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14:08ㆍ07-08' 인디언밥
“소리는 너무 솔직하다” 보이스퍼포먼스 독의 김진영
- 김소연
- 조회수 651 / 2008.07.18
“소리는 너무 솔직하다”
<보이스 퍼포먼스 _ 독>의 김진영
정갈한 흰 치마에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여인이 항아리를 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집안 한구석에 놓여있던 항아리를 끄집어 내 뽀얗게 앉은 먼지를 닦고 이리 저리 항아리를 둘러보다 항아리 안에 소리를 질렀단다. 이야기를 멈추고 여인은 안고 있던 항아리에 가만히 소리를 내어본다. 항아리의 텅 빈 몸이 “웅~~” 길게 여운을 끌며 울린다. 그 깊은 소리가 항아리의 불룩한 몸을 닮았다. 마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여인은 항아리에 소리를 담고, 항아리는 몸을 울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인은 마치 항아리에 물이 찰랑거리기라도 하는 듯 안고 있던 항아리를 들어올려 입에 대고 기울인다. 물이 그녀의 목을 타고 몸으로 흘러드는 것 같다. 여인은 몸의 구석구석을 돌고 있는 물을 찾는다. 여인의 소리는 물을 닮아 있다. 소리는, 아니 물은 조용한 냇물이 되고 또 휘돌아 치는 소용돌이가 되고 넘실거리는 바다가 된다.
지난 6월 20일 다원예술매개공간에서 공연된 보이스씨어터몸MOM소리의 첫 번째 공연 <보이스 퍼포먼스 _ 독>은 그렇게 스며들고 채워지며 흠뻑 취하게 했다. ‘보이스 퍼포먼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소리, 그것도 목대를 울려 나오는 소리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어떤 모습일까, 공연 시작 전부터 이 낯선 공연에 대한 호기심에 잔뜩 긴장해 있었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긴장은 스르르 풀렸다. 항아리에 소리를 담는 여인의 모습에서 언뜻 어린 시절의 장난이 떠올랐던 것. 무료한 한 낮 집 안 살림살이들을 꺼내놓고 엉뚱하게 만지고 두드리던 놀이 말이다. 제자리를 벗어난 살림살이들은 동굴이 되고 악기가 되고 인형이 되고 마치 본래 제 각각 품고 있었던 듯 이야기가 펼쳐졌었다.
그 흥미진진한 놀이처럼 항아리에서 시작된 소리는 물이 되어 흐르고 봉긋한 흙더미를 짓고 불로 타오르면서 공연장 가득 이야기를 채워놓는다. 어린 시절 놀이가 순수한 놀이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라면 <보이스 퍼포먼스 _ 독>은 여인으로 분한 김진영의 목소리가 그 세계의 지렛대이다. 그저 작은 항아리에 소리를 담는 것에서 시작해서 소리는 물이 되어 항아리에 차오르고 그 물이 몸을 돌아 소리로 흘러나와 공간으로 흘러간다. 물은 다시 흙을 만나고 흙은 다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만나고 무대에 다시 작은 항아리가 남겨지는 것으로 끝이 나는 이 흥미로운 공연은 김진영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어 김진영의 목소리로 흘러가고 출렁인다.
소리로 펼쳐내는 새로운 작업을 이제 막 출항시킨 김진영은 그러나 이미 비주얼씨어터 꽃에서 남편인 이철성과 함께 작업해온 낯설지 않은 작가이자 배우이다. 일상의 구체적인 물질에서부터 시작되는 창작 방식, 퍼포먼스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퍼포머의 역할, 그리고 관습적 공연양식을 지양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 등 김진영의 보이스씨어터몸MOM은 남편과 함께 작업했던 비주얼씨어터꽃과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보이스 퍼포먼스 _ 독>은 ‘꽃’에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작가이자 배우를 만나게 한다. 보이스, 이 매력적인 표현의 도구로 길찾기에 나선 김진영을 만났다.
내 안의 여러 목소리
김소연 : 처음 공연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서 잔뜩 긴장했었다. ‘보이스 퍼포먼스’라는 형식도 낯설고 음소에 대해 설명하는 공연해설을 보면서 아주 난해한 실험적 공연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니 괜한 긴장이 아니었나 싶다.
김진영 : 공연을 준비하면서 염려했던 것이 그것이다. 낯선 것,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연초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심사위원들이 묻더라. 보이스 퍼포먼스가 뭐냐, 왜 새로운 장르를 만들려고 하느냐 하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도 소리에 얼마나 많은 이미지들, 이야기들이 있는지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다. 이것을 설명하려다보니 ‘보이스 퍼포먼스’가 적절하겠다 생각했다.
김소연 : 무엇보다 김진영 씨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고저, 강약, 장단, 음색이 수시로 변화하면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놀라웠다. 목소리 그 자체의 풍성한 표현과 힘이 객석을 무장해제시킨 점도 없지 않다.(웃음)
김진영 : 우리가 내고 듣는 소리에는 억압이 내재되어 있다. 소리는 심리적 사회적 억압에 민감하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노래하거나 소리를 내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보이스 퍼포먼스는 정확하게 발음한다거나 아름답게 노래 부른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리로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소리의 또 다른 세계를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내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면 소리의 또 다른 세계를 관객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김소연 : 물의 장과 흙의 장 사이에 진행되었던 ‘우리는 소리 나는 독이다’는 관객들이 직접 소리를 내어 보는 것이었다. 관객들에게 자신 안에 있는 큰 독, 빈 공간이 있다고 상상하며 그 공간을 울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직접 소리를 내 봄으로써 이어지는 흙의 장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에서 소리을 좀더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 흙, 불로 이어지는 퍼포먼스의 맥락이 끊어진다는 느낌도 있었다. 억압이 많아서 인지 나는 내 몸 안의 큰 독을 찾지 못했다.
김진영 : 나는 워크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공연활동과 함께 교육이라든가 보이스 세라피를 진행하는 것은 단지 보고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직접 체험했으면 하는 것 때문이다. 또 이렇게 소리의 세계를 만나다보면 공연에 대한 낯설음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비주얼씨어터 꽃에서도 교육이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교육 그 자체의 목적도 있지만 우리가 찾아가는 새로운 방식들을 소개하고 체험한다는 목적도 있다. 다음엔 관객들이 참여하는 워크샵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을 만들어 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소연 : 스스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창작의 전 과정을 스스로 수행하는 창작방법 상 중요한 과정인 것 같다. 관객들과의 워크샵에서도 결국 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스 퍼포먼스’는 그 자체가 명상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보이스씨어터몸 MOM이 추구하는 씨어터와 퍼포먼스는 무엇인가.
김진영 : 내 안에는 여러 목소리 여러 이야기 그리고 그것들의 갈등이 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러한 여러 목소리를 찾아내고 그것들의 갈등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소리를 내다 보면 내 몸 안에서 나는 소리인데도 낯설고 어색하고 또 밀쳐내게 되는 소리들이 있다. 그렇게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나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부터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은 퍼포먼스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학을 진학할 때 연극을 전공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불문과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연극을 하고 싶어 원어연극 공연에 참여했었다. 아주 힘들게 한편의 공연을 완성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면 너무 허무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로부터 출발하는 이러한 작업 방식은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성숙한다는 충족감이 있다.
소리, 이미지, 이야기를 찾아가는 긴 여정
김소연 : 소리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어떤 특별한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김진영 씨에 대한 소개 글을 보면 유대종교음악의 창법을 훈련했다는 구절이 있다.
김진영 : 일종의 보이스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유대교에서는 소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의 ‘말씀’, ‘말’ 즉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때 배웠던 것은 그런 종교적 수행과는 별도로 예술적 표현을 위한 훈련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음소 하나 하나가 신체의 기관과 연결되어 있고 의미나 상징을 갖는다.
김소연 : 그러한 체계가 그대로 창작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언어가 다르지 않나. 그 체계를 사용하려면 유대어로 창작이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김진영 : 소리를 찾는 다양한 방법을 훈련한다는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그대로 창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엄정한 체계를 만들고 실험하는 것이 내 작업의 목표는 아니다. 창작은 무수한 즉흥을 통해 소리와 이미지 그리고 이야기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혼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노트를 아주 꼼꼼히 해야 한다.
김소연 : 대본을 소리로 번역하는 것도 아니고 곧바로 소리 즉흥으로 창작이 시작된다니 그 과정이 어떤지 궁금하다. <보이스 퍼포먼스 _ 독>은 한 시간에 이르는 완결된 공연물이다. 대사연극 같은 합리적이고 개연적인 플롯을 구성하지는 않더라도 소리를 배치해가는 과정이 있을 것 같다.
김진영 :이번 작품도 그렇고 오브제, 인형, 움직임을 주로 표현했던 이전 작업들도 텍스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어떤 구체적인 사물을 먼저 만난다. 이번 공연에서는 항아리에서 출발했는데 공연의 시작에 내가 한 이야기가 그대로 창작의 과정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항아리를 보게 되고 정말 항아리에 소리를 질러봤다. 항아리에 울리는 소리가 낯설게 다가왔다. 즉흥을 계속 반복하면서 물, 흙, 불의 이야기를 엮었다. 일상적인 사물도 낯설게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즉흥을 하다보면 소리에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이미지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고리가 되어 이야기가 엮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어떤 분은 그러더라 너무 틀이 꽉 짜여있는 것 같다고. 너무 설명하지 않았나,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듣는 것이 아니라 파동을 느끼는 것
김소연 : 항아리라는 소재가 이 공연과 잘 어울린다. 물, 흙, 불로 만들어진 항아리에서 이 세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항아리라는 소재가 소리와 잘 어울린다. 항아리의 텅 빈 몸에서 소리의 울림이 증폭되면서 항아리라는 물체와 소리가 서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항아리의 빈 공간과 소리의 파동이 전해지는 여백이 겹쳐진다. 이번에 새삼 느낀 것이지만 소리는 청각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리는 몸을 울린다. 파동이 몸으로 전해온다. 빈 공간 자유자재로운 공기를 타고 전해지면서도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떨림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이면서 추상적이다.
김진영 : 소리는 직접적 파동으로 전해진다. 멜로디를 듣는 것이 아니라 파동을 느끼는 것이다. 소리는 너무 솔직하다. 나의 상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또 벽이지만 가능성이기도 하다. 관객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도 물론 집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숨을 수 있는 틈이 있다. 하지만 소리는 그렇지 않다. 나의 전부를 몰입해야 한다.
김소연 : 퍼포머의 몰입이 관객에게도 감염되는 것 같다. 이번에 타악 연주자가 함께 공연했다. 처음 보는 새로운 악기들이었다. 김진영 씨의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보이스 퍼포먼스에서 악기는 어떤 역할을 하나.
김진영 : 타악을 연주한 김민석 씨는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다. 물의 장에서 연주한 비행접시 같은 행은 최근에 만들어진 신악기이다. 선율이 있으면서도 여음이 쌓이는 소리가 이번 공연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악기는 음색이나 힘 등에서 보이스 퍼포먼스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소리의 힘이 증폭된다는 점에서 표현을 확장시킨다. 물론 이번 공연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도 있다. 행은 멜로디가 있는 악기인데 기본적인 멜로디가 결정된 후 때로 그 멜로디에 목소리가 갇히는 느낌도 있었다.
김소연 : ‘우리 소리나는 독이다’에서 관객들이 함께 소리를 내면서 각자의 소리가 모여 어떤 조화의 지점을 찾는 과정이 있었다. 무대에서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지 않나.
김진영 : 함께 할 동료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직은 내가 하는 작업을 창작자들도 낯설어 한다. 그리고 좀더 내가 쌓아야 할 것 같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벌이는 보이스 퍼포먼스도 하고 싶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보충설명
2008년 6월 20일 다원예술매개공간
보이스 씨어터 몸 MOM
첫 번째 공연 <보이스 퍼포먼스 _ 독>
'07-08' 인디언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악과 양악의 만남? wHOOL만의 새로운 음악! (0) | 2009.04.10 |
---|---|
프린지에서 만난 시선 둘, 플레이위드 그리고 작은신화 (0) | 2009.04.10 |
뜨거운 오아시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0) | 2009.04.10 |
낡고 지루한 예술은 가라! PLAN CHE (0) | 2009.04.10 |
‘Let's play!’ IN ‘매개공간 미나里’ (0) | 2009.04.10 |
한눈팔지 않으며 꾸욱 누른 한걸음씩, 얼스 EARLS 2집을 만나다 (0) | 2009.04.10 |
[오프도시] 방바닥에 뒹굴 거리며 새빨간 욕망을 마주하다! (0) | 2009.04.10 |
[한국마임] 20년의 기억.. 한 줌에 흩어진 씨앗, 뿌리를 이뤄. (0) | 2009.04.10 |
목요일 오후 한 시의 몽유록 (0) | 2009.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