서 젊은 아이들의 열정을 몸소 느끼고 굉장히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화천에 터를 잡은 창작집단 “뛰다”에서 교육 분야를 맡고 있어요. 

  극단 고양이다방 
 
양이다방(多房)이란 이름은 많은 사람이 한 방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는 의미로 만들었습니다. 극단 고양이다방은 극작, 연출, 연극이론, 무대미술 전공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한 연극전문집단입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갖춘 창작 희곡의 활성화 및 연극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합니다.

 >> 고양이다방 2010년 인형극<나의 열 살> 리뷰가기 http://indienbob.tistory.com/309
 >> 고양이다방 2009년 연극<실연> 리뷰보기 http://indienbob.tistory.com/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