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2. 10:18ㆍReview
축제하는 서촌
<오픈하우스 서촌>
글_성지은
하늘이 맑고 푸르른 5월의 어느 날, 경복궁의 서쪽 동네인 서촌에서는 여러 집들이 대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자고로 ‘집’은 타인, 그리고 바깥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곳입니다. 그러한 ‘집’이 2013년 5월 4일에서 12일까지 나의 안전을 위함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집들은 그러나 평범한 집들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문인과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서촌에는 지금도 건축가, 디자이너, 큐레이터, 기자, 작가, 바리스타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인들이 살고 일합니다. 함께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각자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 그들이 일하는 집, 살고 있는 집이 5월의 어느 날에 손님들로 북적이며 분주했습니다. 그 중 하루, 초여름의 햇볕이 쨍쨍하던 날 <오픈하우스 서촌>(공식 홈페이지는 여기)을 찾았습니다.
처음의 목적지는 건축사무소인 <삼간일목>(공식홈페이지는 여기)에서 꾸린 <Second Drawer> 전시였습니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먹거리 골목과 통인시장을 지나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지나가는 길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있었고 작고 귀여운 이름의 카페와 철거 중인 옷가게도 있었습니다. 관광지가 아니라 친구가 사는 옆 동네를 구경 온 마음으로 느긋하게 걸었습니다. 동네 주민들과 등산객 몇 명이 바삐 걸어가는 대로를 지나 왼쪽에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보따리를 든 아주머니는 걸음을 재촉하고 길가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담배를 뻐끔거리는 소박한 동네 골목이었습니다. <삼간일목>은 그런 골목들이 교차하는 곳, 나무로 된 건물의 2층에 있었습니다. 이곳의 입구에는 <오픈하우스 서촌>의 포스터가 붙어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 건축사무소 <삼간일목> 입구
이 아담한 건축사무소에서는 젊은 건축가들 세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옥도 짓고 양옥도 짓고 리모델링도 하는 이곳은 이번 오픈하우스를 위해 각자의 취미를 꺼내들었습니다. 최성호는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건축가답게 집과 하늘을 담은 공간을 찍습니다. 세계 곳곳의 공간들은 각자의 맥락과 의미로 어우러져 전시되었습니다. 2층의 사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걸으며 그이가 보여주는 색의 조화를 눈에 담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 가장 넓은 공간에서 황희정은 노래를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별노래, 사랑노래, 소소한 일상을 담은 노래들은 하이얀 종이 위에 담담히 적혀 읽어 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마지막, 권현효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씁니다. 화분(畵盆), 그림이 담긴 그릇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방에는 책상 위에, 그리고 벽에 액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단순하고 간결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마음을 자아내는 힘을 가진 그림들입니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건축가 분께 말씀을 여쭙고 설명을 들으며 짧은 시간이나마 <삼간일목>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삼간’은 한옥을 만들 때에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라고 합니다. 우리가 ‘초가삼간’이라고 이야기할 때의 그 세 칸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나무로 세 칸 짜리 집을 만들었다는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 사무소는 얼마나 단단하고 서로 엮여있는 곳일까요. 세모난 바닥을 가진 건물을 재치 있게 구획한 이 공간에서 무엇 하나 허투루 쓰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는 틈새도 나름의 쓸모를 가지고 있었고 바깥 풍경 하나도 내부 전체 공간과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고 제자리를 내어주는 이들의 철학은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노래가 쓰인 카드가 놓여 있던 장식장은 한옥을 리모델링하면서 나온 자재를 쓸고 닦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방 바닥에 깔았던 수많은 마루판자인 것이지요. 그것을 하나하나 사포질하고 잘라 두 번째의 쓰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입구에 놓인 작품, <나무물고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한옥의 기와를 덧댈 수 있는 ‘연함’을 만들 때 타원형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의 조각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보통은 버려지게 되는 이 나무 두 개를 겹쳐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천장에 달아 놓았습니다. 나무물고기들은 그렇게 하늘로 날아갑니다.
하나의 꽉 찬 공간을 만들어놓은 <삼간일목>의 집을 떠나 다시 문이 열린 집을 찾아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갔을 때, 푸른 나무가 우거진 골목 안쪽으로 <옥인상영관>(공식홈페이지는 여기)의 팻말이 보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니 막다른 곳 저 끝에 <오픈하우스 서촌>의 붉은 포스터가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내달려갔지만 아쉽게도 상영관 문은 아직 열리기 전이었습니다.
발길을 돌려 온 자리를 짚으며 되돌아갔습니다. <사루비아 다방>이 있는 골목으로 넘어갔을 때 이곳에도 반가운 붉은 포스터들이 보였습니다. 그 맞은 편 2층에는 <갤러리서촌>이 있는데, 이곳은 아마도 밤에 손님들을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1층의 카페 큰 유리창에도 붉은 포스터가 붙어있어 마음이 솔깃해졌습니다.
다음에는 <갤러리 팩토리>(공식홈페이지는 여기)에서 열리는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갤러리 팩토리>가 있는 골목은 책방 <가가린>, 여러 카페 등 온갖 문화공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갤러리 팩토리>에서는 자기들의 집을 보여주기 위해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강연이라고는 하지만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갤러리 대표의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소박한 시간이었습니다.
▲ 갤러리 팩토리 전시 전경
강연의 이름은 ‘팩토리 설명서’입니다. 말 그대로 팩토리라는 이 공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팩토리>는 작품 판매를 위주로 하는 상업 갤러리가 아닌, 비영리 전시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들을 합니다. 내부, 외부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공공미술 기획, 출판, 아트컨설팅, 교육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직업들을 갖고 있는 자신들을 ‘기획 회사’라고 부릅니다.
각자가 분명한 취향과 지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모여 돌아가는 이 ‘공장’은 무수히 많은 같은 것을 찍어내는 공장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적더라도 색깔이 분명한 것을 만들어내려 합니다. 그 일환으로 ‘모빌리티’를 주제로 다양한 작가의 작업과 이벤트들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조금씩 변형하고 합쳐서 익숙하지만 새로운 물건들을 내놓았고, 설치미술가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구성해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공통된 주제에 대해 여러 명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내어놓는 형태야 말로, <갤러리 팩토리>가 만들어내는 공장의 모습일 것입니다.
갤러리 강연이 끝난 후에도 해는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동안 붉은 색의 포스터를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김달진 미술연구소>에도, 구석에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에도 <오픈하우스 서촌>을 알리는 포스터가 찍혀 있었습니다. 조용한 거리는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축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서촌을 찾은 손님들은 집 대문이 열렸음을 조용히 알리는 표시들을 보고 이 곳 저 곳을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서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각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만의 ‘서촌 지도’를 만들 것입니다. 오늘 그린 지도는 <삼간일목>에서부터 <사루비아 다방>, 그리고 <갤러리 팩토리>를 거치는 모양이지만, 다른 사람 또는 다른 날의 지도는 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지도 속에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대신 가랑비가 내리거나 저녁 노을이 건물마다 비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알록달록한 서촌의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집들의 대문은 닫혀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 집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놀고 쉬고 살아가고 있겠지요. 다음 번에 그들이 다시 문을 열어 우리를 초대해 준다면 더 기쁘고 기꺼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그 때에 그릴 서촌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짧은 5월 오후에 그려놓은 손바닥 만한 머릿속의 지도를 가지고 서촌에 놀러가려고 합니다. 초대되었던 집을 지나갈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괜히 반가울 것 같습니다. 눈과 기억에 담은 그 공간들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어쩌다보니 한 동네에 모여 지내고 있습니다.
건축, 디자인, 미술, 영화, 요리, 공방 등 경복궁 서측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문화예술인과 사무실, 가게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통의동, 통인동, 누하동, 누상동, 옥인동, 효자동 등등 경복궁 서측의 작은 동네 안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Contents Creator들의 느슨한 커뮤니티들은 벼룩시장 같은 소소한 이벤트나 동네 행사를 일상적으로 벌입니다. 그들은 왜 서촌으로 왔을까요.
우리 알고 지내요
오픈하우스뉴욕이라는 뉴욕의 건축축제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가보기 힘든 장소나 스튜디오, 건축물을 일정 기간 공개해, 방문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축제입니다. 건축물과 건조물이 대상인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을 서촌에서는 사람과 장소, 가게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볼까 합니다. 일시적이지만 사적인 공간이 공적인 공간으로, 상업적인 공간이 비상업적인 공간으로 바뀌면서 공간을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독특하게 형성된 동네 커뮤니티 안에서 개별적으로 열리는 이벤트를 공유하고 서로의 장소에 방문도 할 수 있는 즐거운 봄맞이 집들이를 기획해봅니다.
경복궁 서측은 ‘독립공화국’
서촌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무엇보다 독립적인 성향도 강한 동네입니다. 보안여관의 최성우 대표님은 이를 두고 “독립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따로 또 같이, 공존하기 좋은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하는 커뮤니티에 가깝습니다. 지역의 이름만을 강조하는 행사보다는 같은 시기에 일어나는 행사를 한 자리에 태깅하고 공유하며, 함께 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 동네에서 함께 보아요.
- 경복궁 서측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레스토랑, 커피숍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장소와 사람들이 함께 만나는 봄맞이 행사.
- 동네에 모여있는 문화예술인들, 각 분야 전문가 교류를 위한 오픈 스튜디오 형식
- 동네를 동네답게 만드는 것, 지역에서 즐겁게 놀 수 있는 기회.
시기
꽃피는 봄, 5월 4일(토)부터 5월 12일(일)까지 주말과 주말 사이
방식
- 오픈하우스서촌 홈페이지 ohseochon.com 에 소개된 프로그램을 살펴봅니다.
- 각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신청 이메일을 보냅니다.
- 주민, 동네에 계신 분들을 위한 사전 신청 기간(29-30일)이 있습니다.
- 비상 연락을 위해 신청할 때 연락처 기재는 필수입니다.
- 한정된 인원이 참여해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을 위해 꼭 참석가능한 프로그램에만 신청해주세요.
- 프로그램 담당자가 참여자 확정 후 개인 통보를 드립니다.
- 각 프로그램이 열리는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해서 함께 해요.
- 사전신청이 필요 없는 프로그램은 편하게 찾아갑니다.
서승모 (효자동건축사무소), 이미경 (mk2), 이창연 (고희),
정권구 (시각발전소 301랩), 최성우 (보안여관), 허인 (두오모 대표),
홍보라 (갤러리팩토리),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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