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야채 반짝시장

2013. 6. 20. 00:14Review

 

상수 무대륙의

책야채 시장 나들이

 

 

글 _ Daitch

 

 

06월 01일, 6월로 들어서는 첫 날이었던 토요일, 상수에 있는 ‘카페 무대륙’에서 <책야채 반짝시장>이 열렸다. 아마도, 구루마를 끌고 다니며 책과 음반을 파는 뮤지션 ‘한받’씨를 주축으로 마음과 뜻이 맞는 몇몇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주최했을 이 당일치기 반짝 시장에 오로지 “책”과 “야채”, 그리고 소소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혹 하여 나들이겸 다녀왔다.

 

1. 인간관계의 회복 – 커밍아웃과 아웃팅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으레 돈과 물건이 교환되는 ‘시장’이 들어선다. 화폐가 등장하고 가내 수공업이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뀌면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건 대형마트 어디에선가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개인은 종이돈 몇 개를 건네는 것만으로 그 물건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맑스 아저씨의 진단처럼 화폐가치가 모든 가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는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즉 인간은 화폐의 그늘에 가려 철저히 소외된다.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과 구입하는 사람 양자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오로지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무개성적인 물건을 만들고 소비할 뿐이다.

 

하지만 <책야채 반짝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똑바로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인 시장이었다. 상품의 생산자가 직접 판매자로 나서 매대를 차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고가는 상품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도드라진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이다. 타이틀은 책야채 시장이었지만 상품으로 나온 아이템들은 다양했다. 책과 야채뿐만 아니라 음반과 간편한 음식 등이 선을 보였고, 그 대부분은 판매자의 노력과 시간과 애정이 듬뿍 들어간 물건들이었다. 옥상에서 직접 기른 허브 모종과 달팽이, 손수 따고 말린 허브잎과 허브를 넣어 재워둔 여러 소스들, 텃밭에서 정성껏 기른 쌈채소와 야채피클, 동산에서 뛰어노는 건강한 소의 우유로 만든 치즈와 소량생산해내는 무공해 벌꿀, 그 외에도 판매자가 직접 만든 약식, 빵, 국수 등등. 모두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하나 사연이 있는 물건들 이었다. 이정도 되면 ‘물건’이라기보다는 판매자의 ‘작품’이라 칭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야채를 위주로 한 식품들 외에도 또다른 주인공인 책도 잔뜩 있었다. 유명한 대형출판사의 책에서부터 개인 참가자의 손때 묻은 중고책과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그림으로 엮은 개인 독립출판물까지 책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이었고 책과 함께 음반과 독특한 아트 상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판매자와 그가 펼쳐놓은 상품들을 보고 있으면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판매자와 그 상품이 저절로 읽히게 된다. ‘이 사람은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음악을 듣는구나,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구나.’ 판매자가 읽히고 나면 신기하게도 상품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이건 봐도 되겠구나, 이건 먹어도 되겠구나.’ 아마도 이런 ‘읽힘’은 소비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분명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자신이 가지고 나온 물건에 흥미를 보이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보며 상대방을 읽고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사람은 보기와 달리 이런 거에 흥미가 있구나, 허브보다는 말린 과일이 인기가 많군, 이 책을 사가다니 과연 읽을까?..’ 원하든 원치 않든 판매자는 자신의 취향을 ‘커밍아웃’하고 소비자 또한 ‘아웃팅’을 당한다. 커밍아웃과 아웃팅으로 서로 “거기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화폐에 가려 철저히 은폐되었던 사람이라는 주체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끊어졌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고 상품은 소비의 대상이 아닌 신뢰의 증표로서 양쪽 모두의 삶에 기분 좋은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비로소 소비행위 자체가 화폐교환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들의 삶의 얽힘, ‘사회’로 확장된다.

 

2. 인간 개인의 회복 – 정신과 육체

 

그런데 왜 하필 <“책야채” 반짝시장>이었을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책과 야채가 좋은 건 알지만서도 음악도 있고, 그림도 있고, 아니면 과일도 있는데 왜 굳이 “책과 야채”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물론 책과 야채가 다가가기 쉽고 판매하기 쉽다는 용이성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그보다는 각각 몸과 마음의 상징으로 양자를 균형 있게 살찌우자는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싶다.

 

책,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흔히들 인간의 정신 혹은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반짝시장 당일에도 ‘그림책 같이 읽기’와 ‘책읽는 괴짜에 대한 이야기나눔’이 열려 책읽기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열린, 좌담회도 간담회도 아닌 가볍게 행해진 이야기 나눔에서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로 의견들이 오고갔다. 인상 깊었던 말은 “책을 읽는 건 같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는 한받씨의 정리멘트였지만, 심정적으로 쏠렸던 의견은 “스승으로서의 책, 그러나 위험한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단편선의 발언이었다. 위험한 행동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너무나도 사랑했던 딸에게 책을 읽지 말고 자연에서 뛰어놀라는 말을 남겼던 전혜린이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책읽기는 곧 혁명’이라 말하는 사사키 아타루의 예를 들면 ‘독서의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허나 대부분의 우리는 위험한 독서보다는 유희로서의 독서에 머무르는지라 지나친 우려일 수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 책이 위험할 수도 또한 유익할 수도 있는데 반해 야채는 거의 전적으로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채, 싱싱한 초록 야채들은 그 자체로서 생의 기운이 넘쳐난다. 포만감은 높은데 칼로리는 낮아 현대인들의 다이어트식으로 인기 있고, 비타민과 무기질 등 생명활동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균형 있게 들어 있어 1일1식이나 단식이 유행인 요새에도 그 인기는 가시지 않는다. 또한 야채가 체내독소를 배출해주고 채식 덕에 암까지 이겨냈다는 몇몇 사례들 때문에 채식이란 거의 ‘무병장수’의 방법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덧붙여 지나친 육식이 전 지구적 환경문제와 식량빈곤을 야기한다는 문제제기에 채식이 해결방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어쨌든 채식에 대해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 보이는게 사실이고, 이러한 채식의 장점을 좀 더 알리고 일상으로 적극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야채’가 반짝시장의 한 축이 되지 않았나 싶다.

 

독서를 통한 건강한 정신에 채식을 통한 건강한 육체의 조화. 반짝시장의 주최자들이 미약하게나마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이것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3. 나, 사회, 그리고 지구

 

‘반짝’하고 끝나긴 했지만 토요일 약 여섯 시간 동안 열린 ‘시장’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장’이었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함으로 하나된 “나”와 물건을 팔러오고 사러나온 사람들과 하나된 “사회”, 그리고 그 사회는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에까지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신선한 야채가, 벌꿀이, 소젖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고, 그 속에서 인간 사회와 개인은 건강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아주 자연스레 흩뿌리는 것이다.

 

그래서 <책야채 반짝시장>이 신선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교조적으로 ‘책을 읽자! 채식을 하자! 나와 사회와 지구를 위한 삶의 방식을 찾자!’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고리타분함에 맥이 빠져버렸을게 틀림없다. 헌데 이렇게 조용하고 자그마하게 시장을 꾸려놓고 누군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싱싱한 야채들과 맛난 음식들을 마음껏 시식하고, 허브의 향을 맡으며 달팽이가 기어다니는 걸 감상하고, 책과 음반이 널부러져 이 손 저 손 옮겨다니는 걸 보다보면 자연스레 건강한 삶의 방식에 젖어든다. 물론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생각의 씨앗을 심었다 할지라도 당장에 크나큰 변화를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조금 더 지속적으로 이러한 장터가 열려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면 더욱 더 다채롭고 재미있을 텐데, ‘반짝’하고 끝나버린 시장이 조금 아쉽긴 하다.

 

 

                  Daitch (daitch88@gmail.com) 여자, 백수, 어설픈 낭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