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9. 20:13ㆍFeature
예술가를 이어주는 옐로우북,
‘노란-책-프로젝트’
글_김혜연
스마트폰 주소록을 연다.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를 본다. 예술과 관련한 연결 고리를 찾아본다. 누군가의 예술 활동을 응원하고, 누군가와 같이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 그 ‘누구’가 ‘누구’라고 말하려니 흐릿한 이름들이 입 안에 맴돈다. 인맥 쌓기를 목표로 하였다면, 이 경험은 개인이 노력하는 선에서 매듭지으면 된다. 고민을, 현실을 크고 깊게 바라보았다. ‘노란-책-프로젝트’(이하 ‘노란-책’)가 한 장씩 페이지를 채워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창작공간이자 홍대앞 공공 예술 공간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예술가들이 제안하는 캠페인이다. 이 예술가들을 ‘공동운영단’이라 부르고 있다. 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민․관 거버넌스 형태로 2년 째 활동 중이다.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사업을 논의하고 실행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예술가가 참여하면서 사업은 활동으로, 사업 대상은 현장 동료와의 조우로 변화하고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은 홍대앞과 인연이 있는 예술가와 교류하고, 젊은 작가를 주목하여 예술 활동의 연대, 상부상조를 만드는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노란-책’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들풀과 같이 자유로이 자라났던 홍대앞은 물론 예술로 물들었던 곳들의 오늘을 보라. 자본이 비집고 들어와 겨우 남은 틈 사이로 예술가는 비싼 작업실을 비우고, 민원에 기가 죽고, 관객은 점점 보이지 않고, 홀로 외로이 죽어가고 있다.
기관에서 예술가나 단체, 공간을 조사한 적은 있다. 데이터들도 대부분 열람에 제한이 없다. 그럼에도 물음표가 생긴다. 다시 들여다보았다. 관의 언어로 쓴, 관이 파악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다. 더러는 관광객을 위한 맞춤 정보에 가깝다. 당사자인 예술가의 책장이나 컴퓨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형화, 공식화된 정보 대신 개인의 경력과 지인 소개로 관계를 쌓아가는 경우가 예술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예술가, 홀로 작업하거나 활발하지 않은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사람 (동료, 관객, 정보) 찾기에 목말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로 흔하다.
예술은 피드백으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영역이다. 작품,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들의 어울림으로 예술과 예술가는 무르익는다. 이를 믿는 우리는, 정책이나 사업을 넘어 예술가가 예술가에게 말을 건네기로 결심하였다. 예술가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말, ‘우리, 언제 작업 같이 해요.’를 붙잡아 보고 싶었다. 숱한 논의와 자문을 구한 끝에, ‘예술가 전용 전화번호부(yellow book)’를 특징으로 하여 일을 벌였다.
▲ 서교예술센터 지원사업인 ‘소액다컴’ 선정 예술가들의 도움과 의견을 받아 제작한 샘플북.
‘노란-책’은 위키피디아 형식으로 진행한다. 즉, 예술가의 참여가 제일 중요하다.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유일한 참여 조건이다. 우리가 말하는 예술가는 창작자 뿐 아니라, 기획자, 공간운영자, 기술진, 연구자, 예비 작가와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역할과 마찬가지로 장르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단체 소속자도 환영한다. 단, ‘개인’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이니 개인으로 참여하면 된다. 프로젝트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한다. 책과 홈페이지이다.
- 책 : 홍대앞과 인연이 있는 예술가 대상으로 질문과 설문 내용 취합
- 홈페이지 : www.norancheck.com 간단한 가입/프로필 등록, 지역 제한 없음, 자유 홍보
‘노란-책’ 질문지는 오랜 논의를 거쳐 예술가 맞춤형 내용으로 완성시켰다. 카테고리 분류를 위한 대표/기본 장르는 특징과 분야를 분석하여 새로이 배열해 보았다. 또한 세부 장르, 작업 주제, 예술 영역에서의 주요 역할과 지역, 예술을 하게 된 계기, 지향점 등을 선택이 아닌 직접 기재하는 항목들도 만들었다. 자유롭게 쓰는 란도 있고, 양식을 제시한 란도 있다. 긴 서술보다는 단어나 간단한 문장만 쓰는 쪽으로 다듬었다. 문서 작성에 따른 부담감을 줄이고자 택한 방법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많은 의견을 들었다. ‘주관식 중심의 초기 질문지가 작성하기 어렵다,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어 한 장르를 고르기 힘들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강요받는 느낌이다, 동료를 찾을 수 있을 지 회의감이 든다.’와 같은 의견들에 해명보다는 경청을 하였다. ‘우리’ 일이라는 생각이 강한 프로젝트여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질문지 내용과 홈페이지를 수정하고, 여러 홍보 방법을 찾고, 책 제작의 이해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샘플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은 이미 ‘노란-책’이 추구하는 바와 맞닿아 있었다. 다른 예술가를 만났고, 함께 프로젝트 기반을 완성시킨 것이다.
홈페이지는 누구나 자유로운 등록과 열람, 홍보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었으나, 책은 지면 관계 상 공동운영단이 주로 활동하는 홍대앞의 예술가들을 찾아 연락하고 동의를 얻어 정보를 구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초기의 의견 수렴과 보완의 과정을 거쳐 온 터라 이전보다 더 많은 호응과 동의를 얻으며 조금씩 참여하고 주변에 추천하는 예술가들이 느는 중이다. 책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건 대신 기회를 열어 예술가를 위한 소통창구 만들기는, 예술가를 위한 서비스이기 이전에 공동운영단인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와 함께 하는 작업이다. 같은 시대의 예술가와 예술 동향을 살피는 것은, 처음에 언급한 피드백으로 성숙하는 예술 분야에 있어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노란-책’에는 특히 예술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교류를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의 참여가 가장 많기를 바란다. 동시에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추천을 요청한다. 예술과 사이가 멀어진 용어이나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당장의 성과는, ‘생활의 달인’을 찾듯 이력과 경력을 따지지 않고 예술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기에 이 바람을 자연스레 갖고 있었다.
예술이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과 같이, 관계에 있어서도 유연해 질수록 예술 활동에 더 큰 힘이 되리라는 믿음은 이제 모두의 작업이 되었다. ‘우리, 지금 같이 작업해요!’
▲노란-책-프로젝트 캠페인 시리즈 일부 (‘건강에 좋은 낙서’ 최진영 작가作)
필자_김해연 소개_서울사람, 여자, 우주의 한 점, 블랙홀의 씨앗, 초콜릿과 고양이 사이에서 휴식중 |
노란-책 프로젝트는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2014년 기획 사업 예술가 전용 전화번호부(yellow book)을 컨셉으로, 책 제작과 홈페이지 운영을 추진합니다. 책은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소식을, 홈페이지는 전국 예술가의 소식을 모읍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각자의 작업을 소개하고, 우리 예술계의 동향을 살피면서 누군가 누구를 만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실현하기를 희망합니다. - 홈페이지 : www.norancheck.com - 공식 페이스북 : www.facebook.com/norancheck - 공식 이메일 : norancheck2014@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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