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거리, 새로운 서사/연극 공간

 

거리, 새로운 서사/연극 공간

 

글_정진삼

 

거리와 예술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거리 예술에서 ‘거리’ 라고 하는 새로운(new?) 이야기 공간입니다. ‘극적인’ 공간일수도 있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 일수도 있습니다. 실내극을 중심으로 하는 극장예술의 ‘바깥’ 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극장의 ‘중심’ 이 될 수도 있지요. 어쨌든 핵심은 ‘야외’ 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거리와 극장을 나누지 않았던 예술가들과 관객들에겐 괜한 구분이겠으나, 지붕 있는 곳에서의 상연을 염두하고 작품을 써왔던 연극의 작가들에게는 새로 온(coming!)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더 이상, 혹은 지금으로서는 극장에서 자신의 예술을 영위할 수 없어 거리로 내몰린 이들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무대’ 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야외’ 가 드라마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합니다. 실내건 야외건 모든 것을 구현해냈던 극장 공간과는 다르게 ‘가급적’ 야외의 공간일 것을 권유받게 되는 것이지요. 한계라고도 볼 수 있고, 가능성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만남과 우연, 갈등과 투쟁, 싸움과 화해의 공간이 ‘거리’ 그 자체가 되는 셈이지요. 따라서 거리에서는 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변형하느냐를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이른바 장소 특성성의 맥락이 강화되는 것이지요.

 

 ▲크리에이티브 바키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0, 광화문)

 

일단 ‘거리’ 라고 하면 떠오르는 일차원적 캐릭터는 다음과 같습니다. 행인, 노점상, 교통경찰, 거지, 여행자, 불량 청소년 등등입니다. 그전까지 한국연극에서 ‘행인’ 으로 통칭되어 왔던 기능적인 인물군이지요. 주연에게 한마디 건네기 위해 혹은 거리를 거리처럼 보이기 위해 존재했던 캐릭터들. 잘 들여다보면, 이들은 대체로 ‘집’, ‘회사’ 또는 ‘학교’ 라는 안정된 실내공간에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거리예술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극의 새로운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관점에 따라 거리 공간의 화두는 실내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소외’로 볼 수 도 있고, 실내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자유’ 로도 볼 수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도 ‘거리’ 가 주된 배경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거리예술에서 말하는 드라마적 공간은 낭만의 장소이기보다는 고된 삶의 현장에서 출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요.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해 거리로 내몰린 가난한 인물들, 도시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처지의 예술가들,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이처럼 거리를 예술작품의 배경으로 쓴다는 것과 동시에 우리 자신과 시대를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현대의 도시 거리가 일반인들의 감정을 배제하는 공간이었고, 무감각과 무관심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연극에서의 ‘행인’ 은 기능적인 역할만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습니다. 생각해보면, 거리예술은 그러한 일상성의 강요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어야 할 것이지요.

 

▲아트콜렉티브 연출(박해성 공동연출) <거리에서 En Route> (2012 예정,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한편으로, ‘거리’ 라는 노출된 환경은 작가에게 자연과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거리는 자연적인 요소와 인공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극장예술이 ‘몰입’ 을 지속시키기 위한 미학적/기술적 장치들을 사용함으로써 “극장에 있다” 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동시에 “이곳은 극장이다” 을 상기시키는 것과는 달리, 거리예술은 끊임없이 지금 우리가 야외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몰입을 지속시키기 어려운 여러 가지 다양한 외부효과들이 개입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눈에 보이는 주변 환경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작품 속에서, 작품과 함께, 작품(의 한 부분)으로써 고민하게 되는 것이지요. 소음이 발생하면 소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연기가 피어오르면 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날씨가 더우면 날씨에 대해 생각하고, 환경이 파괴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자연’ 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됩니다.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골몰했던 문제들은 이제 자연의 외면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내면 만큼이나(혹은 훨씬 더) 자연의 외면도 귀한 것입니다. 다만 그 전까지 공연예술에 있어서 인간의 고귀한 인간성, 숭고한 영혼 등을 증명하기 위해 ‘배경’ 이 되었던 것일 뿐이지요. 거리예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활동이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혹은 예술과 환경 사이의 균형적인 관계를 도모하는 조화의 예술인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젊은 극작가 중에서 ‘이시원’ 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녀가 쓴 작품 중에 <데이트>라는 작품이 있지요. 돈도 없고 딱히 직업도 일정치 않은 가난한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입니다. 이들은 12월 31일에서 그 다음해 1월 1일로 넘어가는 극적인 시간에 음침한 공사판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 작품은 야심한 밤 공사판 벤치가 시공간적 배경인 셈입니다. 이 작품의 장점은 가난한 커플들이 주고받는 솔직하고, 사랑스럽고, 감각적인 대사들입니다. 그들의 대화 뒤로 초라한 거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가식과 허위가 끼어들지 못하는 그 시공간 속에서, 그 커플들은 주변의 자연물과 인공물의 위로를 받아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지나가는 개미들, (잘 보이지도 않는) 별들, 덩그러니 놓여있는 크레인, 사방에 깔린 모래들 등등. 그들의 사랑놀이에 큰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지요. 실내에서 벌어지는 멋지고 화려한 사랑보다 실제로 우리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리의 사랑 이야기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시원의 <데이트>는 거리의 인물들을 통해 그 거리 공간뿐만 아니라, 잊고 있을법한 거리의 시간을 발견해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작품은 거리의 공간을 통해 그 음침함을 반짝이게 만들 인물들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어울리는 극적인 시간을 창안해내었습니다. 12월 31일에 누가 공사판을 전전할 수 있을까요? 가난한 연인들의 만남의 공간은 어디가 적당할까요? 이들의 빈곤한 연애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시원 작가의 <데이트> 공연사진 (2007, 동숭무대 소극장)

 

 

아쉽게도 이 작품은 ‘인공적으로’ 공사판을 구현한 극장의 무대에서 상연되었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 작품은 훌륭한 야외극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실내에서 야외로 옮겨놓는다고 거리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거리극은 분명 거리극 만의 메카니즘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판을 재현해야 한다면, 그런 이유로 극장에서 하기가 쉽지 않다면, 물론 그런 이유들을 떠나서라도! 괜찮은 작품들의 상연공간이 꼭 극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동시대 한국의 예술가에게 주어진 극장 공간은 얼마나 한정된 기회만을 약속하는지요. 지금의 예술가는 극장과 무대에서 맘껏 놀기보다는, 극장의 지배를 당하며, 공간에 종속된 주체로 전락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덮개 있는 극장이 하나도 없었던 시절, 그러니까 100년 전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선조들은 거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겠지요. 아마도 이야기를 더욱 간결하게 꾸미고, 이것을 좀 더 입체화하는 방법들을 고심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아쉬웠던 것은 ‘극장’ 공간이 아니라, 아마도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 이었겠지요. 거리극의 전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마당극이나 혹은 화극이라는 장르도 연극작가의 입장에서는 ‘말(言)의 퍼포먼스’ 니까요. 연극작가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유머' 와 ’의미’ 의 발생장치인 ‘말’ 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함으로서 길바닥 놀이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극단 걸판의 마당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2011, 과천축제)

 

9월과 10월. 서울과 과천, 그리고 고양에서 거리예술 축제가 열립니다. 이들은 모두 ‘예술회관’ 이라는 번쩍거리는 극장건물을 갖고 있습니다만, 주저없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거리예술 축제라는 건 분명 시민들을 위한 확장된 소통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축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서는 일상적인 도시 경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이 출현하게 됩니다. 기능적으로 구획되어 있던 견고하고 딱딱한 공간이 오히려 그간의 경직되고 고압적인 자세를 거두고 말랑말랑하고 파격적인 포즈로 시민들을 유혹합니다. 그 친한 척하는 모양새가 좀은 우습기도 하지만, 참여로써 더욱 의미가 강화되는 거리예술의 특성상 내미는 손을 마다하지 말아야겠지요. 무엇보다도 사심 없고, 열정 있는 거리예술가들이 발굴한 새로운 공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선을 보일지 기대가 됩니다. 그리하여 인디언밥에서는 여러분의 거리예술 탐방기를 받습니다, 는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지만... 그런 의도보다는 이번 프리뷰는 젊은 연극작가들과 나누고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수신자가 창작자가 되었지만 관객 여러분들도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과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눈에 들어오는 감각적 표현에 대한 경탄과 화려함에 대한 찬사 외에도, 그 거리예술이 어떤 의미들을 발굴했는지, 어떤 사연을 발견했는지, 어떤 성찰을 가능케 하는지 등등. 바야흐로 거리예술의 시대가 도래했으니까요.

 

 

*** 사진출처 :

1. 인디언밥 지난리뷰 중 http://indienbob.tistory.com/290  

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홈페이지(http://www.spaf.or.kr/)

3. 블로그, http://blog.hani.co.kr/soolsoolgi/3836 

4. 과천축제 홈페이지 http://www.gcfe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