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을 다시 그려 내기

2016. 7. 14. 11:06Review

 

노뉴워크 프로젝트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

-을  다시 그려 내기

 

글_정은미

 

 

Q9, 봄로야, 자청, 혜원, 윤나리, 다섯 명의 작가가 ‘노뉴워크NO NEW WORK’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시각이미지를 만드는 페미니스트’라는 이름 아래 활동한다. 그리고 최근, 그들은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이라는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마쳤다. (ALTER EGO, 2016년 6월 22일–6월 30일)

 

커다랗고 투박한,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니 그들의 작업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나의 영웅], [윤나리, 기이한 기록], [혜원 작가, 여기 있다], [자청 작가, 치마 이야기], [봄로야, 멍의 노래], [Q9 작가, THE GOOD GIRL MUSEUM] 작품들은 일관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서 담고 있었다. ‘기이한 기록’은 직접적인 폭력-강간, 살인, 성폭력-을 기사로부터 가져와 묘사하였다. ‘멍의 노래’는 실제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기록을 텍스트를 사용하여 다시 기록한다. 나아가 가정 폭력 방지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 있다’는 포르노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여성에 대한 시선의 폭력을 다룬다. ‘치마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으로부터 일상 속에서 겪는 여성을 향한 억압과 폭력을 퀼트로 기록하였다. ‘THE GOOD GIRL MUSEUM’은 남성중심사회 구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위의 작품들이 드러내고 있는, 여성으로서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허우적’이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너무나 무거운 이야기들이다. 너무 무거워서 마음에서도 가장 아래에 붙어있는 무엇인가를 확인해야만 할 것 같았다. 깊게 헤엄치고 들어가 양손으로 물컹한 물을 가르며 들여다봐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속에는 드러내기를 꺼리는 나로부터의, 나를 둘러싼 이미지와 정서의 덩어리들이 있다. 이 덩어리들에는 작품 속 장면들이 사이사이에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덩어리들을 내가 드러내고 펼쳐낼 수 있을까? 자신의 검열도 통과하지 못했던, 이토록 불편한 ‘무엇’을 내가 바라보고, 나아가 공론화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작품 앞에서 끝까지 허우적댄다. 그리고 결국에는 작품들에 기댄 묘사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묘사 속에는 나의 덩어리들이 들러붙어 있다.

 

<기이한 기록>

여러 장의 그림이 나열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은 실제 사건들을 담고 있다. 푸른 배경, 그 속에서 새하얀 여자의 몸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 푸름을 머금은 흰 살, 검은 머리카락. 식물, 이파리. 눈코입은 사라져있다. 작가는 폭력의 장면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는다. 반면에, 작가는 폭력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거나 여성들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그림은 서늘하고 고요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런 접근으로 그림은 오히려 더 큰 힘을 지닌다.

 

 

 

#2016.02.27. 고등학생들 길 가던 여성 성폭행 (그림1)

 

 

푸른 커튼 위에 한 소녀가 앉아있다. 커튼은 뫼비우스 띠무늬의 패턴으로 이뤄진다. 한 바퀴를 돌면 시작의 반대편에 있고 다시 한 바퀴를 더 돌면 처음으로 온다. 소녀는 무릎을 가슴팍에 끌어올리고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커튼 바깥에는 메마른 나무가 있다. 앙상하고 뾰족한 가지들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2016.02.25. 10대 남성, 말다툼 끝에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 (그림2)

 

 

 

거뭇하게 여러 갈래로 얽혀가는 나뭇잎들이 있다. 날카롭고 따갑다. 죽은 것 같다. 하나의 책상이 덩그러니 있다. 책상에는 서랍도 있고 책도 있다. 그 밑으로 하얀 어떤 것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다. 여자의 몸이 가루로 변해버린 것 같다. 눈도 코도 입도 없다. 이제는 다리도 발가락도 손도 머리도 없다. 가루로 쌓여버렸다. 아니, 확신할 수 없다. 무엇인지 모르겠다.

 

#2016.02.24. 같은 마을에 사는 30대와 20대 남성 둘, 지적 장애 여성을 군청 주차장으로 불러내 구타하고 성폭행함 (그림3)

 

 

 

하얀 나무 두 그루가 대칭을 이루며 나란히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우산을 두 손으로 잡고 서 있다. 얼굴보다 유난히 큰 몸, 정면을 응시한다. 빽빽하게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 나무는 정면을 본 여성에게 공간을 주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2016.01.18. 내연관계의 여성이 이별을 요구하자 살해하고 말리던 피해 여성의 어머니도 흉기로 찌름 (그림4)

 

 

울고 있는 딸을 보듬어 주는 엄마. 작은 손으로 감싼 작은 얼굴을 엄마의 가슴팍에 묻는다. 엄마의 몸은 푸름을 머금고 있다. 엄마의 팔은 너무나 부드럽고 크다. 그리고 따뜻하다. 까맣고 뾰족한 잎들이 나뭇가지에 달려있고, 그들 주위에 드리운다.

 

 

<여기 있다>

 

 

# (그림5)

가슴 중간부터 허벅지까지, 여성의 나체가 있다. 끈끈하게 중력 바깥으로 차오른 어떤 액체가 가득히 출렁이고 있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이 도드라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참의 응시 속에서 나 말고 또 다른 응시가 있다. 일렁이는 액체 속에 여자의 한쪽 눈이 보인다. 정확하게 나를, 우리를 보고 있다. 액체가 흘러 오르는 곳에는 누워있는 남자의 나체가 있다. 여자의 몸이 선명한 곡선을 그리는 반면 남자의 몸은 흐린 배경이 되어 있다. 납작한 가슴에서, 다리에서, 발에서 액체가 흘러나온다. 사라지고 있는가? 여자는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는 남자의 몸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이 너무 강렬해서 그림 속 힘을 모두 끌어다 쓰고 있는 것 같다. 눈이 사라지면 모든 액체가 턱 하고 내려앉아 남자는 사라져버릴 것 같고 여자의 눈만이 남아 있을 것 같다.

 

 

 

 

# (그림6)

액체는 묽은 물이 되었다. 찐득하던 느낌은 사라졌다. 큰 파도가 일고 잔파도가 따른다. 여자는 엎드린 채 고개를 물속에 파묻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물이 일렁인다. 여자의 몸에 곡선이 격렬하다. 허벅지에서 엉덩이의 큰 곡선은 허리에서 꺾이고 어깨로 이어진다. 파도 속으로 머리는 사라졌고 손이 머리를 움켜쥐려 한다. 여자의 눈은 물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여자가 다른 시선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느껴진다. 여자는 물의 흐름, 파동, 촉감에 집중한다.

 

 

 

 

# (그림7)

날카로운 선들이 사방으로 뒤엉켜있다. 제멋대로 휘감긴 선들에는 작은 가시들이 털처럼 박혀있다. 날카롭지만 오히려 부드러워 보인다. 부드럽지만 함부로 헤집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위에 나체로 여자가 누워있다. 우리는 그녀의 머리로부터 다리까지를 거꾸로 본다. 당연하게, 얼굴은 뒤집혀있다. 눈도 뒤집혀있다. 거꾸로 된 눈이 빛을 쏜다. 그 눈은 그녀를 보고 있는 나를 본다. 한 손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데, 거기에 선들이 집약적으로 엉겨 붙는다. 거미줄처럼 들러붙는다. 그 아래에 얇은 입술이 눈썹처럼 웃고 있다. 다른 한쪽 손은 그녀 자신의 몸을 만진다. 아래를 향한 손이 그녀의 눈빛과 겹쳐 떠오른다.

 

 

 

<자청 작가, 치마 이야기> (그림8)

 

#PINK 난 치마가 싫어/ 바지를 입어야 놀기 편해/ 미끄럼틀도/ 정글짐도/ 달리기도/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야/ 치마를 입고 놀면 남자아이들이 놀려/ 속치마가 보인다, 팬티가 보인다/ 있잖아,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해/ 속옷 본 걸 자랑하는 남자아이들/ 여자애가 조심성이 없다고 다그치는 어른들/ ‘여자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야/

분홍색 천 위에 퀼트. 아이는 단발에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다. 치마를 입고 노는 아이와 그걸 지켜보는 남자아이들이 있다. 까만 동그라미의 까까머리. 이 동그라미들은 아이가 철봉에 매달릴 때, 그네를 탈 때, 치마 속을 본다. 커다란 어른은 팔짱을 끼고 조그마한 아이에게 말을 뱉는다. 아이는 어깨가 경직되어 어른의 말을 듣는다. 어른의 말이 아이의 귀로 흘러들어 간다.

 

#BROWN 사람들이 날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렸어. 왜 나한테 여자라고 하지. 난 왜 여자지. 그럼 난 남자인가. 난 뭐지/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동복 바지를 맞췄어/ 여름에는 치마를 입어야 했지만, 겨울에는 남자 마이까지 빌려 입으니 좋았어/ 나는 점점 여자로 사는 것도 싫고, 여자 옷을 입는 것도 싫어졌어.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나는 여자가 아닌 거 같다. 그다음은 아직 모르겠지만 여자는 아니다

갈색 천 위의 퀼트. 중학생의 아이는 교복 치마를 입고 있다. 새하얀 교복 상의와 까만 치마를 입는다. 어린 시절 바지를 입고 활동하던 아이였다. 남자아이는 교복 바지를 입는다. 길게 내려온 까만 바지이다.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 옆에는 검정 마이와 검정 바지의 남자 교복이 있다. 천 위에 아이의 독백이 새겨져 있다. 치마와 여자, 바지와 남자, 아이는 치마와 바지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아이는 고백한다.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에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장면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 관한 이야기,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폭력을 폭로하고 금기를 풀어내며, 그 억압을 가시화한다. 우리는 이 장면들 속에서 어느 자리에 위치하고 있을까? 노뉴워크의 프로젝트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열린 체제를 유지할 예정이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본 전시의 참여 작가를 비롯하여 외부 작가들의 작품도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들이 들려주는 우리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다.

 

#볼드체는 작품에서 발췌, 그림 출처는 nonewwork.tumblr.com, https://t.co/XgTlj3ViUh

 

 

 필자_정은미

 소개_내가 누군지 글로 짓고 있는 중.