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정민 개인전 “헛기술” - “헛기술”에 대해 주고받은 헛글들

2015. 12. 22. 17:45Review

 

“헛기술”에 대해 주고받은 헛글들

이정민 개인전 “헛기술”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글_유지원과 권정현

 

한 작가의 개인전에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물적/심적 노력들이 투입되는가. 그것이 과연 ‘개인’전이라 할 수 있을까. 이정민의 개인전은 개인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타인들의 발상이 유의미하게 개입되는 지점들로 엮여있다. 디자이너 김형진, 작곡가 강이다, 큐레이터 장혜진과 박재용은 각자의 입장에서 ‘헛기술’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전시 및 작업 제목선정, 집필 등 전시가 준비되는 과정 전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긴밀하면서도 느슨한 이들의 관여로 이루어진 <헛기술>에 대한 한 개인의 완결된 글은 적절한 반응이 아니라는 찝찝한 느낌이 맴돌 때, 하나의 글이 생산되는 과정을 개인전을 올리는 것에 유비하여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산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을 지탱하는 타인의 존재를 떠올렸다. 미술작업을 대하면서 그것이 어떠했는지 함께 수다스럽게 상의하고, 원고를 넘기기 전에 꼭 먼저 돌려 읽는 동료들이 사실은 나의 글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나의 동료인 권정현과 함께 워크온워크 사무실을 ‘산책’하고 이에 따라 각자의 ‘헛기술’, 혹은 헛글들을 엮어보려는 시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써 이정민의 개인전에서 시작된 공명하는 목소리들이 또 다른 산책-자들에 의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정민 개인전 <헛기술>, 전시전경,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2015 (사진=김익현)

 

(지원) “목적지가 없어야 산책”이라 말하는 작가의 말에 그러한 산책이 절실해지는 때를 떠올렸다.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을 때, 열망하던 것이 사실은 허망한 것임이 밝혀졌을 때, 수많은 목소리들이 동시에 여러 방향을 가리키며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때. 허우적대며 길을 나서면, 목적지가 없으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이 그 자체로 중요해진다. 이 때 마주치는 풍경들이 숙성되어 감성이 되고, 좀 더 묵혀두면 생각들로 자라난다. 사유는 늘 제때보다 늦게 도착하는 속성이 있는지라, 그가 도달하기 전에 먼저 산책하는 이 속에 자리를 잡는 것은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와 신속히 엉겨 붙는 정서는 사유에게 길을 일러준다. 이정민의 회화가 제시하는 풍경은 실제 장면이기보다 이렇게 발걸음에 스며들어간 이미지와 정서가 만나는, 그리고 사유가 서서히 도달하는 순간의 흔적이다. <산책-형태>의 이미지들에 등장하는 형태들은 완성된 것들이기보다 흐트러지고 덜 채워진 채로 한 형태 위에 다른 것이 겹쳐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들을 무언가의 형상으로 알아보든 – 돌일거야, 나무일거야 –, 형성되는 과정으로 보든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 보든지는 전적으로 보는 이에게 달려있다. 인물이 등장하는 이미지들도 마찬가지인데, <문득>의 모호한 존재를 특정 인물로 섣불리 결론짓거나, 저 손을 벽돌을 쌓는다고 혹은 무너뜨린다고 판단하든 그 어떠한 내러티브도 거부하지 않는다. <납작 세계의 납작함에 대해>가 담아낸 비계를 보고 서울 시내 그 어느 곳의 공사장을 떠올려 그 맥락을 집어온들 이미지는 이에 대해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이처럼 재단하는 사유가 도달하지 않은 상태의 형태들은 보는 이가 자신의 규정으로써 내리는 판단들과 연상하는 각기 다른 경험들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목적지가 없는 산책을 닮아있다. 이 때문에 이정민의 작업들은 끊임없이 미결정적인 마주침들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사유들을 기다린다.

  

이정민, 문득_캔버스에 먹, 아크릴, 오일_130x162cm_2014

 

(정현) 전통의 현대적 계승처럼 쉽고도 어려운 말이 없다. 옛것에서 좋아보이는 걸 아무렇게나 엉터리로 가져와서는 현대적 무언가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지만, 좋은 것을 제대로 찾아서 알맞게 현재화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이정민의 회화는 그 쉽지않은 일을 가볍고 단순하게, 실용적으로 해낸다.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 기법인 ‘준법’을 가져와 캔버스 위에 오늘의 풍경을 그린다. 준법은 산수화를 그릴 때, 산과 바위, 흙 등 자연물의 표면의 질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필법이다. 작가는 전통 필법을 ‘연구’하여 도시를 산책하면서 만나게 되는 것들—공사장의 비계, 조경용 돌과 나무들, 사람들—을 그린다. 그리고 한지 대신 캔버스에, 먹과 아크릴을 섞어서 붓질을 한다. 먹의 알갱이가 남아있는 붓터치는 동양화의 것도, 서양화의 것도 아니다. 동양의 전통적 사상이나 정신을 끌어오는 대신, 가장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가져와 현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도시가 시골[자연]의 반대말로서, 동양적인 것의 반대항도 아니다. 그저 작가가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이정민은 애초에 ‘동양성’을 호명하지 않기에, 그에 대립하는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자신이 연마한 기술로 자신과 가까운 것을 최적의 방법으로 그릴 뿐이다.   

 

▲이정민, 산책-형태_ 캔버스에 먹, 아크릴, 오일_60.5x72.5cm_2015(사진=김익현)  

 

집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전과는 같지 않은 나로 돌아오는 것이 산책에 숨겨진 위험성이다. 하지만 이 무목적성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나를 따르라, 이것을 믿으라, 저것을 사라, 그곳에 도달하여야만 한다며 외쳐대는 목소리들 가운데 아무 것도 목적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몸부림을 요한다. 통제할 수 없는 가능 세계로 발을 디디는 것은 성공을 보장한다고 자처하는 로드맵들이 서로 경쟁하는 이 땅에서, 산책은 한량의 취미이기보다 수련하는 이의 고행에 가깝다. 그러니 산책이라는 것은 헛짓거리이기보다는 헛’기술’인 것이다. 그리고 이 헛기술들의 무목적성은 끝내 당연하게 여겨지던 목적들을 드러낸다. 키보드의 보면대에 얹혀 있는 파일 철에는 강이다가 제작한 ‘악보’들이 성실하게 꼽혀있다. <단 한 번>은 얼핏 악보같이 생겼지만 음계가 없고, <빠른 걸음과 덤불들>에는 “E 노트는 걷는 행위를 가르킨다”와 같은 지침과 함께 “heart rate=30”와 같이 아리송한 지시들이 덧붙여진 악보가 보는 이를 당혹케 한다. 심지어 <큐브>와 <산책-형태>는 각각 네모난 형태와 전자 프로그램의 화면으로, 매우 직접적으로 연주를 거부한다. 걸음에는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도사리고 있듯이 악보에는 연주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스며있다. 하지만 연주할 수 없는, 연주되기를 거부하는 악보가 얹혀진 키보드 앞에서 손가락의 습관적인 꿈틀거림과 머리 속에서 소리를 들으려는 시도는 갈 길을 잃고 만다.

 

▲이정민, 최저의 선_벼룩시장에서 수집한 셔츠, 단채널 영상, 각질제거용 화산석, 밀가루, 가변크기_2015(사진=김익현) 

 

그렇게 이정민이 발명해낸 회화 기술은 어느 것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제3의 것을 만들어낸다. 동양화의 필선도, 서양화의 붓질도 아닌, 먹과 아크릴이 섞여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질감은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닌 묘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산책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은 거친 붓자국 아래에서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추상이 된다. <산책-형태>는 조경용 돌과 나무가 쌓여있는 이미지인 동시에, 검은 윤곽선을 가진 형태들의 배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형태들은 정해진 무언가로 인식되는 대신 각자가 생각하고 싶은 서로 다른 정체로 보여지게 된다.

이어지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2층에 올랐을 때,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회화가 아니다. 2층을 가득 메운 <최저의 선>은 여러 오브제와 영상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다. 산책의 과정에서 수집한 재료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 그 수단이 꼭 회화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때로는 회화가 가장 적합한 기술일 수도 있고, 때로는 오브제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회화 기술은 탁월하고 정교한 기술이지만, 이정민 작품의 주인공은 아닌 (헛)기술이다.

전시공간은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감상방법이 전제되어 작품이라는 주인공을 위한 무대처럼 구성된다. 하지만 워크온워크 공간은 무대보다 백스테이지에 가깝다. 작가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와 넉넉한 주전부리, 각종 서적으로 빽빽한 서가와 옥상공간에 딸린 트인 공간에 주의를 빼앗기면 과연 무엇이 ‘작품’인지가 혼란스럽다. 이정민의 회화 작업을 보고 있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김형진의 시트가 붙은 창문을 내다보며 날씨를 가늠해보다 서가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주의가 흐트러진다. 한 입 가득 귤을 까넣고 서가를 구경하다가 눈에 띤 계단을 타고 올라가 설치 작품을 감상하고, 옥상으로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이렇게 워크온워크는 곁길이 많아 자꾸 세어나가게 되는 공간이다. 무엇인가 명확한 것이 갈급하여 전시와 함께 제작된 “헛기술” 책자를 집어 든다 해도 해당 전시와 작품을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는 본분을 저버린 글들을 마주하게 된다. 고서적들에 이미지를 삽입되어 있는 방식으로 컬러출력 된 <산책-형태>의 사각 이미지를 손수 붙여놓은 표지를 제외하고는 작품 사진을 찾아볼 수 없으며, 각 글들이 어떠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지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납작 세계를 납작 매체로 담는 것(이정민), 2006년 명황성을 향해 지구를 출발한 뉴호라이즌스(김형진), 초파리의 생애주기(박재용), 모로코의 한 산(장혜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코 단일 키워드로 모이지 않고, 현시원의 글을 제외하고는 전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건너뛴다. 결국 “헛기술” 전시는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일들에는 결코 충실했다고 볼 수 없으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목적적인 언명들을 드러내고 이를 마주한 이들과 매번 새로이 엮일 수 있는 망을 구성하는 데에는 성실했다. 악보를 대하는, 글을 읽는, 전시를 경험하는 기존의 목적과 방식이 저지될 때 새로운 지각과 언어에 대한 요청, 그리고 어떤 ‘헛기술에 대한 필요는 간절해진다.

 

강이다, “헛기술을 위한 음악 만들기_한 달 간의 일과 생활을 기록한 악보_2015 (사진=김익현) 

 

추신. 이 새로운 ‘개인전’을 보는 관객 또한 새로운 ‘감상 기술’을 창안해야 한다. 작품만을 보면 되는 기존의 전시를 감상하는 방법[기술]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 특히, 이 전시를 위한 책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헛기술』은 전시에 걸쳐져 있으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텍스트이다. 두 편의 소설을 포함한 다섯 편의 글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단어 ‘헛기술’ 혹은 전시 <헛기술>과 관련을 갖거나 갖지 않는다. 전시장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서 다시 읽히면서,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책을 전해주면서, 『헛기술』은 다른 장소에서 새롭게 전시를 지속시킨다. 관객은 시간과 공간을 바꿔가며 다시 진행되는 전시를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자_유지원 Yu Jiwon / yujiwon0424@gmail.com

 소개_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시각 언어에서 문자 언어로 옮기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작가/작품/기획자와 대화하고 글로써 소통하는 것에서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꾼다.

 함께한 필자_권정현

 소개_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위대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이정민 개인전 “헛기술”

 2015년 11월 26일(목)~12월 26일(토) (27일 간)

화요일~일요일 오후 2시~9시 *월요일 휴무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 175번지 4층

후원: 서울문화재단 / 주최: 워크온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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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기술

“헛기술”은 회화를 주요한 매체로 작업하는 이정민 작가의 개인전에서 비롯한 프로젝트입니다. 등장 인물은 이정민 작가, 디자이너 김형진, 작곡가 강이다, 큐레이터 장혜진과 박재용입니다.

“헛기술”은 작가 한 사람이 걸어온 작업의 여정을 도드라지게 보이는 개인전이라는 양식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둡니다. 이를 위해, 유령(Spectre)처럼 존재하며 작가의 전시에 관여하는 동료와 공간이 목소리를 낼 기회를 만듭니다.

요컨대, 디자이너 김형진은 명왕성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가 등장하는 짧은 소설을 쓰고, 전시 공간 창문에 그래픽 작업을 하며, 헛된 타이포그래피에 관해 세미나를 엽니다. 작곡가 강이다는 음악 만들기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전시 공간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큐레이터 박재용은 작가를 소개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는 대신 이정민 작가가 던지는 질문의 대상이 됩니다. 장혜진 큐레이터는 70년대부터 명상을 수련한 명상가와 함께 그룹 명상을 진행하며 작가가 말하는 ‘산책-형태’를 찾아봅니다.

개인전을 계기로 벌어지는 이 프로젝트는 ‘워크온워크 스튜디오’라는 사무실과 서가에서 진행됩니다. 이곳은 큐레이팅 그룹 워크온워크가 다른 동료들과 작업 공간이자 작은 도서관으로 공유하는 곳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선 전시를 위해 공간을 비우고 덩그러니 작품을 놓는 대신, 일을 하고 책을 읽는다는 공간의 성격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서가 한켠에 작가가 고른 책을 두고, 작품을 감상할 공간을 만들면서도 일을 할 수 있도록 공간 배치를 바꾸는 것입니다.

“헛기술”은 전시를 한다는 것의 의미, 작가의 개인전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묻습니다.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일 때,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의미를 만들고자 합니다. 전시의 제목 “헛기술”은 이정민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해온 주제이며, 이 전시에 ‘등장 인물’로 함께하는 큐레이터, 디자이너, 작곡가 동료들은 작가의 첫 번째 관람객이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의미를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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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블릭 프로그램

1. 얕은 지식 토크 / 박재용, 이정민 | 11월 28일 (토) 오후 4-6시 /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큐레이터가 질문을 던지는 대신 작가가 질문을 던지는 대담. 작가가 바라보는 작업 동료로서의 큐레이터와 대화를 나눈다.

2. 그룹 명상 / 장혜진 | 12월 초 / 히말라야 명상센터

그룹 명상을 통해 이정민 작가가 말하는 ‘산책-형태’를 찾아보는 시간. 서로 알지 못하는 개인들이 모여 함께 명상 속으로 걸어들어가 본다.

3. 헛기술로서의 타이포그래피 / 김형진 | 12월 넷째 주 중 /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전시 진행 기간 중 매일 특정한 텍스트를 골라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고, 워크온워크 스튜디오로 팩스를 보낸다. 마지막 날 즈음 그간 보낸 팩스를 확인하고 ‘헛기술’로서의 타이포그래피를 논한다.

4. 전시장을 지키는 작가 / 이정민 |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 /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매주 토요일, 전시 작가인 이정민이 전시장을 지키며 대화를 원하는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내용은 간단한 메모와 스케치로 기록하고, 전시 종료 후 공유한다.

5. “헛기술” 프로젝트를 위한 음악 만들기 / 강이다 | 전시 기간 중 매일 /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워크온워크 스튜디오에 출근해 이정민 작가의 작업을 주제로 ‘전시 공간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전시 공간 안에서 악보를 선보인다.

6. 헛기술 서가 | 전시 기간 중 매일 /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작은 서가를 마련해 이정민 작가와 동료들이 워크온워크 스튜디오 내 라이브러리에서 고른 책을 소개한다.

상세 일정은 워크온워크 웹사이트 www.workonwork.org와 트위터 @workonwork를 통해 공지. 일부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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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등장인물

작가: 이정민

동양화 필법(筆法)에 대한 관심과 직관적 해석을 강조한 회화 작업을 2000년대 초부터 진행 중이다. 회화 작업과 더불어, 예기치 않게 주어지는 삶의 조건과 전시 환경 자체를 작업의 과정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개인 작업 외에도 “옥인 콜렉티브”(http://okin.cc)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강이다_2000년대 초부터 활동 중인 작곡가, 음악감독이다. 2010년부터 박찬경, 임흥순 등 여러 시각예술가의 작업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고, 영화, 연극, 무용 등 음악이 필요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일한다. 워크온워크 오피스를 작업실로 사용 중이다.

김형진_그래픽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워크룸에서 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인쇄물을 위주로 작업하며 그 사이사이 글을 쓴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등의 책을 번역했고, 최근에는 더북소사이어이티의 임경용과 함께 인쇄물에 대한 글을 써 <말과활>에 연재하고 있다.

박재용_워크온워크의 멤버로,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필자로 일한다. 2013년부터 2014년 말까지 일민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고, 퇴사와 함께 국외에서 몇 차례 전시와 강연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미술이론서 번역에 힘쓰며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고민 중이다.

장혜진_워크온워크의 멤버로, 독립 큐레이터다. 2013-2014년,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에서 전시 팀장으로 일했다. 2015년에는 큐레이터-미술인으로서 미술 전반에 관한 고민이 깊어지며, 큐레토리얼한 어떤 것을 하나라도 더 하기보다, 홀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미술 밖의 것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출처_http://www.workonwork.org/archives/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