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00없이 00하기"페스티벌 봄 비수기 프로그램 @서교예술실험센터

2014. 8. 9. 15:23Feature

 

얄짤-없이 예술-하기? 성수기-없이 비수기-나기!

 "00없이 00하기"

페스티벌 봄 비수기 프로그램 @서교예술실험센터

 

글_김송요

 

페스티벌 봄의 비수기 프로그램으로 계획된 ‘00없이 00하기’에선 무용가이자 IT컨설턴트인 저스틴 모리슨과 미술 작업과 기획을 겸하는 홍태림 두 패널을 초청하여 창작과 비평, 축제를 포함한 현장에 산재한 각종 ‘없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부에선 저스틴 모리슨이 지금처럼 IT전문가이자 무용가로 활동하게 되기까지의 일대기,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겪었던 일들과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들었다. 이후 2부 홍태림 작가와 함께 ‘00없이 00하기’에 대한 의견을 관객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스틴 모리슨은 어린 시절 우연히 재미있어 보여 발레 오디션에 도전했고, 발레를 하는 남학생이 적어 순탄히 배역에 발탁된 것을 계기로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무용을 배우고 익히면서 무용을 중요한 업으로 삼게 되었다. 무용을 하는 남자에게 가지는 가장 단순무지한 편견인 ‘게이일 것’이라는 수군거림과, 수군거림 자체는 심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나, 그 추측에 부응하는 성적 지향으로 인해 받았던 따돌림, 본인이 자부할 만큼 배웠음에도 이른바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댄서’ 취급을 받는 것-심지어 이 프로그램 중에도 ‘저스틴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라고 서두를 여는 이가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 꾸준히 IT 관련 일을 해 왔기에 무용이 생업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개인적 고민 같은 것들이 그가 마주한 문제들이었다.

한편 올해 저스틴 모리슨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업이 끝난 학기말엔 학생들과 같이 공연을 했다. 수강생 전원이 참여했다. 학교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무용수를 고르거나 개인적으로 원하는 무용수를 발탁해 학기말 공연을 진행하길 권유받았지만, 한 학기 함께 했던 학생들 모두와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전원이 출연하는 작품을 기획했다고 한다.

공연을 준비하며 그가 겪은 난관을 거칠게 축약하자면 ‘모범생의 문제’ 정도가 될 것이다. 학생들 모두 ‘그냥 (몸짓을) 하면 되는데 너무 우아하게 해서’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끝끝내 ‘대체 왜 여태 배운 방법으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리슨은 ‘춤은 사고, 발견, 호기심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학생들 중 상당수는 이미 체득한 움직임을 반복하는데 그치려 했다고.

 

 

그가 테크닉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뒤에 가서 그가 홍태림 작가가 지적한, 수채정물화로 대변되는 입시미술의 획일성에 ‘그래도 특정 사물들을 그대로 잘 표현하는 것은 작가에게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테크닉은 있되 ‘알 깨기’가 없으면 결국 새로운 것은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다수의 청중은 모리슨이 ‘학생들이 틀에 갇혀 있다’라는 말에는 호응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라는 말에는 잠시간 당황한 모습을 모였는데, 이 반응은 그 자체로 어떤 한계와 닿아 있는 것이었다. -테크닉이 나쁜 것이 아니라 매몰되는 것이 나쁜 것인데 두 가지를 분리하지 못하고 –도리어 재현과 창작은 분리되기 어려운 것인데 그것들끼리는 분리하며 –애초에 ‘개념’은 퍼포머에게 적용될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무용수나 연기자, 연주자에게도 ‘(기존의 정해진) 개념 없이 공연하기’가 중요하다는 걸 간과했던 것처럼 읽혔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가 말한 에피소드가 구슬프게 느껴진 것은, 국내에서 무용수와 안무가를 흐릿하게 경계 짓는 외부의 태도에 반해 현실적으론 무용수와 안무가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은 사뭇 다름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댄싱9>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무용수들에게 창의적인 안무를 요구하는 것에 그 어떤 망설임도 느끼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구상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기만 하다. 춤을 추는 사람들 중 일부만이 안무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지도받은 바를 해낼 수 있는 능력과/벽 없애고 수용하기, 직관을 사용하기, 스스로 판단하기 같은 자기주도의 능력이 동시에 필요함을 본인들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걸 수행하는 것이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도 이 대화 시간 체감한 아쉬움들이 배경으로 마찬가지 존재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00없이 00하기’라는 ‘미션’을 경험하지 않고도 충분히 일련의 예술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00없이’라는 조건 앞에서도 아무런 좌절감이나 열패감 없이 그 ‘00’을 개진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무엇이 되건 찾고자 하는 건 ‘~하기’다. 선민의식, 냉소, 패배의식 같은 것들이 이 세계에서 사라질 수 없으리란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딱히 열정, 의지, 패기 같은 말들이 그것들의 대립쌍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냥, 하고 싶고 해야 할 것 같으면 하는 법을 찾는 게 당연한 거고,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그걸 사랑하기 때문이면 굳이 사랑하는 대상과 서로 맘 상하지 말고 텐더 러브를 베푸십사. 굶주리고 아프고 핍박받더라도 기어이 하라, 는 것이 아니라, 이 풍진 세상 나라도 내 것을 아껴야지, 무어 그런.

 

** 사진제공_페스티벌 봄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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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