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플때 먹는 약, 디아제팜

마음이 아플때 먹는 약, 디아제팜

  • 조원석
  • 조회수 373 / 2008.08.25

디아제팜, 삼촌 - 마음이 아플 때 먹는 약, 디아제팜.


‘디아제팜, 삼촌’을 보는데 문득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버렸네.” 라는 하이쿠가 떠오른다. 아마도 ‘삼촌’의 좌우명 아닌 좌우명, “미쳐야 미친다.”라는 대사 때문일 것이다. 좌우명 아닌 좌우명이라고 한 까닭은, 강요된 좌우명이기 때문이다. ‘미치다’라는 동사에는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또는 그것을 가하다.”라는 의미도 있고,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란 의미도 있다. ‘삼촌’의 강요된 좌우명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삼촌’의 과거다. 신동이라 불리던 학창시절을 겪고, 대학에 간 ‘삼촌’은 90년대 한국 대학의 운동권 학생이 된다. 그리고 학교가 아닌 감옥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백수가 된다. 이러한 과거가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촌’에게 ‘미친 세상’은 90년대 한국 사회다. 왜? 똑같은 사회를 ‘미친 세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미치지 않은 세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까? 아마도 한 사회의 다른 면을 보기 때문이거나, 같은 면을 보는데 다른 눈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삼촌’이 본 세상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생생한 세계였다. 그러데 그 세상이 ‘미친 세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 ‘미치지 않은 세상’도 있는 데 ‘미친 세상’이  더 많이 보였거나, ‘미친 세상’을 더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친 세상’을 ‘미치지 않은 세상’으로 바꾸려다 보니까 ‘미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삼촌’은 ‘디아제팜, 삼촌’이 될 수밖에 없다. ‘디아제팜’은 신경안정제다. 감옥에서 나온 ‘삼촌’에게 사회가 준 또 다른 감옥이다. 이 감옥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감옥이다.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조카조차 ‘삼촌’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이해받고 싶어 하는 ‘삼촌’과 ‘삼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조카. 조카, ‘주인공’이 ‘삼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때,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신경안정제, 디아제팜이다.

 조울증이 있는 ‘삼촌’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불안하게 만든다. 이 ‘불안한 삼촌’이 조카를 찾아온 날은 조카, ‘주인공’이 취업 면접을 하루 앞 둔 날이다. 면접에 여러 번 떨어진 경험이 있는 ‘주인공’은 불안과 긴장 속에서 면접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불안한 삼촌’이 나타나 ‘주인공’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불안을 지니고 있다.  ‘삼촌’은 조울증을 앓고 있다. 조울증은 그의 과거를 닮았다. 어렸을 때는 신동이었고, 지금은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백수다. 환희와 절망의 굴곡을 겪은 ‘삼촌’의 조울증은 과거에서 온다. 그런데 조카의 불안은 미래에서 온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밝은 미래를 위해서 취업은 반드시 겪어야할 과정이다. 그리고 취업 이 후의 미래. 그 미래의 미래. 말 그대로 막연한 미래. ‘주인공’에게는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 사람이 바로 ‘미친 사람’이다. 현재 백수인 상태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삼촌’처럼. 그런데 만일 이 세상이 ‘미친 세상’이라면 미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삼촌’이고 미친 사람은 조카인 ‘주인공’이 된다. ‘주인공’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망사 스타킹을 입고, 여자 속옷을 택배로 배달시킨다. 면접을 위해 대학교 응원가를 외우고, 과자 이름을 외운다. 얼굴에 팩을 하고, 자신의 오기를 되살리기 위해 오기노트를 쓰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적어 놓은 오기노트를 나무라는 ‘삼촌’에게 행복은 타인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강변하다. ‘타인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이 행복’이 되는 세상이라면 ‘미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친 세상’을 대변하고 있는 면접관에게 ‘삼촌’은 디아제팜은 머리가 잘못 돼서 먹는 약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먹는 약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미친 세상’ 역시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미친 세상일 지도 모른다. 오기노트를 쓰는 조카에게 “넌 옛날에는 착했어.”라고 말하는 ‘삼촌’. ‘삼촌’이 먹는 디아제팜은 마음이 아파서 먹는 약이다. 그리고 ‘삼촌’은 ‘미친 세상’이 먹어야 할 디아제팜이다.

 


* ‘디아제팜,삼촌’은 2008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중 하나이다. 웃음으로 이 시대의 슬픔을 그린 연극이었다. 이 연극을 보고 프린지페스티벌이 이 시대의 ‘디아제팜’같은 축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치료하는 축제.’

 

보충설명

작품명 : 디아제팜, 삼촌
일 시 : 2008년 8월 19일(화)-20일(수)
장 소 : 소극장 예
작가 정진세/ 연출 문효선/ 무대 임은주/ 조명 최준영/ 기획 이고임/ 출연 손성민(조카 인공역) 김태윤(삼촌역)

필자소개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주중에는 충북음성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학원 선생.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