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거문고팩토리, <나를 미치게 하는 거문고 클럽>

2014. 11. 25. 11:43Review

 

당신을 춤추게 할 '거문고 클럽'

거문고 팩토리 <나를 미치게 하는 거문고 클럽>

글_율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자. 이는 많은 국악인들이 오래 전부터 꿈꿔왔고, 실제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도해왔던 목표였다. 이 목표에 접근하는 독자적인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퓨전국악밴드의 정체성 형성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듯 퓨전국악밴드의 경우에도 그들 고유의 정체성을 갖추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퓨전국악밴드가 ‘퓨전’과 ‘국악’ 의 요소를 동시에 갖추기 위해서는 단단한 음악적 정체성과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창의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출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수행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퓨전국악밴드는 대중성과 전통적 국악 미학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상대로 미세한 저울질에 실패한 퓨전국악밴드들은 현대적 해석이라는 명목 하에 전통의 성질을 완전히 탈각시켜버리거나, 이질적인 것들의 피상적인 혼합을 통해 아쉬운 수준의 결과물들을 내어놓기도 한다. 혹은 기존의 방식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도에 머물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국악적 미학과 새로운 시도라는 두 요소 사이에서 안정적인 지점을 찾는 순간이 바로 밴드의 정체성이 자리 잡히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대중성을 위해 고안하는 방법이 급진적일수록 수반되는 위험 요소 또한 늘어난다. 이런 점에서 거문고팩토리(이하 : 거팩)의 접근방식은 꽤나 급진적인 축에 속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고 했던가. 많은 음악인들이 우리 음악의 법칙을 변형하거나 다른 것들과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색깔을 찾아나가고 있을 때, 거팩은 아예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작점인 ‘악기’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전통악기 거문고를 직접 개량해 사용한다) 그간 거팩이 쌓아온 음악적 행보 - 전통복원, 창작음악극, 해외시장 개척 - 등을 살펴보면, 그들이 나름대로의 국악적 정체성을 오랜 시간동안 탄탄하게 다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거팩은 양자 사이의 줄타기에서 안정 지점을 찾은 밴드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줄타기를 끝내지 않았음을, 이번 공연의 타이틀인 <나를 미치게 하는 거문고 클럽>을 통해 살필 수 있었다. 국악, 그것도 거문고가 연주하는 음악과 클럽의 조합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시도했다. 공연 내내 거팩이 말했던 ‘당황하지 마시고,’ 멘트는 웃음을 위해 빌려온 유행어이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그들이 보여줄 새로운 방식의 무대에 당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지리라리루와 Imago

공연의 시작은 1집 첫 번째 수록곡 ‘지리라리루’로 시작한다. 그 뒤로 이어진 곡들은 거팩 2집 <Imago>에 수록되어 있는 환유, Blackbird, 파랑새였다. 이 플레이리스트에서도 관객들이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을 법한 곡들을 추려낸 배려의 흔적이 보인다. 여기다 전석 스탠딩, 심지어 생맥주까지 준비한(!) 거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날의 공연은 아쉽게 ‘클럽’ 공연이 아닌 ‘콘서트’ 공연이 되고 말았다. 이건 줄곧 자리에 앉아있길 고수했던 관객들의 탓이 크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의 음악을 듣는 데에 정신이 팔려 가만히 앉아 경청했던 관객 중 한 명이었기에, 이에 대한 변명을 조금 해 보려한다.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다양하게 변주되는 ‘현’의 느낌

라이브 공연은 음반이 차마 담아내지 못했던 음의 무게, 연주의 온도, 공간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나를 미치게하는 거문고클럽> 공연은 내가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던, 그들의 악기들이 내는 음의 질감을 직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리라리루’를 통해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거문고의 청(淸)음, 맑고 곧게 울리는 가야금의 소리, 활의 움직임에 따라 내질러지는 첼로거문고의 소리, 우주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전자거문고의 소리, 그리고 얇고 곧은 직선으로 날카롭게 뻗어 나오는 철연금의 소리까지. 모두 현에서 나는 소리지만 그 음의 느낌과 부피감이 모두 제각기 다르다.

거문고의 큰 매력은 유율현악기이면서도 타악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에 있다. 가야금은 한 손으론 줄을 뜯거나 튕겨 소리를 내고, 다른 쪽 손으로는 줄을 눌러주어 울림이나 떨림을 조절해 연주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야금을 뜯는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문고와 가야금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마찬가지로 ‘거문고를 뜯는다’ 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거문고 연주를 한 번이라도 앞에서 본 사람이라면 거문고는 ‘뜯는다’ 라는 표현보다는 ‘친다’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문고는 한 손으로는 괘를 짚어 음을 잡고, 다른 손에는 술대를 들고 현을 내려치거나 잡아당기듯이 퉁기며 연주하는 악기다. 이렇게 거문고와 가야금이 다른 연주법을 가지게 된 것은 거문고의 현이 가야금의 현보다 더 두터운 데에서 온다. 그리고 이런 ‘현’이 줄 수 있는 느낌을 극대화해 개량한 것이 첼로거문고, 그리고 타악 느낌을 살려 개량한 악기는 전자거문고라는 생각이 든다.

술대가 아닌 활을 잡고 연주하는 첼로거문고는 소리의 부피감과 밀도를 조절하는 것을 더욱 유연하게 할 수 있게 했다. 활과 움직임과 현의 마찰정도에 따라 음들은 얇고 넓게 퍼뜨려지기도 하고, 얇은 소리지만 현을 거칠고 강하게 마찰시켜 그 안에 음색과 까슬까슬한 느낌을 가득히 압축해 찢어질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도 하고, 묵직하면서도 넓은 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거문고의 머리 부분도 악기의 요소로 만든 전자거문고도 인상적이었다. ‘Black Bird’ 의 도입부 부분에서 속이 비어있는 큰 나무둥치를 치는 것같이 넓고 웅장하게 퍼지는 전자거문고의 소리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듯 했다.

 

 

당신을 미치게 할 거문고클럽

이런 다양한 매력을 지닌 악기들이 아티스트들과의 합연과 합쳐지는 것을 듣는 것 또한 큰 감상요소였다. 이번에 합을 맞추었던 아티스트는 드러머 정성재, 보컬 이나겸, 그리고 현대무용팀 모던테이블이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동시에 모두 쏟아내는 즉흥연주는 공간을 가득히 채울 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전해지고, 관객들도 그 에너지에 맞춰 같이 춤췄더라면 그들이 의도했던 ‘거문고 클럽’ 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관객들이 무척 다소곳(?)했기에, 그 에너지는 더 넓게 폭발하지 못하고 무대만을 가득 채웠다.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경험은 그 아티스트를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많은 영향을 준다. 거팩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더더욱 그들의 ‘거문고 클럽’ 을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게끔 만들었다. 비록 열기보단 온기에 가깝지만, 조용하게 공간을 채우던 관객들의 호응으로 인해 클럽 분위기를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음악에 보내는 불호(不好)의 의미는 아니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들의 다음 ‘나를 또 미치게 할 거문고 클럽’, 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 진심이다.

 

 

*사진제공_거문고팩토리

**거문고팩토리 SNS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GeomungoFactory

 

 필자_율

 소개_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