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계피+이상유 커버공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노래가 부르고 싶어요"

2012. 11. 16. 00:51Review

 

안녕하세요. 계피입니다. 로켓트리의 이상유님과 제가 작년 여름에 했었던 커버곡 공연 기억하시나요? 올해 또 해요. 작년에는 서태지나 이선희 등 흘러간 가요풍의 선곡을 했었죠. 이번에는 홍대에서 현재 활동하는 그리고 예전에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곡을 커버해볼까 해요. 정말이지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는 지금처럼 활발하게 인디씬이 돌아갔던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풍성히 만들어지는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이 사람들을 동료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기뻐질 때가 있어요. 페스티벌 공연 전 대기실에서 혹은 술자리에서 마주치면서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고 동료의 동료로 소개받거나 가끔은 친구가 되기도 하면서 익숙해지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걸어가다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부드럽게 풀어진다거나, 무대에 선 그들의 빛나는 모습을 볼 때면 역시 이 사람은 뮤지션이라는 자각이 들고는 합니다.

넘치는 팬심으로 그들의 사랑스러운 곡들을 골랐습니다. 리스트에 담지 못한 곡들이 셀 수도 없지만 공연 시간이 제한적이고, 또 상유언니와 제가 불러도 도저히 분위기를 살릴 수없겠다 싶은 곡들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언니와 제가 공들여 고른 곡들의 주인들은, 델리스파이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데이브레이크, 이아립, 야광토끼, 몽구스, 검정치마, 언니네이발관 등입니다. 지난 공연은 까페에서 했었지만 이번에는 더 좋은 소리를 들려드리기 위해 정식 공연장을 잡았습니다. 11월 8일 목요일 저녁 8시 상상마당입니다. 고맙습니다.

계피.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노래가 부르고 싶어요."

 

글_나그네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노래가 부르고 싶어요.

얼마나 따뜻하고 수줍은 고백인지. 사실 이런 공연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김광석이나 유재하, 또는 비틀즈처럼. 지금은 세상을 떠난 보석같은 아티스트들을 헌정하는 커버 공연은 꾸준히 있어왔고, 요즘 TV만 켜면 나오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및 경연 프로그램을 보아도 옛 명곡이나 팝송을 커버하는 무대는 쉽게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인디 음악을 커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기 때문에, 이런 공연이 참 궁금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감성이 꾸밈없이 그대로 음악 속에 담겨져 있던 지난 시절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찾아보면 음악 본연의 의미를 잊지 않은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많다. 그들이 들려주고 있는 '현재의 명곡들'을 또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목소리로, 또 다른 사운드로 들려준다니 놓칠 수 없는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것은 가을방학의 '계피'와 로켓트리의 '이상유'이다.

사실 이러한 컨셉으로 공연을 하는 것이 올 해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는 김광석, 이미자, 정훈희, 서태지 등 지난 시절의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어찌보면 인디 쪽에서 음악을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음악이 아닌 다른 이들의 노래로만 온전하게 공연을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그 또한 굉장히 신선한 공연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재 활동중인 인디 밴드들의 노래를 불러준다고 한다. 계피가 직접 전해준 공연의 기획 의도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동료들의 음악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존경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스크린 위에는 오늘 공연을 하는 이상유와 계피가 속해있는 '로켓트리' 와 '가을방학'의 '미안해요'와 '여배우'. 그리고 세션으로 이번 공연을 도와준 원펀치의 '언제나 나란히'의 공연 영상이 보여지고 있었다. 보통은 스탠딩에 박수와 환호성이 필수인 공연들만 주로 다니곤 하는데, 이렇게 정적이고 차분한 공연에 온 것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추운 날씨에 얼어 있던 내 마음도 괜스레 포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산했던 공연장은 스크린 위의 영상들을 보고 있는 동안 어느새 관객들로 복작거리게 되었고, 잠시 후 스크린이 오르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1부 공연은 이상유님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단정한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가만히 노랫말을 읊조리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화성에서 지구로 온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부르는 "The girl from Mars"부터,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막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들려 준 "아침의 빛"까지. 한곡 한곡 그 곡을 자신의 목소리와 이야기로 내뱉으려 노력한 흔적이 내뱉는 숨소리에, 세션들과 박자를 맞추기 위한 눈맞춤에, 그리고 조그마한 실수에 부끄러워 웃던 그 모습에까지 녹아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코러스와 탬버린을 도와주기 위해 무대 위로 등장한 계피와 함께 불러 준 데이브레이크의 '좋다' 커버 무대이다. 원곡은 빠른 비트에 꽉 찬 사운드,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느끼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벅찬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면, 이상유와 계피가 불러준 '좋다'는 어쿠스틱 사운드와, 달콤한 목소리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느끼는 풋풋하고 부끄러움. 설렘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전까지는 누군가가 이런 노래를 불러준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이번엔 여자의 마음이 담겨 있는 편곡이었기 때문인지 원곡을 들었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훨씬 더 찌릿해왔던 것 같다.

1부 무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기 전 게스트의 열광적인 무대로 공연장의 분위기도 좀 더 유들유들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2부가 시작됨과 함께 이번엔 풋풋한 옷차림의 계피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이렇게 부르려니 조금 쑥스러웠나보다. 연신 부끄러운 듯 멋쩍게 웃던 계피의 모습에 관객들은 연신 뜨거운 박수와 격려의 환호를 보내주었다. 검정치마의 'International Love song'. 난 이 곡이 이렇게나 달콤한 곡이었는 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검정치마의 팬이라며 언젠가 같은 무대에 서게 되어 대기실을 같이 쓴 적이 있었는데, 가서 싸인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계피의 소녀스러움에 한번.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너 없인 숨도 쉴 수가 없다고 달콤하게 노래하는 계피의 목소리에 또 한번 반했던 순간이었다.

대부분은 계피와 이상유의 팬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많았을텐데, 가을방학과 로켓트리의 노래가 아닌 커버곡들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보니 모든 곡을 다 알지는 못 했던 관객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계피와 이상유는 자신들이 지금 너무 이기적인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냐며, 내년에도 또 이런 공연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소심한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모두 '모든 곡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너무 좋다'며. 내년에도 또 불러달라고 환한 미소로 답했다.

1부에서는 이미 사랑으로 인한 행복함와 아픔을 모두 맛 본 성숙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같았다면, 2부에서는 아직 사랑에 대해 미처 다 알진 못하지만 많은 것을 꿈 꾸는 소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같았다. 보통 상식으로는 소녀의 노래를 들은 후에 성숙한 여성의 노래를 들어야 순서가 맞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그 순서가 반대로 흐르다 보니 이젠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이가 되어, 조금은 뿌옇게 바래져버린 내 마음도 다시금 풋풋함과 소녀스러운 순수함을 기억해내곤 반짝이는 빛을 되찾게 된 것만 같았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어느새 겨울이 다가온 것인지 바깥 공기는 차가웠고, 수능이 끝난 날이었고, 2012년이 얼마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런 날에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만큼 마음에 위로가 되는 곡도 없었을 것 같다. 앵콜이 없는 척 무대를 내려갔다가 앵콜 소리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것이 좀 부끄러운 것 같다며 계피는 쿨하게 곧바로 앵콜 공연을 들려주었다. 그녀가 전해주는 응원의 메세지에 우리는 모두 남은 날들도 힘을 내자고, 이번 겨울도 잘 이겨내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꼭 부르고 싶었다며, 반주도 없이 내뱉은 앵콜 아닌 마지막 앵콜곡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노래를 부르던 계피의 모습을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은 유자차가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순간 적지 않은 감동을 받은 듯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고, 나 역시 그랬다.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봄날으로 가고 있었고,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내년에도 또 보자며. 또 한번 좋은 노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는 무언의 약속이 공연장 안을 맴돌고 있었고, 그렇게 공연은 끝이 났다.

 

 

당분간은 이번 공연에서 받은 따스한 에너지로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유와 계피의 목소리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 이번 공연의 노래들도 한동안 머릿 속에 머물러 있겠지.

  

  필자_나그네

  소개_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24살 서예슬이라고 합니다.

20대라는 나이가 담고 있는 '청춘'과 '젊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겐 버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20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늘 열정이라는 가치를 놓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열정을 잃는 순간, 그 삶은 제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죠. 저에게 그런 열정을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음악’이었고, 현재 홍대를 비롯한 여러 공연장들을 찾아다니거나, 각종 페스티벌에 일꾼으로 참여를 하는 등 열심히 이런저런 음악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취미로 밴드에서 노래도 부르고요.

저는 우리 모두가 나그네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길고도 짧은 여정을 떠나 온 나그네. 적어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라면, 내가 진정 열정을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 한 번 쯤은 고민해보시고 더 능동적인 삶을 설계해보았음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여행 좀 더 활기차게 즐겨보자구요. 우린 아직도 여행 초반부에 있고, 갈 수 있는 길이 더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