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활(쏘기)을 다루는 두 가지 방식 - 박순호의 춤<활> & 이수영의 <활(弓)의 목소리_활쏘기 퍼포먼스>

 

활(쏘기)을 다루는 두 가지 방식

박순호의 춤<활> & 이수영의 <활(弓)의 목소리_활쏘기 퍼포먼스>

 

 

글_김민관

 

활에서 시작된 두 갈래의 공연

그 이름에서 활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두 공연, LIG아트홀·강남에서 열린 <활>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활(弓)의 목소리_활쏘기 퍼포먼스>는 사실상 크게 공통점은 없다. 오히려 그 두 다른 장르에서 선택한 소재가 활이라는 데서, 활에 대한 두 다른 접근 방식의 차이를 조명하는 데서 이 두 공연을 묶는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전자가 활쏘기에서 새로운 안무의 표현형을 만든다면, 후자는 활쏘기 자체를 시연한다.

박순호 안무가는 기존 2인무의 관계의 장, 그리고 보통은 남녀 2인무로 상정되며, 그럼으로 인해 사랑 이야기 등의 정한(情恨)을 그려내는 것을 벗어나, 화살이 없는 활을 주고받으며 기존의 춤의 존재론적, 관계적 층위를 매체적 확장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 메소드를 고안해 낸다. 이수영 작가는 활쏘기를 보여주되, 활의 당김이 갖는 시간성을 드러내며, 활쏘기에 감응된 신체에 초점을 맞춘다. 두 안무가, 작가는 보통의 기준을 따른다면 무용과 시각예술로 분류가 된다. 박순호의 작업에서 활쏘기가 그 변형된 형태로, 더 이상 직접 화살을 쏘지 않은 채 단지 그 흔적을 확인하게 한다면, 이수영은 진짜 활을 쏘며, 궁수가 된 작가로 활쏘기를 전유(자기 것 화)하기보다 궁수 자체가 되는, 일종의 어느 (특정하지 않은) 궁수의 모습을 공연적으로 재현하는 데 가깝다. 여기서 재현은 작가는 궁수라는 특별한 존재가 됐음을 가리키지만, 궁수가 된 작가라는 특별한 존재로 스스로를 위치시키지 않는 데서 가능해진다.

 

▲박순호<활> @LIG아트홀 강남

 

이수영, 타 영역에 접신하다

박순호가 자신만의 활을 쏘는 움직임으로 어디에서도 재현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활쏘기를 만들며 기존 형태를 끊임없이 벗어나고 또한 춤에 있어 활쏘기와의 새로운 경계를 빚어내는 것이라면, 이수영은 한 번도 입을 떼지 않고 진지하게 궁수로 위치하고 있는 데 그친다. 그러니까 그 진지함만이 궁수의 조건임을 작가는 인지하며, 저자-되기의 권위를, 의연하게 활쏘기 활을 당겨 놓는 것처럼 놓아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영역에 손을 뻗기, 곧 다른 영역과의 조우는 그녀의 지난 작업을 보면 크게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사주를 배워,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고 그 결과를, 물물교환의 대가로 받은 것들과 함께 전시한 <일기-오늘 마리아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콩깍지를 주웠다.>가 일종의 물물 교환을 통한 리서치 기반의 커뮤니티 아트 아카이브라면, 귀신의 복장을 하고 연평도에서 귀신 복장을 하고 해병대를 쫓아가는 연출을 통해 붉은 해병과 하얀 소복의 극명한 대비를 선보인 <연평도 해병대와 물귀신>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매우 건강하게 부각되는 문장에서 비합리적인 존재를 쫓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전제를 들춰, 일종의 근대적이고 선형적 시간대를 내파하는, 근대가 억압한 존재들의 한 유형으로서 귀신의 귀환을 우스꽝스럽게 기록한 사진/영상/퍼포먼스라 하겠다.

 

▲이수영<활(弓)의 목소리> @인천아트플랫폼

 

그리고 이수영 작가는 퇴마의식부터 샤머니즘까지 다양한 접신 의식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이 타자의 영역에 뛰어들곤 했다(접신 자체가 일종의 투명한 신체, 경계 없음을 상정한다). 시각예술의 타 영역의 접속, 또는 타 장르와의 협업은 사실 그리 드문 것만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것이 부정적으로는 각각 민족지적 작업이나 서툰 융합의 자장 아래 부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는 해왔지만, 앞서 말했듯 작가를 내세우지 않는 편을 선택하고, 또는 그 속에 완전히 들어가 다른 세계로 접속하는 것은 특이한 지점으로 보인다.

 

박순호, 독특한 편집 감각의 안무

박순호가 일종의 전작 <유도>에 이은 스포츠 시리즈로, 스포츠의 일정한 자세와 규칙을 요구하는 현실 차원은 무대를 넘어 일종의 춤의 형이상학적 또는 인간적 측면에 매이지 않으며, 프로젝트성 차원에서 매번 다른 타 영역인 스포츠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가져오면서 현재 실제 무엇을 해야 하는 감각들로 관객을 깨우고, 그 표현형 자체로부터 의미를 찾아야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곧 그 유도의 무대적 감각과 그 낯선 표현형을 느끼고 바라보면 된다. <유도>가 실제 메치는 것과 함께 매트를 활용해 메침의 파열음을 통해 유도장의 감각을 친근하고 낯설게 환기시켰다면 <활>은 활을 두 사람이서 주고받으며 활 쏘는 자세를 취해 매끈한 안무 자체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유도만큼의 실제적 감각과 그로 인한 긴장의 현재가 주어짐은 덜하다. 그 2인무는 빠르게 진행된다. 활은 허공에서 무용수에서 무용수로 전해지며, 그 빠름은 유연한 흐름과 역동적인 양상으로 맺어진다.

 

▲박순호<활> @LIG아트홀 강남

 

이는 SF액션물의 영상적 감각을 상기시키는데, 가령 <어벤져스>에서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분)의 활 쏘는 동작,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올랜도 블룸)이 그 예다. 그러니까 화살을 가정하지만 CG를 통해 아마도 그 화살이 더해졌을, 활쏘기를 흉내 내고 그 활시위의 가상적 무게를 근육과 속도로 모사하는 것과 같은 비현실적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환영적인 빠른 속도감도. 이러한 미디어적 감각은 엉뚱한 해석이라기보다는 박순호의 전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유도>에서는 영상을 통해 빠르게 돌리거나 슬로우비디오를 만드는 듯한,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여러 무용수 간에 전달되는 장면처럼 현재의 시간을 가속하고 줄이는 어떤 감각과의 연관 하에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25분가량의 작품은 아주 짧다고도 볼 수 없지만, 그 시간은 휙 지나갔다. <유도>가 다양한 유도 장면을 갖고 파편적/현재적 구성되는 시간을 보게 한다면, <활>은 실제적 감각을 보여주는 부분이 줄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쉽지 않았을 많은 과정적 몸의 탐사가 전제됐겠지만, 그 결과물이 너무 매끈했던 것. 전작과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실재를 가져오는 두 가지 방식

이수영의 이번 작업도 일종의 다른 매체, 물질로부터 출발했고, 시각예술의 형태 대신, 공연예술의 형태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이한 경우라 하겠다. 그렇다고 이를 시각예술에 기반을 둔 퍼포먼스 아트라고 정의하기도 어려운데, 왜냐하면 이것이 시각적으로 특이한 형태나 즉흥성을 갖기보다 그저 하나의 연행 차원에서 수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연행=시각=시간’인 공연이었고, 활쏘기의 본질 자체를 보여주고자 하는 데 가까웠다. 활을 맞추는 것보다 활시위를 당기는 긴장, 그 의연한 나와 활과 시간이 하나가 되는 무한한 당김의 열림, 그 잠재된 힘의 크기를 보여줬다.

 

▲이수영<활(弓)의 목소리> @인천아트플랫폼

 

반면 박순호의 <활>은 활을 쏘고 당기고 건네받고 다시 당기고 하는 과정에서 실제 화살이 없이 그것을 가상의 매체로 가정하고 추는, 그래서 활까지 포함해 3인무 같은 2인무로, 실제 활을 쏨으로 인해 생기는 공기와의 마찰음과 표적에 꽂히는 표적과의 파열음, 그리고 일종의 다시 시위를 재는 단절의 시간 대신, 끊김 없는 시간과 공간을 구성했다. 또한 무대를 빠르게 오가며 시선의 다층위적 변위, 곧 어느 누구에게 시선을 맞출 수 없는 정면성/평면성을 벗어난 흐름에서 빠르게 그 장면들을 ‘포착’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활>은 음악에 따른 안무의 변용으로 인한 몇 개의 장으로 구분됐지만, 전반적으로 그 3인무 같은 2인무가 가장 선명하게 압축적으로 남는다. 춤의 컨텍스트를 추상으로부터 찾는 게 아닌, 그리고 그 추상을 다시 추상으로 만드는 춤이 아닌, 오브제/물질/타 영역의 움직임을 통해 고갈된 소재와 춤의 관성적 움직임을 벗어나는 시도 차원에서, 박순호는 과장이 아니라 무용계에서는 거의 유일하고 동시에 독자적이라 판단된다. 다만 <유도>가 박순호를 비롯해 무용수들이 유도에 적응하는 가운데 설익은 듯한 다양한 시도와 춤/몸의 유도-화(化), 그리고 유도의 춤으로의 변용을 꾀하며 그 둘을 오간 것으로 보이는 반면, <활>은 몸의 연장으로서의 활을 표현하며 활쏘기의 포즈 자체를 취하는 정도로, 조금 입체적인 시도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활(弓)의 목소리>는 작가가 설명한 것처럼 작가의 흥미를 작가의 전문적 태도와 행위로 일치시키는 것 자체로 작업의 자신을 드러내고 동시에 숨긴다. 그러니까 작가는 행위를 통해 궁술을 펼치는 작가, 궁술에 특화된 작가의 모습을 통해 활쏘기 자체를 선보이고, 그 속에서 작가를 놓아버린 작업을 선보이고 있고, 결과적으로 작가는, 작가가 드러나지 않는 시점에서 역설적으로 그 시간과 과정이 되어버리는 가운데 그 공연 전체로서 드러난다. 물론 국궁 사범인 전용훈을 비롯해 다섯 명의 퍼포머가 자리하지만, 활시위의 긴장을 가지며 시작을 연 퍼포머는 이수영이었다.

  

**사진제공_LIG아트홀(1.3.5), 인천아트플랫폼(2.4.6), 이수영 <활(弓)의 목소리> 사진촬영_양동민

필자_김민관

소개_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 온라인 뉴스채널 http://artscene.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